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230
외전9. 한여름밤의 판타지(4)
“와우.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아마도.”
영준의 말에 민영이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뭘까. 대체.”
“그러게. 진혁 레이먼드의 무력에 관한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말이야.”
“모르지 의외로 숨겨진 강자일지도.”
“하. 민영. 지금 내 정보력을 의심하는 건가?”
영준 크로이던, 민영 설리번. 지금 이 두 사람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이곳에 없었다.
적당한 귀족 가의 자제로 위장을 하고 있었으나. 두 사람은 사실 합스부르노 왕가의 정보원.
지방 이곳저곳을 돌며, 왕가 예하 귀족들과 영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뭐 의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실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다면, 정크 제퍼슨에게 저리 당당하게 결투를 신청할 수 있겠어?”
정크 제퍼슨은 제퍼슨 백작가 제일의 검사로 꼽히는 실력답게, 왕가 내에서도 주시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흠…. 뭐, 지켜보면 알 일이지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더 백작이 소동이 일어난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결투라니. 대체 무슨 일이냐!”
백작이 다가오자, 주변의 사람들이 전부 예를 갖췄다. 진혁 역시 아버지에 대한 예를 갖추고 말했다.
“예. 아버지. 정크 제퍼슨이 제 약혼녀를 욕보였기로 저와 저의 가문 그리고 세린과 그녀 가문의 명예를 위해 제가 결투를 신청하였습니다.”
“세린을 욕보였다?”
백작의 말에 패거리들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못마땅한 눈빛을 비추는 패거리들.
진혁이 그가 들은 말을 아더 백작에게 전했다. 아더 백작이 뭔가 말을 꺼내기 전에 정크 제퍼슨이 먼저 변명을 했다.
“세린에게 한 말이 아니라, 그저 남자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은 것뿐입니다.”
“농담이라…. 네가 말하는 농담이라는 게 내가 아는 뜻과는 조금 다른 듯하구나.”
아더 백작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정크가 한발 물러섰다.
“송구합니다. 저희의 농담이 지나쳤습니다.”
“흐음….”
아더 백작의 시선이 진혁을 향했다.
“결혼을 앞둔 축제의 날 결투라니. 안 될 말이다. 정크가 저리 사과를 하니, 이쯤에서 넘어가도록 하자.”
아더 백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크 제퍼슨은 제퍼슨 가 제 일의 검사. 아들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결투를 신청했는지 몰라도, 그대로 두었다가는 결혼도 하기 전에 장례부터 치를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정크가 사과를 했으니, 그걸 핑계 삼아 적당히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백작 님 송구합니다만, 결투를 취소할 수는 없습니다.”
백작의 생각과는 달리 정크가 재빨리 말을 막아섰다.
“뭐라?”
“아시는 바와 같이 한번 신청한 결투는 취소가 없는 법입니다. 만약 그런 행동을 한다면 레이먼드 백작가의 명예가 더럽혀질 것입니다. 레이먼드는 겁쟁이라고 만천하가 비웃을 테지요.”
아더 백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크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 명분이라는 건 만들기 나름, 양자가 한 발짝 물러설 수만 있다면 그저 친구 간의 사소한 헤프닝으로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백작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진혁의 큰형이자, 레이먼드 가의 장남인 지노스 레이먼드가 아버지를 대신해 나섰다.
“정크. 친구들 간의 사소한 시비다. 진혁이 조금 감정이 격해서 한 말일 뿐 아닌가. 오늘은 좋은 날이니 적당히 넘어가는 것도 기사의 도가 아니겠는가.”
“하하하. 지노스 형님, 저는 그런 기사의 도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
정크 제퍼슨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동생이 걱정되시면, 형님이 결투에 대신 나서는 건 어떻겠습니까? 같은 가문이시니,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지노스가 움찔했다. 지노스의 검술은 백작가의 기사들도 인정할 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정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지노스가 선뜻 예스라고 대답하지 못한 채 잠시 우물쭈물하는 사이, 진혁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형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신청한 결투이니, 제가 저와 제 가문의 명예를 지킬 것입니다.”
진혁의 말에 정크가 다시 한번 비릿하게 웃었다.
“크흐흐. 어디 네 실력도 네 혓바닥만큼이나 긴지 지켜보지.”
진혁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잘 지켜보거라.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을 테니.”
“이 자식….”
정크가 이를 으득 깨물었다.
“……”
아더 백작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찼다. 이젠 결투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
백작 성의 검무장이 인파들로 북적였다.
“호호호.”
“하하하.”
귀족들의 결투란, 모름지기 당사자들만 심각한 법이었다.
배부르고 삶이 권태로운 귀족들에게 다른 이의 결투란 한낱 눈요깃거리요, 유희일 뿐.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검무장의 귀족들은 하하 호호 웃고 떠들며, 오랜만의 볼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드디어 저 망나니 놈의 최후를 보겠군.”
“둘 다 똑같은 놈들인데 뭘.”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제 놈들끼리 싸워 진혁 한 놈이라도 죽어준다니 얼마나 후련한가 말이야.”
“하하. 그건 그렇구만.”
그동안 망나니들의 만행을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귀족들이 미리부터 진혁 레이먼드의 죽음을 자축했다.
“……”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서연만은 굳은 표정으로 결투를 준비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결혼식 대신 장례식을 치르게 될 줄이야.”
레이먼드 가의 기사 하나가 조용히 투덜거렸다. 진혁이 이긴다는 기대를 하는 기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서연을 제외하고는.
서연이 차가운 눈빛으로 기사를 바라보자, 기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자, 두 사람은 이제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결투의 진행을 맡은 에슬러 자작이 두 사람을 호명하자, 진혁과 정크가 롱소드를 뽑아들고 서로 마주 섰다.
“이것은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걸고 행하는 정정당당한 결투입니다. 두 사람은 이 결투에 따른 어떠한 책임도 서로와 서로의 가문에 묻지 않기로 신께 맹세하겠습니까.”
“네.”
두 사람이 대답을 했다. 정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비를 바라지 마라.”
진혁은 그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선공은 양보하지.”
“뭐? 하. 미쳤구나. 역시 미쳤어. 오냐. 네가 공격 한번 못해보고 세상을 하직하고 싶다 하니, 그렇게 해주마!”
정크가 쏜살같이 진혁에게 접근해서는 진혁의 목을 노린 강력한 검격을 날렸다.
캉―!
“응?”
정크의 눈에 의아함이 가득 찼다.
진혁 레이먼드의 검술이라면 정크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검술이랄 것도 없는 허접한 칼부림.
딱히 검에 소질도 없는 놈이 그저 배워야 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흉내만 내었고, 실력도 딱 그에 알맞은 실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건?!
결코 봐주지 않고 날린 검격을 진혁이 가볍게 튕겨내었다.
“뭐야. 끝이야? 끝이면 내가 가고.”
진혁은 여유롭다 못해 따분함마저 느끼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 자식! 지옥으로 보내주마!”
캉!
카강!
카강!
진혁의 검과 정크의 검이 부딪히며 불꽃을 뿜어내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정크의 검.
하지만 진혁이 유연한 몸놀림과 부드러운 검술로 정크의 공격을 모조리 흘려내었다.
“오오!”
왕궁 정보원 영준의 눈이 반짝거렸다. 민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 정보가 잘 못 되었군.”
“젠장. 그럴 리가 없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영준이 입을 쓸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역시 막아내는 정도인가?”
“하하. 영준. 역시 넌 검술은 아직이구나. 좀 더 지켜보라고.”
민영이 영준을 향해 빙긋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휘휙!
슈슈슉!
카가강!
지금까지 방어만 하던 진혁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정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어를 할 때도 느끼긴 했지만, 공격을 시작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검법이 아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움직임이었다.
카강!
캉!
제퍼슨 백작령 내 검술 일인자답게 정크는 낯선 검법의 공격을 제법 잘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여유 있게 정크의 공격을 흘려내던 진혁과는 달리 누가 봐도 가까스로 막아내는 모습이었다.
‘이, 이럴 리가 없다!’
당사자 정크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이 경악하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아더 백작이 장남 지노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노스라고 영문을 알 리 없었다.
지노스 역시 그저 눈이 휘둥그레져 있을 뿐이었다.
“서연 경. 이, 이게 어떻게?”
다른 기사들이 경악에 찬 시선으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이미 서연은 다른 기사들에게 자신이 보았던 진혁의 무위에 관해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아서 그렇지.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 기사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보고도 믿지 못하는 표정. 그러니 어떻게 말로만 듣고 믿겠는가.
“……”
서연은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결투를 지켜볼 뿐이었다.
“으아악!”
가까스로 진혁의 검을 걷어내던 정크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진혁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어 터져 나온 고함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제퍼슨 가의 일인자다! 이따위 쓰레기 놈에게 내가 밀릴 리가 없다!!
“으아아아!”
정크가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검격에 힘과 스피드를 실어내었다.
캉!
카강!
가까스로 다시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웃어?’
진혁이 웃고 있었다.
“이제야 할 만하구만.”
“뭐? 이익…. 으아아아!”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정크가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을 날렸다. 광폭한 검이 진혁의 목을 노렸다.
“헛!”
아더 백작이 헛숨을 들이켰다. 이제 꼼짝없이 아들의 목이 날아갔다고 생각한 그 순간.
휘익―
백작은 한 마리 새를 보았다.
진혁의 몸이 부드럽게 날아 한 바퀴를 돌며 정크의 뒤로 착지했다.
“우와와!”
구경하던 모든 귀족이 탄성을 터트렸다.
생각지도 못한 진혁의 동작에 오히려 온 힘을 실어 검격을 날렸던 정크의 균형이 무너졌고.
촤악―
착지와 동시에 번개같이 날아든 진혁의 검이 정크의 다리를 그어냈다.
“크아아악!”
정크가 다리를 부여잡고 뒹굴었다.
쨍그랑!
정크의 검이 저만치 뒹굴었다.
“……”
사람들의 얼굴이 전부 경악으로 물들었다.
진혁이 천천히 정크에게 걸어가 검을 목에 겨누었다.
“그럼, 내 약혼녀에 대한 사과는 네 목숨으로 대신 받도록 하지.”
진혁이 차갑게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정크가 울부짖었다.
“진혁 레이먼드! 잘못했다! 내가 사과하마! 네 약혼녀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마! 살려다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기사로서의 명예가 없는 것이냐?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순순히 가라.”
“으아악! 제발, 목숨만은 살려다오!”
진혁의 검이 자비 없이 선을 그으려 할 때였다.
“진혁아!”
아더 백작의 부름에 진혁의 손이 멈칫했다.
“그만 해라. 이미 전의를 상실한 적의 목숨을 거두는 것도 기사의 도리는 아니다.”
“하지만….”
전장의 적에게 자비를 베풀면, 그건 십중팔구 후환으로 돌아온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진혁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용병들의 전쟁터가 아니었다. 아버지 아더 백작이 더욱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아비를 봐서라도 그만 해라. 여기서 네가 전의를 상실한 저 아이를 죽인다면, 내가 어찌 제퍼슨 백작의 얼굴을 볼 수 있겠느냐.”
귀족의 공식 결투는 죽더라도 상대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
하지만 공식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 개인적인 복수심을 갖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귀족의 결투에서 누군가 목숨을 잃으면 결국 두 가문은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는 암투에 휩싸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진혁이 검을 거두었다.
그때였다.
집사가 허겁지겁 아더 백작에게 다가왔다.
“백작님. 왕궁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소집령입니다.”
백작의 눈이 커졌다.
소집령. 전쟁이 터졌다는 뜻이었다.
***
“다른 방에서 자고 싶지만, 그러면 사람들이 의심할 겁니다.”
진혁이 자신의 방 소파에 이불을 펴며 말했다.
“어차피 내일 출정을 하면 당분간 홀로 지낼 테니 조금 편안해지실 겁니다.”
어찌보면 전쟁이 터진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을 올리긴 했지만, 세린은 세린대로, 진혁은 진혁대로 전혀 결혼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진혁은 더욱더.
하지만 다행히도 오늘 첫날밤만 잘 지내고 나면 바로 출정이었으니.
오늘만 넘기면 일단 세린과의 부부생활은 당분간 피할 수 있었다.
세린이와 부부라니. 참, 나.
진혁은 앞으로 어쩌나 싶었지만, 일단 잊기로 했다. 그건 전쟁터에서 돌아오면 염려할 문제였다.
진혁이 소파에 자리를 잡고 누우려 할 때였다.
“저….”
세린이 입을 열었다.
“그, 그냥 침대에서 주무시면 안 됩니까.”
“…. 불편할 겁니다. 그냥 여기서 자겠습니다.”
“아니, 그러면 제 마음이 너무 불편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침대가 충분히 넓습니다.”
세린은 완강했다. 결국 진혁은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진혁이 침대 모서리 끝에 자리를 잡았다.
“저…. 조금 더 이쪽으로 오셔도 됩니다.”
진혁이 찔끔 움직였다.
“조금만 더….”
진혁이 다시 찔끔 움직였다. 그렇게 몇 번을 더 하고 나서야 겨우 제대로 자리를 잡은 두 사람.
“……”
“……”
그렇게 침묵 속에 진혁이 막 잠이 들려던 참이었다.
스윽.
어느새 슬쩍 다가온 세린이 손을 내밀어 진혁의 손을 잡았다. 세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필시 큰 용기를 낸 행동이었을 터였다.
세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꼭….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네. 걱정 마십시오.”
진혁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무사히 돌아와도 걱정이었다.
세린아. 이걸 어쩌면 좋으냐.
이런 상황보다는 오히려 전쟁터가 편안한 진혁이었다.
결국 진혁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모두 무사히 돌아오라! 신께서 함께하시기를!”
레이먼드 가의 깃발 아래, 군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 선봉에 진혁이 있었다.
“……”
부관으로 참전하는 서연이 진혁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몰았다.
***
“우와와!”
펑! 퍼벙!
백성들의 커다란 환호와 축포 속에 늠름한 개선 군이 성문을 통과했다.
6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진혁은 또 다른 세계의 전장을 경험했다. 그리고.
영웅이 되어 있었다.
레이먼드 가의 깃발과 왕가의 깃발이 함께 휘날리고 있었다. 엄청난 전공을 세운 레이먼드 가에 왕이 친히 하사한 깃발이었다.
진혁이 예를 따라 환호하는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와와!”
백성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진혁을 뒤따르고 있는 서연이 진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생사를 같이한 6개월의 시간.
검술 뿐 아니라 지휘관으로서의 능력,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인품까지. 그녀는 진혁의 모든 것을 보았다.
“……”
그리고 지금, 진혁을 바라보는 그녀의 가슴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존경심 그 이상의 것이었다.
“오오! 아들아! 장하다!”
마중 나온 백작을 발견한 진혁이 말에서 내렸다. 다른 기사들도 모두 말에서 내려 백작에 대한 예를 갖췄다.
“기사 진혁 레이먼드 백작님을 뵙습니다.”
“그래. 그래. 고생했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 유니스는 이미 한참 전부터 연신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 옆에 진혁의 아내 세린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고.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병으로서 무수한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단 한 번도 세상은 그에게 환호를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계만큼은 달랐다.
영광과 환호. 진혁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조금은 찾아가고 있었다.
진혁이 가족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따스한 햇살이 광장을 비추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날이었다.
바로 그때.
“진혁 레이먼드! 네 이놈!”
누군가의 고함에 진혁이 막 몸을 돌렸을 때는 이미 복수심에 가득한 정크 제퍼슨의 석궁에서 화살이 떠난 뒤였다.
슈슉!
퍼억!
진혁을 감싸 안은 서연의 몸이 허물어졌다.
슈슉!
순간 진혁의 손을 떠난 단검이 단숨에 정크 제퍼슨의 머리를 향해 날았다.
퍼억!
정크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서연아!”
진혁이 석궁에 맞고 쓰러진 서연을 부둥켜안았다.
쿨럭.
서연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눈이 흐릿해졌다.
“진혁 님….”
“말하지 마라. 조금만 기다려라. 곧 의원이….”
하지만 진혁도 서연도 알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걸. 서연의 입가에 피와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미소가 걸렸다.
“모셔서 영광이었습니다….”
“……”
“…. 품어서는 안 되는 마음을 품어서…. 벌을 받았나 봅니다…. 부디 행복하게….”
서연의 눈이 감겼다. 진혁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서연아. 서연아. 정신 차려 봐. 야, 민서연!”
자기도 모르게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결국 진혁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진혁의 시야가 점점 희미해졌다.
***
“진혁아.”
“……”
“진혁아?”
“……”
“야! 우진혁!”
서연의 목소리에 진혁이 번쩍 눈을 떴다. 곧 밝아진 진혁의 시야에 서연의 얼굴이 들어왔다.
“서연아!”
진혁이 반가운 마음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
갑옷 대신 래쉬가드를 입고 있는 자신의 몸.
서연의 미간이 슬쩍 좁혀졌다.
“뭐야. 너.”
“……”
“왜 자면서 내 이름을 불러?”
진혁은 금세 상황을 이해했다.
진혁의 시선이 보트가 묶여 있던 버드나무 아래로 향했다. 역시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 참. 꿈을 꿔도 왜….
“아직도 비몽사몽인 거야? 왜 내 이름을 불렀냐니까? 너 혹시….”
서연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혹시 내 꿈 꿨어?”
“……”
“뭐 하러 꿈을 꿔. 보고 싶으면 그냥 이렇게 보면 되는데.”
서연이 얼굴을 쓱 내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진혁은 단지….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물놀이하러 가야겠다.”
진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강가로 향했다.
“어? 야, 진짜야? 내 꿈 꿨어? 왜? 무슨 꿈을 꿨는데?”
어쩐지 서연이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진혁의 뒤를 졸졸 따랐다.
– 외전. 한여름밤의 판타지 편 끝 –
<>
네 그렇습니다. 독자 분들이 원하신다면 더 길게 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눈물) 이하 생략입니다.
(준비했던 분량을 한번에 축약하다 보니 오늘은 분량이 곱빼기가 됐네요.)
아직 외전은 남아 있습니다. 물론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지만요.
다음 편은.
두둥!
본편 완결 시점, 그 이후 친구들의 이야기를 좀 다뤄볼까 합니다.
김용수, 김희정 매니저 결혼 이후에 진혁과 친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살짝 들여다보겠습니다.
그럼,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