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79
79. 대박이 났다
휘이잉―
간발의 차이로 홍길동(우진혁)이 머리 위를 스쳐 가는 칼날을 피해 내기가 무섭게.
슈슉! 슉! 슈슉!
순식간에 동시에 찔러 들어오는 서너 개의 칼날을
카강! 캉!
번개 같은 속도의 검법으로 거둬내고는.
푸학!
“크아아!”
베기로 하나.
슈욱!
“컥!”
찌르기로 또 한 명을 해치웠다.
“이야 합!”
하지만 살수 집단답게 전혀 두려워하거나 물러서는 기색 없이 도전해 오는 적들.
슈욱! 카강!
슈슛! 팍!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적들의 공격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회피하며, 하나하나 적을 쓰러뜨려 가는 홍길동 진혁.
퓨슉!
“크아악!”
눈이 따라가기 힘든 속도로 전개되는 강렬한 액션에 이영준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한 채 화면에 집중했다.
“와….”
그저 절로 흘러나오는 감탄에 입만 벌릴 뿐.
휘익―
적들의 검 사이를 유영하는 진혁은 마치 휘몰아치는 바람. 그 존재를 인식할 수는 있으나 결코 베어낼 수는 없는 존재.
슈슉!
팍!
바람을 베어내려던 어리석은 자들은, 바람이 휘돌며 뱉어내는 죽음의 검무(劍舞)에 휩싸여 하나씩 피를 흩뿌렸다.
“크아악!”
하얀 설산의 화폭 위에 적들의 피로 그림을 그려가는 ‘죽음의 무도가’ 홍길동.
장엄한 설산 사이, 눈 덮인 순백의 벌판. 그 아름다운 풍광 때문일까.
어쩌면 죽음의 무도를 추는 진혁의 눈부시게 화려한 몸놀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혈투 사이에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진혁의 외모 때문이었을까.
분명 스크린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피비린내 나는 검투임에 분명했으나. 또한 분명.
너무도 아름다웠다.
푸슉!
적의 몸을 관통했던 칼을 진혁이 뽑아 들었다. 쓰러지는 신형 뒤로, 물러서 있는 남은 세 사람의 모습이 진혁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 셋 남았다.”
무표정한 얼굴.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는 것 같은 차가운 눈빛.
그 눈빛을 따라 얼어붙어 버린 창백한 얼굴.
순간, 카메라가 잡아낸 진혁의 모습은,
얼음 조각의 대가가 그의 그늘진 마음을 혼에 담아 깎아낸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았다.
“하아….”
진혁의 호흡에 입김이 흩어졌다.
화면에 잡힌 것이 얼음 조각품이 아니라,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하는 호흡이었다.
– …..이거 뭐냐. 액션 실화냐?
– 아니! 이게 뭐냐고! 미쳤냐고! 너무 멋있잖아ㅠㅠ
– 우진혁! 우진혁! 우진혁! 제발 날 좀 가져요!
└ 나 죽어ㅠㅠ
– 와…. 드라마에서 이런 액션 씬 반칙 아닌가.
└ PD와 우진혁의 도핑검사가 시급함.
└ 이거는 꼭 드라마 대상 말고, 백룡 영화상으로 보내라.
홍길동전을 시청하는 집집마다, 열려 있는 인터넷 게시판마다 전부 난리가 났다.
***
덜컹!
1대 홍길동이었던 원로 배우 원상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다.
“여보 진정해요. 당신 환자예요.”
꼭 쥔 주먹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사실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주먹보다 더 떨리고 있는 건 그의 심장이었다.
진짜다. 이건 진짜다.
미치도록 격렬한. 그러나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액션 씬.
한국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설산, 눈 덮인 평원. 그리고 그 속에 대가의 일필휘지 붓질로 그려나가는 듯한 유려한 액션.
그가 언제가 그려본 적이 있었던 검투 그 이상의 액션.
“……”
노배우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하고 흘렀다.
솥뚜껑 같은 그의 손바닥이 그 눈물을 둔탁하게 쓸어내었다.
주름진 손등에는 액션 배우로 살아왔던 그의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여보….”
그의 아내가 그를 애틋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아내를 향하지 않았고, 그의 입술도 뭐라 말을 내뱉지 않았다.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화면 위의 홍길동과 그의 대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였다.
사실 그의 가슴은 숨 막히는 액션 씬이 펼쳐지기 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홍길동의 어머니 춘섬의 죽음과 그 범인인 또 다른 어머니 초란을 제 손으로 죽인 홍길동.
분명 원작에도 등장하는 춘섬과 초란이었지만, 그 관계는 기가 막히게 변주되어 있었다.
홍길동은 의적(義賊).
의적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아이러니한 말인가. 의로울 ‘의’와 도둑 ‘적’이 만난 단어라니.
본래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그 시대의 모순 때문에 태어난 모순적 인물이었다.
그런 홍길동의 모순성을 오늘의 시대적 색깔로 더욱 선명하게 표현해 내는 장치가 바로 홍길동이 초란을 죽인 장면이었다.
노배우의 가슴이 뛰었다.
어미를 죽인 자에게 복수하는 것을 정의라 이름한다면, 그 복수가 또 다른 어미를 죽이는 것이었을 때.
그때도 과연 그것을 정의의 복수라 이름할 수 있을 것인가.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홍길동의 가슴이 그것을 허락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마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악질 고리대금업자를 죽였으나, 찾아온 죄의식의 중압감을 견딜 수 없어 괴로워하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처럼.
2012년도의 홍길동은 태생부터 권선징악의 슈퍼히어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태생이 모순인 정의의 사도.
정의는 마땅히 빛이어야 하겠으나, 그러기엔 간직한 어두움이 너무 깊은 입체적 인물.
작가가 이 이야기와 인물을 어떻게 풀어갈지, 노배우는 너무나도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복잡한 감정의 서사를 능히 풀어내고도 남을 법한 우진혁의 천재적 연기.
‘아…. 저 나이에 어떻게….’
시작부터 묵직한 캐릭터를 조형해낸 드라마가 그러나 결코 던지는 화두의 무게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듯,
액션 활극으로서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설산의 검투’에 이르렀을 때.
진동하는 노배우의 심장은 그 무엇으로도 제어될 수 없었다.
대역이 없었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그렇다면 눈앞에서 스무 명의 적들 사이를 유영하는 저 어린 천재 배우는….
지금까지의 시대가 담아보지 못한 규격의 배우임에 틀림없었다.
***
살수단의 우두머리가 입을 열었다.
“홍길동. 그만할 수 없겠는가.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
“내 목을 쳐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살려다오. 비록 부모의 원수라 하나, 그자는 이미 죽었고, 우리도 이만한 대가를 치렀으니 충분하지 않은가.”
우두머리의 눈빛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가 칼을 내려놓았다.
“살려달라…?”
“그래! 먹고살 것이 없어서 모인 이들이다.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다오!”
진혁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사람을 죽여 목구멍을 채우는 악귀 놈들에게 자비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죽을죄를 지었다. 다른 이들은 살려다오!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맹세하게 하마! 부디 내 목숨만으로!”
우두머리가 눈밭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두목!”
“두목!”
나머지 둘이 두목을 감싸려는 듯 무릎을 꿇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으득. 이를 깨문 진혁이 신음하듯 말을 내뱉었다.
“죽을죄를 지었으면, 조용히 죽어라.”
파바박!
홍길동 진혁의 몸이 날듯이 그들에게 접근했다.
촤악! 촤악!
순식간에 진혁을 막아서던 두 명의 신형이 쓰러지고,
푸욱!
진혁의 검이 우두머리의 가슴을 관통했다.
“커억!”
피를 쏟아내며 그대로 쓰러지는 사내.
진혁이 그런 사내를 쳐다도 보지 않고 산채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덥석.
피 묻은 사내의 손이 홍길동의 다리를 잡았다.
“부…. 디…. 살려다오…. 저들…. 만은…..”
사내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절명했다.
진혁이 사내를 감정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스르릉- 스르릉-
진혁의 피 묻은 칼이 눈밭 위로 끌리며 스산한 죽음의 종소리를 울렸다.
뚝.
첫 번째 산채 입구에 도착한 진혁이 걸음을 멈췄다.
덜컹.
진혁이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문을 열었고.
그 순간, 진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노인. 여자. 그리고 아이 몇.
누더기처럼 기운 옷을 입고, 산채 구석에서 떨고 있는 그들은 마치 저승사자를 바라보듯 진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사, 살려주세요….”
차마 큰 소리도 내지 못하는 여자가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그토록 차갑게 얼어있던 진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클로즈업되는 진혁의 눈빛.
그리고 그 눈빛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 혼란.
으득. 이를 깨문 홍길동이 칼을 치켜드는가 싶더니.
20명과 혈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그의 칼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으앙- 아빠-.”
그 순간 여자의 품 안의 한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아빠, 아빠-.”
이 위험한 순간에 자신을 보호해 주는 것은 아빠라고 알고 있는 탓이었을까.
아빠를 목 놓아 부르짖는 아이. 그리고 아이의 입을 막으려는 엄마.
쾅!
진혁이 산채 바닥에 칼을 꽂아 넣었고. 그에 놀란 아이의 울음은 더욱 커졌다.
“하아. 하아.”
진혁의 호흡이 가빠왔다.
어머니의 복수였는데.
분명 정의로운 복수였는데.
사람을 죽여 삶을 꾸려가는 버러지 같은 자들은 차라리 죽어 사라지는 게 마땅할 일인데.
진혁이 저항할 의지조차 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눈들을 마주쳤다.
아마도 자식을, 남편을, 아버지를 잃었을 그들을.
진혁의 눈이 흔들렸다. 마음이 흔들렸다. 정의가 흔들렸다.
과연 나의 정의는.
저들에게도 정의였을까.
……
……
“정의요? 으하하! 아이고야. 영감께서 뭔가 대단히 오해를 하신 모양이오.”
“소인 이리 넉넉한 집안들을 터는 건 딱히 무슨 정의로움 따위가 아니요.”
“그저, 다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오.”
의적 홍길동의 넉살은 어쩐지.
슬펐다.
***
“으아…. 이거 뭐야.”
연세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분명 드라마는 다시 등장한 홍길동의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활약을 예고하며 끝이 났건만.
“이거 왜 이렇게 슬퍼….”
세린이 이내 눈물을 훔쳤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마음으로 느끼는 세린은 홍길동의 넉살 속에 담긴 눈빛이 왜인지 그렇게 슬펐다.
드라마는 진즉에 끝이 났건만, 모여 있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작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던, 엄청난 액션 씬.
그리고 홍길동의 서사에 담겨 있던 슬픔과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진혁의 미친 연기.
이후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으로 넉살맞은 연기를 펼쳐낸 진혁의 또 다른 면모.
그러나 그 넉살스러움에 배어 있는 페이소스. 웃음 속에 담긴 슬픔. 그걸 느끼게 하는 진혁의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연기.
놀라다가. 슬프다가. 웃다가. 아려지는 가슴.
그것이 오롯이 진혁의 연기 안에 담겨 있었다.
“크흠….”
진혁이 보여준 연기의 놀라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연성훈 원장이 침음을 흘렸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천재인 건.
그런데.
이렇게 천재일 수가 있나?
다들 멍하니 앉아 있는 그때, 도민우가 진혁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리곤 민우가 진혁을 꼭 끌어안았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
그건 진서진한테 하는 말이냐. 홍길동한테 하는 말이냐.
또다시 현실과 드라마 사이에 혼란이 찾아온 친구의 품을 진혁이 슬그머니 밀쳐냈다.
탁.
이영준의 아버지가 거실의 메인 등을 켰다.
그제야 다들 조선 시대에 묶여 있던 가슴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야! 정말 대단하네요. 대단해. 드라마가 아니라 대작 영화를 한 편 본 기분입니다. 허허.”
도민우의 아빠가 큰 소리로 감탄을 터트리더니,
짝! 짝! 짝! 짝!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와-!.”
짝! 짝! 짝! 짝!
거실에 있는 모두가 가세해서 진혁에게 박수를 보냈다.
진혁의 부모, 우봉수와 김선화가 뭉클한 얼굴로 첫 주연 드라마의 첫 화를 멋지게 장식한 아들을 바라보았다.
***
“흐흐응~”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정두일 PD의 아침이었다.
편집하면서도 밀려오는 감동에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게 했던 진혁의 연기였다.
헤아릴 수 없이 보고 또 보았건만, 다시 TV를 통해 보는 진혁의 연기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
거기에 자신이 봐도 이 이상 더 뽑아낼 수는 없다 싶을 정도의 연출.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지경이었다.
물론 그것도 그 엄청난 액션 씬을 말도 안 되게 소화해 내버린 진혁의 공이 컸지만.
간밤에 정두일 PD가 받은 문자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감동 받았다. 미친 연출이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칭찬들과.
– 저 감독님. 다음 작품은….
은근슬쩍 벌써 차기작 계획을 묻는 배우들과 관계자들까지.
‘아니. 사람들이 말이야 이제 1화인데, 벌써 무슨 차기작을….’
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막을 길이 없었다.
“자, 그럼 한 번 볼까?”
평소 같으면 벌벌 떨렸을 시청률을 확인하는 손이 전혀 떨리지 않았다.
어제의 시청률이 얼마가 나왔든, 1화 반응이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오늘 저녁 2화는 대박 난다.
어차피 1화는 작품 자체의 퀄리티보다, 홍보와 시청자들의 기대 문제니까. 기본만 나오면 된다.
“자, 시청률!”
신이 나서 혼잣말을 하며 시청률을 확인한 정두일 PD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뭐야. 이거!”
28.4%
정두일이 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 보았다. 아무리 확인해도 28.4%.
다 함께 보.실.까.요.
이 순간 정두일 PD의 머리에 떠오른 짤.
정두일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진짜 다 함께 본 거냐….”
아니, 첫 화가 28.4%면 도대체 오늘 2화는…?
정두일 PD가 어제의 반응을 생각하면, 상상이 되지 않는 수치를 떠올리며 전율하고 있을 때,
지잉.
휴대폰이 울렸다.
KBC 드라마국 이상수 국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