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singer who returned from the sea RAW novel - Chapter 89
89화. 베니 찬스 (1)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시는 덕분에
승현의 자취방에서 하루를 묵게 된 날.
나는 승현과 치킨을 맛있게 먹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M 실용음악 학원을 다니며,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서로를 처음 만난 이야기.
함께 한국예대 실용음악과에 지원하고 승현은 작곡전공으로, 나는 보컬전공으로 합격을 한 이야기.
그런 우리가 예송이형이라는 든든한 버팀목과 함께 밴드를 구성하여 에 출전한 이야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좋은 반응과 응원을 받으며, 효인의 팀에 들어가게 된 일과.
너무나 큰 꿈으로만 느껴졌던 우승을 손에 거머쥐게 되었던 우리의 나날들.
“사실 난,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그런 말 있잖아? 꿈속에서는 시간이 현실보다 엄청 빠르게 흘러간다는 거.”
“그런 말 있지.”
“요즘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어느새 스케줄이 훌쩍 지나가 있고, 곡 작업은 끝나가 있고. 그런 날이 반복되다보니, 내가 깨어나지 않는 꿈속에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돼.”
“그만큼 기쁜 거 아닐까.”
“물론 힘든 것도 있지. 곡이 잘 쓰이지 않고, 내 맘대로 구현되지 않을 때···.”
“그게 우리가 현실을 살고 있는 증거가 되겠지.”
“맞아. 가끔 네가 하루아침에 별 이상한 편곡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그것에 맞게 편곡을 하다보면 생각하곤 하지.”
“뭐라고?”
“아 좆같은 현실이구나. 세상엔 나보다 천재가 넘치는구나.”
“넘치진 않지 않아?”
“너 T야?”
“MBTI? T 맞긴 할 걸?”
“이래서 T 놈들은 안 된다니까. 내 말에 공감이나 좀 해주라.”
그 이후로 승현은 허심탄회하게 자신이 품고 있던 고민들을 말했다.
그레이프 차트 1위를 하지 못하면 나와 함께 뉴욕에 가지 못한다는 걱정.
설령 그레이프 차트 1위를 하더라도, 전세계에서 날고 기는 뮤지션들 사이에서 한국에 꼬맹이일 뿐인 자신이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타지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 혹은, 나 홀로 뉴욕에 가버리면 한국에 남겨진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불안.
그 모든 것은 승현이 내내 품고 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싱글 앨범의 반응이 좋았기도 했고, 연일 매스컴에서 우리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걸 보며 안심이 되고 있다고 했다.
“예송이형이랑 말했어. 눈 딱 감고, 우리가 너의 왼팔과 오른팔이 되어주겠다고. 난 오른팔 하기로 했어.”
“나 왼손잡인데.”
“너 진짜 T냐?”
“웃기려고 한 말이지···,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지길래.”
“나도 가끔은 좀 진지해져보자. 나 이런 날 별로 없잖아?”
“그건 맞긴 해.”
나는 문득 승현의 말을 듣다가, 승현의 저런 불안을 해소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방법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나 예전에 베니 만났잖아.”
“그치 같이 곡 작업 했다며.”
“응, 그때 피처링 한 곡이 곧 나올 예정이거든. 근데 그때 베니가 해준 말이 있거든?”
“뭔데?”
“베니가 우리 음악에 피처링이든 뭐든 참여해주겠대.”
“워······. 그 베니가?”
“응, 그래서 말인데 말이야. 1집 작업 할 시간에 곡 하나에 온전히 집중해서 좋은 노래 하나 만들면, 베니 피처링까지 해서 1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정규앨범보단 유명인이 피처링 한 싱글이 더 1위 가능성이 높긴 하지.”
“내 말이 그거야. 베니 피처링 받아서 만든 곡으로 1위 따고, 1집 앨범 만든 다음, 그걸로 뉴욕 가서 발매하자고.”
“그거 나쁘지 않은데.”
“일단 내가 베니 곡 피처링 했고, 곧 나올 예정이니까 그걸로 인지도가 좀 생기겠지. 아마 그 곡이 잘 되면, 자연스레 우리의 다음 곡에도 시선이 몰릴 거고, 그때 베니 피처링까지 더해지면 분명 효과가 있을 거야.”
“······.”
승현은 갑자기 말이 없었다. 나는 순간 승현이 나의 계획에 불만이 있는 건가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누운 승현을 바라보았다.
“드르렁···.”
완전히 잠들어버렸다. 왠지 조금 전부터 말의 속도가 조금 느려지고 어눌해지더니, 그동안 피곤했나보다.
나는 다시금 침대 옆에 약소하게 마련된 이부자리에 누웠다. 그리곤 승현과 마찬가지로 잠을 청했다.
드르렁.
드르렁.
임승현 이 녀석, 은근 코 고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베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 벌써 오늘이네요. 덕분에 무사히 발매할 수 있게 됐어요.
그동안 나는 베니와 최종 녹음을 완료했고, 완성된 버전은 음원 발매 통과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정해진 베니의 곡 제목은 였다. 그건 내 아이디어였는데, 베니 또한 마음에 든다고 하여 가볍게 통과가 되었다.
노래에 작곡 명단에는 나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건 작사 명단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공동작업으로 비춰지는 이 곡은, 졸지에 내가 작곡가로서는 처음 데뷔하게 된 곡이 되었다.
는 오후 5시에 발매가 될 예정이었고, 나는 본사 내에 있는 작업실에서, 승현과 예송이형과 함께 반응을 기다렸다.
이윽고 음원 사이트에 곡이 업로드 되고. 곧장 베니의 팬들은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또한 홍보 팀에서도 나의 피처링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덕분에, 슈팅 스타의 팬들 또한 스트리밍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자 밴드 그룹의 팬과, 여자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단합하여 스트리밍을 한 결과는 놀라웠다.
음원 발매 직후 스트리밍 횟수가 100만회를 넘으면 그레이프 명예의 전당에 수록되는데, 그 기록을 세운 것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는 끝내 24시간 스트리밍 횟수를 139만 7823회를 기록하며 그레이프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레이프 차트 순위는···
“9위라고?”
모두가 경악하기에 충분했다.
음원 발매 직후 하루만에 탑10 진입이라니.
에서도 이번 쾌거에 크게 만족했는데, 홍보 팀은 축제 분위기였다. 물론 그건 베니의 소속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번 일로 인해 베니의 회사와 우리 슈팅 스타간의 관계는 우호적인 양상을 띄었고, 다음 곡 작업은 순조롭게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곧장 승현과 준비한 신곡 제안서를 갖고 음원 발매 팀을 찾았다.
“잠시 얘기 좀 하시죠.”
그렇게 급진적으로 마련 된 회의에서, 우리는 새로운 싱글의 기초 기획안을 전달했다.
“장르는 그루비한 팝으로 갈 거고요. 아직 곡 작업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베니의 피처링을 더해서 싱글을 한 장 추가로 발매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음원 발매 팀장이 말했다.
“언제든 환영이죠! 그런데···, 베니는 피처링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가능할까요?”
“아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음원 발매 팀장에게 베니와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그러자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베니의 첫 피처링이라면, 분명히 화젯거리가 될 겁니다. 당장 홍보 팀에도 알려야겠네요! 슈팅 스타 분들께서 원활히 곡 작업 할 수 있도록, 당분간 스케줄도 잡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최대한 외부에서 열중하고 있을 테니, 슈팅 스타 분들은 편안히 곡 작업에만 전념해주시길 바랍니다.”
에서는 우리의 이런 행보를 막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자기네들이 연습생 때부터 키운 아이들도 아니고, 각자도생하며 여기까지 올라온 아이들이, 지금은 솔선수범하여 회사에 돈을 벌어주겠다고 하니.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가 집안을 먹여 살리려는 셈이었다. 최근 소속 가수가 그레이프 차트 탑10에 들어간 것도 꽤나 오래 된 일인데, 최근 피처링으로 탑10에 곧장 진입한 신율의 신곡이라니.
‘이런 걸 요즘 말로 달다고 하나? 아~ 달다 달어.’
음원 발매 팀장은 생각했다.
*
그로부터 2주일이 더 지났다.
우리는 순조롭게 싱글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는 점진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끝내 그레이프 차트 순위 3위까지 기록하고 말았다.
물론 그 이후 지금은 다시 순위가 내려가 현재는 10위까지 떨어졌지만, 그래도 최고기록이 3위라는 건 분명 고무적이었다.
들 뜬 기분의 연장선으로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음악 작업에 몰두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랄까?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서 기분이 좋았기 때문일까? 매일매일 아침마다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따뜻한 아침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예술가는 배고프고 힘들 때 명작이 나온다던데.
나는 좀 반대였다.
배부르고 편안할 때, 그리하여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안정적일 때 더욱 더 글도 잘 쓰이고 아이디어도 잘 떠올랐다.
내가 쓴 가사를 토대로 승현은 곧장 스케치 음원을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것을 뇌리에 각인시키고 목욕을 한다. 그러면 새로운 편곡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승현에게 전해준다.
이렇게 일이 잘 풀려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최근 승현과 나, 그리고 예송이형의 궁합은 잘 맞았다.
간혹 내가 물속에서 들은 새로운 멜로디의 아이디어를 구현하지 못할 때에도, 예송이형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건지 그때마다 필요한 악기의 음감들을 제시해주었다.
“이런 사운드 맞니?”
“헉 네 맞아요. 형. 딱 그런 소리였어요.”
그리고 승현 같은 경우는, 이따금 소름이 돋을 때가 있었다.
가령 내가 그날 아침 물속에서 들은 멜로디를 갖고 찾아가면, 승현은 그걸 듣더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식으로 가도 좋을 것 같은데?” 하고 추가 편곡 버전을 들려준다.
그런 날에 집에 돌아가 목욕을 하면, 승현이 편곡해준 버전과 흡사한 멜로디가 들려올 때가 있다.
한 나흘 정도 승현의 편곡이 들어맞았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2주일 만에 신곡이 완성되었다. 베니의 피처링 파트만 비워둔 채로.
이제 남은 건 베니를 불러 피처링 파트를 녹음하고, 믹싱과 마스터링을 하면 끝이었다.
곡 작업은 그걸로 끝이었고, 앨범 자켓은 이번에도 소미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일단 그러면···, 이제 베니한테 연락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연락을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던 나는 그냥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방송 촬영이 있을 수도 있고, 바쁜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전화를 걸었다.
너무 들 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신호음이 두 번 정도 걸리자, 나는 정신을 붙잡고 다음에 전화를 거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문자 하나 정도만 보내고, 나중에 연락하기 편한 시간대에 회신 달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던 무렵, 베니가 전화를 받았다.
–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가 필요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