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singer who returned from the sea RAW novel - Chapter 98
98화. 푸른 빛 속의 피아니스트.
예송이형이 잠든 것을 확인한 이후, 나와 승현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고, 지난 며칠 동안 누적된 피로가 우리에게도 몰려왔다.
“내일 아침은 다 같이 먹자.”
“그래, 그러자.”
승현이와의 마지막 대화를 끝으로, 나는 침실로 돌아와 간단히 세수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너무 피로하면, 오히려 깊은 잠을 못 자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으음···, 지금이 몇 시지···, 곧장 잠들어버렸네···.”
고작 10초 정도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어느새 방의 풍경은 뒤바뀌어 있었다.
칠흑 같던 밤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어느새 은은한 푸른 빛이 감도는 새벽빛이 방 안에 새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바다 속에 담긴 유리통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 그런 유리통 안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새벽의 푸른 빛은 쾌청했다.
♪♬
응?
이게 무슨 소리지?
문 밖에서 희미하고 매우 섬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았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예송이형 방의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열려 있다기 보단, ‘덜 닫혀 있다’가 맞을 정도로 틈은 매우 좁아서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예송이형은 아직 자는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입구에서 오른쪽 끝으로 가다 보면 있는 악기 연습실이었다. 작업실 옆에 작게 마련 된 그 연습실에는, 최고급의 방음 시설과 함께 여러 악기들이 구비되어 있다.
‘설마···.’
나는 연습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조금 연 것 만으로 내부에서 퍼져 나오던 소리는 훨씬 생생하게 들려왔다.
누군가의 피아노 치는 소리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송이형이었다.
예송이형은 피아노 앞에 앉아, 눈을 감은 채 편안히 건반을 눌러대고 있었다. 편안해 보이는 표정과는 달리, 매우 격정적인 연주였다.
거리가 꽤나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예송이형은 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얼굴 근육은 대단히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이리저리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그런 와중에도 편안히 미소 짓는 입술은 여유로웠다.
진정으로 피아노 연주 자체를 즐기고 있는 듯한 무브먼트였다. 하루만에 그간의 걱정이나 불안 같은 것들을 이겨낸 것일까.
그런 것들이 하루만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예송이형에게는 그런 기적적인 정신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송이형은 그런 것을 거머쥐기에 충분한 사람이니까.
“어? 율이니?”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예송이형이 나를 발견하고 말했다.
그러나 나를 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예송이형은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뜨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감은 눈으로 내 쪽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예 형, 저예요.”
“내가 문을 잘 안 닫았나···? 소리가 새어나가서 나 때문에 깨어난 거구나.”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깼어요. 피아노 소리는···, 깨어난 이후에 들었던 거고요.”
“그래, 그랬구나.”
예송이형은 잠시 피아노 위에서 손을 내려놓더니, 무릎을 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잠에서 깨어나니 내 방이더라.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 게 지긋지긋하고 무섭고 힘겨웠는데, 너희들의 위로를 받고···, 한 숨 푹 자고 깨어나니 또 피아노가 치고 싶더라고. 그래서 눈도 못 뜨면서 여기까지 터벅터벅 걸어왔어. 그리고···, 너도 들었다시피 피아노를 쳤지.”
“···, 좋은 연주였어요.”
“즉흥 연주였어. 그 어떤 것도 참고하지 않고, 오직 내 안에 울리는 소리에만 귀 기울여 반사적으로 연주한···. 처음으로 어떤 자유로움을 느꼈던 것 같아.”
“맞아요.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멜로디와 선율이었어요. 다시 한 번 연주해줄 수 있어요?”
“어렵지 않지, 안 그래도 지금 막 악보를 기록해보려 한 참이었거든. 복기를 위해 다시 한 번 쳐보는 게 좋겠다.”
말을 마치고 예송이형은 곧바로 다시 피아노 앞으로 무릎을 돌리고 앉았다.
이윽고 잠에서 깨었을 때 들었던 것과 같은 선율이, 예송이형의 손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
나는 가만히 예송이형의 연주를 다시금 듣고 있었다. 다시 들어도 아름다운 소리였다. 예송이형이라는 피아니스트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긴 멜로디가, 뉴욕 새벽의 푸른 빛 아래 펼쳐지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쉿!”
예송이형이 한창 피아노 연주를 하던 도중, 어느새 슬며시 다가온 승현이 말을 걸었다.
나는 곧장 승현이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준 뒤, 가만히 눈을 감고 연주에 집중하고 있는 예송이형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승현은 알겠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린 뒤, 나와 함께 예송이형의 새벽 연주를 감상했다.
*
우리는 다 같이 식당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한식 메뉴에 정갈한 불고기 백반이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문득 M 실용음악 학원 인근의 백반집이 생각날 정도로, 헤르츠 레코드 구내식당의 불고기 백반은 맛이 좋았다.
밥을 먹고, 우리는 뉴욕의 공원을 산책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날씨였고,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채 여유롭게 공원의 푸른 꽃들과 새들을 보니 한층 마음이 풀렸다.
예송이형도 그래 보였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이후 회사로 돌아온 예송이형은, 건물 입구 앞에서 잠시 멈춰 서더니.
“쓰읍···, 후~”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박력 있게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건 어떤 각오였다.
다시 한 번 부딪혀보겠다는, 굳센 의지에서 비롯된 각오.
승현이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예송이형의 등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예송이형의 저런 모습을 교본 삼자. 우리도 언젠가 무너지게 되면, 저렇게 이겨내는 거야.”
“좋아. 그렇게 된다면, 꼭 그렇게 하자.”
우리는 다시금 예송이형의 양옆으로 뛰어가 왼편과 오른편을 지켰다. 그리곤 76층으로 올라갔다.
*
“그래서, 결심한 거야? 다시 한 번 해보기로?”
작업실에 도착한 마이클이 예송이형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네, 아무래도 이 친구들을 두고 가기에 망설여져서요. 그리고 아직 더 해볼 수 있기도 하고요.”
“그래, 잘 생각했다. 나는 돌아오는 사람 되돌려 보내는 그런 사람 아니야. 가는 사람 안 붙잡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건 그냥 하는 게 없···”
나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승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오늘도 저녁에 엔지니어들과 서브 프로듀서들이 올 거야. 다들 너를 여전히 좋게 보지 않아. 이번에도 싫은 소리를 들을지 모르는데, 괜찮겠어?”
“네, 율이와 승현이가 있으니까요.”
이후 마이클은 알겠다고 대답하며 어딘가로 돌아갔고, 나는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엔지니어들이 오기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가 남았다.
그 정도라면 충분하다.
“예송이형, 수영 좋아해요?”
“응? 수영은 갑자기 왜?”
“같이 수영장 갈까 해서요.”
그러자 승현이 끼어들며 말했다.
“수영장? 여기 수영장이 있어? 나도 갈래!”
“아니. 오늘은 예송이형만 같이 다녀올 거야. 따로 할 말이 있어서. 너는 나중에 나랑 같이 따로 가자.”
“싱겁긴···, 그래 잘 다녀와라. 나는 기타 연습이나 하고 있을란다.”
이후 나는 예송이형을 데리고 수영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수영장 사용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큰 타올을 건네주었다.
“나오실 때는 이걸로 몸을 닦으시면 돼요.”
“그런데···, 갑자기 수영장은 왜?”
“그냥 같이 음악 얘기나 할까 해서요. 저는 이상하게 물놀이 하면서 음악 생각을 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더라고요.”
“희한한 일이지만, 어쩐지 율이 답다는 생각이 드네.”
“형 10번 트랙 기억해요?”
“디어 마이 블루? 당연히 기억하지. 내가 가장 좋다고 한 곡이잖아.”
“그러면 10번 트랙의 후렴구도 기억하죠?”
“음···, 어디 보자···.”
예송이형은 눈을 감고 손가락을 이리저리 튕겨보더니, 희미하게 허밍을 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은 뒤, 곧장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잠수를 한 채, 물속에서 헤엄을 치며 이리저리 맴돌았다.
보이진 않았지만, 그때 예송이형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노래 기억하냐고 물어보더니 물에 들어가는 건···, 뭐하는 거지?’
하지만 나는 그 시간 동안, 힘겹게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예송이형이 허밍을 한 부분, 그 부분에 대한 물의 멜로디를 말이다.
“푸하!”
물속에서 나온 나의 앞에는, 나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온 예송이형이 있었다.
“갑자기 뭐하는 거야. 놀랐잖아.”
“형.”
“응?”
“그 후렴구 말이에요. 이런 식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물속에서 들은 멜로디를, 예송이형처럼 허밍으로 불러주었다.
예송이형은 나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더니, 갑자기 물속으로 잠수했다.
그리곤 조금 전의 나처럼 이리저리 헤엄을 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물밖으로 나왔다.
“푸학!!!”
이후 숨을 몰아쉬던 예송이형은 내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되게 쉽게 하길래 쉬울 줄 알았는데, 이거 생각보다 어렵구나.”
나는 눈가에 묻은 물을 쓱쓱 닦아내는 예송이형에게 말했다.
“형은 갑자기···, 물속에 왜 들어갔어요?”
“네가 갑자기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기가 막힌 멜로디를 가져오길래, 물속에 뭐가 있나 했지.”
“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요.”
“하긴 그렇지? 아하하, 그래도 간만에 수영도 하고 좋네.”
이후 우리는 잠깐 동안 깔깔 웃었고, 이후 웃음을 그친 예송이형이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율이는, 수영을 하면서도 빛나는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구나. 방금 그 멜로디···, 정말 좋았어. 이전에도 좋았지만, 더 좋아질 만큼.”
“형의 허밍이 없었더라면, 저도 이 멜로디를 떠올릴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그냥 말하는 게 아니에요. 형. 이 멜로디를 잘 기억해 둬요. 그리고 오늘, 엔지니어들 앞에서 이 멜로디를 들려줘요. 형의 피아노 실력이라면, 분명 그들에게 증명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그렇지만 이건 네 아이디어잖아.”
“이 소리를 구현할 수 있는 건 형밖에 없어요. 그러니 이건 형 거예요. 형의 허밍으로부터 태어난 멜로디니까요.”
그로부터 1시간 뒤.
우리는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은 뒤, 10번 트랙의 편곡을 하기 위해 작업실에 모인 엔지니어들과 서브 프로듀서들을 만나러 왔다.
짧은 회의 이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 예송이형이 입을 열었다.
“후렴구에 관해서 의견이 있는데요.”
그러자 작업실에 있던 엔지니어들과 서브 프로듀서들, 그리고 마이클이 모두 고개를 돌려 예송이형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예송이형은 그렇게 말하며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눈을 지그시 감고,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레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