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380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외전 9화
“그럼 다음번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요정왕이 떠날 채비를 마친 우리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요정왕뿐만이 아니다.
그 뒤의 지하드나 무휼 역시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해 주고 있었다.
“아니, 무휼, 당신은 왜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 있습니까. 당신도 오늘 간다면서요.”
내 물음에 무휼이 답했다.
“난 텔레포트로 갈 걸세.”
“…….”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솔직히 걸어서 가기는 좀 그래.”
전혀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무휼이었다. 뭐, 이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그렇다고 치자고.
‘세계수는…….’
아무래도 도저히 맨정신으로 우리 앞에 나서지 못하겠다는 것일까, 전혀 보이지 않는다.
뭐,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숲을 나섰다.
사방에서 보이던 나무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평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을 즈음.
“……음?”
바위 위에 앉아,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엘프 소녀.
아니, 세계수였다.
내가 그녀에게 제공해 준 마법으로 변장에 훌륭하게 성공한 모양.
그녀는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자, 훌쩍 바위 위에서 뛰어내려와 말했다.
“이제 가는구나.”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서 말이지요. 제가 준비해 둔 버킷 리스트가 좀 많아야지.”
“하긴.”
내 말에 그녀는 따뜻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답게 자애로우며, 포근한 미소.
“잘 가거라. 언젠가 떠오른다면 다시 날 찾아와도 좋고.”
“그리하겠습니다.”
어차피 언젠가 숲은 다시 방문할 생각이기는 했다. 여러 추억이 서린 장소니까.
“그리고…….”
세계수의 시선이 와이즈 쪽으로 향했다.
와이즈는 퉁명스런 표정을 한 채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딱히 세계수를 거부하는 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고마워, 솔로몬.”
“……흥.”
“덕분에 위로가 됐어. 당신이야, 우리 모두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 말에 와이즈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세계수에게 말했다.
“와이즈다.”
“응, 그래. 와이즈.”
세계수는 어딘가 묘한 기색의 미소와 함께 와이즈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도 언젠가 모두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면 찾아와. 염치는 없지만, 환영할게.”
“…….”
그 말에 와이즈는 잠시 눈동자만 돌려 세계수를 보았다가.
“쯧.”
혀를 한번 짧게 차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세계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그저 웃었다.
그녀의 시선이 이번에는 세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언니.”
[응.]“저번에 보니까, 토트가 눈이 벌게져서 언니를 찾…….”
[응, 안 들려~ 세트는 아가야.]세트가 곧바로 귀를 틀어막고는 애써 세계수의 말을 부정했다. 참으로 눈물겨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에휴…….”
세계수는 그런 모자란 언니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미하일, 마지막으로 네게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니?”
“아, 예. 말씀하시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렇게 분위기를 잡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듣기로 했다.
그리고 어딘가 슬픈 목소리로 세계수가 말했다.
“내 일부로 만든 스태프가 좀 많이 붉어졌더구나.”
“…….”
이런.
할 말이 없어서 슬쩍 다른 곳을 쳐다보니, 더더욱 서글퍼진 표정으로 세계수가 말했다.
“너무 험하게 다루지 말아 주렴. 어차피 이제는 상대할 악마도 존재하지 않잖니.”
“……음.”
확실히 머리를 부숴야 할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실.
난 슬쩍 스태프를 보았다.
이제는 그냥 붉었다.
아니, 예전부터 붉기는 했는데 이제는 진함을 넘어 검붉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유그드라실 님, 조금 열린 마음으로 봐 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스태프가 반드시 제 색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는 마인드가 아닐까요?”
“…….”
“긍정적으로 상황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반대로 생각하자면…… 이제 피를 묻혀도 티가 안 나는 거거든요.”
그렇다.
이제 아무리 피를 묻혀도 스태프의 색이 달라질 일은 없다.
이제 안 묻은 곳이 없으니까.
[말은 잘하는데, 그거 그냥 더 떨어질 데가 없다는 뜻 아니야?]“…….”
세트가 옆에서 깝죽댔지만, 대충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하여간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
“스태프는 이제 제 겁니다.”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말과 함께 세계수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날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들더니.
“……그래.”
이내 체념한 듯, 서글픈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 *
– 내 새끼…….
세계수는 그런 표정으로 잠시 내 스태프를 쳐다보다, 이내 다시 숲으로 복귀했다.
이제 정말로 다음 목적지로 향할 일밖에 남지 않게 된 것.
이래저래 다시 움직일 때였다.
돌아보고 싶은 곳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기에.
‘하고 싶은 일이라…….’
이전까지는 조금 달랐다.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는 해야 하는 일이었지. 시간에 쫓겼고, 그저 앞만 보고 움직였다.
그럴 필요가 있기도 했었고.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는 그런 제약에 묶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시간은, 순간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
“후, 이것이 「인생」인가.”
[미하일, 혹시 사춘기병이 리안에게서 옮기라도 했어?]“무슨 끔찍한 소리를.”
리안에게서 옮았냐니.
어찌 그런 끔찍하고 잔혹한 소리를 내게 한단 말인가. 세트도 가끔 보면 사람이 참 모질 때가 있다니까.
“그런 소리는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
[아니, 네가 그런 말을 해도 말이지…….]양심 챙겨.
세트는 대충 그런 말을 하며 툭툭 발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뭐, 어쨌건 간에.
“다음 목적지는 흠…… 일단은, 파슬로프 영지로 잡고 있기는 한데, 이게 괜찮을까 모르겠네.”
“뭐, 걸리는 거라도 있나?”
와이즈가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세계수와 나름의 이야기를 끝낸 뒤, 와이즈는 이전보다 조금 홀가분해진 느낌이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나야 모를 일이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와이즈.”
“음?”
“좀 편해졌냐.”
내 말에 와이즈가 조용히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더니, 지나가듯 말했다.
“뭐, 조금은.”
“그러면 됐지.”
이래저래 이 세계에 더 이상 신은 존재하지 않고, 신화시대의 기억을 간직한 반신들 역시 이제 정말 거의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역시 영원하지 않으리라. 언제가 됐건, 사도를 비롯하여 세계수와 같은 초월자들 역시 하나둘씩 줄어 갈 것이다.
그렇게 될수록, ‘지금’이 중요하다. 서로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지금.
그 모든 것들이 소중한 기억이 되어 모두를 지탱해 줄 테니.
“앞으로 이것저것 이야기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다. 결국 그 아득한 과거를 기억하는 건 그녀나 사도가 전부니까.”
“그건…….”
고작 이 정도로 쌓인 게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즈가 손을 내밀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될 테지. 물론 그 선택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어느 쪽으로 가건, 그건 전부 와이즈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어느 쪽이건 와이즈가 딱히 불행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현명한 녀석이고, 자신에게 올바른 쪽으로 움직일 테니까.
“뭐, 걱정 마라.”
와이즈는 이내 웃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 녀석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시간은 많아. 영원하진 않더라도, 감정을 추스르고 관계를 다시 정립하기엔 충분할 정도로.”
“음.”
“네가 그 버킷 리스트인가 뭔가를 이루며 느긋하게 다니는 만큼, 내게도 허락된 시간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조급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와이즈는 말했다.
녀석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긴 그건 그러네.”
난 그런 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번에도 걸어서 거기까지 갈 셈이냐?”
“그건 그렇다만.”
“……또 시간 더럽게 많이 걸리겠군. 이것 참.”
와이즈는 툴툴대면서도 나와 나란히 걸으며 따라왔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이 출몰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
“……괴한?”
“모르겠는데, 엄청난 원한에 휩싸인 채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더라고. 복수를 한다고 하던가.”
요즘과 같은 시대에 복수라니.
정말 살벌하기 짝이 없는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싶다.
“그런 주제에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귀신같이 돕고…… 도대체 누구에게 복수를 한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흠.”
선량한 복수귀라…….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복수 대상이 꽤 고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그래도 꽤 흥미가 돋았기에, 난 와이즈에게 슬쩍 물었다.
“뭐, 외모 같은 건 들은 거 없나? 아니면 특징이라거나.”
“흠, 특징이라면…….”
와이즈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내게 말했다.
“갑자기 땅에서 튀어나온다거나 한다던데? 잘은 몰라도.”
“…….”
그 말에 난 잠시 침묵했다.
아주 잠깐, 내가 아는 ‘누군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땅에서 튀어나오며 이상하게 선량하고, 또 특정한 누군가에게 확고한 복수심을 품은…….
“……음.”
생각나는 게 없는 건 아닌데.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마.
* * *
숲에서 파슬로프 영지까지 순수하게 걸어서 이동하는 데는 시간이 적잖게 소요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영지들도 여럿이었고.
그리고 그건 느긋하게 다양한 경치를 구경할 수 있으며, 그만큼 다양한 상황을 마주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자연스레.
“음.”
그 과정에서, 내가 준비해 둔 ‘버킷 리스트’가 하나둘씩 이뤄진다는 뜻이기도 했고.
“크, 아악! 너, 넌 도대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는 도적들을 보며, 난 품에 넣어 뒀던 버킷 리스트에 줄을 그었다.
39. 도적 퇴치하기
음, 이 정도 속도면 의외로 빠르게 버킷 리스트를 전부 해결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어어…….”
엉망이 된 채 사방에 널려 있는 도적 무리들.
최근 조금 해이해진 치안을 비집고 기승을 부리는 놈들이다.
“네, 놈…….”
눈을 부릅뜬 채, 도적 무리의 두목으로 보이는 놈이 말했다.
“소문으로 최근 ‘용사’가 이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들었는데, 네놈…… 그 용사의 동료냐.”
“……뭐?”
뭔 개소리야, 또.
최근에 나는 이 근처를 지난 적이 없다. 게다가, 용사라고는 해도 이놈들은 마법을 쓸 필요도 없는 삼류들.
놈이 저런 눈으로 날 볼 정도로 접점이 있지도 않았을 터.
“하, 역시 용사의 동료…… 켁!”
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내 분노의 스태프가 도적 두목의 머리를 후려쳤다.
“어디서 반말이야, 잡놈이.”
“시, 시…….”
“시?”
눈을 부릅뜬 채, 조용히 놈을 노려보았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러자 슬쩍 말을 교정하며 고개를 돌리는 놈.
그래, 이래야지.
어디 다른 사람 고혈을 빨아먹으며 사는 놈이 나한테 반말이야. 아주 뒤질라고.
“애초에 용사가 있다고 해도 굳이 이 근처를 지나겠냐. 너희들 정도면 그냥 어지간한 영지 기사 하나만 있어도 끝날 텐데.”
“……요, 용사 있는데요.”
예절 주입이 끝난 도적 두목이 공손하게 말했다.
“당장 어제에도 용사가 출몰해서 몬스터를 퇴치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이름이 뭐라는데.”
“아니, 그…… 뭐였드라.”
도적 두목이 생각이 안 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소리쳤다.
“아!”
“어, 그래.”
“미하일……!”
“그래, 미하일.”
그게 내 이름은 맞는데…….
“푸르발기스!”
“…….”
난 뭐라 소리치려는 도적 두목의 머리를 다시 후려쳤다.
“이 새끼가 또 뭔 소리를…….”
“케, 케헥! 아, 아니, 맞아요! 분명 용사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니까요?!”
다급히 두목이 소리쳤다.
“미하일 푸르발기스라고!”
“…….”
난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난 이래 봬도 내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편이다.
그런고로 다짐했다.
‘죽인다.’
어떤 놈이 내 행세를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대가리를 쪼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