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1
21 주머니 안의
* * *
“안녕. 싱가포르는 잘 다녀왔어?”
“······.”
얘는 또 누구지?
어디서 얼핏 본 것 같긴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아이는 그저 담담히 내게 안부를 물어왔다.
“사고가 있었다면서. 지금은 괜찮은 거야?”
“그···. 렇지?”
“다행이네. 손가락은?”
“어?”
“피아니스트한테 가장 중요한 게 손가락이잖아. 부러지거나 금이 간 곳이 있는지 물어본 거야. 잘 움직여?”
뭔가 취조당하는 느낌인데. 나는 문제가 없다는 의미로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이는 걸 보여줬다.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잘됐네. 그럼 난 먼저 가볼게. 레슨 시간 다 돼가서.”
나를 지나쳐 피아노 학원으로 먼저 들어가 버리는 아이.
저 정도로 특이한 애라면 기억이 날 법도 한데 말이지.
그사이, 피아노 학원 앞에 우르르 몰려 있던 초등학생 무리들이 어느새 나를 덮쳤다.
정신이 없네.
나는 최대한 빠르게 답변하며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형! 오랜만이에요!”
“그러네. 그런데 넌 누구니?”
“와하하하핳! 어떻게 저 볼 때마다 이름을 물어봐요? 저 철수요. 철수.”
“야. 이 형은 피아노만 쳐서 이름 외울 머리까지는 없는 거야. 내 이름도 모를걸? 형, 혹시 제 이름은 아세요?”
“진수였나?”
“땡! 김도윤이거든요! 완전히 틀렸어!”
“그래. 도윤아. 나 좀 지나가자. 형이 할 일이 많다. 바빠.”
“형! 그럼 하나만 더 알려줘요! 진짜로 비행기에서 떨어질 때 점프 해서 살아남은 거 맞아요?”
“······.”
“······.”
“······.”
일순간 찾아온 정적.
나는 적당히 애들을 놀려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반응이 좀 궁금했다.
“와씨! 내 말이 맞잖아? 이거 나 티비에서 봤었다니까.”
“대박이네?”
“야. 그런데···.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돼? 비행기에서 점프를 뛰어서 살아남았다고?”
“닥쳐! 서진이 형이 그렇다는데 네가 뭘 알아? 너 비행기나 타봤어?”
“안 타보긴 했는데···. 사람이 뛰어봤자 중력가속도보다는···.”
“에베베베. 안 들리는데? 안 들리는데?”
“잘난척쟁이래요~ 잘난척쟁이래요~”
“서진이 형보다 비행기도 덜 타본 놈이 말이 많아! 너 서진이 형보다 피아노 잘 쳐?”
“아니, 그게 무슨 상관···.”
상식인은 순식간에 비상식인이 되어버렸다.
나는, 나 대신 훌륭한 탱커가 되어준 애를 위해 어깨를 툭툭 쳐줬다.
꽤 시끄러운 일을 겪은 뒤에야 학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피아노 학원은 총 10개의 방으로 구성돼있다.
방마다 피아노가 한 대씩 놓여 있고, 아이들은 그곳에 들어가 개인적으로 연습을 한다.
그러면 중간중간 피아노 선생님이 순회하며 코칭을 해주는 시스템.
각 방의 유리 창문을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예상대로 선생님은 수업 중이셨다.
당장은 만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빈자리가 있으려나.’
온 김에 피아노나 실컷 치다가 갈 생각에 나는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4호실, 5호실, 6호실···.
마침 7호실이 비어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6호실과 8호실의 피아노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100% 방음이 되는 곳은 아니라 이 정도는 감안을 해야 한다.
피아노 의자에 앉은 뒤 가볍게 스케일을 한 번 쳐봤다. 일종의 손가락 풀기 연습. 음을 순서대로 치면서 손가락 유연성을 기르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피아노에 적응시켜갔다.
확실히 학원에 있는 업라이트 피아노가 집에 있는 전자 피아노보다 타건감이 좋았다.
손가락은 금방 새로운 피아노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몇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갑자기 내 옆 방에서 쇼팽이 날뛰기 시작했다.
좇기는 듯 무척 급하게 치는 연주.
‘음···.’
저 아이의 곡 해석까지 내가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저렇게 급하면 될 것도 안 된다.
아무리 비바체(Vivace, 매우 빠르게)라고 해도 음을 더 소중히 다룰 줄 알아야 하지 않겠나.
F.Chopin Waltz in e minor, B.56.
쇼팽 왈츠 14번.
쇼팽 사후 19년 만에 출판됐다는 곡.
e 단조 음계 위에서 화려하게 움직이는 8마디의 전주가 특히 인상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전주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프레이즈는 특히 왼손을 신경 써서 쳐줘야 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격적으로, 사납게 치지 말라고 하셨지.’
밀러 아저씨가 내게 알려줬던 왈츠 14번은 그랬다.
쇼팽 콩쿠르 파이널 라운드 진출자답게 그는 내게 쇼팽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알려줬었다.
‘덕분에 외운 악보도 많았고.’
하여간, 이 곡은 비바체라는 지시와 반대로 조금 부드럽게 연주해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우리나라 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나.
이 곡이 딱 그런 곡이었다.
나는 밀러 아저씨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줬듯, 옆 방의 아이가 내 뜻을 알아듣기를 바라며, 조금 더 명쾌하게 왈츠 14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8호실의 아이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쉬는 박자가 아닌데 음이 순간적으로 밀렸거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내 연주에 반응을 해줬다는 것.
생각보다 똘똘한 아이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휘를 하듯 음계를 하나하나 제시해줬다.
8호실의 아이는 어느 순간 아예 연주를 멈춰버렸다. 하지만 이내 내 왈츠에 따라오기 시작했다.
‘좋네.’
여전히 급한 마음이 엿보이긴 했지만, 처음보단 훨씬 나았다.
내 음을 들어 보고 틀린 부분을 고친다. 그러면 나는 8호실의 아이에게 맞게끔 새로운 대안을 다시 제시해줬다.
불과 3분이 되지 않는 왈츠 14번은 그 길이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반복.
그리고 다시 반복.
이번엔 8호실 아이가 내게 되묻는다.
‘이게 진짜로 맞냐고.’
나는 당연히 맞다고 대답해줬다.
아이들의 장난처럼 시작된 연주는 어느새 연탄곡처럼 되어버렸다.
내가 선행을 하면 8호실 아이가 따라 한다.
8호실 아이가 연주하면 내가 그 연주를 바꿔준다.
저 아이의 연주를 듣다 보니 문득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내가 매년 콩쿠르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마다 항상 나를 앞질러 가던 동갑내기 아이가 하나 있었다.
키는···. 나랑 비슷했었나?
그런 것까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내게 너무 대단해 보였으니까. 내게 너무나 거대한 존재였으니까.
그 아이는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탔다.
어른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나이대에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화려한 연주로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곳에서 그저 관객에 불과했다.
내 연주는 지극히 평범했으며, 범인(凡人)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참가자로서 콩쿠르에 참여했지만, 나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콩쿠르에서 주목받는 것은 천재(天才)들이다.
그들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왜 안 될까.
그래서 노력했었다.
남들보다 최소 한 시간은 더 연습하겠다는 마음으로 매달렸다.
솔직히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나도 그땐 어린아이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치지 않은 척.
괜찮은 척.
그러다 보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진짜로 괜찮아져 버렸다.
피아노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피아노와 사랑에 빠졌다.
나보다 앞서가는 아이를 질투하지 않고, 내 연주에 집중하게 됐다.
그래서 결국, 나는 싱가포르까지 가게 됐다.
콩쿠르 3위라는 성적은, 최소한 나에겐 초라하지 않았다.
그 아이와 같은 콩쿠르에 나갔을 때가 떠올랐다.
높디높은 무대에 올라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
나는 무대 뒤의 커튼에 숨어 그 아이가 만드는 음을 관객 입장에서 바라봐야 했다.
언젠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간절하게.
내 꿈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면서.
어느새 쇼팽 왈츠 14번의 연주가 끝나버렸다.
내 생각도 이 이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뒤를 봤더니 문밖에 우르르 모여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선생님도 아이들 뒤편에 서 계신다.
그리고.
내 옆 방, 8호실에서 연주하던 아이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도각도각. 작은 걸음 소리도 들린다.
그 아이는 수많은 무리를 뚫고, 내 피아노 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너···. 어떻게 된 거야?”
과거의 나에겐 너무나 커 보였던,
나보다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던 아이.
그래서 지금의 내가 미처 알아보지도 못했던 그 아이는.
“그러게. 옆방에 딱 너인 거 같더라. 하은아.”
나보다 항상 앞서가기만 했던 예중 입시 동기,
이하은이었다.
* * *
“세상에···. 싱가포르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아! 저기···. 사고를 겪었다는 건 아는데···.”
“그냥 병원에 쭉 있었어요. 귀국한 지도 얼마 안 됐고요.”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까지 실력이···.”
피아노 학원 선생님은 조금 전 내 연주가 인상적이었는지 내게 이런저런 연주를 몇 개 더 시켜보셨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쇼팽이나 하이든의 곡들.
선생님이 요청하는 곡들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곡이 아니었다.
대부분 예중 입시 예상 곡들.
과거에 내가 쳐 본 적이 있는 곡이기도 했고, 초·중생 난이도의 곡이었기에 나는 악보를 보고 꽤 쉽게 연주를 해낼 수 있었다.
내 연주를 들은 선생님은 한껏 좋아해 주셨다.
“연주가 전반적으로 너무 좋아졌는데? 이 정도면 가을 실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너무 잘 됐다! 얘! 대체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응?”
다만, 나는 적당한 대답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푹 쉬었더니 오히려 연주가 좋아지더라고요.”
“맞아! 그래! 서진이 너는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했었다니까? 가끔은 쉬기도 하고, 여유도 가져야 연주가 잘 나오는 거야.”
“정말 그런 것 같더라고요.”
“싱가포르에서는 별일 없었고? 손은?”
“방금 보셨잖아요. 멀쩡해요. 꽤 스펙타클한 경험을 하긴 했지만요.”
“어휴! 그러게. 비행기 추락이 뭐라니? 그 뉴스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도 아찔하다. 얘.”
박하선 선생님은 내게, 지난 한 달간 한국에서 있었던 입시에 관련된 일들을 이야기 해주셨다.
입시 곡 리스트가 공개된 학교의 명단들.
지원 방법과 약간의 전략.
그리고 전반적인 입시 일정들.
마지막엔 내 의중도 물어보셨다.
“그래서 학교는 결정했니? 욕심이 나더라도 학교는 두 개 정도만 정해놓는 게 좋을 거야. 연습할 입시 곡이 많아지는 건 좋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과거에 정해놓았던 대답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
.
.
상담을 마치고 학원 밖을 나오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다짜고짜 내게 천 원을 내미는 아이.
이하은이었다.
“자.”
“뭔데?”
“기억 안 나?”
“······.”
얘 얼굴도 한 번에 못 알아봤었는데.
이게 기억이 날 리가 있겠나?
이하은은 멍하니 있던 나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너한테 돈 빌렸었잖아. 그거 지금 갚는 거야. 한 달 전 일이라고 까먹은 거야?”
“아~”
“기억 안 나면 없었던 일로 하자. 나도 그게 더···.”
“아냐. 아냐. 기억났어. 너 음료수 사 먹는다고 빌렸었지?”
“볼펜이었거든.”
“그래도 비슷하네.”
“뭐가 비슷해?”
“둘 다 액체가 들어있잖아. 그럼 비슷한 거지.”
“······.”
나는 초등학생에게 초등학생답게 말싸움을 이긴 뒤, 천 원을 쟁취했다.
쟤가 그렇다는데 맞겠지.
“그런데 너 대체 싱가포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비행기 사고. AC2505. 뉴스 안 봤어?”
“아니! 그건 아는데···. 너 별일 없이 구출된 거였다며. 혹시 다른 일이 있었나 해서.”
“왜?”
“갑자기 실력이 확 늘었잖아. 그것도 비약적으로. 그게 신기해서 물어봤던 거야.”
뭐···. 무슨 일이 있긴 했지.
다만, 나는 박하선 선생님께 대답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반복해야 했다.
“잠깐 쉬었더니 실력이 오히려 늘더라고.”
“······. 진짜로?”
“응. 이참에 너도 나처럼 해보는 건 어때?”
미심쩍은 표정.
이하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실기도 얼마 안 남은 지금 그렇게 해보라고? 난 그럴 여유는 없어.”
“빠듯하구나.”
“덕분에. 네가 알려준 왈츠 14번. 그게 맞는 거 같더라. 솔직히 꽉 막혔던 부분이었는데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연습할 게 늘었지.”
“그런데 선생님께서 잘 알려주시는데도 막히는 부분이 있었어?”
“선생님이 나 대신 연습까지 해주시는 건 아니니까. 너도 잘 알면서 갑자기 왜 그래?”
“······.”
그건 맞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이하은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어쨌든 고맙다고. 만약 내가 예중 붙으면 네 도움도 일부 있었다고 해줄게.”
“그거 고맙네.”
“별말씀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중간까지는 이하은과 같았다.
문방구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했을 때가 되어서야 이하은은 멈추어 섰다.
“앞으로 학원 계속 나올 거지?”
“입시 때까진 아마도.”
“그래. 그런데 넌 입시, 어디에 지원할 거야?”
“갑자기?”
“그냥 궁금해서.”
나는 과거에 미리 정해놨었던 학교를 말해줬다.
“설화 예중. 거기만 지원하려고.”
“왜?”
“우리 동네에서 제일 가까우니까.”
“······. 단지 그것뿐이야?”
“먼 데 다니면 연습할 시간만 없어지잖아. 나는 그건 싫어.”
생전 웃을 것 같지 않게 생긴 애가 갑자기 큭큭거린다.
“너답네.”
“그러는 너는?”
“나?”
“어디 지원할지 정했어?”
이하은은 고개를 살짝 돌려 어딘가를 쳐다보나 싶더니 이내 대답을 해줬다.
“나도 설화. 거기서 만나고 싶은 선생님이 있거든.”
“선생님?”
“응. 만약 잘 되면 우리 둘 다 같은 학교 다니게 되겠네. 열심히 해야겠다.”
“그러게.”
이하은은 내게 “잘 가. 그러면 또 보자.”라는 말을 끝으로 왼쪽 골목으로 사라져버렸다.
확실히 신기한 애였다.
말하는 게 애답지도 않고.
예사롭지도 않다.
역시 1등인가?
엘리트의 상징 같은 애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천 원을 만지작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 * *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박하선은 서둘러 한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약속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지만, 혹시나 교수님이 딴 곳으로 가버리셨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만큼 바쁜 분이시니까.’
하지만 그런 염려도 잠시.
교수님은 다행히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교수님!”
박하선이 손을 흔들자 강유한 교수는 자신의 오래된 제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그럼요. 저 애가 벌써 둘인데요.”
“그렇게나 됐어?”
“네. 저 주례 서주셨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어요.”
강유한 교수는 올해 70이 넘었는데도 음악계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음악가였다.
외국에서 아직까지 초청 공연 요청이 들어 올 정도로 유명한 그는 우리나라의 1세대 클래식 스타라고도 할 수 있었다.
박하선은 교수님께 양해를 구한 뒤, 무인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왔다.
‘예전엔 다 사람이 일했었는데···.’
많이 바뀐 학교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월의 흐름이 야속하기만 했다.
강유한 교수는 박하선이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 이야기를 빙빙 돌리는 걸 싫어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하나 소개해주고 싶다고?”
그의 성격을 잘 아는 박하선도 곧바로 대답했다.
“네. 지난번에 전화로 말씀드렸던 그 독종이라는 애 있잖아요.”
“열심히 해도 실력이 도통 안 는다는 아이?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니.”
“그건 저도 잘 알죠.”
“그런데 왜?”
“그게···.”
사실 예술계라는 곳이 다 그렇다.
노력이라는 가치 하나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은 곳.
아무리 강유한 교수라고 해도 도와줄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분명히 나뉘어 있었다.
매몰차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
“만약 그 아이에게 갑자기 재능이 생겼다면요?”
“갑자기?”
“네. 피아노 소리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터치가 달라요. 악보를 대하는 태도도 어른스럽고요.”
“음···. 그냥 그동안 그 아이가 게을렀던 건 아니고? 천재들 중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잖니. 대충해도 되니까 게으름 피우는 애들.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은 것일 수도 있겠구나.”
“제가 알고 있기로는 아니에요. 그 아이는 제가 직접 가르쳤었어요. 만 7살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하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계속 성과가 나오지 않다가···. 최근 한 달 사이에 갑자기 천재가 돼서 돌아온 거예요. 며칠 동안 연습하는 걸 지켜봤는데 확실히 변했어요.”
“그건···. 꽤 신기하구나.”
“그래서 제가 교수님을 뵙자고 했던 거예요.”
강유한 교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재능이란 보통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6살에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고, 8살에 베를린필과 협주를 하는 아이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없던 재능이 생겼다?
쉽게 믿기지는 않는 일.
강유한은 궁금증이 생겨 그 아이의 이름을 물어봤고, 박하선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한서진 군이에요. 올해 만으로 12살이고요. 교수님도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노력하는 천재···. 아니, 스스로 노력해서 천재가 된 아이는 절대로 흔치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