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8
28 한 공연의 끝
* * *
귀가 먹먹했다.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이 키보드와 섞인다.
밴드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점점 더 선명해져 갔다.
반대로 그 외의 소리들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귀에서 인이어(모니터링 이어폰)가 살짝 틀어져 생기는 바스락거리는 잡음.
일정하게 들리는 내 숨소리.
관객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
그것들은 내 시선을 빼앗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물속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문득 무인도에서 처음으로 수영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밀러 아저씨에 대해 전혀 모를 그때.
그는 나에게 폭포 연못에 뛰어들라고 했었다.
당시에 나는 수영도 할 줄 몰랐고 심지어 그가 뭐라고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래도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았다.
그는 내게 자유를 주고 싶어 했다.
처음엔 겁이 났다.
난생처음 보는 외국인이 나를 잡아먹을지 안 잡아먹을지 어떻게 아나?
뭐, 그래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내가 망설일 때 그는 내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줬으니까.
거기에서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뛰었다.
알고 봤더니 나는 뛸 수 있었다.
바닥이 가늠조차 되지 않는 깊은 폭포 연못으로 겁도 없이 다이빙을 했다.
아직도 그때가 생생했다.
물에 깊게 들어가 귀가 먹먹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눈을 반짝였다.
물속에서 들리는 다양한 소리가 있었다.
보글거리는 공기 방울 소리.
폭포가 떨어지며 내는 물의 굉음.
물살에 휩쓸려 굴러가는 자갈들의 자그락 거리는 소리.
하지만 그곳에서 선명히 들리는 소리는 따로 있었다.
그건, 나를 부르던 아저씨의 목소리와, 내가 내 안에 가지고 있었던 여러 음악들의 소리였다.
처음 봤을 때 공포의 대상이었던 연못은 내가 뛰어들자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
오히려 즐거움이 됐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공연은 굳이 내가 참여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없어도 대성이 형은 분명 해답을 찾았을 거고 그럭저럭 위기도 넘겼을 것이다.
내가 뛰어들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하지만 내가 뛰어드는 순간, 세상은 어떻게든 바뀌게 되어있다.
태어나서 한 번이라도 파장을 만들어내 본 사람은 그 사실을 알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무대에 올랐다.
‘내가 한다고 그랬으니까.’
그래서 여기서 키보드를 치게 됐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악보에 새겨진 마디들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눈으로는 다음 파트를 좇으며, 손으로는 지금 눌러야 할 건반들을 터치했다.
⌜우연⌟은 멋진 노래였다.
도시의 네온사인 아래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
열등과 우등.
소음과 정적.
분노와 고요.
그 속에서 생기는 수많은 우연들을 노래한다.
기타 리프처럼 짜릿한 순간도 있고.
밋밋한 베이스처럼 밍숭맹숭한 순간도 있다.
그래도 끝까지 길을 가다 보면 우리는 ‘우연’이라는 보물을 발견한다.
우연은 신기하다.
길 가던 두 사람이 만나 친구가 되고,
회사에서 싸우던 이들은 연인이 되고,
잠결에 끄적인 노랫말은 영원불멸할 명곡이 된다.
나는, 우연을 잘 아는 나는, 이 노래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거침없이 연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지금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다.
내 연주가 ⌜우연⌟에 맞는 연주인지.
아니면 이 이상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피날레로 향해가는 노래의 끝자락에서 대성이 형은 나를 돌아봤다.
나 역시 곧바로 그를 쳐다봤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지휘자가 연주자에게 무언의 지시를 내리듯, 우리는 오가는 시선만으로도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물었다.
끝까지 할 수 있냐고.
나는 대답했다.
끝까지 할 수 있다고.
무언의 대화는 너무나 짧게 끝났다.
10초.
⌜우연⌟의 하이라이트까지 남은 시간이다.
악보가 몇 마디 남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내 연주는 10초 후에 끝난다.
그 뒤에 이어지는 피아노 솔로 부분은 일성이 형의 일렉 기타가 대체하기로 되어 있었다.
원래도 종종 그렇게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리허설 때도 그렇게 넘겼다. 이건, 오늘 처음으로 키보드를 연주하는 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5초.
하지만 나는 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연주를 듣고 있는 대성이 형이라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3초.
결정권은 언제나 밴드의 리더에게 있다. 나는 일개 객원일 뿐이다. 정식으로 멤버가 된 것도 아니고,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도 있다.
1초.
그래도 나는 그를 바라봤다. 내 연주는 멈추기 직전의 상태였다. 내가 ⌜우연⌟에서 할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이 이상 바라는 것은 일종의 월권이다.
대성이 형이 다시 나를 힐끗 바라본다.
찰나의 시간 동안 우리는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는,
나를 이해했다.
홍대성은 관객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키보드 솔로!”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나는 키보드를 연주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음표가 악보를 지나 건반에서 사라진다.
나 이외의 모든 악기는 연주를 멈춘 지 한참이었다.
박자를 쪼개던 드럼도, 저음을 담당하던 베이스도, 솔로 파트를 할 예정이었던 기타도, 보컬도 없다.
공연장엔 오직 내 키보드만이 울려 퍼졌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는, 이 무대를 보고 있는 나의 첫 번째 관객들을 위해.
내 모든 걸 보여줬다.
* * *
‘앉을 곳이 있나.’
백스테이지에 의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플라스틱으로 된 빈 박스를 뒤집어 대충 엉덩이만 걸쳤다. 마스크도 벗어버렸다.
이번 공연에서 내가 키보드로 연주할 곡은 정확히 4곡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세트리스트의 중간중간에 그 곡들이 배치될 예정이었지만, 오늘은 공연 제일 앞부분으로 다 당겨버렸다.
혹여나 내가 곡 순서를 헷갈려 긴장할까 봐 대성이 형이 순서를 바꿔버린 것이다.
덕분에 나는 공연이 시작된 지 15분 만에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백스테이지는 무척이나 더웠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조금 전 무대에서 느꼈던 두근거림도 도저히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양 주먹을 꽉 한 번 쥐었다가 펴봤다. 빨간색과 노란색 빛깔의 혈색이 손바닥에 일순간 생겼다가 사라진다.
이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야! 너 진짜 잘하더라! 키보드 실력 끝장나네!”
“아···. 감사합니다.”
리허설 때 나를 옆에서 도와주시던 음향 감독님.
그는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내게 건넸다.
“일단 마셔. 여기 덥지?”
“에어컨이 안 나오나 봐요.”
“아냐. 잘 나오는데 관객들 때문에 이래. 거의 3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뛰고 있는데 어쩔 수 없지. 그게 또 홍대의 묘미고.”
나는 그가 건넨 물병의 뚜껑을 까드득- 땄다. 일단 한 모금. 벌컥벌컥 물이 목으로 넘어간다.
후우.
“좀 살 것 같네요. 저도 몰랐는데 목이 말랐었나 봐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연주했는데 갈증이 안 날 리가 있나. 음료수도 있는데 하나 줄까?”
“아뇨. 지금은 이걸로도 괜찮아요.”
“그러면···.”
음향 감독님은 가방 안쪽에서 미니 선풍기를 꺼냈다. 전원 온. 내 얼굴 앞에 선풍기를 가져다 댄다. 기분 좋은 바람이 인다.
나는 그가 건넨 선풍기를 받으며 수건도 하나 받았다.
신기한 가방이다.
“음향 감독님이신데 별걸 다 가지고 다니시네요.”
“아, 이거? 사실 내 별명이 도라에몽이거든. 말이 좋아 음향 감독이지 Star 라이브 하우스 잡일도 내가 전부 다 맡고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만능 주머니도 자연스럽게 생기더라. 여기 없는 게 없다.”
인상 좋은 아저씨.
딱 그런 느낌이었다.
“공연은 어때요? 관객들 반응은 좀 괜찮아요?”
“엥? 너 방금 관객들 못 봤어? 너 무대에서 내려갈 때 거의 미쳐 날뛰었었는데.”
“그랬어요?”
“얘가 정신이 없긴 없었구나. 하여간···. 세상에 날고 기는 놈들 천지라고 하더니 너만한 꼬마애가 무대에 오르는 걸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무슨 쪽대본도 아닌 ‘쪽공연’에 말이야. 나중에 홍대에 길이 남는 이야기가 되겠어.”
“맞아! 누나도 완전히 반했잖아! 혹시 너 어디 소속사 연습생이니?”
그때 검은색 옷을 입고 있던 여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옷에 프린팅 된 ⌜한여름 끝자Rock 홍대!⌟라는 글귀를 보아하니 스태프 같았다.
그리고 이 스태프들은 점점 증식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너 대체 몇 살이니? 무대에서 완전 멋있더라!”
“나는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 혹시 방송에 나온 적 있지 않아? 아역 배우라든지. 분명 낯이 익은데···.”
“나는 사인 좀 해줘! 그런데 무대에서는 왜 마스크 썼었어? 의외로 부끄럼쟁이?”
“귀여워! 누나가 공연 끝나고 떡볶이라도 사줄까? 오늘 알바비 받으면 가능한데. 어때?”
“······.”
으으음. 떡볶이?
지쳐 있는 내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 음향 감독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떼끼, 이놈들아! 가서 일들 안 하냐? 너희들 없는 사이에 안전사고라도 생기면 책임질 거야?”
“에이~ 저희도 교대 시간이라 잠깐 쉬고 있던 거예요. 무대에 눈에 띄는 애가 있길래 백스테이지까지 와본 거고요. 그치?”
“네. 참고로 저희 화장실 청소도 한 시간마다 하고 있는 중입니다!”
“바닥에서 광도 나요. 매표소 정산도 끝내 놨고요. 일은 진작에 다~ 마무리해놨죠. 어때요? 훌륭하죠?”
한 마디를 지지 않는 알바생들.
감독님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다시 경고했다.
“얘 지쳐 있는 건 안 보이냐? 니들은 한마디씩 하는 거겠지만, 얘는 몇 마디를 해야 하는데? 어? 썩 안 가? 확! 알바비 빼버린다? 일당에서 만 원 빼도 최저시급은 넘어. 알지?”
이쯤 되자 알바생들은 하나둘 물러났다. 몇몇은 나한테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그런데.
“누나랑 떡볶이 약속은 진짜다? 시간 나면 언제든지 불러도 돼. 나 어차피 홍대 다니거든. 알았지?”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대학생은 내게 메모를 하나 남기고 사라졌다.
스타그램 아이디가 적힌 종이.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님은 큭큭 웃었다.
“밴드맨들 인기 많은 거야 원래도 그렇다고 하지만. 너는 벌써부터 대단하네.”
“뭐가 대단해요?”
“크크크. 아무것도 아니다. 하여간 꼬맹아! 이번 무대 좋았다. 멋있었어. 그러니까 지금은 푹 쉬고 있어. 뭔 일 있으면 나 부르고.”
감독님은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는 숨을 조금 돌린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묵직한 베이스가 스피커를 통해 백스테이지까지 울려 퍼지고 있었기에 공연이 궁금해진 탓이었다.
무대 아래쪽으로 장소를 옮겨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니 어둠밖에 없는 관객석이 먼저 보였다.
몇 걸음을 더 나아가 스탠딩석 가까운 곳에 섰다. 그제야 조명이 비치는 화려한 무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4명의 밴드 멤버가 하나의 노래를 만든다.
거대한 우퍼 스피커에서 전해지는 울림은 내 몸을 관통했다.
흥겨움에 나도 모르게 발을 까딱까딱했다.
공연은 점점 무르익어갔다.
⌜대성하자⌟ 멤버들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공연장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열기는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노래를 마친 대성이 형은 관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앙코르곡까지 내리달아 부른 ⌜대성하자⌟였기에 그건 마지막 인사말 같은 거였다.
관객들의 환호성을 뒤로 하고 밴드 멤버들은 무대 뒤편으로 이동했다.
나 역시 슬슬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백스테이지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형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격앙된 소리. 그들 중 나를 제일 먼저 발견한 일성이 형이 큰 소리를 냈다.
“야! 이 새끼야! 오늘 이렇게까지 일내면 돼? 어? 쪼꼬만 게 아주 기가 막히네!”
“네가 어지간한 키보디스트보다 더 낫더라. 잘했어.”
“한 마디로 죽이네! 이번엔 박자도 한 번 안 틀리더라? 한번 맞춰봤다고 이렇게까지 좋아지냐? 리허설보다 100배는 잘하던데? 새끼!”
나는 살짝 민망한 감이 들어 적당히 고맙다는 말과 수고했다는 말을 각각 형들에게 전했다.
그런데.
대성이 형은 내게 반문했다.
“야. 수고하긴 뭘 수고해?”
“네?”
“수고라는 말은 일이 다 끝났을 때 하는 말 아냐? 그 말을 지금 하겠다고?”
“······?”
‘······ 일이 다 안 끝났다고?’
내가 그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그때.
관객석에서 어떤 일정한 외침이 들리기 시작했다.
대성이 형은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그래서. 너도 껴야 하는데. 한 곡 정돈 더 칠 수 있지?”
나는 관객들의 울림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멋모를 미소를 만든 채로.
“한 곡 정도는 가능하죠.”
“그럼 가자. 더 늦으면 쟤들 답도 없다.”
“그래요?”
“어. 우리 팬들 다 미친놈들이거든.”
우리가 무대로 걸음을 옮기는 사이, 이연이 형은 내게 마스크를 하나 챙겨줬다. 꼼꼼하신 분이라니까.
나는 마스크를 쓰며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의 환호는 내 몸에 그대로 전해졌다.
“앙코르! 앙코르!”라고 외치는 그들의 외침에 머리가 쭈뼛거렸다.
예정에 없던 앙코르 곡은 ⌜우연⌟이었다.
같은 곡을 두 번이나 듣게 될 관객들.
그런데 그런 것 따위는 별로 상관이 없나 보다.
익숙한 드럼 비트가 진행된다.
나는 키보드로 인트로를 연주했다.
대성이 형은 나와 득수 형, 이연 형, 일성 형까지 모두 쳐다본 뒤에 기타를 슬쩍 바닥에 내려놨다.
그러곤 무선 마이크를 쥔 채로 우리에게 외쳤다.
“내가 이러니까 공연을 그만두지 못하는 거야. 서진아, 넌 이제 좀 알 거 같지 않냐?”
그는 관객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면서도 관객들에게 무어라 소리를 친다.
홍대성은 만화처럼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런데 의외로 관객들은 객석으로 뛰어든 그를 능숙하게 낚아챘다.
한 두번 해본 솜씨는 아니다.
홍대성은 관객들 사이 섞여 ⌜우연⌟의 노래를 불렀다.
남은 멤버들은 무대 위에서 계속해서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가수와 관객 사이에 격 따위는 없다는 듯,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놀았다.
그리고.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우리의 공연은 아쉽게 끝나버렸다.
* * *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
뒤풀이 겸 온 이곳에서 혼자 절망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일성이 형이다.
“어? 왜 나는······! 크흡! 밴드를 몇 년을 했는데! 메인 기타는 난데! 선생님! 기타리스트가 밴드에서 제일 주목 받는다면서요!”
물론, 그런 시끄러움 속에서도 맛난 메뉴들은 열심히 서빙이 되고 있었다. 내 앞에 도착한 티본스테이크. 으음. 슥슥 썰어 한 점 먹었더니. 크! 입에서 살살 녹는다.
“아니! 다들 밥이 넘어가냐고요! 네? 형님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일성이 형의 절규.
득수 형은 참다가 참다가 일침을 놓았다.
“일성아.”
“네!”
“서진이가···. 여자 팬한테 연락처 받은 게 그렇게 대수였냐?”
심지어 눈물을 글썽거리는 일성이 형.
그는 항변했다.
“그럼요! 대수죠! 어? 왜 나만 없는데요! 다들 여친 있잖아! 마누라도 있고! 쟤는 12살인데! 왜 나만 없어! 이건 사기야! 북한의 음모라고!”
“야. 너는 거울을 좀 봐라. 거울을. 꾀죄죄해갔고. 누가 너랑 만나 주겠냐?”
“형. 제가 쟤네 집도 가봤는데요. 화장실에 진짜로 거울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듯해요. 그런데 눈은 또 높음. 생길 리가 있나.”
“쯧. 어쩐지 요즘에 더 못 생겨졌더라. 모쏠엔 다 이유가 있지.”
“와···. 그 말은 좀 아프겠는데요? 좀 살살 때리세요. 쟤 서진이 앞에서 울면 어쩌려고요.”
“설마. 그리고 솔직히 말하는 건데 여친이 생겨도 서진이가 먼저 생길걸?”
“뭐, 그건 인정.”
“맞는 말.”
“크아아아아앜!”
필터 없이 박히는 팩트 속에서 일성이 형은 더욱더 절규했고.
나는 그런 일성이 형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스테이크를 먹었다.
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