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5
35 나비 효과
* * *
⌜월광⌟이 주최하는 ⌜Let’s go 작곡 공모전⌟은 타 레이블에서 진행하는 공모전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었다.
첫째, 익명 지원을 통한 완벽한 공정성. 심지어 메일 제목까지도 노래 제목만 기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렇다고 이사님 라인, 회장님 라인의 아티스트들이 안 뽑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긴 했다.
사회생활을 유연하게 하려면 다~ 명목이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때때로 뜬금없는 아티스트들이 공모전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기반을 발판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케이스들이다.
둘째, ⌜월광⌟은 모든 입상자들에게 한 땀 한 땀 정성껏 피드백을 해준다.
사실 말이 정성이지, 아티스트들을 어떻게라도 꼬셔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거다.
참고로 레이블의 공모전은 기획사의 오디션과 큰 차이가 있다.
기획사의 경우 기획사가 그 연습생을 키워내야 한다. 레슨도 붙여주고 옷도 입혀주고 살도 빼주고 얼굴도 깎아준다.
미완성의 연습생을 완성형으로 만들어낸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덕분에 그런 오디션을 진행할 수 있는 회사는 대한민국에 많지는 않았다.
물론 레슨비 명목으로 연습생 부모님께 천만원, 이천만원을 뜯어내는 불량 기획사가 존재하기도 했지만 그건 예외였다.
반대로 레이블의 공모전은 이미 완성된 아티스트들을 뽑으려고 한다.
작곡가라면 이미 노래를 만들 줄 알아야 하고, 가수라도 이미 노래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익 배분 비율도 기획사보다 레이블이 훨씬 좋다.
어떻게 보면 레이블은 일종의 유통사 역할만 하는 셈이다. 아티스트와 아티스트를 연결해주고 거기서 남는 부스러기만 챙겨 먹는다.
이런 사업은 리스크가 적고 꽤 안정적이다.
수많은 아티스트와 계약을 맺고, 그들이 만드는 창작물을 유통, 판매, 마케팅을 해주는 대가만으로도 ⌜월광⌟은 점점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레이블에서는 아티스트들을 아무리 많이 영입하더라도 손해를 보는 구조가 아니었다.
마치, 기획사가 된 것마냥 아티스트를 매니지먼트까지 해주겠다고 나서는 이상한 놈들만 없다면 말이다.
“그래서···. 이 ⌜TEST⌟를 테스트 삼아서 1팀 전력을 쏟아 보겠다고요?”
“어차피 우리 팀에 내려온 예산 많이 남잖아. 그거 지금 쓰면 돼.”
“저희 이 작곡가랑 일면식도 없는 건 아시죠?”
“촉이 왔어. 촉이. 인턴들도 분명 좋다고 했고. 그치, 애들아?”
박훈 과장의 물음에 김 인턴, 이 인턴, 박 인턴은 “넵!”이라고 크게 외쳤다.
“봐봐.”
“인턴들한테 물으면 당연히 저렇게 대답하죠. 과장님 잘 생겼냐고 물어봐도 그냥 넵넵 거릴 애들일걸요?”
“설마. 얘들아~ 혹시 나 잘생긴 것 같니?”
박훈은 거침없이 인턴들에게 질문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넵!”이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봐요.”
“쳇. 다들 예스맨이었구만. 그런데 차 대리도 ⌜TEST⌟ 들어 봤잖아? 요즘에 이런 음악이 있었어? 흔한 코드에다가 어떻게든 표절 안 걸리려고 2, 3마디씩만 베껴 오는 작곡가들 천국이야. 그 와중에 이렇게 유니크한 곡을 써내는 애가 나타났잖아. 솔직히 말해봐. 메이저를 포함해서 이런 애 본 적 있어?”
차리나는 대답하는 것을 잠시 보류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숨을 뱉었다.
“저도 알아요. ⌜TEST⌟는 신인 특유의 색채가 묻어나는 곡이죠. 트렌드는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그대로 보여줬어요.”
“그런데 대중성까지 어느 정도 신경을 썼지.”
“그게 놀랍긴 해요. 정말로 톡톡 튀는 곡. 거기에 요즘 누가 후렴구를 각각 다르게 작곡하겠어요?”
“베토벤 시절에도 잘 안 하던 짓이지. 소나타 형식이 왜 만들어졌겠어? 반복되는 구조로 작곡을 날로 먹으면서도, 리스너들은 좋은 부분을 여러 번 들을 수 있기 때문이잖아. 그런데 ⌜TEST⌟는 그렇게 안 했단 말이야? ‘나는 후렴 3개를 다 다르게 만들어도 좋은 곡을 만들 수 있다!’ 이거지. 어린놈이 패기 넘치지 않아? 막 밀어주고 싶지 않냐고?”
“······.”
차리나 대리는 드디어 박훈 과장이 이러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모차르트 신봉자.
어린 영재라면 더더욱 사족을 못 쓰는 분이 박훈 과장이었다.
박훈 과장은 이 ⌜TEST⌟를 쓴 작곡가가 이미 어리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단, 차리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참고로 이 작곡가, 그렇게 어리진 않을 거예요. 지금 ⌜TEST⌟에 들어간 트랙 수만 해도 일반 곡들과 궤를 달리하잖아요. 분명 인디 쪽에서 오래 작곡을 해왔던 중고 신인쯤 될걸요? 소속사 없이 골골대다가 냅다 공모전 지원해본 거겠죠.”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어린 나이에, 패기 있게! 심심풀이 삼아 지원해본 거라면? 이놈이 모차르트라면?”
“세상에 그럴 일은 없다니까요.”
“얘 많아 봐야 22살일 거야. 어릴 거라고. 거기에다가 이런 음악을 만드는 애가 음대를 갔을 것 같진 않으니···. 지금은 편의점 알바 정도 뛰고 있겠지. 그런데 만약 이놈이 진짜라면 어떨지 알아?”
“글쎄요?”
박훈은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고등학생일 수도 있어.”
“그건 또 무슨 꿈 같은 소리예요? 이 정도로 미디 만지는 고딩이 어딨어요? 그런 애가 있었다면 벌써 대형에서 채갔겠죠.”
“쓰읍. 아니야. 촉이 온다니까? 노래에서 풋풋함이 묻어나오잖아. 산전수전 다 겪은 아저씨 냄새는 안 난다고.”
“······.”
“안 믿기면 내기라도 해볼까? 만약 이 작곡가가 23살 이상이라면 내가 우리 팀 전체에 스타벅스 한 달 자유 이용권 뿌린다.”
“······ 정말요?”
“대신! 내 말대로 이 작곡가가 22살 이하라면 내가 예산을 얼마 끌어 쓰던 토 달기 없기야. 어때?”
“높은 확률로 스타벅스 한 달 자유 이용권이라···. 나쁘지 않네요?”
차리나 대리는 흔쾌히 내기를 수락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작곡가가 어리다고 단정 지으신 거예요? 노래만 듣고 그런 촉이 온거예요?”
차리나의 말에 박훈이 씨익 웃었다.
“내가 어젯밤에 음원 파일에서 발견한 게 하나 있거든.”
“무슨 이스터 에그라도 들어 있었어요?”
“그 비슷한 거지. 한번 봐봐.”
박훈 과장은 차 대리가 화면을 볼 수 있게 모니터를 돌려줬다.
차리나는 화면에 떠 있는 내용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오디오 파일에 대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WAV 파일의 MediaInfo.
음원을 만들 때 어떤 규격으로 만들었는지, 포맷이나, 크기, 비트 레이트, 코덱 등의 세세한 정보가 담겨 있는 부분이다.
차리나는 거기에서 TEXT, 즉 음원 제작자가 자유롭게 정보를 기입할 수 있는 부분에서 눈을 멈췄다.
“Created with MD Score···. 이게 뭐예요? MD Score?”
“나도 뭔지 몰라서 인터넷을 찾아봤거든. 이거 봐라.”
박훈은 모니터에 MD Score의 검색 결과 창을 띄워줬다.
“MD Score. 요즘 젊은 애들 중심으로 많이 사용하기 시작한 미디 작곡 앱이란다. 이게 무슨 의미인 줄 알아?”
차리나 대리는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TEST⌟가···. 스마트폰 앱으로 만들어진 곡이라고요?”
“그래. MD Score 무료 버전을 쓰면 MediaInfo에 앱 정보가 자동으로 남겨지나 보더라고. 그러니까 이 작곡가는 돈이 없는 매우매우매우 어린 작곡가라고 할 수 있겠지. 어때? 이젠 이놈이 고등학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
음악계에서는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인정을 받는다.
사실, 예술계가 다 그렇다.
데생을 기가 막히게 하는 대학생이 있다면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아그리파를 척척 그려내는 꼬마애가 있다면?
이야기 자체가 달라진다.
‘과장님 말씀처럼 작곡가가 진짜로 고등학생이라면···.’
소위 말하는 대박.
그런 영재를 ⌜월광⌟ A&R 1팀에 데려올 수만 있다면, 남은 예산을 퍼붓는 것 정도야 아깝지 않다. 시말서 몇 장만 쓰면 그만이다.
“이놈은 잠재력이 있어. 그러니까 ⌜TEST⌟에 우리 올인 한번 해보자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박훈 과장은 비장하게 지시를 내렸다.
“공모전 끝나기 전에 계약부터 따내자. 그리고 ⌜TEST⌟ 작업을 먼저 진행하는 거야. 일단은 우수상이라고 해두고, 상은 나중에 챙겨 주면 되니까.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겨우’ 상 정도가 아니잖아?”
* * *
“으음.”
“왜?”
나는 내 앞에서 우유를 빨대로 쪽쪽 빨아 먹고 있는 이하은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 우유색이 유독 어두컴컴해 보이는데 말이야. 내 착각인가 싶어서. 너 제티 따위는 살쪄서 안 먹는다며?”
이하은은 반투명한 빨대를 손으로 서둘러 가리며 대답했다.
“마, 맛이나 한번 보려고 그랬어! 테스트야. 테스트.”
“음.”
“진짜라니까! 우리 반 애들도 다 제티 먹는데! 이게 무슨 맛인 지 반장도 알아야 할 거 아냐?”
“그냥 맛이 있어서 먹는 건 아니고?”
“······.”
한참을 꼼지락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이하은.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봐! 이거 맛있다니까.”
“······ 난 이번에 처음 먹어보는 거라 몰랐었어. 맛있더라.”
이하은은 괜히 내 시선을 피하며 빨대에 집중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나서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봤다.
‘공모전 심사 기간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월광⌟에 소속된 누구누구라는 사람이 보낸 문자가 있었다.
조금 찝찝한 문자.
010으로 시작하는 개인 번호로 온 문자라 더 찝찝했다.
“그런데 진짜로 뭔 일 있어? 왜 그렇게 심각해?”
“내 개인정보가 어디선가 털렸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스팸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도통 이유를 모르겠네.”
“대체 무슨 문자인데 그래?”
“공모전 당선됐다는 문자이긴 한데, 이렇게 개인 번호로 보내는 경우가 있던가? 좀 이상하지?”
“······ 공모전? 그러면 너 된 거야?”
“아직 잘 모른···.”
“와아아아!!! 대박!!! 그러면 서진이 너 연예인 된 거야? 무슨 무슨 차트에 노래도 올라가고? 티비에 나와서 가수들도 막 평가하고?”
“하은아. 갑자기 너무 갔다? 아직 확실한 게 아무것도···.”
“나도 보여줘! 나도 볼래! 대박!”
“······.”
하은이의 성화에 못 이겨 화면을 슬쩍 보여줬더니 더 난리가 났다.
“와! 우수상이네! 내가 말했지? ⌜TEST⌟ 좋았다니까? 잘됐네!”
“그런데 하은아.”
“응?”
“이거, 스팸일 수도 있다니까?”
“······?”
나는 차분히 내 생각을 이하은에게 설명해줬다.
설명을 들은 이하은은 “에이~ 설마~”라는 말만 반복했다. 나중에 축하 선물도 줄 테니 기대나 하고 있으란다.
점심시간이 막 끝나가는 참이라 나와 이하은은 일단 각자 교실로 돌아갔다.
방과 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월광⌟의 본사 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해봤다.
한 마디로 더블 체킹이었다.
– 네? ⌜Let’s go 공모전⌟ 결과요? 그거 발표까지 아직 한참 남았는데요?
“그렇죠? 지금 합격 문자 받은 건 이상한 거죠?”
– 어휴. 요즘에 보이스피싱이다 뭐다 해서 사칭이 많다고는 들었는데. 저희 회사 사칭까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저도 혹시나 해서 전화해봤던 거였거든요. 천만다행이었네요.”
– 잘하셨어요. 앞으로도 꼭 조심하시고요. 그리고 문자가 가더라도 저희 회사번호로 문자가 갈 거니까 그것만 확인하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 결과 있길 바라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뚜.뚜.뚜.
어휴.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다.
저번에 티비에서 보이스피싱 관련 뉴스를 봤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해당 회사에 직접 전화부터 해보라는 말이 이렇게 유용할 줄은 몰랐다.
나는 스마트폰에 있는 ⌜월광⌟ 관련 문자를 슥 지워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은 무척이나 편안했다.
룰루.
* * *
⌜월광⌟ A&R 1팀.
“왜 답이 없어? 대체 왜!”
“글쎄요. 한 번 더 문자나 보내볼까요? 아니면 전화?”
차리나 대리의 물음에 박훈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우리도 자존심이 있지.”
“어···. 아침만 해도 자존심 다 버리고 올인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최소한 오늘은 아냐. 내일 해. 내일 저녁 시간쯤에. 혹시 여태껏 자고 있을 수도 있잖아? 작곡가들은 대부분 밤에 활동하니까.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
“······.”
‘참 알다가도 모를 분이네.’
차리나는 슬쩍 시간을 확인하며 생각에 잠겼다.
점심쯤 문자를 보냈었고 지금은 이미 저녁 시간이 됐다. 솔직히 문자를 못 봤다는 건 말이 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차리나는 자신의 생각을 박훈 과장에게 말해봤다.
“저희가 우수상 수상이라고 문자를 보냈었잖아요. 일단은 안전빵으로.”
“어. 그게 왜?”
“그런데 혹시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면요?”
“뭐?”
“⌜TEST⌟ 정도의 곡을 작곡할 수 있는 사람이면 자기 능력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우수상은 성에 차지 않은 거죠. 요즘 많잖아요? 수상 거부. 나 이런 상 따위는 필요 없다! 나는 나를 인정하는 곳만 원한다! 모 신춘문예에서도 그랬었다는데 우리 회사는 오죽하겠어요?”
“······ 그러니까 우수상은 싫다?”
“우수상이라고 해봤자 부상으로 50만원, 1대1 피드백이 전부잖아요. 솔직히 그럴 만도 하죠. 우리 이번 공모전 좀 쪼잔하긴 하다니까요? 최우수상부터 음원 발매 지원을 해주기로 했으니 심드렁한 거죠.”
“······.”
“뭐, 어쩌겠어요? 포기해야죠. 그럼 ⌜TEST⌟는 제껴두고···.”
“아니야!”
박훈은 단호했다.
“나는 얘밖에 없어! 이미 이 노래랑 사랑에 빠졌다고!”
“그러면 어쩌시려고요?”
“작곡가가 우수상에 만족 못한 거 같다며? 그러면 등급을 올려 봐야지.”
“······?”
“좋아. 자존심 있는 작곡가라고? 오히려 더 마음에 든다. 그러면 나도 그에 맞춰줘야 하지 않겠어? 차 대리.”
“네.”
“이 T.O. 차 대리가 만들어 왔지? 이번엔 내가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상무님 비서한테 전화 좀 해놔 봐.”
“갑자기요?”
“어. 내가 직접 쇼부치러 간다. ⌜TEST⌟라면 설득할 수 있어. 음원 발매? 훗. 그거야 우습지. 우리가 이 판 새로 짠다. ⌜월광⌟ 1팀이 해보자! 차 대리! 우리는 할 수 있다!”
“······.”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 8시.
박훈 과장은 갑자기 열의에 불타기 시작했다.
⌜월광⌟의 밤은 이제야 시작이었다.
그리고.
차리나 대리는 남몰래 눈물을 닦았다.
속으로 ‘과장님···. 저 퇴근은요···? 흑흑.’이라고 외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