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79
79 계약 조건
* * *
신입생 환영회의 하이라이트는 저녁부터였다.
설화 예중 뒤쪽 공터에 설치되어 있는 야외무대 앞에 전교생이 모였다.
체계적으로 줄을 서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저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둔 채 바닥에 철푸덕 자리를 잡았다.
공터는 그만큼 넓었고, 콘서트의 분위기도 그만큼 자유로웠다. 선생님들이 중간중간 통제를 해주시긴 했지만 말이다.
“야외에서 하는 클래식 공연은 처음 보는 것 같네.”
“나도.”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이하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신주원은 저 앞에서 아예 옆으로 누워서 무대를 보고 있었다. 땅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다나? 자유로운 인간. 확실히 신기한 애였다.
우리 주변엔 대부분 피아노과 A반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자유롭게 풀어놓는다고는 해도 결국은 끼리끼리 모이는 것 같았다.
여러 솔로 악기들의 연주가 끝난 뒤, 설화 예중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랐다.
지휘는 마루호 선생님.
지휘봉이 한 번 크게 올라갔다 내려가자 경쾌한 현악기의 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곧바로 이어지는 오보에와 플룻.
너무나 유명한 교향곡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자연과 조화, 그리고 평화로움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첫 악장의 다채로운 멜로디를 듣던 이하은이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강물 흐르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그런 게 음악에서 느껴지네. 너도 그런 데서 영감을 받아서 봄을 표현한 거야? 이번 노래에서?”
“지금 나를 누구랑 비교하는 거야?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야.”
“비교가 아니라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나는 작곡은 영 모르니까.”
제법 어두운데도 이하은의 눈은 반짝거렸다.
‘진지하네.’
그래서 어느 정도 솔직히 말해줬다.
“작곡할 때 주변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긴 해. 그래서 이번에도 봄이라는 주제가 나온 거고.”
“그럼 겨울에 만들었으면 겨울이 됐겠네?”
“그럴지도 모르지.”
“흐응···.”
야외무대에는 큼직한 음향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악기만의 소리로 이 야외 공간을 가득 채우기란 힘드니까. 실내 클래식 공연하고는 달랐다.
덕분에 바로 옆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소리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겨우 웅성거리는 정도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훨씬 컸다.
“그러면 ⌜TEST⌟는? 그것도 네 이야기야? ⌜닿지 않는 편지⌟는? 그 노래엔··· 분명 슬픔이 담겨 있었잖아.”
“······.”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이하은은 무대를 바라보며 내게 속삭였다.
“나는··· 우리가 친구가 됐다고 생각해. 진짜 친구.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 대답은 쉽게 할 수 있었다.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야. 그러니까 너한테는 ‘내 일’ 이야기도 해주잖아. 너라면 믿으니까.”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이하은은 괜히 바닥에 있는 모래를 손가락으로 툭 튕겼다.
“가끔 널 보고 있다 보면··· 뭔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그때면 슬픔이 느껴져. 이전의 네 노래들을 듣다가도 그런 걸 느꼈었고. 물론, 넌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말이야.”
“······.”
조금 의외의 이야기.
최근에 이하은하고 붙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얘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편하게 이야기해도 돼. 내가 상담해 줄게. 우린 친구니까. 알았지?”
이하은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다가 다시 무대를 바라본다.
‘편하게 이야기를 해도 된다라······.’
나는 이하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
“응? 뭐라고 했어?”
피날레로 향하고 있는 베토벤의 음악.
모든 오케스트라가 화려한 선율을 연주하고 있는 탓에, 이하은은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하겠다고 한 거야. 대신 상담료는 조금 저렴하게 해줘야 한다?”
“그거야 당연하지. 핫초코 한 잔이면 충분해.”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끝난 뒤, 실용음악과의 공연이 시작됐다.
실용음악과의 공연은 무척 신났다.
공터 중간에 미리 설치되어 있던 나뭇더미에 학교 관계자분들이 불을 붙였다.
총 세 개의 캠프파이어.
그 열기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보컬과 선배의 무대가 시작됐다. 학교에서 꽤 유명한 사람인지, 환호성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이야기하는 걸 들어봤더니 모 기획사의 유명한 연습생이란다.
“연예과에서 꽤 인기 있는 선배야!”
A반의 한 친구가 친절히 설명을 해줬다.
그런데 그 선배는 마지막 앵콜 곡으로 재미있는 노래를 선곡해왔다.
이하은 말대로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곡.
“마지막 곡으로 ⌜왠지 모르게, 봄⌟을 부르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환호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앉아 있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올 때는 어디를 가볼까.
산, 바다, 들판, 그 어디라도 좋을 것 같아.
시기가 주는 설렘은 언젠가 추억이 될 거야.
⌟
학생들의 얼굴은 전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캠프파이어의 열기가 그들의 얼굴을 가만히 두지 않은 모양이다.
⌜
학교에서 처음으로 친구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장난을 치면서.
웃음 짓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
신주원이 내 쪽으로 와서 어깨동무를 한다. 그러곤 속삭인다. 뉴튜브에 내가 이 노래의 커버 곡을 올리면 대박일 거란다. 예리한 면이 있다니까. 나는 애써 모른 척을 했다.
⌜
설탕을 닮은 무수한 별들이 하늘에 떠 있고.
바람이 지나가다가 남긴 발자국은 들판에 새겨졌어.
저 높은 산에는 아마 무지갯빛 꽃들이 피어날 거야.
⌟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더니 북극성만이 간신히 눈에 들어왔다. 밀러 아저씨가 알려줬던 수많은 별자리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조금 아쉬웠다.
⌜
통기타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가봐.
봄바람이 불어오는 이 순간은.
먼 훗날엔 아쉽게 생각이 될 수도 있잖아?
그냥 지나치긴 아쉽지. 아쉬울 거야.
그런데 사실은 어딘가를 갈 필요는 없어.
그 자리에서 시선만 돌려봐.
무심히 지나쳤던 버스정류장이 아름답게 보일지도 몰라.
⌟
학생들은 각각 한 명씩 손을 잡았다.
이하은이 내 오른쪽, 신주원이 내 왼쪽이었다.
우리는 큰 띠를 만들어 캠프파이어 주변을 둘러섰다.
⌜
늦은 저녁 오롯이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남아 있던 기억이.
최고의 추억이 될 수도 있거든.
너는 지금 추억을 떠올리고 있어?
아니면 지금도 설렘을 느끼고 있어?
이 시기가 주는 설렘은 언젠가 추억이 될 거야.
⌟
학생들 대부분은 이 노래를 알고 있는 듯했다.
다들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그게··· 조금 신기했다.
⌜
벚꽃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다 보면.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설렘이 다시 다가올지도 몰라.
이 시기가 주는 설렘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어줄 테니까.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계절에.
모두가 설렘을 찾았으면 해.
왠지 모르게, 봄이 됐잖아.
작년 이맘때처럼.
⌟
* * *
며칠 뒤.
강남의 어느 카페.
“와···. 과장님, 우리 오늘 대체 미팅이 몇 개예요? 정신이 없네요.”
“그러게 말이다.”
“이번 ⌜왠지 모르게, 봄⌟이 확실히 주목받고 있나 봐요.”
“신인이 부르기에 좋은 노래였으니까. 오늘은 특히 아이돌 팀들 의뢰가 많네.”
“거기에다가 대부분 대형 쪽이었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직접 나온 거지.”
이 정도의 체면치레는 필요했다.
대형이 ⌜월광⌟에게 MJ 곡을 계속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 속에서, 서면으로만 거절할 수는 없었으니까.
⌜왠지 모르게, 봄⌟은 현재 음원차트 2위에 올라가 있었다.
가수가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만약 ⌜Unknown⌟이 매스컴에 얼굴을 드러냈다면?
아마 지난주에 음원 차트 1위에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대중들은 이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마음을 간지럽히는 멜로디와 가사가 계절에 딱 맞아떨어진 것도 있었고, 보컬의 매력도 단단히 한몫했다.
‘서진이 목소리가 꽤 유니크한 편이지.’
서진이는 자기 목소리가 어리다고 싫어하는 듯했지만, 사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노래를 더욱더 좋아해 줬다.
듣고 있으면 그냥 흐뭇해지니까.
풋풋함이 그대로 전달 되니까.
요즘에 대형 기획사에서 나오는, 프로 가수와 다름이 없는 완벽한 앳된 신인들과 달리, 서진이는 그 나이가 주는 매력을 잘 표현해냈다.
‘듣다 보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가 지어지지. 그게 매력인 곡이고.’
덕분에 여러 영상 플랫폼에서 이 노래가 배경음으로 사용되는 빈도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저작권 시스템상 그 영상의 수익은 음원 제작자가 전부 가져가게 되어 있었다.
⌜왠지 모르게, 봄⌟이 당장은 음원차트 2위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단순한(?) 1위보다도 더 좋은 상황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대형 기획사들이 MJ에게 과하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Unknown⌟을 원하는 곳도 있네요. 신인에 정체도 모르는 가수인데 말이에요.”
“그러게. 다만, 우리 작곡가를 반으로 나눠 줄 수는 없잖아? 솔로몬이 필요한 순간일 지도 모르겠네.”
“큭큭. 과장님다운 농담이네요.”
박훈은 조금 전, 모 방송국의 PD에게서 받은 전화에 대한 내용도 차리나에게 말해줬다.
“방송국이라··· 당연히 그런 반응이겠네요.”
“그러니까.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있어.”
“그런데 그 정도면 거의··· 메인 MC 급 출연료잖아요? 게스트 출연료로 치고 상당하네요?”
“아예 새롭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줄 생각도 있대.”
그뿐만이 아니었다.
⌜월광⌟ 계약 관계와 상관없이 충분한 계약금을 주고 MJ를 데려오고 싶다는 제안도 있었다. 살짝 눈을 감아달라는 조건으로 말이다.
“솔직히 말해 상도의가 없는 사람들이죠.”
“원래 연예계가 이런 곳이니까.”
“저희가 작곡가님이랑 계약이 끝난 건요? 혹시 알고 있는 곳이 있었나요?”
“아직은 없더라. 그래도 우리 ⌜월광⌟이 입이 무거운 편인가 봐. 하지만 그것도 얼마나 갈지 모르지.”
서진이와 계약은 이번 곡까지였다.
⌜왠지 모르게, 봄⌟에 관련된 일은 하더라도, 서진이의 마음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음 곡 의뢰를 일단은 확인해주고 있지만 말이지.’
박훈 마음 같아서는 서진이를 계속 데리고 있고 싶었다.
돈이나 그런 문제보다, 괜히 다른 곳에 갔다가 서진이 마음이 다칠까 봐.
연예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지 않나.
거기에 14살짜리 아이에게는 더더욱.
하지만.
‘이것도 다 내 욕심일지도 모르겠네.’
피아노에 전념하겠다며 홀연히 떠나버릴지도 모를 아이.
잠깐이나마 천재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운이었을지 모르겠다.
박훈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미팅을 준비했다.
* * *
“음.”
“으음.”
나와 함께 영상을 유심히 보고 있던 수연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역시······”
“어떤 것 같아?”
“확실히 설하 언니 ⌜왠지 모르게, 봄⌟ 커버가 제일 귀여운 것 같아. 특히 중간에 볼을 붉히는 게 매력적이었어.”
냉철한 우리 동생의 판단.
나는 곧바로 수긍해줬다.
“괜히 인기 급상승 영상이 아니거든.”
“그런데 오빠 영상은 조회수가 몇이야?”
“나? 어제 봤잖아.”
“하루하루가 다르잖아. 또 궁금해졌어!”
내 옆에 딱 붙어서 눈을 반짝이는 수연이. 나는 하는 수 없이 ⌜왠지 모르게, 봄⌟ 영상을 찾아 들어가 봤다.
수연이는 곧바로 폴짝 뛰었다.
“와! 봐봐! 또 늘었잖아!”
어제까지만 해도 300만 조회수가 나오던 영상이 이제는 330만을 넘기고 있었다.
확실히 상승세를 탄 것 같았다.
심지어 수연이네 유치원에서도 이 노래가 나온다고 했다.
“웃음 참느라 혼났어! 정말로! 크흠! 그래도 노래가 좋아서 기분은 늘 좋아. 간질간질한 노래라 귀엽거든.”
“수연이가 좋아해 주니까 다행이네.”
“당연하지!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다 노래가 좋대. 오빠는 천재인가 봐. 이런 노래 만드는 거 보면.”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어줬다.
“그보다 이 노래는 수연이가 만드는 거 도와줬잖아. 기억 안 나?”
“······ 내가 그랬어?”
“응. 신디사이저 배송 왔을 때.”
“으음. 그랬나?”
수연이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피식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한 장을 꺼냈다.
만 원.
수연이의 작곡 어시스트 일당이었다.
수연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너무 큰 돈이야! 난 한 것도 없는데! 만원이면 아이스크림이 몇 개 인 줄 알아?”
“작년보다 물가가 올라서 그래. 대신, 어디 쓸 데 있을 땐 오빠한테 말하고 쓰기. 어때?”
“그래도······.”
“그럼 일단 저금통에 넣어뒀다가 쓸 일 있으면 오빠랑 같이 물건 사러 가자. 그럼 됐지?”
수연이는 고민하다가 내가 준 용돈을 받았다. 그러곤 도도도 달려가서 저금통을 가져온다. 용돈 기입장까지 꼼꼼히 기록하는 수연이. “살다 보니··· 큰 거 한 장을 다 받아보네···.”라며 영화 대사 같은 걸 중얼거린다.
수연이가 내 방에서 나간 뒤.
나는 공식 뉴튜브 계정에 연계된 이메일을 열어봤다.
일종의 소통 창구로 새로운 메일 계정을 만들어 둔 것이었는데, 하루에 오는 이메일 수만 해도 엄청났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이 기획사에서 또 보냈네.’
나한테 거의 억 단위의 계약금을 줄 테니 소속사를 옮기라는 이메일이 있었다.
‘내 몸값이 이만큼 올랐다고 보면 되는 거겠지.’
뭐, 그래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머지 메일 대부분은 ⌜왠지 모르게, 봄⌟이 너무 좋다는 팬들의 이메일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쓴 것 같은 이메일에는 종종 답장을 해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크레파스로 손 편지를 써서 내게 다시 답장을 보내주기도 했다.
동글동글한 그림에 봄이라고 쓰여있는 편지.
‘보다 보면 흐뭇해진다니까.’
비율로 봐서는 업무 내용이 1이면, 팬들의 메일이 99였다.
덕분에 이메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 * *
다음날.
수업을 모두 마친 뒤.
A반 친구들 2명과 교실에 남았다.
“자, 팀장을 정하자. 참고로 팀장은 발표도 해야 하거든.”
작곡 실기 수업 수행평가가 하나 있었다.
3인 팀플레이.
랜덤으로 결정된 팀이었다.
이하은과 꽤 친하게 지내는 A반 부반장, 백소연이 자원자를 모집했다.
“여기에서 작곡 빠삭하게 아는 사람 있어?”
“······.”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신주원.
나는 곧바로 신주원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소극적이면 어떻게 하냐. 몰라도 해볼 생각을 해야지.”
“나 작곡은 영 꽝이란 말이야! 그럼 네가 하던가!”
백소연은 우리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 제비뽑기할까? 사실 나도 작곡은 자신이 없거든.”
“그래! 그게 공평하겠네! 1/3 확률이면 해볼 만하지.”
그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하는 수 없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팀장, 내가 할게.”
신주원이 “오~ 수석~”이라며 따봉을 보여줬고,
백소연은 “좋네. 그런데 서진이 너, 작곡은 좀 할 줄 알아?”라며 내게 질문을 해왔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음···.’
내가 작곡을 ‘좀’ 할 줄 알던가?
어제 봤었던 이메일을 떠올리며 대답을 해봤다.
“아마··· ‘조금’은 할 줄 아는 거 같아.”
“그래?”
“응.”
“다행이다.”
다만, 이걸 공짜로 해줄 수가 있나?
내가 몸값도 있는데 말이지!
공짜로 노동력을 제공해 줄 수는 없었다.
사람이 실리는 챙겨야 하지 않겠나.
나는 내 이익을 스스로 챙기기 위해 조건을 제시했고.
“······ 좋아. 그거면 된 거지?”
“물론.”
내 조건은 간신히 통과됐다.
잠시 후.
우리가 조로로 학교 1층 계단에 앉아있을 때.
“어? 서진아, 너 아직 안 갔어?”
뒤쪽에서 이하은이 나타났다.
“곧 가려고. 수행평가 때문에.”
“아, 작곡 실기? 너희 팀이라면······”
이하은은 하려던 말을 말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내 얼굴 쪽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아이스크림 맛있어? 처음 보는 거네.”
“응. 공짜라 더더욱.”
“공짜?”
나는 내 양옆의 백소연과 신주원을 가리켰고, 이하은은 큭큭 웃었다.
이하은도 곧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우리가 앉아있던 계단 라인에 자리를 잡았다.
“서진이 네가 작곡 실기 수행평가 팀장 하는 데 아이스크림 하나면 너무 싼 거 아냐?”
“내 말이. 원래는 2개 달라고 했는데. 신주원이······”
“와! 욕심 봐! 이거 어차피 팀플이거든? 우린 노나?”
신주원의 견제에 백소연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럼 주원이 네가 팀장 하지 그랬어? 아이스크림 2개로.”
“······.”
신주원은 이내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박훈 과장님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자리를 옮겨 전화를 받았고,
– 아, 서진아. 다른 게 아니라······
박훈 과장님은 ⌜월광⌟과의 계약 건에 대해 내게 한참 설명해주셨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다.
계약이 종료되고 새롭게 갱신됨에 따라 변경된 내용이 있었다.
꽤 큼직한 단위의 계약금과 내게 유리한 ‘수익 배분 비율 조정’.
참고로 계약금은 내가 온전히 받게 되는 돈이었다.
그리고 계약 갱신도 현 계약과 똑같이 세 곡에 대한 계약이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그럼 그렇게 할게요.”
– ······ 어?
“박훈 과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나중에 이메일로 계약서만 보내주세요.”
– ······.
한동안 말이 없던 박훈 과장님은 “그래···. 고맙다. 서진아···.”라며 전화를 끊었다.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신주원이 “무슨 전화였어?”라며 내게 묻는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별것도 아닌, 당연한 일을 하나 끝내고 왔지.”
“······?”
“그보다 수행평가 팀장을 하는데, 아이스크림 하나는 부족한 것 같아. 계약 내용을 꼼꼼히 다시 따져봐야겠어.”
“그, 그런 게 어딨어!”
“세상은 원래 이런 거야. 신주원. 너는 아직 어리군.”
“······.”
곧이어 우리는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고.
나는 결국 팀원들에게 과자 한 봉지를 더 받아냈다. 다 같이 나눠 먹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작곡하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지.’
냠.
그리고 나중에 떡볶이는 내가 쐈다.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