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58
157. 차기작 계약 >
제작사에서 준비해 준 태주의 자리는 김윤선의 옆이었다. 같은 소속사이고, 평소 가깝게 지내는 두 사람을 고려해서 일부러 자리를 붙여서 배정해 준 것 같았다. 김윤선은 옆자리에 태주가 앉자 몸을 틀어 그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냐?”
“네. 괜찮아요.”
“다행이다. 몸이 재산인 건 스포츠 선수만이 아니야. 배우도 마찬가지야. 조심해.”
“네. 그럴게요.”
“그래.”
김윤선은 태주의 등을 장하다는 듯 두드려 주었다. 그는 아직 어리다고 해도 좋을 나이인 태주가 책임 있게 일하는 걸 보면 대견했다. 바로 직전에 안 좋은 일을 겪었다. 그대로 돌아갔어도 누구 하나 욕할 사람이 없었을 텐데,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돌아와 준 게 고맙기도 했다.
원로 배우의 은퇴 작품 출연이라는 취지도 좋았고 감독도 유명한 박창환이었다. 도움을 받을 젊은 배우가 없던 상황이긴 했지만, 조금 시간을 들이면 못 찾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추천한 사람이 태주였었다. 태주는 추천한 그가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제 몫을 톡톡히 해 주었다.
“영화 잘 나왔어. 잘했어. 다들 잘했지만, 특히 네가 정말 잘했어.”
“어유. 선배님. 저 민망해요.”
“하하하.”
자신은 제작사에서 내부 시사회를 할 때, 먼저 봤었다며 김윤선이 태주의 연기를 칭찬했다. 그의 말은 전부 진심이었다. 태주가 맡은 배역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표현하기 아주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다.
동사무소 직원은 친근하게 상대를 대하면서도 미묘한 거리낌을 느끼는 배역이었다. 직업에 충실하게 친절하게 웃고 말을 건네지만, 그 밑바닥에는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행동과 마음의 불협화음을 과하지 않게 잘 표현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던 만큼, 배역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도 많은 연구와 고민을 한 게 보였다. 그렇게 성실하고 진지하게 연기하는 후배가 예뻐 보이는 건 당연했다. 태주는 민망해했지만,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주가 다른 출연진과 어울려 영화를 보는 사이, 견우는 형식이 확인하러 간 곳으로 움직였다. 형식이 알려 준 곳은 스태프 전용이라는 푯말이 붙은 방이었다. 이곳은 물병을 던진 관객이 보안 요원에게 제압당해서 끌려간 장소였다.
견우가 방에 들어서자, 형식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상황을 설명했다. 물병을 던진 사람은 예상대로 태주의 팬이었다.
“이태주 배우 매니접니다.”
“진짜요? 오빠는 어딨어요?”
견우는 여성의 모습에 순간 당황했다. 여성이 태주에게 물병을 던진 일을 미안해할 거라는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견우가 태주의 매니저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기대로 눈을 빛내며 흥분해서 태주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태도에서 기묘한 광기마저 느껴져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사진 한 장 찍어도 괜찮겠습니까?”
“네. 네. 찍으세요.”
-찰칵.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연이에요.”
사진과 이름이 태주에게 전해질 거로 생각했는지, 여성은 머리도 정돈하고 예뻐 보이는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이 사진은 그녀의 바람과 다르게, 회사 그리고 팬클럽의 회장과 임원들에게 전해질 예정이었다. 기뻐하는 여성에겐 안 된 일이지만, 그녀는 앞으로 태주가 참여하는 모든 행사장에 입장이 거부될 예정이었다.
“오빠 언제 와요?”
“오실 예정은 없습니다.”
“왜! 왜! 내가 사과할 건데. 오빠한테 사과할 거란 말이야.”
“사과는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내가 오빠를 만나는 걸 막아?”
말을 마친 견우가 보안 요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과 할 얘기를 모두 마쳤다는 표시였다. 견우는 문 쪽으로 물러서며 보안 요원이 여성을 데리고 나가길 기다렸다. 영화가 끝나기 전이라, 절차대로 보안 요원이 행사장 밖으로 여성을 내보낼 때까지 지켜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태주를 만나려는 생각에 들떠있던 여성은 그대로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얌전히 굴던 태도를 돌연히 바꿔서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마치 견우가 태주를 만나지 못하게 한 원인인 것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에게 달려들기까지 했다.
“진정하십시오.”
“놔! 놔! 난 오빠 만나야 돼. 놔.”
“이대로 밖으로 내보내시는 게 낫겠습니다.”
견우는 달려든 여성을 가볍게 제압해서, 여성 보안 요원에게 넘겼다. 여성이 끊임없이 악을 지르고 몸부림을 쳤지만, 단단하게 제압당한 상태가 풀리진 않았다. 한참 난동을 부리던 여성이 힘이 빠진 게 보이자, 견우와 보안 요원들은 그녀를 건물 밖으로 데려갔다.
관계자 전용 통로를 이용해 건물 밖으로 여성을 내보낸 견우와 보안 요원들은 그녀가 쏟아 낸 욕설에 진저리를 쳤다. 그녀의 욕설에 따르면 그들은 그녀와 태주의 사이를 갈라놓은 천하에 몹쓸 사람들이었다.
“와 씨! 징그럽다, 진짜.”
“야. 조용히 해.”
“괜찮습니다. 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매니저님.”
“두 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보안 요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면서 견우는 좀 전 여성이 혹시 태주를 스토킹한 사람은 아닐까, 했던 의심을 지웠다. 좀 전의 여성은 그가 아는 전형적인 사생팬의 모습이었다. CCTV와 도청기를 설치할 정도의 능력은 없어 보였다.
-띠링!
‘사진?’
-12월 xx일 오후 2시 30분에 주차장에 CCTV와 차량용 GPS를 설치한 사람입니다.
“마스크에 모자. 키는 170 중반. 팬으로는 안 보이는데….”
견우에게 사진을 보낸 사람은 쿠첼루스였다. CCTV 영상에서 찾은 듯 남자의 사진은 아주 선명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진 속 남자의 특징을 판별해 내기는 힘들었다. 촬영 시기가 12월, 한겨울이어서 남자가 패딩에 마스크, 모자를 착용한 상태여서였다.
같이 첨부된 영상 속 남자의 행동을 유심히 본 견우는 남자가 팬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남자는 카메라나 추적 장치 설치를 여러 번 해 본 듯 익숙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흥분한 모습이 전혀 없었다. 스타를 좋아하는 팬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오전에 경찰서에 가서 스토커를 고발하긴 했지만, 견우는 그다지 경찰 수사에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 스토커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의 태도도 그렇지만, 범인을 잡아도 법 제정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처벌이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경범죄에 겨우 10만 원 미만의 벌금 처분이니….’
사실 이번 일을 보안 업체에 의뢰해 확인한 뒤 쉬쉬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경찰에 신고해서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일을 처리한 것은 모두 나중을 위해서였다.
스토커가 한 번 들켰다고 그것으로 스토킹을 포기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견우는 구설에 오를 것을 감수하고 경찰에 신고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나중에, 범인이 밝혀진 후에, 형사상 처벌을 받게 하거나 접근 금지 가처분을 받으려면, 뚜렷한 피해 사실이 있는 편이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
영화가 끝나고, 인터뷰를 준비하는 박창환 감독과 김혜숙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태주가 나타나자 다시 강렬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태주는 여상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회장을 가로질렀다.
포토월에서 내려오기 전 관객이 던진 물병에 맞은 기사는 이미 속보로 온갖 미디어에 올라간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태주가 변함없는 모습으로 일정을 소화하자, 그와 관련된 기사가 우후죽순 올라가기 시작했다.
출연진과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태주를 촬영하는 기자들의 손은 멎지 않았다. 기자들은 매의 눈을 하고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태주는, 그런 주변의 상황은 모르는 척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태주 너는 진짜,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라는 말이 딱 맞다.”
“…선배님.”
“우리 같은 사람이 백날 인터뷰하는 것 보다, 네가 물병 한 번 맞는 게 낫다.”
“윽.”
“크흐흐. 농담이고. 괜찮냐? 아까 휘청하는데, 아주 내 간이 다 떨어질 뻔했다.”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을 들었지만, 안심이 안 되는지 중년 배우는 위아래로 태주의 몸을 훑은 뒤, 표정까지 살폈다. 태주가 빙그레 마주 웃자, 그제야 안심을 한 것 같았다. 그는 웃고 있는 태주에게 요샌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이 생겼다면서,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중년 배우와는 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는데도, 그는 촬영장에서 막둥이라 부르며 챙겨 주던 것처럼 태주를 챙겨 주었다. 촬영할 당시에도 김혜숙을 돕기 위해 나선 태주를 예뻐라 했는데, 지금도 그의 태도는 여전했다.
미팅을 위해 이동할 시간이 되자 견우와 형식이 태주의 곁으로 다가왔다. 둘이 다가온 걸 보고 시간이 됐다는 걸 알아차린 태주가 사람들과의 인사를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직후 그는 일행과 예정대로 인터뷰 장소를 빠져나갔다.
“어휴.”
“태주야 물 마실래?”
“네. 주세요. 누나 기사 많이 올라왔어요?”
“자, 받아. 어. 엄청 올라왔어.”
“홍보 한번 제대로 하네요.”
그 말에 생수를 건네주던 미나가 눈을 흘겼다. 그녀는 노 개런티로 출연한 영화에, 굳이 달갑지 않은 방법의 홍보까지 해 준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눈앞의 배우님은 상관 않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태주가 제 잇속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불만이었다.
“큼. 왜 그렇게 보세요?”
“뭐가?”
“그, 딱 한 대만 때렸으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표정인데요.”
“잘 아네. 내 심정이 딱 그래.”
죄지은 것도 없는데, 어쩐지 뜨끔한 느낌에 그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옆얼굴에 따가운 시선이 꽂히는 것 같았지만, 모르는 척 물만 마셨다. 미나가 화를 내는 이유를 그도 짐작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태주가 손해를 보는 게 속상해서 화를 내는 게 분명했다.
“영화 수익이요. 전액 영화 발전 기금으로 기부될 예정이에요.”
“뭐? 진짜?”
“네. 사실 감독님도 다른 배우들도 노 개런티예요. 그리고 제작사도 제작비만 빼고 전부 기부할 거고요.”
“얘, 그런 건 좀 빨리 말해. 괜히 고생만 했다고 내가 속으로….”
“하하하. 미안해요. 그때 분위기가 좀 그랬잖아요.”
외화 중에선 여자 주인공 원톱의 영화가 박스 오피스 1위를 하기도 했지만, 국내 영화는 여전했다. 여주 원톱의 영화들이 손익 분기점도 못 넘기고 줄줄이 스크린에서 내려왔었다. 그 때문에 감독, 대본, 출연진 모두 괜찮았는데도 영화 성적을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건 그렇고. 지금 tvM 들어가는 거지?”
“네.”
“괜찮겠어? 아직 박수 계약 안 했잖아.”
“괜찮아요. 이거랑 그거랑은 다르니까요.”
“어쩐지 박수 작가님이 찾아오실 것 같아서 그래.”
예능국에서 진행하는 미팅이라서 상관없을 것 같았지만, 미나의 얘기를 듣자 어쩐지 진짜로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태주 일행이 예능국 미팅에 들어가기 위해서 방송국에 내방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드라마국으로 전해졌다.
강은진 PD는 트리즈에서 우 팀장과 면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도중에 들은 어린 연인 소식 때문에 속을 태우는 중이었다. 그런 때에 예능국이지만, 태주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 PD.”
“네, CP님.”
“예능국에 이태주 왔다고 하더라. 들었어?”
“네. 지금 그쪽으로 가 보려고요.”
“쯧. MBS 드라마에 이태주가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아주 난리야.”
이태주의 첫 주연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가져올 생각이었던 CP의 생각은, MBS의 어린 연인 때문에 어렵게 되었다. 그쪽에서도 이태주 이상의 패가 없다는 걸 잘 아는지, 대부분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려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태주를 그쪽에 순순히 내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강 PD, 편성 일주일 당긴다.”
“헉!”
“어차피 그 전 주는 특별편 편성될 걸 예상하고 빼놓은 시간이야. 그 시간에 첫 방 넣자고 국장님하고 얘기 끝냈어. 알았지?”
“네.”
“확실하게 계약서 쓰고 와.”
알겠다고 단호하게 대답한 강은진 PD에게 이태주 측 조건은 전부 받아 주라는 말을 하고 CP가 돌아갔다.
강은진 PD는 속으로 빠르게 일정을 계산해 봤다. 프리 프로덕션에 쓸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남짓밖에 없었다. 늦어도 6월 초에는 촬영을 시작해야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손발이 맞았던 스태프들의 얼굴이 빠르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니야. 연출진도 중요하지만, 박수의 조수 역할을 할 배우 먼저 찾아야 해.’
단막극에서 같이 연기했던 배우를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단막극 제작 당시엔 제작비도 적고 시간상의 여유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캐스팅이었다.
이태주가 꽤 배려를 해 줬지만, 촬영하는 내내 기세에 눌려 있었다. 단막극 방영까지 시간이 꽤 있어서, 편집에 공을 들인 덕분에 어색하지 않게 나왔을 뿐이었다. 다시 그 배우를 섭외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잠시 멈춰, 조연출로 일하면서 겪었던 배우들의 면면을 떠올려 봤다. 태주의 기에 눌리지 않고 제 연기를 해낼 만한 배우가 많지 않았다.
“역시 이십 대에서 찾는 건 무리인가. 삼십 대 초반이라면 괜찮은 배우가 좀 있긴 한데….”
삼십 대 배우 중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는 제법 있었다. 강은진 PD는 그 자리에서 떠올린 배우들이 태주 옆에 서는 장면을 그려 봤다. 괜찮은 그림이 나오는 배우가 몇 명 있었다.
“이 사람도 괜찮긴 한데…. 이 배우도 괜찮을지 모르겠네.”
그녀가 떠올린 것은 적당한 키, 곱상한 외모를 가진 30대 초반의 배우였다. 소속사 운이 없어서 제대로 크지 못했지만, 연기력도 괜찮고 성격도 모난 곳이 없는 배우였다. 아니, 오히려 주변을 너무 잘 챙기는 배우였다.
강은진 PD는 몇 번이나 보고, 여랑 작가에게 세뇌당하듯이 들었던 이태주의 프로필을 떠올려 봤다. 안타깝게도 그의 프로필 어디에도 건강식품을 좋아한다는 얘기가 없었다. 그녀는 그녀가 최선으로 꼽은 배우의 악명 아닌 악명을 태주가 부디 모르고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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