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77
211. 확장 >
당장에라도 모린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혼을 낼 것처럼 사나운 기세로 찾아갔던 아칸서스였지만, 아이를 앞에 둔 그는 태주의 예상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눈이 감길락말락 하는 모린을 보더니, 바로 품에 안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아이를 품에 안고 있다가 안심한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하암.”
“이 말썽쟁이. 아빠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아빠. 모린이 너무 졸려.”
“으이구. 알았어. 아빠한테 코어만 주고 자.”
“히잉. 모린이 건데.”
“모린이 거는 무슨. 얼른 아빠 주고 자.”
태주는 평화로운 코어 회수 장면에 꽤 놀랐다. 아칸서스가 모린을 아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워낙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 버럭 화를 낼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졸린 아이를 다독여 물건을 찾고는 그대로 재웠다. 예상에서 벗어났지만,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
“아이고, 피곤하다. 아직 점심도 안 먹었는데….”
태주는 하루가 정말 길다고 느끼고 있었다. 현실에서 일할 때는 정신을 차려 보면 계절이 바뀌어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오늘, 아칸서스와 모린을 중재한 오늘은 정말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지난밤의 평화로웠던 회수 장면은 아이가 잘 시간이어서 봐줬던 것뿐이었다. 아침이 되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한순간도, 정말로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똑똑똑!
“정원사 씨 점심 다 됐어. 나와서 식사해.”
“네. 나갈게요.”
금방 침대에 누운 것 같은데, 벌써 삼십 분이 지났나 보다. 둘한테 치일 때는 시간이 안 가더니, 쉬러 들어오니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태주는 그대로 침대에서 뭉개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켰다. 그가 없으면 아칸서스와 모린이 또다시 투덕거릴 게 분명했다.
태주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그가 있을 때는 얌전한 척하던 모린도 해나의 눈치를 보는 아칸서스도 맛있는 음식 앞에선 참지 않았다.
“홀드! 크하하하. 아직 멀었다.”
“아빠 치사해! 풀어 줘!”
“네가 풀어. 아빠가 네 나이 때는 말이야. 그 정도는 눈 감고도 했어.”
“이익!”
“어이쿠. 이거 참 맛나네. 내가 다 먹어야지. 플로트!”
홀드 마법을 풀어낸 모린이 접시에 달려들려고 하자, 아칸서스가 바로 부유 마법을 사용해서 공중에 띄워 버렸다. 그 모습에 태주는 깜짝 놀랐지만, 둥둥 뜬 모린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편한 자세를 잡고 그대로 다시 마법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휴. 모린 이리 와. 이거 줄게.”
“태주우. 아빠가….”
“이거 먹어. 이거랑 같은 거야. 아, 해!”
“응. 아.”
모린의 음식을 뺏어 간 누군가를 대신해서 태주가 제 몫으로 나온 소고기 야채 말이를 양보하고 있었지만, 그 누군가 씨는 음식을 입안으로 욱여넣기 바빴다.
해나는 아이와 먹을 걸 두고 싸우는 철없는 모습에 아칸서스에게 뭐라 하려다 말았다. 며칠 동안 공방에서 작업만 했다는 말이 맞는 둣, 지난번 봤을 때보다 확연하게 수척해져서였다.
“모린이 요새는 안 날아다니네?”
“응. 모린 변신 잘해.”
“그렇구나.”
계속 날개를 꺼내지 않고 있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건가 의문이었지만, 아칸서스도 해나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런 둘의 태도로 괜찮으리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그의 본성이었다. 그런 마음에 모린을 살펴보다 태주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모린이 키가 그대로네. 전에는 태산이랑 머리 하나 차이였는데, 이제는 한 뼘도 안 되잖아.’
모린의 성장이 멈춘 듯 보였다. 태주는 이와 비슷한 일을 예전에 겪었었다.
1차 성장.
몇 년 전의 태산이도 한동안 빠르게 크다가 성장이 멎은 채로 1차 성장의 조건을 채울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했었다. 모린도 1차 성장 조건을 채울 때까지 현재의 모습으로 지내게 될 것 같았다. 갓난아이였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서 1차 성장을 앞두고 있었다.
천천히 자라는 태산이를 조그맣다고 놀리더니, 곧 그것도 못 하게 될 것 같았다. 1차 성장을 마칠 때까지 성장이 멈출 테니, 어쩌면 태산이가 더 커질지도 몰랐다.
-톡톡!
“태쭈.”
“응? 왜, 산아?”
“이꺼 머거.”
“…고마워.”
“머얼.”
태주가 모린에게 양보한 것과 같은 소고기 야채 말이를 이번에는 태산이가 그에게 양보해 줬다. 기특한 행동이었지만, 태주의 감사 말에는 미처 감추지 못한 떨떠름함이 묻어 있었다. 표정 역시 좀 전의 해나와 비슷했다. 뭐라 하고 싶지만 참던 표정과.
‘포크질이 많이 늘었구나, 산아. 그런데 소고기는 어디 갔니?’
태산이가 크면서 많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포크 사용도 그런 일 중 한 가지였다.
예전 태산이는 포크도 잘 못 썼는데, 지금은 아주 능숙하게 사용했다. 소고기 야채 말이의 소고기를 내용물인 아스파라거스와 버섯을 망가뜨리지 않고도 벗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태쭈 마시떠?”
“…맛있어.”
“마니 머거.”
“….”
어서 먹으라며 눈을 빛내는 태산이의 태도에 태주는 접시에 놓인 소고기가 없는 소고기 야채 말이를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잠시의 실랑이가 지난 후의 식사는, 역시나 평화롭게 이어지진 않았다. 철없는 아빠, 말썽쟁이 아이와 같이하는 식사는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아칸서스의 장난이 멎지 않는 한 똑같을 것이다.
“홀드! 에잇! 버섯이나 먹어라.”
“버섯 싫어.”
“에어 월! 어딜 도망가. 갈 거면 두 개 먹고 가라.”
“으앙! 아빠 나빠.”
“낄낄낄.”
편식하는 음식을 먹이려는 것은 알겠는데, 굳이 그걸 마법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먹일 필요가 있을까? 아니, 저게 장난이 아니고 음식을 골고루 먹이려고 하는 게 맞기는 맞나? 아칸서스의 장난스러운 태도 때문에 다시 봐도 좋은 의도인지 확신하기 힘들었다.
태주는 질 나쁜 양아치처럼 낄낄대면서 아이랑 투덕거리는 아칸서스의 행태에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어쩌면 모린의 마법 해제 실력이 나날이 느는 이유는 아칸서스의 끈질긴 장난 때문일지도 몰랐다. 쉴새 없이 장난치는 아빠를 상대하느라 실력을 키운 게 아닌가 싶었다.
*
예전에 태주는 아칸서스의 회복력이 꽤 좋다고 생각했었다. 해나나 다나에게 타박을 들어도 금세 회복하고 본인의 성격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같은 감상을 모린을 보면서 하고 있었다. 모린은 아칸서스가 정원을 떠나기 직전 ‘엄마한테 다 이를 거다.’라고 한 경고에 겁을 먹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언제 겁먹었냐는 듯이 웃고 있었다. 희, 제피르와 기운차게 장난치면서 정원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태주!”
“응.”
“모린이 집 지어도 돼?”
“집?”
“응. 주문서도 가져왔어.”
집을 짓고 싶다는 얘기를 태주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허락했다. 아칸서스가 챙겨가지 않은 걸 보면 아이가 써도 괜찮은 주문서 인듯해서였다.
그는 아칸서스가 난장판이 된 복도와 보물 창고를 치우느라 주문서를 따로 보관해 뒀던 깨끗한 서재에는 신경이 미치지 못했으리라고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래. 지어. 모린아 집 언제 지을래? 모레 지을래? 내일은 내가 정원에 없거든.”
“지금 지어도 돼?”
“집 지을 곳 벌써 정했어?”
“응. 희랑 제피르랑 같이 정했어.”
“그럼 그렇게 해. 어디인지 알려 줄래? 아니다. 같이 가 보자.”
“응.”
모린이 그의 손을 잡자 태산이는 다리를 타고 올랐다. 아까부터 모린이를 경계하더니 지기 싫은 모양이었다. 태주는 질투쟁이가 모린의 손을 할퀴지 못하게 다른 손으로 하얀 몸을 꾹 눌렀다.
아이가 그를 이끈 곳은 화단이나 건물 같은 시설이 전혀 없는 구석진 곳이었다. 꽤 넓은 자리로 아직 개간할 계획을 세우지 않은 장소였다. 집 지을 곳을 희랑 정했다더니, 그런 사정까지 고려해서 여기로 알려 준 것 같았다.
“여기가 마음에 들어? 오두막하고 너무 많이 떨어진 곳인데, 정말 괜찮아?”
“모린이 여기 좋아. 모린이 집 크다고 했어.”
“오두막 뒤편 공터도 넓은데….”
“거기는 도도 집 지어야 해.”
“아!”
오두막과 가까운 다니기 편한 가장 좋은 자리는 도도에게 양보하겠다는 모린이었다. 태주는 솜사탕처럼 부푼 아이의 하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장난꾸러기 녀석이 보이는 배려가 의외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는 기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아이를 칭찬했다.
“도도도 배려해 주고. 너무 착하다, 우리 모린이.”
“히히.”
“모린아 건설 주문서는 어디 있어?”
“여기!”
“이거야? 멋, 멋지네.”
모린이 아공간에서 꺼낸 주문서를 본 후 태주는 말을 더듬고 말았다. 아칸서스가 되찾아가지 않아서 괜찮을 거라고 여겨서 허락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빨리 허락해 준 모양이었다.
주문서는 태주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것이었다. 재질도 그렇고 봉인하고 있는 붉은 인장도 그렇고 중세 시대의 양피지 계약서처럼 보였다. 정말로 써도 괜찮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묵직했다.
“모린아, 잠….”
-찌이익!
“헉! 모린아.”
말릴 새도 없이 사용한 주문서에 깜짝 놀란 태주가 건설을 취소하게 하려 할 때였다. 모린이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허공에 손을 놀렸다. 그에게도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의 확인 버튼을 누르는 동작이었다. 모린이 그렇게 몇 번 손을 움직인 뒤였다. 그의 눈 앞에도 시스템 메시지가 여러 개 출력되었다.
[드래곤 레어의 건설이 승인되었습니다. 정원에 건축물이 추가됩니다.] [경고: 정원의 공간이 부족합니다.] [건설에 필요한 공간 확보를 위해 정원의 확장을 권고합니다.] [정원의 확장에 필요한 재원을 탐색합니다. 확장에 필요한 재원이 충분합니다.] [정원 확장 수수료를 정산 중입니다. 보유 DP를 확인합니다. 확장에 필요한 DP가 충분합니다. 수수료를 차감합니다.] [정원의 확장을 시작합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3, 2, 1.]“이게 다 무슨 소리야? 확장에 필요한 재원이 뭔데?”
놀란 태주의 목소리가 정원에 울렸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못했다. 답을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대답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정원 전체가 바다 위에서 거친 풍랑을 맞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쩌저저적!
-콰콰콰쾅!
“희, 모린 이리 와. 제피르! 단단에게 가 줘. 부탁해.”
“히이이힝!”
“태산아, 꽉 잡아!”
“냐앙!”
태주는 어깨에 매달린 태산이의 몸을 꽉 잡았다. 평소라면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정원을 돌아보는 태산이었지만, 오늘은 그와 모린이 하는 일이 궁금했는지, 계속 같이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바닥도 담장도 쩍쩍 갈라지는데, 같이 있어서.
품에 안은 모린의 팔이 그의 몸을 조이는 게 느껴졌다. 어깨에 매달린 태산이도 발톱을 세우고 있었고, 희 역시 겁이 나는지 그의 옷깃을 쥐고 있었다.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히잉. 무서워, 태주.”
“정원이 확장 중이라 그래.”
“흐앵. 미안해 태주.”
“쉬이. 괜찮아. 괜찮아, 모린아.”
태주는 모린이 머리를 묻고 있는 배 부분이 조금씩 젖어 드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이가 훌쩍이는 소리도 들려 왔다. 어제와 비슷한 울음소리였지만, 어리광부리느라 꾸며 내는 게 아닌, 실제로 우는 소리였다. 그는 모린이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어 좀 더 꽉 끌어안았다.
그렇게 침착한 태도로 아이들을 챙기고 있었지만, 그의 내심은 아이들과 비슷했다. 그 역시 걱정으로 입안이 마르는 중이었다. 정원이 부서지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그가 두려운 것은 제피르가 찾아내는 게 늦어서 단단이 다치는 일이었다.
“정원사 씨!”
“여기예요, 해나!”
“괜찮아?”
“네. 세상에. 단단!”
“오두막 근처에 있어서 데려왔어. 모여 있는 게 안전할 것 같아서.”
“고마워요, 해나.”
해나를 본 태주의 표정이 편해졌다. 그의 걱정의 원인이었던 단단을 그녀가 안고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원사, 펫, 일꾼, 관리자, 손님까지. 사방에서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계속 나고 있었지만, 정원 식구가 모두 모여 있어서인지 좀 전처럼 불안하게 들리지 않았다.
“정원사 씨, 이게 무슨 일이야?”
“아! 정원이 확장되는 중이에요.”
“갑자기? 아니, 정원이 확장될 수도 있었어? 그런 건 처음 듣는데.”
“…확장에 필요한 재원이 갖춰졌다는 메시지를 봤어요.”
“그게 뭔데?”
그건 그도 잘 몰랐다. 모린이 가져온 주문서에 사태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었다. 겉보기에 심상치 않았던 그 주문서가 어떤 물건인지는, 모린의 보호자인 아칸서스나 다나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탁! 탁!
“히이잉!”
“킥. 수고했어, 제피르.”
태주는 제 머리에 올라와 발을 구르는 제피르의 수고를 치하했다. 단단을 찾기 위해 노력한 건 마찬가지였는데, 해나에게만 감사 인사를 한 게 불만스러웠나 보다. 그는 굉음이 나거나 말거나 투정을 부리는, 대범한 건지 솔직한 건지 모를 제피르 덕분에 웃음이 났다.
태주의 분위기가 편해지자, 그때까지 얼굴을 파묻고 있던 모린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말썽쟁이 녀석은 많이 놀랐는지, 눈물범벅에 빨간 코를 하고 있었다.
-사락사락!
태주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머리에 손을 얹고 가볍게 어루만졌다. 꼬맹이 녀석이 너무 겁먹은 모습이라 당장은 뭐라 하기 힘들었다. 또 잘 확인하지도 않고 경솔하게 허락한 자신의 실수도 있었다. 그는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다시 얘기하자고 다짐했다.
[정원이 확장되었습니다.]“아! 끝났다.”
“끝난 거야?”
“네. 시스템 메시지도 나왔어요.”
“휴우. 확장이라니….”
정원의 확장은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 오래 살아서 충분히 많은 일을 보고 겪은 해나에게도 이번 일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눈이 태주의 뒤에 숨어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모린에게로 향했다. 보아하니 이번 일의 원흉은 저 말썽쟁이인 것 같았다.
“헉! 산?”
“산?”
“저기. 산이 생겼어요.”
“진짜네. 산이야. 이게 정말 무슨 일이람.”
태주는 확장이 끝난 정원에 건물이 생겨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겨난 것은 건물이 아니었다. 나무와 바위가 적절하게 자리 잡은 커다란 산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