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4
83. 쿠첼루스의 촬영장 방문 >
새벽 6시.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난 태주의 얼굴은 막 잠에서 깬 사람 같지 않게 피곤해 보였다. 그는 품에 안겨서 쌕쌕거리는 태산이를 잠시 째려봤다. 그가 피곤한 것은 모두 품 안의 녀석 때문이었다.
태산이 기술석으로 익힌 분신 기술은 12시간에 한 번, 30분 동안 분신 두 개체를 불러내는 것이었다. 이 기술로 소환한 분신은 자유롭게 둘 수도 있고, 명령을 수행하게 할 수도 있었다.
첫날의 혼란한 상황이 지나고, 다음 날 귀여운 백호 세 마리가 잔디밭에서 노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던 그는 곧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백호 세 마리가 합심해서 그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태산이는 평소처럼 그에게 레슬링을 시도한 것이었지만, 그는 세 마리를 감당하지 못했다.
세 마리 장난꾸러기의 공격을 받은 그는 수없이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장난에 정신이 팔린 녀석들은 태주가 바닥을 뒹구는 걸 놀이로 받아들였다. 30분 후 소환 시간이 끝난 뒤에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분신 기술을 익힌 귀여움도 세배, 장난기도 세배 된 녀석을 당해내기엔 그의 힘과 체력이 많이 부족했다.
태주는 현실로 돌아오기 전에 태산이 분신 기술 사용을 제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태산이를 붙들고 현실에선 분신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려 했다. 하지만 태산이는 요리조리 그를 피해 도망만 다닐 뿐 약속을 해주지 않았다.
그를 피해 정원에 숨은 태산이를 찾지 못해 희와 제피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겨우겨우 붙잡은 태산이에게 그는 만약 현실에서 분신 기술을 쓰면 정원에만 두겠다는 엄포를 놨다. 결국, 태산이에게서 현실에선 분신 기술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얼마나 지킬지 알 수 없단 말이지. 아직 어려서 그런가. 전에도 흥분하면 애교 기술이 나오던데. 분신도 그럴 것 같아서 걱정이네.’
머릿속이 복잡한 그와 달리, 지치도록 뛰어논 녀석은 아침 해가 밝았는데도 깰 기미가 안 보였다. 침대에서 일어나며 태산이 몸을 들어 올렸는데도 그대로 자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깰 줄 모르는 태산이를 침대 위에 살며시 내려놨다. 그리고 머리맡에 두었던 빗으로 살살 태산이 등을 빗겨주었다. 목줄도 풀어서 눌린 털도 빗질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대체 목줄에 뭘 그리 넣어온 거야? 갑자기 DP가 훅 빠져나가던데.’
정원 입구를 통과할 때, 쿠첼루스에게 줄 보석의 수수료 외에도 많은 DP가 빠져나갔다. 그가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DP를 내야 했다. 그는 그 원인이 태산이 목줄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가 모르는 무언가가 목줄 안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이게 부모 마음인가? 아이의 가방을 열어 보고 싶지만, 보면 싫어할까 봐 열지 못하는.’
그는 태산이 목줄을 쥐고 고민에 빠졌다. 정원에서 현실로 가져오는 것은 수수료를 내면 가능하다. 정원 전용의 뿅 망치 같은 아이템이 아니면 대부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정원에서 지구로 가져온 것은 정원으로 다시 가져갈 수 없다. 양쪽에서 쓸 수 있는 기타나 금 숟가락 같은 게 아니면 현실에 두고 가야 했다. 만약 태산이가 정원에서 잘 쓰는 물건이라면 다시 구해줘야 했다.
“냐앙.”
“깼어?”
“냐아앙!”
태산이 태주의 손에 들린 목줄을 발견하고 날카롭게 울었다. 짜증 내는 듯한 울음소리에 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안봤어. 채워준다, 채워줘. 치사한 녀석.”
눈 뜨자마자 빗질도 해줬건만, 목줄 좀 건드렸다고 성질을 내다니. 그는 못된 녀석이라고 속으로 욕하면서도 얌전히 태산이에게 목줄을 채워주었다.
태주가 씻으러 간 사이에 태산이는 목줄 안의 막대가 잘 있는지 꺼내서 확인했다. 다행히 안에 잘 들어있었다.
이것은 새로 생긴 부하에게 줄 물건이었다. 부하는 태주보다도 힘이 약해서 이런 막대가 꼭 필요했다. 막대는 아주 단단하고 가벼워서 힘이 약한 부하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막대를 얻기 위해 골치 아픈 뼈다귀와 싸워야 했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
태산이 반짝거리는 자신의 전리품을 보고 길게 뿌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냐아아앙.”
*
쿠첼루스는 얼굴 가득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주가 그가 부탁했던 보석을 구해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바란 것은 완드를 만들 보석과 기본 속성 보석 몇 가지였는데, 주인이 그의 바람보다 더 양질의 보석을 골고루 구해주었다. 특히 보석 중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와 루비는 왕실 마법사 시절에도 보지 못한 훌륭한 보석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보석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걸로 괜찮아요? 부족하진 않아요?”
“네, 충분합니다.”
쿠첼루스에게 보석을 구해주려는 사실을 알자, 희가 요정의 집에 두었던 루비를 가져다주었다. 희가 그 루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던 태주가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쿠첼루스였지만 그래도 희는 그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태주는 다이아몬드와 루비 외에 상점에서 산 갖가지 종류의 보석을 그에게 건넸다. 보석들이 세공되지 않은 원석 그대로라 걱정했는데, 그는 오히려 원석을 더 반겼다. 완드를 만들거나,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원석이 더 쓰기 좋다며 계속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카메라 투명 모드 해제.”
“헛.”
“그 루비는 희, 그러니까 정원의 관리자가 선물한 거예요. 희에게 인사를 부탁해도 될까요?”
“아! 물론입니다. 여기에 대고 얘기를 하면 됩니까?”
“네.”
쿠첼루스는 카메라가 낯선지 더듬거리긴 했지만, 희에게 길게 감사인사를 했다. 그 옆에서 태주가 정원의 다른 식구들 이름과 특징을 알려주었다. 다른 이들도 쿠첼루스를 궁금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도 인사를 전할 수 있게, 태주가 카메라를 계속 작동시켰다.
“부,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다들 반겨주시는 것 같아 기쁩니다.”
“정원에 가지 못하시지만, 정원 식구니까요.”
희도 제피르도 쿠첼루스를 궁금해하는 건 사실이었다. 정원의 다른 식구들과 달리 쿠첼루스를 촬영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희나 해나, 회오리 동굴의 정령은 영상 촬영이 불가능했다. 만약 촬영할 수 있었다면 영상으로나마 인사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은 아쉬웠다.
‘아! 태블릿으로 채팅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상점에서 태블릿을 하나 더 사와야겠다.’
태주는 쿠첼루스에게 태블릿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쿠첼루스는 보석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쿠첼루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는지, 연신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는 쿠첼루스를 두고 외출준비를 하러 갔다.
태주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태산이 문을 밀고 쿠첼루스의 방으로 들어왔다. 마치 태주가 방에서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안으로 들어온 태산이 가벼운 동작으로 쿠첼루스의 침대로 뛰어올랐다.
“태산, 잘 잤습니까?”
“냐앙.”
‘툭.’
침대 위로 올라온 태산이 막대를 그에게 주었다. 피라미드에서 구해온 것이었다.
“이게 뭡니까? 혹시 저한테 주는 겁니까?”
“냐아앙.”
“감사합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쿠첼루스는 태산이 목줄에서 막대를 꺼내는 것을 보고 역시 태산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마법 아이템을 목줄로 차고 다니는 호랑이는 태산이 뿐일 거라며 속으로 뿌듯하게 여겼다.
부하에게 막대를 건넨 태산은 쿨하게 돌아서 방을 나섰다. 그래서 막대를 건네받은 쿠첼루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마법금속?”
태산이 준 것은 그저 단단하기만 한 막대가 아니라, 마법금속을 섞어서 만든 봉이었다.
“맙소사. 이건 혹시 완드를 완성하라는 신의 계시입니까?”
*
웃음이 끊기지 않는 쿠첼루스를 미나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태주는 그 시선을 알아차렸지만, 그냥 두었다. 차를 타기 전에 태산이 그에게 봉을 선물했다는 얘기와 덕분에 완드를 생각보다 빨리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을 그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쿠첼 씨, 쿠첼 씨라고 불러도 괜찮죠?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쿠, 쿠첼? 네, 괜찮습니다.”
“미안해요. 이름이 너무 길어서 그랬어요. 그런데 뭐가 그렇게 즐거우세요?”
“그냥 전부 다 좋습니다. 하하하.”
실없는 대답을 내놓고 웃어버리는 쿠첼루스 때문에 미나 역시 웃고 말았다. 이유는 몰랐지만, 동승자가 행복한 기운을 풍기니 덩달아 차 안의 분위기도 좋아졌다. 얼마 걸리지 않는 짧은 이동 거리였지만, 촬영장으로 가는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렀다.
*
촬영장에 도착한 후 태주는 쿠첼루스를 붙잡고 여러 가지를 당부했다. 태산이를 품에 안고 있는 쿠첼루스였다. 촬영장 안에 태산이를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스태프용 출입증도 목에 잘 걸고 있고, 스마트폰도 가지고 있었다. 견우도 곁에 있을 테니, 쿠첼루스가 어디서 쓰러져도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매니저님과 꼭 같이 다니라는 당부를 하고 분장실로 갔다.
“쿠첼루스 씨, 매니저님하고 꼭 같이 다니세요. 혹시라도 길을 잃으면 사람들한테 제 분장실 물어서 찾아오세요. 아셨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얘는, 쿠첼 씨가 애도 아니고, 그만하고 가자.”
‘애는 아니지만, 저질 체력이에요.’
겨우 주차장에서 분장실 앞까지 왔을 뿐인데, 벌써 지쳐 보이는 것이 그의 착각일까? 이마에 땀이 조금 맺힐 걸 보면 아마 그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태주는 미나에게 끌려서 분장실로 가면서도 쿠첼루스를 걱정했다. 저질 체력을 진작 어떻게 해줬어야 했는데, 바빠서 그냥 둔 것이 후회되었다.
오늘 쿠첼루스는 견우를 따라서 움직일 예정이었다. 그런 쿠첼루스에게 견우가 촬영장에서 주의할 점을 알려줬다. 주의사항 중 촬영중 소음을 내지 않게 조심하라는 얘기는 특히 여러 번 반복했다. 또 몸이 안 좋으면 참지 말고 바로 말하라는 얘기 역시 잊지 않도록 여러 번 했다.
“체력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태주 씨한테 이미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무리다 싶으면 바로 얘기하십시오.”
“크흠. 네, 알겠습니다.”
쿠첼루스가 생각하기엔 주인의 걱정이 과한 것 같았지만, 그가 보인 모습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은 처음부터 주인의 쿨링밴드를 차고 외출했다. 지난 갈대숲 같은 추태를 다시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견우는 쿠첼루스와 여러 스태프를 만나고 다녔다. 촬영 일정 담당 스태프에게 태주의 일정을 다시 확인했다. 일정이 그대로인 걸 확인한 후엔, 촬영을 기다리는 동안 태주가 쉴 곳, 점심 메뉴 등을 확인했다. 메뉴가 만약 태주가 못 먹는 것이라면, 식사를 따로 준비해야 했다. 다행히 오늘 메뉴는 괜찮았다.
쿠첼루스는 본인 생각과 다르게 견우를 따라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헉헉대기 시작했다. 견우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촬영장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쿠첼루스는 그런 견우의 뒤를 겨우겨우 따라갔다. 도중 태산이를 안은 손에 힘이 풀려 떨어뜨릴 뻔해서, 중간부턴 견우가 태산이를 대신 안고 다녔다.
“헉헉.”
“이쪽으로 오시지요.”
견우가 다리를 질질 끌며 쫓아오는 쿠첼루스를 그늘진 곳으로 안내했다. 촬영장을 다니며 확인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쿠첼루스는 이미 땀 범벅이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겠습니까? 마실 걸 좀 사 오겠습니다.”
“헉헉. 감, 감사합니다.”
“태산인 제가 데리고 있을 테니, 좀 쉬십시오.”
그가 쿠첼루스를 안내한 곳은 주차장 뒤쪽이라 사람의 발걸음이 뜸한 곳이었다. 누군가 벤치에 누워 쉬어도 흉볼 사람이 없었다. 쿠첼루스의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쿠첼루스가 벤치 위로 길게 눕는 걸 확인한 견우가 자판기를 봤던 장소를 향해 태산이를 앞세웠다. 그는 태산이 산책도 시킬 겸 천천히 음료수를 사서 돌아오기로 했다.
견우가 자리를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차장 안쪽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듯,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렸지만, 내용을 유추하긴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기사 먼저 내보내라고.”
‘….’
“아니, 사실로 만들면 된다니까.”
‘…….’
“누굴 초짜로 알아. 비타민이라고 하고 먹일 거라니까. 기사나 준비해둬.”
‘….’
“킥킥. 신세는 네가 나한테 지는 거지. 특종이잖아. 네가 어디서 이런 특종을 얻어? 지금처럼 다 내가 알려준 거지.”
체력이 다해 쉬고 있던 쿠첼루스는 귓가를 더럽히는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일어나 앉았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욕지기가 날 정도로 더러운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대체 어떤 자가 이렇게 음습하고 비틀린 감정이 섞인 말들을 쏟아내는지, 마치 말 자체에서 더러운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쿠첼루스가 상대를 확인하려 할 때였다. 말소리가 멎고 자갈 밟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힘겹게 일어난 그가 소리가 멀어지고 있는 곳을 살폈지만, 큰 차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저런 남자는 주인의 곁에 얼씬도 못 하게 해야 하는데, 그래도 목소리는 확실히 기억해 두었다.
‘주인님이 일하는 곳에 저런 남자가 돌아다니다니. 생각보다 더 위험한 곳이군.’
이런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주인님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이 비루먹은 듯한 체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완드를 완성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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