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마누스 왕성의 어딘가.
그곳에서 모종의 의식을 준비하던 데일라흐가 움직임을 멈췄다.
“무슨······.”
그녀는 주인에게 특별한 실험을 받았다.
몽마의 심장을 이식하여 인간의 생기를 뽑아내고, 그곳에 마기를 섞어서 조형할 수 있었다.
조형한 마기를 물처럼 흐르게 할 수도 있었고, 옷이나 가구의 형상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마기 조형물은 데일라흐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주변을 감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녀의 주인인 마이어스 공작이 그녀를 심복으로 부리는 이유 중 하나였다.
가장 효과적인 눈과 귀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
그런 데일라흐가 깜짝 놀라는 이유는 하나였다.
‘신호가······ 끊겼어?’
이센디오.
그 오만한 기사에게 붙여두었던 마기의 신호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은 명확했다.
방금. 녀석이 죽었다.
‘하, 언젠가 내가 죽이고 싶긴 했지만······. 지금 이 중요한 때에 죽다니. 제정신이야?’
데일라흐가 당황스러워하는 그때 그녀 앞의 존재가 웃음을 흘렸다.
– 크흐흐. 이센디오. 놈이 죽었나?
흘러내리는 살점의 거구와 돼지머리를 한 악마.
탐식의 악마 셀레가르데였다.
“알고 계셨습니까?”
– 나와 아마흐 딜라운의 피를 먹었던 녀석이다. 권속의 죽음을 내가 모를 리 없지 않나?
“그렇다면 지금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계시겠군요. 서둘러야 합니다.”
웃음을 흘리는 셀레가르데를 향해 데일라흐가 재촉했다.
그녀와 셀레가르데의 앞에 놓인 커다랗고도 커다란 심장.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공허의 고래, 폴라우 벨 리가의 심장으로 그 거대한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준비였다.
악마라고 해도 모두 같은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천차만별.
폴라우 벨 리가는 지능은 없으나, 가장 포악하고 강력한 악마였다.
– 아아, 걱정하지 마라. 잘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셀레가르데는 혀를 흔들며 심장에 재료를 채워 넣었다.
하지만 의식의 준비 속도는 데일라흐가 보기엔 느렸고, 조바심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이렇게 해서는 늦습니다. 저희의 계획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제이드, 그자부터 교단의 사냥개까지······ 놈들이 이곳에 오는 순간, 계획만 복잡해질 겁니다.”
– 조바심을 내는 것이냐? 유약한 게 인간답구나.
이에 데일라흐는 제이드라는 인간에 대해 강조했다.
마수와 악마를 퇴치한 사내였고, 번번이 자신들과 마찰을 빚은 그 사내에 대해서.
그런데 셀레가르데의 오히려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더 와줬으면 좋겠군. 그런 녀석들일수록 영혼의 크기가 크거든. 크흐흐. 분명 맛있어 보이는 양질의 영혼들만 4개였지.
심장에 재료를 채워 넣던 셀레가르데의 혀가 뱀 꼬리처럼 파르르 떨었다.
끝에 고인 누런 침들이 흘러내리며 바닥을 녹였다.
탐식의 악마다운 과욕이었으나, 셀레가르데의 자신감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아마흐 딜라운. 함께 봉인되어 있던 교만의 악마였고, 셀레가르데는 그에 대해 잘 알았다.
– 그리고 놈들은 교만을, 아마흐 딜라운을 만날 것이다. 그는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는데 뛰어난 녀석이지. 어떤 인간이든 그의 사냥감일 뿐이다. 반드시 놈들을 영혼들을 가져올 것이다.
“······.”
– 너희에게도 나쁘지 않을 거다. 저 강한 영혼들을 섭취한다면 이 도시를 완벽한 마경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
“······제 주인께서는 이딴 작은 도시를 원하는 게 아닌 걸 알 텐데요?”
데일라흐는 셀레가르데의 마지막 말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저 돼지 같은 악마가 무엇을 하든 관여하지는 않겠으나, 주인님의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셀레가르데는 그다지 분노하지 않았다.
– 큭. 그래 여러 차원을 지배하겠다고? 인간 주제에 꿈이 크군.
음식에게 분노할 정도로 속이 좁지 않다고 셀레가르데는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뒤이은 데일라흐의 말에 셀레가르데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분께서 ‘레메게톤’의 주인임을 잊지 마세요.”
– 오만한 년······ 주인을 제대로 닮았군. 인간이 진실로 그 책을 다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냐? 그건 오직 악마들을 위한 것이다.
레메게톤. 그 이름의 무게를 잘 알고 있기에.
그렇기에 셀레가르데는 불쾌해하면서도 그녀의 요구에 따랐다.
– 다시는 그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그렇지 않다면 다음 내 입에 들어가는 건 네년일 테니.
쿵! 쿵! 쿵! 쿵!
심장을 절반 가까이 채우자, 점차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이것은 계약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침입한 놈들의 영혼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알겠나?
셀레가르데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앞에 놓인 항아리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보라색의 솥단지.
그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천 명분의 영혼이 들끓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녹색의 스튜처럼 보일 정도.
아아아.
그어어어어.
뭉친 영혼들이 뒤엉키며 마치 물이 끓는 듯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콰아아앙!
커다란 굉음이 터지는 것이 들려왔다.
– 왔군.
셀레가르데의 혀가 다시금 날름거렸다.
교만, 그가 들고 올 영혼을 맛보길 기다리며.
* * *
콰아아앙!
제이드가 날린 검기에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찌그러지며 날아갔다.
그 모습이 마치 바람에 저항도 못 하고 휩쓸린 낙엽과도 흡사했다.
“진입해!”
알현실의 진입이 가능해지자마자 와이트 아울 기사단은 방패를 들고 입구를 확보했다.
쿵! 쿵! 쿵!
방안으로 성큼 들어간 성기사들은 곧장 방패를 바닥에 내려찍으며 벽을 만들었다.
악마가 자리 잡은 곳이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위협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진입과 동시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방패가 사방을 에둘렀고, 그 뒤에 선 기사들이 검과 석궁을 들고 사각지대를 겨누었다.
그 뒤를 제이드와 이네스가 뒤따랐다.
“시야부터 확보하겠습니다.”
이내 선봉의 성기사들이 순백의 신성력을 방출하여 마기의 어둠을 밝히자 알현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 나라의 국왕이 머무는 알현실은 어마어마하게 크고도 화려했다.
곳곳에 놓인 책상들과 의자, 벽에 걸린 장식들까지 가치가 높아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위를 덮은 살점들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혈관이 자라나 벽을 뒤덮었고, 피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악마의 목구멍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곳곳에 허물어진 근위병들과 시녀들의 시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왕의 알현실이라고는 듣지 않았다면 혈겁의 장소로만 보였을 것이다.
“젠장, 끔찍하군.”
“······이런 곳에서 만나는 왕은 악마의 왕 정도겠군.”
“쉿, 어디서 공격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성기사들이 긴장을 끌어올리는 그때.
널브러진 시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륵! 꾸륵!
사지가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거미의 형상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체들이 마기에 오염되었다!”
“언데드다! 무기를 들어!”
하지만 이곳에 서 있는 건 흑마법사들을 잡기 위해 암약하는 성기사들.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가장 최고의 전문가들인 셈이다.
“홀리 라이트!”
“디바인드 월!”
신성력으로 응축된 빛이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지졌고, 그들이 넘어오지 못하는 장벽을 만들어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그 모습에 제이드는 작게 감탄했다.
‘역시 이런 분야에서는 성기사만한 이들이 없지.’
가히 전문가라 부를만했다.
콰직!
푸확!
성기사들의 메이스와 검이 달려드는 언데드들의 골통을 부수고 쪼갰다.
그런데 그때, 언데드들을 처리하던 성기사들이 당황하며 무기를 멈췄다.
“······음?”
“자, 잠깐만! 멈춰라!”
성기사들이 공격하던 언데드.
이름 모를 병사와 시녀들의 모습이 점차 사람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아니, 애초에 괴물로 변했었던가?
“······언데드가, 아니야?”
“그럴 리가······.”
분명 마기가 느껴졌는데?
머뭇거리는 성기사들을 향해 이네스가 소리쳤다.
“모두 정신 차려라! 악마의 환영이 분명하다!”
환영.
특정 마수나 악마는 환각을 이용하여 사람을 홀리거나 함정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것 또한 환각의 한 종류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흑흑. 도, 도와주세요.”
“부단장님! 저기 테이블 아래에 어린 꼬마가 있습니다! 당장 구출해야 합니다!”
“자, 잠깐 데이빗! 뭐 하는 건가!”
전열을 이탈한 성기사는 그대로 뛰어가더니 테이블 아래의 여자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꼬마야, 괜찮니? 이리 나오렴.”
그러나.
“히, 히히! 맛있는 인간이다!”
여자아이는 한순간에 날카로운 손톱을 지닌 괴물로 변모했다.
빨랐다. 반응할 시간이 없었다. 손톱이 성기사의 허벅지를 잡고 테이블 아래로 끌고 들어갔고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으아아악! 아아악!”
“데이빗! 안 돼!”
“이 멍청한 새끼가!”
전우가 죽어가는 모습에 당황한 성기사들이 뛰쳐나가려 했다.
“멈춰! 나는 여기 있다!”
뒤에 서 있는 데이빗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데이빗?”
“그럴 리가, 방금 분명 저 아래로······”
당황한 성기사들이 앞뒤에 있는 두 데이빗을 바라보았다.
한쪽에선 찢겨 죽은 채로, 뒤쪽에선 사지가 멀쩡한 채로 서 있는 게 아닌가.
– 큭큭큭. 무엇이 가짜고 진짜인지 알 수 있겠느냐?
그때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한 악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성기사들은 악마가 자신들을 가지고 놀았다는 걸 깨달았다.
“악마······! 그 모습을 드러내라!”
메이스를 든 성기사가 분개하며 소리쳤다.
그 순간 천장에서 뱀의 꼬리가 그를 낚아채며 목을 꺾여 죽였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날카로운 창들이 몇몇 성기사들을 꿰뚫고 죽였고, 옆에 서 있던 동료가 한순간에 토막이 났다.
“끄아아악!”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렇게 죽은 동료들이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윌······ 넌 방금 죽었는데?”
“무, 무슨 소리야! 방금 네가 죽었잖아!”
“악마? 악마구나!”
“미친! 개소리하지 마!”
“함정이 섞여 있다! 조심해!”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동료들의 소리에 성기사들이 침을 삼켰다.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교묘한 환영.
대체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란 말인가.
그들이 지금껏 상대해온 흑마법사의 환영은 이것에 비하면 갓난아이 수준으로 느껴졌다.
점차 성기사들의 얼굴에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전염되기 시작했다.
“─그만!”
그리고 그 순간.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이네스가 그들을 밀쳐내며, 뛰쳐나왔다.
이네스는 그대로 그 사이에 있던 성기사 한 명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직!
그 모습에 성기사들이 움찔거렸다.
부단장에게 일격을 당한 성기사. 바닥에 부딪힌 그의 머리가 점토처럼 뭉개진 게 아닌가?
“이 녀석이 가짜다.”
– 킥. 킥킥. 눈썰미는 좋구나. 역시 눈여겨본 먹잇감이구나.
그러자 뭉개진 성기사, 아니 악마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더니 검은 연기가 되어 홀연히 사라졌다.
주변을 가득 채웠던 시체들 역시 스르륵 사라지며 환영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성기사들은 깜짝 놀랐다.
자신들이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악마의 환영이 끼어들었으니.
그런데 그걸 자신의 부단장이 간파한 것 아닌가.
그런데······.
“모두 정신 차려! 저건 가짜다!”
“부, 부단장님이 두 명?”
뛰쳐나온 이네스의 등 뒤, 그곳에서 또 다른 이네스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더러운 악마 주제에 감히 내 흉내를 내?”
“같잖은 흉내 내지 마라, 악마······. 이게 내가 진짜라는 증거다!”
선두의 이네스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그러자 후열의 이네스가 소리치며 손에서 신성력을 피워올렸다.
이네스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새하얀 빛.
그 모습에 성기사들이 눈을 빛냈다.
“그래, 악마의 환영이라면 신성력을 쓸 리가 없을─”
화륵.
“감히, 신의 믿음을 모방하다니······!”
후열의 이네스의 손에서 피어오른 신성력에 선두의 이네스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그러고는 그녀 역시 신성력을 피워올리는 게 아닌가.
그 모습에 와이트 아울 기사단들의 사고가 멈췄다.
“······신성력을 모방했다고?”
“악마의 환영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신성력은 신의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것을 악마가 모방한 것이다.
아니, 실제로 신성력을 피워낸 게 아닐지라도, 성기사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똑같았다.
와이트 아울 기사단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어느 누가 진짜란 말인가?
‘어쩌면 베니킨 경도?’
‘파고드. 이 녀석의 눈빛이 수상해.’
분란, 의심, 경계가 싹트기 시작한다.
그들 간의 믿음이 점차 흔들렸고, 서로의 간격이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황을 해결한 것은 와이트 아울 기사단의 그 누구도 아니었다.
“진짜 이네스는 이쪽이다.”
제이드.
그가 선두의 이네스를 편든 것이다.
“제이드, 정확히 짚었네.”
“젠장, 멍청한 제이드!”
두 이네스의 희비가 교차했다.
후열의 이네스가 뒤이어 입을 여는 그 순간.
한순간에 이네스가 두 동강 나며 검은 연기로 흩어졌다.
카일이 가짜 이네스를 검으로 베어낸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구분을 한 겁니까?”
“가짜들의 특징이라도 있는 겁니까?”
성기사들이 다시금 동요했다.
그 시선과 목소리를 무시한 카일이 앞의 셋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눈에만 보이는 것 같군.”
“너희들도?”
이네스, 바바크 그리고 제이드.
카일은 그들과 시선을 잠시 교차한 후 성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무리에 섞여들어 있는 검은 그림자 같은 형체, ‘가짜’들에게.
촤악!
카일이 그들 중 한 명을 베어내자 그림자들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베니킨 경? 가짜였다고?”
“그럴 리가······ 내 옆에 계속 붙어 있었는데?”
흑마법사들을 척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와이트 아울 기사단.
그들 대부분이 눈치채지 못한 걸, 자신들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이네스와 카일, 바바크는 의아함이 들었다.
하지만 단 한 명.
제이드는 그 이유와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이것 때문이군.’
제이드는 자신의 시야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이게 용사파티의 진가인가?’
동시에 제이드는 깨달을 수 있었다.
카일을 주축으로 모인 영웅들.
그들이 모여 마왕에 대항할 수 있었던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