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영웅(英雄).
범인이 아닌 초인.
시련을 이겨내고 위업을 이룩하는 이들.
범인들에게 귀감과 동경의 대상이 되는 존재.
하지만 이 세계에서 영웅의 개념은 더욱더 특별하다.
[특성 – 영웅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영웅의 눈이 ‘그림자 환영’을 간파합니다.]특성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영웅 특성.’
남들에게 호감을 사기도, 저주를 막아내 주기도 한다.
나는 이 힘을 아케르 요새에서 병력을 막아내며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라고 다를까?
카일, 바바크 그리고 이네스. 아니, 1회차의 용사파티 전원이 영웅이었다.
아마 그들 전부, 각기 다른 시련을 겪으며 영웅 특성을 얻었겠지.
1회차에서는 의문이었다.
어떻게 저들은 마왕군에 맞서 싸울 수 있던 것인지.
겁에 질린 양처럼 도망치던 사람들 사이에서 용감하게 나아갈 수 있던 것인지.
저들은 어떤 면이 특별한 것인지.
나는 그 용기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내가 과연 용병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들 사이에 낄 수 있는지, 나 자신을 끝없이 의심했었다.
언젠가는 저들의 활약은 그저 우연의 일치, 무모함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영웅 특성이 주는 진정한 힘을 깨달을 수 있었다.
‘평범한 이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
동시에 알 것만 같았다.
용사파티가 어떻게 모이기 시작한 것인지.
나는 이네스를, 그리고 카일과 바바크를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그림자 환영’의 존재를 눈치챘고, 구분할 수 있었다.
데릭, 로빈이 있는 용병대가 나의 손발이 되어주는 이들이라면, 용사파티는······.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이들.’
영웅 간의 신뢰였고, 동질감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영웅들이 두각을 드러낼 무대였다.
* * *
“─모두, 정신 차려라!”
크게 숨을 들이쉰 바바크가 성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워 크라이(War cry).
용력을 담아낸 울음소리를 내지름으로써 아군들의 사기를 올리고 정신을 차리게 하는 기술.
로데인 부족의 대전사만이 쓸 수 있는 특수한 기술이었다.
충격파에 버금가는 울음소리에 성기사들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주신이시여, 악이 불가침한 성역을 내려주소서!”
뒤이어 이네스가 바닥을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검 끝에서 터져 나온 신성력이 반구를 그렸다.
성역(聖域).
신성력으로 만들어낸 영역으로서 그 안의 마기를 전부 밀어내는 기술.
그와 동시에 진짜 행세를 하던 그림자 환영이 밖으로 튕겨 나갔다.
이 안에 남은 이들이야말로 전부 진짜인 셈.
“다들 뒤로 물러서라! 전열을 재정비하겠다!”
정신을 차린 성기사들이 곧장 이네스의 뒤로 물러섰다.
“이네스, 아무래도 우리 넷 말고는 진입하기 힘들 거야.”
“······그럴 것 같네.”
눈살을 찌푸린 이네스가 와이트 아울 기사단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 전부 나가서 입구를 봉인해!”
“부단장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지금 정신 차렸다고, 다를 것 같아? 또 악마한테 넘어갈 셈이야?”
“그, 그건······.”
“다시 환영에 빠지면 그때는 더 어려워질 거야. 난전이 벌어지는 것보단 이게 낫겠지.”
성역은 막대한 신성력으로 다른 기운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의 기술이다.
그런 만큼 신성력의 소모가 막대했고, 몇 번이고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웠다.
특히 악마를 상대해야 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말이다.
“큭······ 부단장, 죄송합니다.”
“저희가 발목이나 잡다니.”
성기사들은 자신의 무능에 분하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이런 걸로 좌절하지 마. 만일 우리가 실패하면 수도의 사람들을 데리고 피신 시킬 수 있는 건 너희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이네스의 말에 정신을 차린 성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성력의 결계를 만들었다.
결계가 닫히기 전,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성기사들이 짧게 말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순백의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장벽이 솟아오르며, 알현실과 왕성 복도를 가로막았다.
쿵!
제이드는 마기의 흐름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걸 확인한 후, 남은 세 영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도 시작해 보자고.”
“······그러면 풀어도 되는 거지?”
상당량의 신성력을 썼는지, 이네스가 살짝 지친 기색으로 성역을 해제했다.
그러자 성역에 막혀 다가오지 못했던 검은 그림자 덩어리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어어어어!
때론 어린아이로, 때론 왕성의 병사로. 직전의 성기사들로.
계속해서 모습을 변모하며 환영을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우리에게는 환영이 통하지 않으니.
우우우우─!
마치 원혼처럼 기이한 소릴 내며 달려든 그림자 시종을 향해 제이드가 검을 휘둘렀다.
쌔액!
마기 포식자의 날카로운 검날이 그림자를 가르고 지나갔다.
그림자라고 베어지지 않는 건 아닐까 했는데, 두부를 가르는 것 같은 감촉이 있었다.
잘려 나간 두 몸뚱이가 먹물처럼 가라앉더니,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그림자라······.’
제이드는 슬쩍 자신의 망토를 바라보았다.
키스고드의 그림자 망토.
그림자로 숨어들 수 있게 해주는 아티팩트.
마기 포식자의 검날은 멈추지 않고, 뛰어오른 그림자 기사를 꿰뚫었다.
또다시 연무가 되었고, 제이드는 다른 목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면서 카일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붉은 레이피어, 푸른 장검, 녹빛의 비도와 호국경의 장검까지.
4개의 검을 번갈아 꺼내 휘두르고 던지는 카일의 모습은 마치 검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베는 맛도 거의 없구나! 죽어라!”
바바크는 아예 대검을 끝을 붙잡고 회오리처럼 크게 회전하며 주변을 휩쓸었다.
휠윈드였다.
우리는 순식간에 그림자들을 도륙 냈다.
점차 바닥에 진 그림자가 늘어났고, 알현실에 서 있는 사람은 우리 넷뿐이 된 그때.
바닥으로 스며든 그림자들이 뭉치며 옆 방의 문틈으로 들어가길 시작했다.
마치 도망치는 듯이 말이다.
“어딜 도망치느냐!”
그 모습에 바바크가 방문을 향해 옆에 있던 테이블을 집어 던졌다.
콰아앙!
문이 부서지며 방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 아아─ 상등품의 영혼들이군.
샹들리에 하나만이 흔들리는 텅 빈 방 안쪽.
도망친 그림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방 중심에는 안에는 흰 고목처럼 길쭉한 신형이 하나 서 있었다.
날카로운 이가 돋은 거대한 입이 뒤틀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교만의 악마, 아마흐 딜라운.
이 모든 환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놈은 지금껏 내가 상대해 온 악마들과는 격이 다르다.’
제이드는 직감했다.
칼테르 요새에서, 데서툼 왕가의 유적에서 마주했던 악마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되리라는 것을.
“악마! 겁쟁이처럼 여기에 숨어 있었나!”
“모두 조심해. 한 놈이 보이지 않아.”
고함치는 바바크와 그를 진정시키는 이네스의 모습에 아마흐 딜라운은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
손바닥에 달린 두 눈동자가 호선을 그렸다.
– 흐흐흐. 나는 너희들이 이곳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진미를 추구할 수 있겠구나.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는 아마흐 딜라운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럴 때마다 샹들리에의 빛에 겹겹이 늘어진 녀석의 그림자가 잇따라 흔들렸다.
제이드는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사라진 그림자와 놈의 주위로 퍼진 그림자들.
‘이번에도 분명······.’
제이드의 예상대로 놈의 그림자 하나가 꿈틀거리며 길어졌다.
그 그림자는 방 안으로 진입하는 카일의 발치와 맞닿아있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거─”
“카일, 조심해!”
“뭐?”
촤악!
발치에서 솟아오른 그림자가 기사의 형상을 갖추며 카일을 향해 검을 올려 벴다.
“큭!”
아슬아슬하게 검을 휘둘러 쳐낸 카일이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그림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아까 그 그림자들은 전부 저 녀석이 조종한 거였나?”
– 그것까지 바로 알아차렸나?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맛있는 영혼인 법이지.
“아까부터, 상등품이니 맛있다니 시끄럽군.”
카일이 얼굴을 구기며 녹빛의 비도, 산들바람으로 검기를 날렸다.
돌풍에 휩싸인 검기가 아마흐 딜라운을 찢어버릴 듯 쇄도했다.
그런데 그 순간.
스르륵.
아마흐 딜라운이 서 있던 곳이 일렁이더니 갑자기 검기가 되돌아오는 게 아닌가?
“뭐─?”
“카일. 공간 왜곡이야!”
“뒤로─ 서 있어라!”
당황한 카일을 뒤로 당긴 바바크가 대검을 방패처럼 막아 세우고는 검기를 막았다.
콰과과광!
돌풍과 섞인 검기가 바바크의 몸을 진창으로 만들었다.
“크윽!”
“바바크! 괜찮아!?”
“이 정도는 엄살이다!”
우드드득.
뒤틀린 오른팔 관절을 맞춘 바바크가 주먹을 쥐며 소리쳤다.
피부 안쪽에서 터진 피가 붉게 올라왔지만 이내 어깨의 문신이 빛나며 사그라들었다.
주술이었다.
“킁!”
남아 있던 고통을 숨 한 번에 털어낸 바바크가 대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검기가 안 통하면 직접 검을 박아 넣어주마!”
바바크는 아마흐 딜라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두 개의 그림자가 수십 개의 가시가 되어 솟아오르더니 화살처럼 쏘아졌다.
“디바인드 월! 홀리 라이트!”
바바크의 뒤를 따르던 이네스가 신성력을 쏘아 보냈다.
투두두두!
빛의 장벽이 수십 개의 가시를 막아내었고, 맹렬히 타오르는 빛줄기가 녀석을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제이드는 볼 수 있었다.
녀석이 여유롭게 손을 까닥거리자, 맹렬하게 타오르던 빛줄기의 각도가 묘하게 틀어지는 것을.
콰직!
목과 가슴을 꿰뚫었어야 할 빛줄기는 녀석의 어깨 끝만을 살짝 태웠다.
“······신성력까지?”
– 어리─ 석구나! 빛은 어둠을 불러오는 법일 진데!
상급 악마라 그런 것일까?
녀석은 신성력에 그을린 제 신체를 바라보고는 오히려 씨익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마치 무대의 지휘자처럼, 마탑의 마법사처럼 손을 움직이자, 스쳐 지나간 홀리 라이트의 빛기둥 아래로,
두껍게 드리운 그림자가 꿈틀거리더니 수십 마리의 고블린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뭐?!”
– 천 년 전부터 빛의 교단은 내게 천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네년은 갓난아이나 다름없구나!
이네스를 비웃은 아마흐 딜라운이 다시금 손을 휘젓자 그림자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제이드는 그를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이네스, 뒤로 물러나 있어.”
“제이드!”
이네스를 잡아당긴 제이드가 곧장 오러를 길게 늘이며 수평으로 크게 그었다.
철퍽!
절반에 가까운 그림자 고블린들이 잘려 나가며 형체를 잃은 그림자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림자가 바닥에 스며드는 걸 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림자보다도 더 짙은 검보라빛의 마력이 주위를 장악해 나가고 있었기에.
그 모습에 손을 휘젓던 아마흐 딜라운이 멈칫했다.
– ······그 힘은······!
[스킬 – 흑암성계(LV. 3)을 발동합니다.] [일대에 흑암성의 권역이 생성됩니다.]이전보다 더욱 마력을 넓게 펼치자, 마력이 빠르게 소모했다.
‘하지만 상관없지.’
[특성 – 흑암성이 마기를 흡수합니다.] [일시적으로 근력이 1 상승합니다.] [마력이 회복됩니다.] [특성 – 흑암성이 마기를 흡수합니다.] [일시적으로 체력이 2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근력이 1 상승합니다.] [마력이 회복됩니다.]주변을 가득 메운 마기, 그리고 교만의 악마로부터 흘러나오는 마기가 제이드의 마력을 회복시켜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녀석이 공격을 멈춘 걸 확인한 즉시.
제이드가 눈을 빛내며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콰앙!
‘지금이 기회다.’
남은 그림자 고블린들을 발판처럼 밟으며, 더욱 속도를 높이자 악마가 점차 내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제이드의 돌진을 막겠다는 듯 그림자들이 무기와 사람의 형태로 변하며 공격해왔다.
하지만 주변에 깔아놓은 흑암성계의 마력이 먼저 공격을 감지하고 그를 차단했다.
제이드의 돌진을 막을 수 있는 건 없다.
놈을 향해 열 걸음 남짓의 거리가 남았다.
제이드는 검을 휘둘렀다.
제이드의 의지에 반응한 마기 포식자가 무엇이든 집어삼킬 듯한 기세의 검기를 토해냈다.
“마기 폭발!”
검보라빛의 검기가 아마흐 딜라운의 지근거리까지 도착한 그때.
– 큭.
‘웃었어?’
아마흐 딜라운의 늘어진 그림자 중 일부가 반투명한 막이 되는 것이 보였다.
공간 왜곡이다.
한순간 녀석의 앞이 일렁이며 쏘아진 검기가 스르륵 사라졌고, 그 검기는 제이드의 오른편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콰아아앙!
빠른 속도로 돌진하던 제이드가 한순간에 옆으로 튕겨 날아가더니 벽이 무너져내렸다.
“제이드!”
“이봐, 괜찮나! 큭!”
무너진 벽에 깔린 제이드를 구출하기 위해 달려가려던 카일과 바바크를 향해 그림자가 치솟으며 공격해왔다.
– 원래는 생생한 영혼을 위해 생포하려 했지만······ 파마(破魔)의 계승자라면 다르지. 죽어라.
무너진 벽 자재. 그곳에 진 그림자들이 한순간 솟아오르더니 제이드가 파묻힌 곳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이리저리 꺾이며, 바닥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갔고,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콰과과과곽!
그 모습에 이네스의 눈이 흔들렸다.
쥐새끼 한 마리도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공격이었다.
“안돼, 제이드!”
“제이드, 살아 있나!”
이네스와 카일이 제이드가 묻힌 곳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잔해는 미동조차 없었다.
– 죽었군.
그 모습에 아마흐 딜라운이 히죽 웃어 보였다.
악마의 입꼬리는 씰룩였지만, 그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 놈의 죽음에 안도한 것이 틀림없었다.
‘파마의 힘에 내가 너무 긴장했나 보군. 애초에 그때 그 녀석과 같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과거 자신을 봉인시켰던 그 사내.
놈은 이미 죽어 흔적조차 없을 텐데 말이다.
– 자아. 놈도 죽었으니, 너희들만 남았구나. 어떻게 해주면 좋겠느냐?
이내 긴장을 완전히 가라앉힌 교만의 악마의 입꼬리가 더욱 치솟았다.
그 모습에 이네스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죽여버리겠어!”
“잠깐, 기다려!”
이네스가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홀리 라이트.
심판의 결계.
디바인드 월.
이네스가 사용할 수 있는 공격을 전부 날렸음에도 아마흐 딜라운에게는 닿지 않았다.
심지어 카일의 유성검과 바바크의 공격마저 전부 흘려냈다.
녀석의 반경 1미터.
그 주위로 펼쳐진 반투명한 막이 외부의 공격을 전부 흘리고, 역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그럴수록 더욱 많아진 그림자는 녀석의 무기가 되어주고 있었다.
“카일 그리고 여자. 놈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려면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밖에 없다. 저 주술 같은 무언가가 공간을 뒤틀어서 우리의 공격을 막아내는군.”
“접근할 방법은 있고?”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이네스의 시선이 제이드가 깔린 잔해로 향했다.
‘살아 있을 거야. 아니, 내가 치료해준다면 살릴 수 있어.’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움직이는 건 어려웠다.
제이드에게 다가가든, 놈에게 접근하든, 날카로워진 그림자들은 그들이 발을 떼는 것조차 위험하게 만들었다.
–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간들이로구나.
– 자신의 발밑조차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게 다가오겠다는 것이지?
이네스와 카일의 표정에서 조바심을 읽어낸 아마흐 딜라운이 비웃었다.
– 너희들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자신의 승리다.
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에 꿰뚫린 채 꼬치가 되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저 영혼들을 음미할 것이다.
아마흐 딜라운이 다가올 기쁨에 만족해 웃음을 짓는 그때.
“발밑을 못 보는 건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섬찟한 기운과 함께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가 악마의 뒤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푹!
브로드 소드, 아니 마기 포식자가 아마흐 딜라운의 가슴을 꿰뚫고 튀어나왔다.
– 뭣─!
밀려오는 격통을 참으며 뒤를 바라보는 악마의 두 눈에 비친 것은.
그림자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제이드였다.
제이드가 입꼬리를 올리며 더욱 검을 깊게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