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로빈은 시위를 팽팽히 당기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세계수를 뜯고 나온 거대한 괴물이, 흉포하게 포효하고 있었다.
‘저건 대체······ 세계수 아래에 저런 괴물이 잠들어 있던 건가?’
족히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블랙 드래곤.
그래, 분명히 전설 속 존재인 드래곤의 모습이 엿보였다.
얼굴은 드레이크보다 흉포해 보였고, 거대한 두 팔은 무엇이든 잡아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아래로 보이는 몸 곳곳에는 커다란 뼈와 부패해 썩은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생의 경계에서 벗어난 언데드.
그 누구도 사냥할 수 없을 것 같은 철옹성 같은 몸집은 베테랑 용병도, 뛰어난 기사도 뚫을 수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보인다. 더 정확하게.”
로빈은 저 블랙 드래곤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거대한 몸뚱어리. 그 곳곳에 드러난 뼈와 촉수 몇 곳이 로빈의 시야에 들어왔다.
“약점은 저기다.”
로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는 일종의 본능이었고, 감각이었다.
그렇기에 어딘가 퍽 기이하고도 낯선 감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활을 수련한 로빈이다.
먼 표적을 포착하고 사격하는 방법을 배웠고.
사방을 경계하며 위협을 감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로빈의 눈 역시 특별했다.
수십 미터 밖의 작은 옹이구멍일지라도 집중하면 거대한 동굴처럼 느껴질 정도로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짐승의 눈이 그러하듯이, 보이는 걸 더 잘 볼 수 있더라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는 없다.
예리한 오감으로 시야 밖의 존재를 감지할 수는 있어도, 가려진 것을 들출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로빈은······
‘······보인다.’
명확히 보고 있었다.
드래곤의 몸속에서 요동치는 유약한 부분을.
그리고 그것은 드래곤의 거대하고 강인한 육신의 모든 부분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심장에서 뻗어 나오는 핏줄들처럼 말이다.
‘맥(脈) ······인가.’
본래라면 보이지 않아야 할 부분이 보인다.
눈이 바뀌기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그가 각성한 전설 특성 ‘만상을 꿰뚫는 시야’ 때문이었지만, 로빈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로빈은 호기심을 덮어두었다.
‘지금 해야 할 건 이 힘을 이용하는 것, 그것뿐이다.’
시위를 한계까지 당긴 로빈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그럴수록 로빈의 두 눈동자가 황금빛 이채를 띠었다.
슬쩍 눈을 돌려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믿고 있는, 자신이 아는 가장 강인한 사내를.
“가라.”
그렇게 말하며 시위를 놓는 순간.
퉁─
동시에, 제이드가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갔다.
제이드가 탄 칼라마르가.
로빈의 화살을 쫓아 날아오른 것이다.
로빈은 하늘로 솟구친 칼라마르를, 칼라마르의 등에서 솟아오른 검보라빛의 날개를 바라보았다.
“가라. 제이드.”
그를 보며 로빈이 중얼거렸다.
거대한 블랙 드래곤을 향해 날아가는 칼라마르.
그리고 그 위에 탑승한 제이드.
그 모습은 하나의 기사이자,
드래곤 나이트였다.
* * *
눈앞의 풍경이 압축되듯 줄어들더니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장의 매캐한 공기가 어비스 킬러의 투구를 때리며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칼라마르가 ‘날개’를 만들어내며 발생한 일이었다.
[칼라마르가 스킬 – 오러 윙(LV. 1)을 사용합니다.]오러 윙.
칼라마르가 신수로 각성하며 깨우친 드래곤의 권능.
자신의 마력을 드래곤의 날개로 만드는 힘이었다.
사실 이 스킬의 설명을 읽었을 때는 그다지 감탄하지 않았다.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하기는 하나, 세이비어 결사단에는 이미 하늘의 포식자라 불리는 그리핀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오러 윙을 사용해보자, 나는 내 생각이 짧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단해······ 그리핀보다도 빠르잖아?’
날개를 단 칼라마르는 그리핀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비행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주변의 모습이 훅훅 지나갈 정도.
나는 순식간에 말라고니스의 지근거리로 들어갔다.
– 건방진─, 벌레에게 날개를 달아봤자 날파리일 뿐이다!
그런 나와 칼라마르를 발견한 말라고니스가 벌레를 내치듯 팔을 휘두르려던 그때.
펑──!
말라고니스의 옆구리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녀석이 크게 휘청였다.
로빈의 화살이었다.
전설급 특성을 얻은 로빈의 화살이 마치 유도탄처럼 휘어지며, 놈의 갈비뼈 사이로 날아가 폭발한 것이다.
고개를 든 말라고니스가 나를 향해 짙은 살기를 내뿜었다.
– 무슨······! 같잖은 재주를 부리는구나!
놈은 로빈의 화살을 못 봤는지, 내가 공격했다고 판단한 듯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30미터나 되는 덩치가 조그마한 화살을 쉽게 발견하기엔 무리가 있으니.
나는 그런 녀석의 뼈가 드러난 옆구리를 바라보았다.
‘역시. 저기가 약점이야.’
카일의 검기나 내 공격에 비하면 그리 특별하지 않은 위력.
하지만 놈은 큰 공격에 맞은 것처럼 휘청였다.
그뿐이었다. 데미지가 부족했다.
하지만 고작 폭발 화살 하나만으로 저 거대한 덩치가 움찔거렸다.
즉, 강한 대미지를 줄 수 있다면.
‘놈을 쓰러뜨릴 수 있다.’
나는 가능하다.
“칼라마르. 놈에게 간다!”
크롸라라!
내 말에 칼라마르가 곧장 오러 윙을 펄럭이며 쇄도했다.
– 내가 내버려 둘 것 같으냐!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겠다는 듯 말라고니스는 칼라마르를 향해 브레스를 뿜어냈다.
콰아아아!
칼라마르가 오러 윙으로 선회하며 빠르게 회피 기동했다.
옆에서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를 느끼며 놈의 몸뚱이로 다가가는 순간.
꿈틀!
블랙 드래곤의 몸에 뒤엉켜 있던 무수한 검붉은 촉수들이 꿈틀거리더니, 우리를 향해 덮쳐왔다.
“칫! 눈치챘나?”
내가 약점을 노리는 것을 깨달은 걸까?
놈은 적극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추며 나를 견제했다.
심지어 카일과 로빌리오 등 동료들이 검기와 주술을 쏘아 보냈지만, 녀석은 드래곤의 신체 내구성으로 버티며 나만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복잡하게 만들어주지!’
“칼라마르, 내려간다!”
우선 나는 접근을 포기하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파앗!
곧이어 칼라마르가 다시 땅을 박차고, 하늘 높이 비상했다.
– 놓치지 않는다!
그런 칼라마르를 따라 말라고니스의 검붉은 촉수들이 뒤따라 날아들었지만.
‘난 이미 거기 없거든.’
[키스고드의 그림자 망토가 발동 중입니다.]칼라마르가 바닥에 착지한 순간, 나는 그림자 속으로 잠수해 몸을 숨겼다.
나는 고개를 들어, 빠르게 움직이는 칼라마르를 바라보았다.
끈질기게 날아드는 촉수를 오러 윙으로 피하는 칼라마르.
간간이 날아드는 브레스와 휘두르는 드래곤의 팔까지.
내가 사라진 것도 모른 채, 말라고니스는 칼라마르를 향해 공격하고 있었다.
‘칼라마르. 조금만 버텨라.’
주위의 모든 촉수가 칼라마르를 향해 있는 상황.
즉, 놈은 나를 놓쳤다.
‘바로 지금이다.’
나는 그 즉시 그림자에서 몸을 꺼내 움직였다.
그림자에서 빠져나온 몸이 바닥을 박차고, 허공에서 궤도를 틀었다.
그리고 그때. 머리 위로 날아드는 한 마리의 새.
삐이이익!
‘저건?’
올빼미 신수, 스톨라스.
놈이 몸을 던져 침입을 막으려 들고 있었다.
하지만.
쩌엉!
스톨라스가 활강하면서 들이받자 울리는 금속음.
놈이 덮친 건 진짜 내가 아니다.
인간의 형상, 동상처럼 변한 모노리스였을 뿐.
“그럴 줄 알았거든!”
말라고니스, 놈이 두 번이나 공격당한 약점에 아무런 방비를 해두지 않았을까?
나는 아니라고 판단했고, 만일을 대비해 모노리스로 더미를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먹힌 셈이지.’
스르륵.
나는 곧장 그림자를 박차고 나가서, 말라고니스의 시야 밖에서 파고 들어갔다.
그런 나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빠르게 접근한다!’
어느새 놈의 발아래까지 접근했다.
하지만 놈은 엄청난 체구의 괴물.
내 목표는 까마득히 높은 곳이다.
“모노리스.”
모노리스가 다시 내게 달아오며, 여러 파편으로 분화되었다.
그것들은 층을 형성하며 도열했다. 발판이다.
나는 그 발판을 밟고 뛰어오르며, 순식간에 수십 미터 높이까지 치솟았다.
‘저기다!’
곧 나는 말라고니스, 아니 최초의 신수라 불린 블랙 드래곤의 드러난 갈비뼈에 안착할 수 있었다.
거대한 짐승의 몸속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생을 다했기에, 제아무리 신수의 육신이라고 할지라도 세월 속에서 허물어져 간 것이다.
마치 거대한 동굴 같은 공간.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저건······.’
꿈틀거리고 있는 거대한 지렁이, 말라고니스의 본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온몸에서 뾰족하게 솟아오른 검붉은 촉수가 내부 이곳저곳에 들러붙어 블랙 드래곤의 육신을 조종하고 있었다.
내부는 짙다 못해 응축된 마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세계수 내부에 차 있던 마기를 이곳에 끌어모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리라.
[특성 – 흑암성이 마기를 흡수합니다.] [어비스 킬러가 마기를 충전합니다. (89%)] [어비스 킬러가 마기를 충전합니다. (100%)]‘순식간에 어비스 킬러가 완충될 정도라니. 흑암성이 없는 일반인은 즉사할 수준이겠어.’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되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 안에 마기가 가득하다는 건 반대로 말해서······
‘······마기 폭발에 그만큼 취약하다는 거지.’
가스가 가득 찬 방 안에, 성냥불을 던지는 셈이다.
스릉.
나는 그 안쪽으로 들어가며, 양손에 한 자루씩 검을 쥐었다.
한 손에는 모노리스로 만든 흑암을, 다른 한 손엔 마리온의 검인 실바람을.
드래곤의 육신을 조종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말라고니스를 향해 겨누며 나는 작게 읊조렸다.
“마기 폭발.”
– 뭐, 뭐야 네놈 여길 어떻─
뒤늦게서야 눈치챈 말라고니스의 말이 뚝 끊겼다.
콰과과과과광!
검보라빛 검기가 그대로 쏘아지자마자, 눈앞을 가득 채운 마기가 연쇄적으로 터져나갔으니까.
“큭!”
연쇄적인 폭발들이 밀어낸 공기에 내 몸뚱어리가 바깥으로 튕겨 나갈 정도.
어비스 킬러가 없었더라면 꽤 아팠을지도 모른다.
안쪽에서 몸을 고정해놓고 있던 놈이라면 과연 어떻겠는가?
‘모든 폭발을 그대로 맞고 넝마가 될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폭발에 블랙 드래곤의 육신 일부가 터져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늑골과 배가 있어야 할 곳이 폭발에 뻥 뚫려 있었다.
속이 뻥 뚫렸다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진짜인 셈이다.
그때 폭발에 튕겨 나가며 허공을 비상하고 있는 한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말라고니스.”
마기 폭발에 제대로 휩쓸렸는지, 지렁이 같은 신체 곳곳엔 구멍이 뚫리고 찢어져 있었다.
– 크어어어어!
놈이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상당한 충격이 있는지 파르르 떨리는 놈의 몸뚱이.
이내 꿈틀거리더니, 도망가려는 듯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놈의 뒤로, 주인을 잃은 드래곤의 육신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놈을 향해 다가갔다.
“어딜 도망가려고.”
– 흐억! 거, 검은 별!
놈의 앞을 막아서자, 녀석이 경기를 일으키듯 꿈틀거리더니, 주위의 신수와 짐승들을 향해 명령했다.
– 막아! 검은 별을 막으란 말이다!
녀석의 발악에 맞춰 신수, 스톨라스가 날아와 나를 향해 덮치려 들었다.
하지만.
“칼라마르. 처리해라.”
내 말과 동시에 하강하던 스톨라스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콰앙!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건 칼라마르였다.
상공에서 대기하던 칼라마르는 내 명령을 받자마자 스톨라스를 공격해 제압한 것이다.
믿을 구석이 저 올빼미였는지, 말라고니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어, 어떻게······
“이전에는 밀렸을지 몰라도 이젠 아니거든.”
신수로서 동격이 된 칼라마르다.
아니, 잠재된 드래곤의 힘을 깨운 만큼 이쪽이 더 우위였다.
콰득!
이내 칼라마르가 앞발로 머리를 내려치자, 날개를 펄럭이던 스톨라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기절한 것이다.
그걸 확인한 나는 고개를 돌려 뻣뻣하게 굳은 지렁이, 말라고니스를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건 네놈뿐이군.”
– 젠장! 말도 안 돼!
말라고니스는 상처가 흘러내리는 몸을 어떻게든 꿈틀거리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놈의 주변으로 솟아오르는 식물 줄기들이 그를 막았다.
“악마! 네놈이 숲을 망치게 두는 것도 거기까지다!”
“말라고니스, 네놈의 야욕은 이제 끝이다.”
주변을 정리한 카야와 로빌리오.
두 엘프가 정령의 힘으로 놈을 포위한 것이었다.
– 젠장······ 젠장! 젠장! 빌어먹을 인간 놈이!
퇴로가 막힌 포위된 말라고니스의 몸이 분노한 듯 붉게 달아올랐다.
– 이젠 그 무엇도 상관없다! 내 몸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들을 죽여버리겠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라지.
말라고니스는 최후의 발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날카로운 촉수들이 솟아나 사방으로 쏘아지려 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숨겨진 한 수를 내보일 거라면,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안 되지.”
하늘에서 날아오는 모노리스.
그것을 허공에서 낚아채며 대검의 형태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그대로 놈을 향해 전력으로 내려쳤다.
콰아아앙!
– 끄아아아악!
녀석의 몸이 이등분되며 커다란 비명을 질렀다.
– 그만! 그만! 나를 살려준다면─
“좆까.”
하지만 나는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세 조각, 네 조각, 열 조각이 되도록 마구잡이로 난도질했다.
이내 양파를 다지듯 수십 조각으로 쪼개진 말라고니스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나는 그 흔적조차 남을 수 없도록, 칼라마르의 브레스를 이용해 완전히 태워버렸다.
[상급 지배의 악마, 말라고니스를 처치했습니다.]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퀘스트 ‘그림자의 음모 – 2’를 클리어했습니다.] [명성이 (+1,000) 상승합니다.] [칭호 – 중급 악마 사냥꾼이 그 위업을 대폭 흡수합니다.] [칭호 ‘중급 악마 사냥꾼’이 ‘상급 악마 사냥꾼’으로 격상합니다. [별의 조각을 획득합니다.]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생명의 숲을 좀먹어왔던, 기생충을 박멸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