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말라고니스를 처치한 직후.
제이드가 세계수를 되살리고 엘프 장로, 핀나흐와 앞으로의 협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때.
로빈은 생명의 숲 내부를 수색하고 있었다.
범위는 세계수 근처였으나, 거대한 나무답게 둘레가 꽤 넓었기에 수색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넓은 곳을 로빈은 다친 몸을 이끌고 수색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자신과 함께 싸운 동료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키텔로 레인저들은 구조되었거나 무사히 합류한 상황.
하지만 단 한 명.
키텔로 레인저의 단장인 루셴만은 발견할 수 없었다.
로빈과 함께 세계수를 오르던 도중, 스톨라스와 함께 추락한 것이 마지막 모습.
수풀을 헤치던 로빈이 초조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루셴! 대답해라! 어디 있나!”
하지만 들려오는 건 평화를 되찾아가는 숲속의 새 울음소리뿐.
이를 악문 로빈이 다시금 수풀을 헤치는 그때.
“!”
나무 한쪽에 묻어 있는 미세한 혈흔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쪽으로 달려간 로빈은 이윽고 풀 내음 사이에 섞인 혈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수색한 끝에 발견할 수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수풀 한쪽에 누워있는 루셴을.
“루셴!”
루셴의 모습은 최악에 가까웠다.
추락할 때 다친 것인지 곳곳의 깊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두 다리는 안 좋은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다급히 달려오는 로빈을 향해 루셴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여어, 로빈. 나 찾고 있었나.”
“루셴! 너, 팔이······!”
가장 심각했던 건 루셴의 텅 빈 오른팔이었다.
“떨어질 때 잃어버렸다. 이제 활은 당기기 ······힘들겠어.”
“말하지 마라. 기다려, 사제들을 불러올 테니.”
로빈은 다급히 품속에서 신호탄을 쏘고 사제들을 불러오려 했다.
그것을 루셴은 소매를 붙잡으며 막아섰다.
“······그만, 해라. 딱 봐도 알잖냐. 살기엔 글렀다는 거.”
“······루셴.”
로빈은 루셴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되살릴 가망이 없다는 것을.
밑 빠진 독처럼 루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루셴의 몸이 창백해져 가고 있었다.
포션이나 사제의 신성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신체를 재생시킨다 해도 사라진 피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
으득.
로빈은 품속에서 흰 가루를 꺼내 루셴의 상처 곳곳에 뿌렸다.
강한 마비 효과가 있는 독초의 가루였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죽어가는 친우의 고통을 덜어줄 약초였다.
“고맙다, 로빈.”
로빈의 의도를 파악한 루셴이 피식 웃었다.
둘은 서로 시선을 교차했다.
“로빈. 너와 다시 합을 맞출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루셴.”
로빈은 느끼고 있었다. 루셴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루셴 ······후회하지는 않나?”
“······후회? 아니, 후련할 정도야. 오히려 최선을 다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키텔로 레인저다운 승리였으니까.”
루셴은 창백해진 얼굴로 기쁘다는 듯 웃어 보였다.
“어쩌면······ 로사도 이런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어.”
루셴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로빈은 그것이 로사를 떠올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로빈. 나는 단장에 적합한 놈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로사에게 끌려다녔었지. 넌 단장보단 부하 노릇이 나았을 거다.”
로빈의 대답에 루셴이 끌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녀석들을 부탁한다.”
“그게 무슨······”
로빈은 루셴의 말에 되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는 감기지 못한 루셴의 눈을 감겨주었다.
“······단장 역할은 몰라도, 넌 역시 뛰어난 사냥꾼이다.”
지금도 이렇게 방심한 틈을 타, 자신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으니 말이다.
“이쪽이다! 여기서 신호탄이······.”
“로빈? 루셴······?”
그때 로빈의 신호탄에 뒤늦게 달려온 키텔로 레인저들은 눈앞의 광경에 입을 다물었다.
눈을 감고 있는 루셴의 모습.
키텔로 레인저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오랜 동료이자, 자신들의 단장이 멀리 떠나갔음을.
잠시 후.
루셴의 시신을 숲 밖으로 들고나온 키텔로 레인저들은 작게 고개를 숙이며 조의를 표했다.
각자 감정을 억누르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자유로운 화살이 되고 싶다더니······ 결국 쏘아졌구만.”
“로빈······ 단장의 마지막 말을 들었나?”
“······그래. 후회는 없다더군.”
로빈은 루셴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던 것도······.
“단장직을 네게 넘겼다고?”
“······그래. 물론 루셴의 의사일 뿐, 나는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때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갬비스가 피식,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장······ 아니, 루셴 녀석. 결국 저질렀구만.”
“그게 무슨 소리지?”
“로빈. 사실 루셴은 이전부터 차기 단장으로 너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로빈이 당황함 반, 의아함 반으로 쳐다보자 갬비스가 말을 이었다.
“루셴은 네가 다시 돌아오길 바랐어. 너만큼 키텔로 레인저를 이끌 수 있는 자가 없을 거라 했지.”
“로빈.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아니, 잠깐······ 그건 불가능하다.”
갬비스를 비롯한 단원 전부 로빈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당황한 로빈이 뒷걸음질 쳤다.
자신 역시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나 마찬가지다.
키텔로 레인저를 떠난 외부인이 어떻게 단장직에 오른단 말인가.
“게다가 이미 나는 세이비어 결사단에 몸담고 있다. 너희들을 이끌 수는 없다.”
로빈은 제이드 일행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로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단원들.
“그래.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그래서 말인데······.”
갬비스는 잠시 다른 단원들과 시선을 교환하곤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를 받아줄 수 있나?”
“그게 무슨 말이지?”
“세이비어 결사단······ 악마와 맞서 싸우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잖나. 그리고 우리는 너희에게 목숨을 빚졌지. ······지난밤, 루셴이 말했었다. 네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제이드 백작이 세상을 구할 재목이라고. 우리도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이야.”
갬비스의 말에 로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루셴 녀석. 언제 또 그런 생각을······.’
분명 키텔로 레인저가 합류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이 녀석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때 다른 단원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로빈, 키텔로 레인저는 은원이 철저하잖아. 우리 단원들을 죽게 만든 악마들을 내버려 둘 것 같아?”
“레인저는 숲의 위험을 감시하는 역할이야. 단지 이번엔 대륙으로 넓힐 생각인 거고.”
“그리고 네가 결사단의 수색대장이라며? 결사단에 들어가면, 어차피 네가 우리를 이끌 거 아냐?”
“차기 단장은 너다. 로빈.”
“루셴도 그걸 원할 거야.”
“아니, 우리 모두가 원하고 있어.”
키텔로 레인저들은 로빈을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너희들.”
“당신들의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그때 로빈의 뒤로 한 사내가 다가왔다.
로빈의 친우이자, 상관.
그리고 세이비어 결사단을 이끄는 제이드였다.
제이드는 잠시 바닥에 놓인 루셴을 향해 명복을 빌고는 로빈의 옆에 섰다.
“제이드······.”
제이드는 로빈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곤 키텔로 레인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키텔로 레인저.”
“예!”
그들은 곧장 자세를 고치며 섰다.
잠시 후, 그들의 상관이 될지도 모르는 사내였으니.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제이드가 만족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의지는 잘 알겠습니다. 최고의 레인저들이 합류한다면 세이비어 결사단의 단장으로서도 영광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이드는 고개를 돌렸다.
단원들 역시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참혹한 전장의 광경이 펼쳐졌다.
망가진 세계수와 그 앞에 쓰러진 드래곤의 사체.
그 말고도 불타고 상처를 입고 쓰러진 수많은 동물.
세계수의 소생이 일어나며 일부를 회복했다지만, 그 참혹한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제이드는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 일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더 끔찍한 난관이 있을 테죠.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겁니다. 그 결심······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키텔로 레인저는 평지를 걷는 걸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길이 없는 곳일지라도 행군을 멈추지 않지요. 우리에게 명령한다면 강이든 절벽이든 건널 것입니다.”
그에 갬비스가 곧장 대답했다.
‘이 녀석들······.’
그제야 로빈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즉흥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었다.
그들 역시 짧지만 심사숙고하며 판단하고 내린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제이드 역시 그 마음가짐을 알 수 있었다.
“좋습니다. 키텔로 레인저. 당신들도 받아들이죠.”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이드의 승낙에 키텔로 레인저들이 환하게 웃어 보이며 환호했다.
그리고 그런 제이드의 시야로 한가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키텔로 레인저가 세이비어 결사단에 합류했습니다.] [세이비어 결사단의 평균 전투력이 82에서 88으로 상승합니다.]‘이제 남은 건 엘프들인가.’
로빈과 키텔로 레인저들이 루셴을 찾는 사이, 제이드는 엘프들과 연합을 요청한 상태다.
뛰어난 사냥꾼인 키텔로 레인저.
거기에 뛰어난 정령술과 활 솜씨, 그리고 드루이드인 엘프들이 합류한다면?
‘세이비어 결사단은 커다란 날개를 달게 될 거야.’
그렇게 된다면 세이비어 결사단은 비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날갯짓의 방향은······
‘······베르딘 제노사이드. 그곳부터 막는다.’
* * *
“······그게 사실인가?”
“예, 확실합니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현재, 미하일은 정찰을 나갔다 돌아온 자신의 부관, 레이첼의 보고 받고 있었다.
“반드시 후퇴해야 합니다. 가망이 없어요. 제이드 부사령관? 그가 합류해도 상대할 수 없을 게 분명합니다.”
협곡 안쪽에는 수없이 가득한 마수들이 바글거린다고.
이대로 협곡에 진입했다가는 개죽음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는 날것에 가까운 보고.
보고하는 레이첼의 목소리가 겁에 질린 듯 작게 떨리고 있었다.
“사령관님. 차라리 당장 이 사실을 알리고, 믿는 자들이라도 모아서 제국을 먼저 쳐야 합니다. 놈들이 방심하고 있는 이 순간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진정하지, 레이첼. 감정에 먹히지 말게.”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미하일은 레이첼을 다그치며 말했다.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내 목소리가 그들을 움직일 것 같나? 나 혼자로는 역부족이야.”
제국의 백작이 돕더라도 어려울 것이다.
아니, 그런 호소를 할 수 있는 거라면······
‘······제이드, 정도겠지.’
미하일은 연합군에 합류하며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이드의 명성은 전 대륙에 퍼져 있다는 것.
그것도 심지어 ‘악마와 대적하는 자’로서 말이다.
마누스를 대표하는 사령관으로서 미하일은 각국의 지휘관, 장군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들 전부 하나같이 제이드에 관해서 물었다는 것.
······심지어는 적국이었던, 그리고 사실상 제이드 때문에 패배했던 페르딤 공화국의 장군마저 남몰래 물어볼 정도였다.
그런 지휘관들의 눈에는 묘한 흥미나, 동경심이 품어져 있다는 걸 미하일은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적장이고 원수라지만, 제이드의 업적은 실로 영웅스러운 면이 있었으니.
‘제이드가 이곳에 있었다면······ 이들을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기에 미하일이 제이드가 있었다면 설득하기 쉬웠을 거라는 가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툭. 투둑.
막사 내부의 간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린 미하일이 심사숙고했다.
어쩌면 임무를 바꾸는 게 나았을까?
‘아니, 생명의 숲 역시 제이드가 아니고선 감히 해결하기 힘든 문제일 것이다. ······차라리 제이드가 여러 명인 걸 바라는 게 낫겠군.’
언제부터 제이드를 이리 의지했단 말인가.
미하일은 지금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머금었다.
‘마냥 제이드를 기다릴 수는 없다.’
결국 이 모든 작전의 핵심 목표는 한 명이다.
‘연합군의 총사령관, 마이어스 공작.’
잠시 자리에서 일어난 미하일이 막사의 입구를 거뒀다.
그러자 휘몰아치는 눈보라 사이로 저 멀리 태양이 그려진 제국기가 펄럭이는 게 보였다.
“여기에서부터, 악마를 목격한 곳까지.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했지?”
“약 10킬로미터 정도······ 그 부근부터 마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잠시 거리를 생각한 미하일이 자신의 부관을 향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그 지점까지 제이드의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목표를 암살한다.”
이곳이 함정인 줄 알면서 온 이유.
그건 대학살을 막기 위함도 있지만, 이 모든 흉계의 배후자, 마이어스 공작을 제거하기 위함도 있다.
‘달라질 건 없다, 단지 오르막길이 좀 생겼을 뿐이다.’
그렇게 판단한 미하일은 기사 몇 명을 불러 만일을 위한 퇴로를 확보해 놓으라고 명령했다.
암살이 실패한, 최악 중 최악의 경우, 이곳에서 빠르게 이탈할 필요가 있을 테니.
그런데 그때였다.
“마누스 왕국의 사령관 미하일. ······맞습니까?”
한 기사가 미하일의 막사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온 것이다.
그 모습에 미하일의 부관, 레이첼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놈! 지금 무슨 무례를─”
“레이첼. 그만해라.”
그를 막아선 건 다름 아닌 미하일이었다.
“······총사령관의 기사가 여긴 무슨 일인가?”
바로 저자가, 마이어스의 기사였으니.
그 말에 레이첼은 깜짝 놀라는 것이 보였으나, 미하일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기사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이 더 충격적이었으니.
“총사령관께서 미하일 사령관을 초대했습니다.”
뭐? 마이어스가?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미하일은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이 야밤에 호출이라니······.”
“저는 전언을 할 뿐입니다. 총사령관께서는 지금 즉시, 혼자 와주시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
미하일의 속이 꺼멓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옆에선 레이첼을 포함한 부하들이 불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다녀오지.”
미하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며 기사를 따라나섰다.
제국기가 걸린 막사의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커피향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가 올라간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그 맞은 편에는 잘생긴 사내가 앉아있었다.
마이어스 공작이었다.
그는 미하일을 향해 손짓하며 의자를 가리켰다.
“앉지.”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미하일은 조심스레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그러나 마이어스 공작은 말없이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한 모금을 천천히 음미했다.
고요 속, 어딘가의 풀벌레 소리가 울렸고, 공작의 등 뒤 철제 새장 속 검은 새가 눈을 끔뻑거렸다.
미하일은 그 평범하면서도 무거운 공간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심장이, 이상하리만큼 빨리 뛰기 시작했음을.
“미하일. 그대와 그대의 고국이 지난 1년간 악마와 마수의 습격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음을 잘 알고 있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자네가 사령관으로 왔을 때는 기뻐했지.”
“······영광입니다. 총사령관님.”
미하일은 형식적으로 인사하며 속으로 의아해했다.
갑자기 칭찬이라니······ 무언가 수를 펼치려던 게 아니었나?
이상함에 미하일이 눈을 굴리는 그때, 마이어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서 자네에게 한가지. 기회를 줄까 하고 있는데. 선봉에 서줄 수 있겠나?”
“······선봉 말입니까?”
“그대들은 이미 악마와 마수들과 싸운 경험이 있으니······ 이번 일에서 귀감을 보이고 활약해줄 수 있지 않겠나? 황제 폐하 역시 그대들에게 거는 기대가 꽤 크다네.”
그 말을 들은 미하일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갑자기 그게 무슨······.’
선봉.
전투에서 선봉을 양보한다는 건 그만큼 신뢰하고, 명예로운 일을 주는 일이다.
다른 사령관이나 장군이 들었다면 시기하거나 시샘을 보낼지도 몰랐다.
하지만 함정인 것을 아는 미하일에게는 그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
말은 분명히 부탁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협박이나 강요 같은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경고?’
아니 그것도 아니다.
경고는 어떤 것을 하지 않게 힘을 행사하는 것이니.
마치 짐승의 으르렁거림이나 경고의 시선처럼 말이다.
미하일은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커피를 음미하는 마이어스 공작의 모습.
마이어스에게서는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경고가 담긴 살기보다는······ 여유.
‘······선언.’
마치 먹잇감을 이미 물어 놓고는, 발 앞에서 굴리는 것 같은 행위.
먹이가 도망칠 우려나, 경계 따위는 없는······
‘······일종의 정복감이다.’
그러한 것들이 눈앞의 사내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30년이라는, 짧은 인생이지만 미하일은 수많은 이들을 마주했다.
당장 그의 아버지, 솔레른 그란디스 백작부터가 노련한 장군이자, 정치인이었으니까.
그 외에도 한 나라의 국왕이나 고귀한 핏줄들을 만나왔다.
철이 들기 전부터 칼날 같은 정치판 위에서 기세와 냉철함을 배운 이들을 상대해왔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느낌은 처음이었다.
강력한 짐승의 앞에 선 피포식자 같은 기분.
자신의 목에 맹수의 발톱이 들어선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미하일은 곧장 판단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
“총사령관님, 저와 제 부대의 용맹함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아시다시피 저희는 병력이 적습니다. 제국과 함께 선봉에 서고 싶지만, 수 차례 전쟁을 겪으며 병력을 차출하기엔 어려워서 말입니다. 그러니─”
─이 제안은 사양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려는 미하일을 향해 마이어스가 태연하게 말했다.
“일부 병력을 움직여서 산맥을 수색하고 있지 않았나? 그런 작전을 펼칠 여유가 있을 정도라면······ 선봉에 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말이네.”
그 말을 들은 미하일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드러내지 않고자 노력한 미하일의 가면이 깨져나간 것이다.
그만큼 미하일의 속은 동요하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분명 수색조의 작전은 완벽했다.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지 않았던가.
1분이 넘지 않는 시간에 야영지를 이탈했을 텐데······
그런 미하일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의 가정이 스쳤다.
‘설마······ 처음부터 감시하고 있었다고?’
그렇다고 쳐도, 들키지 않고 최선을 다했는데······.
미하일은 다시금 고개를 들어 눈앞의 마이어스 공작을 바라보았다.
‘이 인간은······ 시야와 정보의 급이 다르다.’
미하일은 소름을, 알 수 없는 좌절감을 느꼈다.
인간이 아닌, 악의 능력을 다루는 존재.
그런 자의 그림자가 미하일의 발아래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이미 족쇄를 채워 놓은 것처럼.
그런 미하일을 향해─
“응? 어떻게 생각하나, 미하일 사령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마이어스 공작의 검은 동공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