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굴라그 산맥이 붉게 물들었다.
겨울만 되면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절경을 비추어야 할 굴라그 산맥이 말이다.
멀리서 본다면 그 모습은 새하얀 도화지에 그린 붉은 꽃밭 같으리라.
언뜻 보아서는 대비되는 두 색깔이 아름답게 비추지만, 가까이 다가선 순간엔 두 눈을 의심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캬아아악!
그워어어어─!
족히 1만 마리에 다다르는 마수들.
하나 같이 기이한 생김새를 지닌, 이 땅에서는 목도할 수 없는 존재들.
그것들이 꿈틀거리며 산맥 아래로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굴라그 산맥에 지옥의 강이 범람하기라도 한 것인가.
그리 생각할 만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편 그런 굴라그 산맥의 상공 위로 한 무리의 화이트 와이번이 선회하고 있었다.
“······젠장, 굴라그 산맥이 저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대장?”
그들은 제국 소속의 와이번 정찰 부대였다.
마누스 왕국의 그리핀 부대처럼 황실 직속 부대로써, 굴라그 산맥 남부 절벽 지대에 서식하는 와이번을 길들여서 전투 병기로 다룰 수 있는 조련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본래 그들은 이민족 사냥꾼들이었으나, 그 전술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기사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이들이었다.
정찰 부대의 장교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산맥을 빠져나오고 있는 마수들.
소형 동물만 한 작은 마수들부터 인간처럼 생긴 마수들, 심지어 집채만 한 거대한 마수들도 간간이 보였다.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갖가지 생김새를 지닌 크리쳐들이 하나의 물줄기처럼 이리저리 뒤엉킨 채 인간의 영토로 범람한다.
“저 악마들과 마수들이 향하는 곳은 아마 제국이겠지. 큰 도시에 닿는 순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을 거야. 어서 빠져나가서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일단 이 자리에서 빠져나간 뒤, 성으로 돌아가서 마수들에게 대항할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런 게 있을 지나 모르겠지만.
“전 부대, 기수를 돌린다!”
그런데 그때.
푹! 푸북!
지면에서 날아든 기다란 촉수 몇 가닥.
그것이 와이번 기수를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뭐, 뭐야!?”
“발터!”
당황한 장교가 아래를 내려보자, 어느새 거대한 가오리처럼 생긴 악마가 허공에 뜬 채로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 크하하하! 인간! 아직 남아 있는 인간이 있었다니! 내게 먹이가 되러 온 것이더냐?
악마는 가오리 같은 몸을 펄럭이며 그들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악마의 몸체에서 두꺼운 촉수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젠장, 발각되었다! 모두 후퇴해라! 악마다!”
장교는 곧장 화이트 와이번의 고삐를 잡아끌며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사람 팔뚝만 한 촉수들이 기이하게 꺾이며 순식간에 날아들더니, 장교의 어깨를 꿰뚫은 것이다.
“끄아아아악!”
순식간에 촉수에 꿰어서 매달려버린 장교가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대장님!”
“빠, 빨리 가라! 본분을 잊지 마라!”
장교는 고통에 이를 악물면서도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들은 정찰 부대다.
설령 열이 죽는다 해도 한 명만이라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성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급히 선회를 시작하는 정찰 부대의 와이번들.
마누스 왕국의 그리핀만큼 빠른 기동력은 없어서 은밀하고 빠른 정찰은 불가능하더라고 대놓고 적진 상공을 순회할 만큼 튼튼함을 지닌 게 와이번이다.
하다못해, 공격해서 맞불을 놓을 수도 있었다.
방어력만 있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는 제왕이라고 불리는 종족이니까.
하지만 그의 생각은 실현되지 않았다.
크에에에!
애초에 와이번들은 겁에 질려서, 기수의 명령이 내려지기도 전에 방향을 틀어서 제멋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습게도 화이트 와이번들의 도주 역시 불가능했다.
콰드드드!
날아든 촉수들이 와이번들의 머리를 일거에 꿰어버리고는, 뒤이어서 기수들까지 노렸으니까.
“대, 대장님! 사, 살려주십시오!”
“대, 대장님! 아아악─!”
“끄아아아악!”
그 누구도 도망치지 못했다.
하늘을 날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살점과 핏덩어리가 되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이게 무슨······.’
그 광경을 장교는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정말로 도망갈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우습구나.
어느새 장교의 앞까지 다가온 가오리 형태의 악마.
녀석은 장교의 어리석은 선택을 비웃으며 천천히 입을 벌렸다.
장교는 천천히 다가오는 악마의 거대한 입을 보며 느꼈다.
‘이건 더 이상 전쟁이 아니야.’
그가 느끼기엔 이건······
종말······ 이건 종말이다.
콰득!
그것이 장교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한편 그 시각.
엔힐 공작은 말을 타고 제국의 어느 평야를 내달리는 중이었다.
제이드 일행과 헤어진 그녀는, 세계관측자들과 함께 제국을 북부를 횡단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제국 북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도시였다.
도시 내부는 수레와 돼지의 몸뚱어리에 짐을 실은 피난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은 제국 밖에서 살아가는 사냥꾼과 농부들이었는데, 그들은 전부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퇴각하던 군대라도 만났던 것일까? 아니면 마수들의 습격이라도 받은 것일까.
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엔힐 공작은 그들을 지나쳐 곧장 도시 내부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 노인과 만날 수 있었다.
파가튼 사령관.
황제의 측근이자 오랜 시간 동안 국경을 지켜온 노장이었다.
동시에 황제와 함께 마이어스를 견제하던 이 중 한 명이었다.
“엔힐 공작! 그대는 무사했군!”
“파가튼 사령관. 도시가 아주 혼란스럽더군요. 어떻게 된 거죠?”
“어젯밤. 잉그람 백작의 군대가 이곳을 지나갔소. 동시에 연합군의 상황이 전해졌지. 그게 사실이오?”
짧은 물음이었다.
엔힐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마이어스. 그자가 본색을 드러냈어요. 악마들을 소환하고, 마수들을 조종했죠.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서 황제 폐하를 대피시켜야 합니다.”
황제는 마이어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었다.
황성 내부에도, 그리고 수도 곳곳에도 마이어스의 수족이라 할 인물들이 황제를 감시하고 있었다.
마이어스가 본색을 드러낸 마당에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놈들이 움직일 것이란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파가튼 사령관의 주름진 얼굴이 더욱 구겨지며 곤혹을 표하는 게 아닌가.
“엔힐 공작. ······이미 늦었소.”
“······파가튼 사령관? 그게 무슨 소리죠?”
“수도의 심복에게 전보를 받았소. 슈피름 백작이 군대를 이끌고 황성에 진입했다는군.”
슈피름 백작이라면 마이어스의 심복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황성에 진입했다는 건······
“아마도 황성을 차단할 생각이겠지. 수도 역시 마비가 될 걸세.”
“맙소사······ 그게 무슨.”
아미를 구기는 엔힐 공작을 향해 파가튼 사령관이 제국의 상황을 이어 설명했다.
“마이어스의 세력들이 궐기하기 시작했소. 그 반대 세력들은 뭉쳐서 저항하기보다는 도주를 선택했지. 몇몇 귀족들은 서부 해안의 섬으로 숨어들기 시작했소.”
설명을 이어 나가던 파가튼 사령관의 얼굴에 점차 노기가 깃들었다.
쾅!
이내 분노한 파가튼 사령관이 발을 굴렀다.
“제국의 귀족이란 이름조차 아까운 놈들!”
“과격한 말이지만······ 이번엔 사령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군요.”
엔힐 공작은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거대한 악마의 그림자가 떠올렸다.
라웨굴.
지금껏 살면서 보아왔던 그 어떤 존재보다, 압도적인 격을 지닌 존재를.
그리고 그를 뒤따르던 악마들과 끝없는 마수의 군단을.
“어차피 막아내지 못하면 끝인 것을······.”
어디로 숨어들더라도, 그 악마의 시선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목적 없는 도피의 끝은 죽음으로 정해지고 말 테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결심했다.
그런 비루한 삶을 살 바에는 최후의 최후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파가튼 사령관. 저와 함께 싸워주시겠습니까?”
결심한 그녀가 파가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 *
“어서 움직여라!”
“가져갈 수 있는 짐들만 챙겨!”
북부 외곽의 한 도시.
제국의 기병대들은 도시 길목을 뛰어다니며 주민들을 향해 대피령을 내렸다.
“무조건 서쪽으로 이동해라! 서쪽이다! 제국 서부로 이동해!”
그렇게 시작된 피난민의 행렬은 끝이 없었고, 이 도시에서만 1만 명에 이르는 행렬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도시뿐만이 아니다.
피난령은 제국 북부 전체에 내려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1백만 명에 이르는 북부의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북부는 제국의 지방 중에서 가장 넓었고, 산간 지역에 있는 도시들과 마을들만 하더라도 수천 곳이었다. 제국의 기병대가 그 모든 곳에 들러서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만 한 세월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헐레벌떡 짐을 싸서 움직이겠는가?
일평생을 살아온 터전을 등지고 떠나는 일은 손쉽게 결정되지 않는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더라도 악마의 침공이라는, 전설 속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음을 믿게 하는 것은 웬만한 달변가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리라.
그래서 기어코 고집을 부려서 고향 땅에 남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을 그때.
드드드드─
피난민들이 밟고 선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 진동?”
“뭐야······ 대체 어디서?”
당황한 피난민들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고, 끝내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언덕. 그곳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마수 군단을.
“버, 벌써 여기까지······!”
“다들 어서 움직여!”
“하, 하지만 가져온 짐이······!”
“짐이 중요해? 당장 버리고 뛰라고!”
“으아아아─!”
피난민들은 하나둘 짐을 버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대로를 따라서, 숲의 길을 따라.
누군가는 지하실로 숨어들기도 했다.
그런 피난민들 모두,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곳이 제국이지 않은가.
대체 어디로 도망가란 말인가?
그런 의문을 품는 피난민들의 머리 위로.
쩌적! 쩍!
붉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괴물이 입을 벌린 것만 같은 모양.
불길하다 못해 음산한 균열에서는 이내 날개를 단 마수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침공이다! 제국이 공격당한다!”
마계의 침공.
그 시작은 제국의 국경에서부터였다.
* * *
우리는 알바트리온을 얻어 타고 곧장 마누스 왕국으로 향했다.
다만 알바트리온의 선내 탑승 인원은 1천이 최대인 만큼 전부 데려올 수는 없었기에, 미하일 휘하의 마누스 군대와 엘프들의 군대를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엘프들이 있으니까. 진군 속도는 느리지 않을 거야.’
아마 그들이 마누스 왕국에 도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쿠구구구구─!
구름을 가르고 지상으로 내려가는 알바트리온.
그 아래로는 마누스 왕국의 동부, 오르투스 지방의 모습이 펼쳐졌다.
동부 국경 너머로 펼쳐진 황금빛의 사막.
그 안쪽으로는 드넓은 들판과 수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델토르 백작가의 성, 에스트콕이 보이자 반가움이 느껴졌다.
‘저 성도 오랜만에 보네.’
회색숲, 페르딤과의 커다란 전투가 끝난 이후.
지금의 단원들과 함께 말을 타고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눈에 들어오는 건 커다란 암석산.
깎아지르는 듯 험준해 보이면서도 그 위로 무장된 요새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우리의 목적지인, 제이드 용병단의 본거지.
칼테르 요새였다.
저곳이, 마왕군에게 맞설 최후의 항쟁지가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