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7)
7화
한 시간 전.
“준비해. 슬슬 거의 다 온 것 같으니까.”
나는 수색조원들과 함께 놀들의 흔적을 따라 소굴로 향했다.
숨 쉴 때마다 놀들의 역한 누린내가 점점 진해졌다.
나와 눈을 마주친 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녀석도 냄새를 맡은 듯했다.
주변 풀숲에는 노란 터럭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영역표시로군.”
“아저씨. 그거 좀 나눠줘요.”
로빈의 말에 나는 로버트에게 손짓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로버트가 손수건을 꺼냈다.
뷔른 마을에서 가져온 가죽 더미로 로버트가 만든 것이었다.
“다들 이거 하나씩 받게.”
그는 조원들에게 손수건에 물을 적신 후 건네주었다.
놈들이 먹이를 가져간 지 1시간이 지났다.
지금쯤이면 동물들의 몸속에 넣어뒀던 약에서 수면 가스가 퍼지기 시작했을 거다.
휘발성이 강해 금방 사라지겠지만 만약을 대비하는 게 좋았다.
“뭐야 아저씨. 생각보다 손재주가 있네?”
“이 나이쯤 먹으면 재주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야.”
로버트가 웃어 보이며 데릭에게 손수건을 두 장 주었다.
“한 장 더 준 것 같은데?”
“자네는 두 장이야. 한 장으론 부족해 보여서 말이야.”
“어······ 응?”
로버트의 말에 데릭이 머리를 긁적이다 한 박자 늦게 깨닫곤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모습에 수색조원 모두가 낄낄거렸다.
그 뒤로 5분 정도를 걸어가자 마운틴 놀의 소굴이 보였다.
나뭇가지들로 엉성하게 엮어 안쪽이 다 비치는 집.
그 안에는 스무 마리가 넘는 놀들이 잠들어 있었다.
문득 덩치 큰 마운틴 놀 한 마리가 비척거리며 입구 밖으로 걸어 나왔다.
우두머리였다.
케헤엑. 케헥.
놈이 잠을 깨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내 초점을 잃고선 앞으로 기울어졌다.
쿵!
땅에 쓰러지며 커다란 소리가 울렸는데도 그 어떤 놀도 깨지 않았다.
“됐다.”
전부 확실하게 잠들었네.
‘괜히 잠들면 곤란해지니까.’
진한 살이풀 냄새.
나는 젖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다가갔다.
“이게 다 몇 마리야?”
“스물다섯? 스물여섯? 정규병 놈들 이거 보면 자빠지겠는데?”
“아, 우두머리는 건들지 마.”
우두머리는 산 채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공적 세우길 좋아하는 레이건은 이 방식을 선호할 테니까.
“걱정 말라고. 조장, 우리도 양심이 있지. 그건 조장 거야.”
내가 소유권을 주장한 줄 알았는지 조원들은 양보한다며 손짓했다.
아예 발로 땅에 선을 긋는 모습에 피식 웃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먹이를 먹다가 잠든 놀들의 입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웁.”
반쯤 씹힌 사슴 머리에 조원 몇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놈들에게 다가갔다.
그르렁거리며 깊게 잠든 놀의 목에 손가락을 누르자 부드러운 털 사이로 단단한 핏줄이 잡혔다.
대동맥이었다.
나는 인간형 몬스터를 잡을 때 목을 노리는 걸 선호했다.
단단한 근육을 뚫는 것보단 비교적 얇은 목을 치는 편이 더 쉬우니까 말이다.
목 날리는 것보다 확실한 건 없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뽑았다.
스릉!
서슬 퍼런 소리가 울렸고 검 끝이 목의 동맥을 향했다.
푹!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질긴 근육을 가르는 느낌이 손끝에서 전해졌다.
곧이어 놀의 목에서 울컥 피가 솟아오르며 바닥을 적셨다.
푹! 푸북!
나를 따라 조원들도 검을 휘두르거나 내질렀다.
“다들 확실하게 죽여. 괜히 잘못 찔렀다가 깨우지 말고.”
“엄마처럼 굴지는 마, 제이드. 우리가 그런 것도 못 할 것 같아?”
데릭이 안심하라는 듯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때 데릭이 찌른 놀의 목에서 피가 퍽하고 튀었다.
“우와아악!”
“제대로 안 자르면 저렇게 되는 거야.”
“이런 씨······.”
피투성이가 된 데릭이 찝찝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놀들을 죽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나 또한 잠들어 있는 놀들을 죽이고 경험치를 얻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LV. 3]오 빠른데?
어느새 3레벨이 되었다.
“조장. 이건 어떻게 해?”
데릭 패거리 중 한 명인 돼지코 롭이 한구석에 쌓여 있던 무기를 흔들었다.
마운틴 놀들이 쓰던 무기였다.
무기라고 하기도 뭐한 게, 구겨진 철 조각을 나무 몽둥이에 박아넣은 것이었다.
우리가 보급받은 낡은 검이 선녀로 보일 정도로 후졌다.
하지만 이런 쓰레기도 언젠가 쓸데가 다 있는 법.
“챙겨. 그거 다 전리품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롭을 뒤로하고, 레이건에게 선물할 놀 우두머리를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원체 힘이 좋은 녀석인지라서, 이중 삼중으로 칭칭 휘감는 게 안전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아 맞다. 그걸 깜빡할 뻔했네.”
나는 가장 커다란 움막으로 들어갔다.
우두머리의 움막이었다.
게임에선 보스를 잡으면 언제나 보상을 주는 게 공식이다.
그리고 그 공식은 이 세상도 마찬가지.
놀 무리가 있다면 보상도 존재할 것이다.
“아 여기 있네.”
우두머리의 집 한구석, 조잡한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놀 주제에 자물쇠도 걸어놨네?
빠각!
나는 열쇠를 찾는 대신 상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자물쇠가 고리채로 상자에서 떨어져 나가며 상자가 입을 벌렸다.
“누가 몬스터 아니랄까 봐, 반짝이는 것만 넣었네.”
상자 안에는 황금 조각, 녹슨 동전, 보석 조각 등 값어치가 나가는 재화들이 담겨 있었다.
“그럼 뭐해. 어차피 내 것도 아닌데.”
이런 전리품들은 우리가 가질 수 없었다.
보통은 레이건 같은 상관들이 챙기게 되니까.
애초에 나는 돈보다 장비 하나가 더 소중했다.
돈보다 목숨을.
10년간 나를 살려준 신조였다.
아마 우두머리라면 귀한 아이템이 있을 텐데······.
“오 찾았다.”
상자 맨 아래에 작은 녹색의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보였다.
[에메랄드가 박힌 목걸이]– 이름 없는 한 마법사가 홀로 산을 넘을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목걸이입니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보호막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하루 1회 사용 가능 (24시간 후 1회 충전)
“적어도 화살 한두 발은 막아주겠군.”
만족스러운 루팅이었다.
나는 목걸이를 품속에 넣고 데릭을 불렀다.
안 그래도 피투성이가 된 데릭은 놀의 시체들을 옮기며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무슨 일인데 불러 놓고 말이 없어? 얼굴에 뭐 묻었나?”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본대로 가서 지원군 좀 불러줄래?”
슬슬 우리 짝귀의 일그러진 얼굴이 궁금해졌다.
* * *
노을도 다 지고 별들이 희미하게 보일 때쯤.
수레 세 대가 야영지를 들어오고 있었다.
끼이익. 끼이익.
수레엔 죽은 놀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미친······ 저게 다 뭐야?”
“놀? 저게 다 놀이라고?”
그 광경에 놀란 민병들이 입구로 모였고, 레이건과 다른 병사들도 함께 다가왔다.
“이, 이게 대체······.”
수레를 가득 채운 놀의 시체에 레이건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색조장 제이드! 지휘관님이 주신 임무를 끝내고 복귀합니다!”
나는 레이건을 향해 최대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마치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쿵!
나는 레이건의 앞에 올가미에 칭칭 감긴 놀 한 마리를 놓았다.
케헥. 케헤에엑!
“마운틴 놀 우두머리. 산 채로 잡아 왔습니다.”
레이건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제이드. 자네는······ 자네는 영웅이야!”
산 채로 잡아 온 놀에 감동한 것인 듯 레이건은 쉴 새 없이 나를 칭찬했다.
그럴 때마다 레이건의 통통한 볼이 부들부들 떨렸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 호송대를 함정에서 구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놀 무리를 뿌리 뽑았어. 이게 영웅이 아니면 무엇인가!”
황금과 돈이 든 나무 상자엔 아예 함박웃음을 짓곤, 내 손목을 붙잡고 번쩍 높이 들었다.
와아아아!
민병들이 ‘제이드! 제이드!’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와 동시에.
띠링
[‘포식자가 될 것인가, 사냥감이 될 것인가?’ 돌발 이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마운틴 놀 무리를 완벽하게 사냥했습니다.] [특성 ‘용맹함(D)’을 개방합니다.] [마운틴 놀 우두머리를 생포했습니다.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스킬 : 화술(LV.1)이 개방됩니다.]퀘스트가 클리어되며 만족스러운 보상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2레벨이 올라 벌써 5레벨이 되었고, 화술 스킬이 개방되었다.
‘지난번에 5레벨 된 게 아마 부대 배치받고 나서였지?’
빠른 성장 속도에 미소 지으며 개방한 특성을 바라보았다.
[특성 : 용맹함(D)]– 용기가 샘솟습니다. 두려움을 쉽게 떨쳐냅니다.
– 전투력 +5, D등급 이하의 공포에 쉽게 걸리지 않습니다.
‘만족스럽군.’
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사이 레이건은 손을 들어 민병들에게 행군을 알렸다.
“수색조원들이 문제를 해결했으니 내일부터는 행군 속도를 높이겠다. 이틀 내로 ‘아케르 요새’에 도착할 것이니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그러곤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제이드. 큰 공을 두 번이나 세웠어. 막 징집된 민병이 세웠다기엔 아주 큰 공이야. 반드시 이 일들은 그란디스 백작님께 알리겠네.”
“감사합니다. 지휘관님.”
나는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뒤, 정예병 수색대를 향해 다가갔다.
“저희 할 말이 남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짝귀와 수색병들의 얼굴이 굳었다.
정규병들이 사냥한 놀은 총 14마리.
한편 우리가 사냥해 온 놀은 총 25마리였다.
심지어 그중 한 마리는 우두머리였으니 승패는 명확했다.
“저희의 승리니 약속을 지키셨으면 좋겠는데요.”
씩 웃어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최대한 얄밉게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수색조원들도 정규병들을 한 명씩 마주 보며 섰다.
짝귀가 손뼉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정한다. 네가 내기에서 이겼어. 근데 말이야······.”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급품은 바로 못 줄 것 같다. 군법상 함부로 줄 수가 없어서 말이야.”
내가 가만히 있자 녀석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걱정 마. 너희가 정규병이 되면 반드시 줄 테니 말이야. 정규병이 되면 말이지.”
“그게 뭔 개소리야? 내기했잖아!”
데릭을 비롯한 조원들이 항의하고 나섰으나, 병사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외려 적반하장을 부렸다.
“이것들이! 신병 주제에 욕심이 그득그득해서 상관한테 대들어? 다 죽고 싶어?”
짝귀의 말이 맞았다.
꼬우면 짬이 높아야지.
‘그래도 여기서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는데.’
모두가 보는 앞에서도 이렇게 뻔뻔할 수 있다니.
그런데 그때.
“이거야 원,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네.”
한 털북숭이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에 섰다.
윌슨이었다.
“위, 윌슨 병사님······!”
“너희가 아주 병사 망신을 다 시키는구나?”
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정규병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그게 아니라······.”
“아니긴 지랄. 신병한테 진 새끼가 뭘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있어!”
빡!
윌슨의 주먹이 빠른 속도로 짝귀의 얼굴을 강타하자 놈이 뒤로 넘어갔다.
코를 감싼 녀석의 손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아주 군기가 해이해졌어! 호송 나왔다고 개념도 두고 나왔냐?”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군생활이 끝나냐!”
윌슨은 고함을 치면서 다른 수색병에게도 주먹을 갈겼다.
역시 윌슨 병사님.
아주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신병보다 좀 더 높을 뿐, 정규병들 또한 우리랑 다를 거 없었다.
특히 지휘관과 함께 회의를 들어갈 정도로 권한이 높은 고위 병사 윌슨 앞에선 말이다.
내가 괜히 잘 보이려 한 게 아니란 말이지.
실제로 놀 사냥이 끝난 뒤로 윌슨의 호감도는 대폭 상승했다.
[현재 호감도 – 관심 (51/100)] [현재 평가 : 아주 쓸모 넘치는 귀여운 신병새끼. 저 폐급들보다 훨씬 나아!]그뿐만이 아니었다.
“제이드. 정규병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 사실인가?”
“미, 미하일 부관님?”
미하일이 개입하자 짝귀의 얼굴은 아예 혼란스러워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대체 뭐길래? 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원래 병사 간의 알력 다툼은 흔히 있었다.
갓 징집된 신입의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아마 그동안은 암묵적으로 허용해왔으니 이번에도 자신 있었겠지.
하지만 윌슨과 미하일이 끼어들자 그 양상은 달라졌다.
미하일은 능력 있는 부하를 우대하고 포섭하려 한다.
윌슨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 녀석이라면 잘 대해주고, 말이다.
큰 공을 두 번이나 세운 나와 연달아 실패한 짝귀.
어느 쪽이 이쁜 놈이고 미운 놈인지는 5살 코찔찔이도 안다는 거다.
“······알겠습니다.”
미하일과 윌슨의 압박에 결국 승복한 정규병들은 보급품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우핫핫핫! 제이드. 덕분에 잘 쓸게.”
“고맙네, 제이드.”
“······고맙다.”
수색조원들은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정규병들과 보급품들을 하나씩 바꿨다.
낡은 신발과 가죽 신발을 바꾸거나, 다 해진 옷을 갑옷과 바꾸기도 했다.
나는 짝귀의 물품 중에서 검을 가져갔다.
검날은 잘 갈려 있고 흠집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름 신임받았었는지 정규병치고 양질의 검을 가지고 있었다.
“오, 꽤 쓸만한 검이네요. 잘 쓸게요.”
“잠깐! 교환이라며. 왜 네 검은 안주는 거지?”
“이건 제가 쓸 건데요? 드릴 건 따로 있습니다.”
“······뭐? 그럴 리가. 신병이 어떻게 무기가 여러 개야?”
짝귀가 내 낡은 검을 가져가려 하자 나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내 대답에 짝귀가 나를 노려보았다.
“제가 전리품을 좀 얻어왔거든요.”
철 조각이 박혀 있는 나무 몽둥이를 건넸다.
그러자 녀석의 표정이 굳은 것이 아무래도 감동이라도 받은 듯했다.
무려 마운틴 놀 우두머리가 쓰던 무기였다.
위력 하나는 끝내줄 무기였다. 몇 번 휘두르면 부서질지 몰라도.
“제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드십니까?”
* * *
은은한 달빛이 야영지를 비추었다.
지휘소 안으로 들어가자 미하일이 의자에 앉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제이드. 아니 이제 수색조장이라 불러야 하나?”
“과찬이십니다.”
그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미하일은 내가 자리에 앉자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를 부른 건 자네의 능력 때문이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가만히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미하일은 턱을 쓰다듬으며 자세를 낮추곤 말했다.
“솔직히 말하지. 자네는 레이건을 믿나? 그는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쁜 옹졸한 사내야. 아마 자네가 세운 전공들도 전부 가로채겠지.”
자신의 지휘관을 하대하는 모습에 나는 놀라는 척했다.
그의 눈은 지금껏 보였던 것보다 싸늘했다.
아니 싸늘해진 게 아니다.
이게 진짜 그의 모습인 거지.
미하일 그란디스 .
웅크린 철사자.
철혈의 기사 그리고 아케르 요새의 주인인 그란디스 백작의 삼남.
황금사자 기사단의 단장.
나는 머릿속에서 그의 별명을 하나둘 떠올렸다.
‘그리고 훗날 패륜의 기사라 불리었지.’
내가 미하일에 대해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동안에도 그는 나에게 말했다.
비릿한 미소를 지은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지도를 펼쳐 보였다.
“요새에 도착하면 자네들은 보병부대로 편입될 거야. 이후엔 주변 초소에서 경비나 서겠지. 사실상 사람을 계속 갈아 넣는 고기 방패나 다름없는 곳이지. 웃기지 않나? 지금의 전쟁은 능력이 있는 자들을 활용하고 있지 못해. 그저 평민이라고 무시하고, 자신의 공을 뺏길까 봐 숨기기에 급급하지.”
지도를 툭 툭 치던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다르네. 자네만 원한다면 아케르 수색대로 편성시켜줄 수 있지. 자네라면 금방 두각을 드러낼 테고. 그곳에서 활약해 보는 건 어떤가?”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입가를 쓸었다.
‘자기 신분을 숨길 생각이 없는 건가. 아니 신임하니까 얼핏 보여주는 건가.’
그만큼 미하일에게 쌓은 호감도가 단단하다는 뜻이었다.
아케르 수색대라······ 짝귀 녀석과 같은 일반 수색대와는 급부터 다른 곳이었다.
아케르 요새의 정규군 가장 서열이 높은 부대이니 사실상 나를 제대로 밀어주겠단 뜻이었다.
그만큼 나를 신임한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잠시 생각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왜지? 죽는 게 두렵지 않나? 자네 같은 인재가 낭비되는 걸 나는 원치 않네만.”
미하일의 푸른 눈동자 사이로 내 모습이 비쳤다.
나는 최대한 어수룩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머리를 긁었다.
“저희 조원들과 정이 들어서 말입니다.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미하일의 입술이 찡그려졌다.
띠링!
[미하일의 호감도가 하락했습니다. (-10) [현재 호감도 – 관심 (32/100) [현재 평가 : 생각보다 어수룩하군. 하지만 그 부분을 보완한다면······.]대답을 듣자마자 미하일의 호감도가 하락했다.
예상했지만 속이 쓰렸다.
재능있는 자를 포섭하고 무능한 자에겐 가차 없는 이가 바로 미하일이었다.
우정이라는 말은 그에겐 헛소리나 다름없다.
“······사사로운 정은 전장에서는 사치인데 말이지. 일단 알겠네. 생각이 바뀐다면 다시 찾아오게.”
한숨을 내쉰 미하일이 손을 내저었다.
축객령에 나는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나갔다.
간신히 쌓은 호감도가 날아간 만큼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거기서만 얻을 수 있었지.’
이번 내 목표는 살아남는 게 아니다.
용병왕이 되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보병부대로 들어가야 했다.
단순히 살아남는 거였다면, 산악부대도 좋은 선택이었을 텐데.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색조를 향했다.
“어이. 잠깐 면담 좀 할까?”
정규병 둘이 나를 막기 전까진 말이다.
* * *
정규병 둘을 따라 나는 으슥한 곳으로 갔다.
두 녀석이 내 양팔을 붙잡고 있었기에 내뺄 수가 없었다.
보급소 텐트와 물자들이 벽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나자, 짝귀와 수색병 몇이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왔냐?”
민들레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아들인 짝귀가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구아르 병사님. 갑자기 뭐 하시는 겁니까?”
“뭐긴 잠깐 선임들이랑 면담 좀 하는 거지.”
그 말에 수색병 넷이 킥킥거리며 내 주위를 둘러쌌다.
“지휘소 들락날락하더니, 미하일 그 새끼한테 대주기라도 했냐? 널 보는 눈에서 꿀이 넘치더라.”
“구아르 병사님. 일단 진정하시죠.”
“새끼 겁먹었냐? 간부들이랑 있으니까 그게 네 힘 같았지?”
수색병 녀석들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구석으로 몰아갔다.
이 새끼들 멈출 생각 없어 보이는데.
차라리 이 기회에 보호막을 테스트해볼까.
나는 몸을 움츠리는 척, 옷 안쪽에 있던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기세가 오른 짝귀가 내 볼을 툭툭 쳤다.
“거슬리게 하지 말고 얌전히 다녀. 응? 자꾸 설치니까 거슬리잖아.”
짝귀는 그렇게 말하며 담배 채로 주먹을 쥐었다.
“너 같은 새끼는 매가 약이더라고. 오늘 내가 고쳐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뿌드득 소리가 나는 주먹이 순식간에 내 얼굴을 향했다.
써야겠군.
목걸이를 사용하려고 마음먹은 순간.
턱.
녀석의 주먹이 단단한 무언가에 막혔다.
짝귀의 팔보다 두 배는 두꺼운 주먹이 보였다.
그리고 여기서 이런 주먹을 가질 녀석은······.
“어이 내가 제이드 건들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주걱턱이 보였다.
“데릭.”
“감사는 나중에 하자고 친구.”
녀석의 눈이 찡긋거렸고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얼굴을 찡그린 수색병들이 손을 풀며 다가왔다.
“넌 뭐야? 고릴라냐?”
“너도 죽고 싶 ̄ 어?”
그때, 데릭의 거대한 덩치 뒤로 민병들이 우르르 걸어 나왔다.
“죽인다며? 어디 한 번 해보시든가.”
“제이드를 건들면 우리도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정규병이면 다인 줄 알아?”
순간 당황한 수색병들이 주춤했다.
“아, 아니 우린 그게 아니라.”
그러는 순간.
띠링
내 눈에는 시스템이 떠올랐다.
[많은 병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받아들입니다.] [당신의 요구에 따라 하극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아니 그럴 생각까진 없다고.
나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에 그만 실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