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콜로세움에서 멀지 않은 한 건물.
한 사내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보고를 받고 있었다.
“헥토르의 새로운 선수가 누군지 모른다?”
“죄, 죄송합니다. 알려진 것이 워낙 적어서······.”
남자의 이름은 샤키르.
황금바람 검투회를 밀어내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 스콜피온 검투회의 주인이었다.
샤키르는 부하의 보고에 얼굴을 찌푸렸다.
헥토르의 새 선수인 ‘드이제 용병대’에 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사막에는 수많은 용병단이 있고, 웬만큼 유명한 용병이라면 이미 정보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단 말입니까? 그게 말이 되나요?”
“모든 용병 길드에 수소문해보았지만, 그와 관련된 정보는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말입니까?”
샤키르가 여러 차례 다시 묻는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기에, 부하의 숨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정말로, 그 용병들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예. 도시 내의 정보 길드들을 수소문 해봤지만 전부 모른다고만 하더군요. 아, 아무래도 입단속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누군지는 알아봤나요?”
“그것이······.”
샤키르의 물음에 부하가 잠시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헥토르 말고도, 푸른잉어상단이 관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샤키르가 이맛살을 구겼다.
헥토르에 푸른잉어상단까지.
바티스타에서도 거물 중에서도 진짜 거물 아닌가.
아니, 마누스 왕국은 물론 제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초거대 상단이다.
‘대체 그 용병의 정체가 뭐길래?’
거물들이 관여 했는데도 선수에 관한 정보가 없다.
이런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다.
의도적으로 정체를 숨겨서, 전력 파악을 어렵게 하는 유치한 술수.
헥토르 그놈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이리라.
샤키르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됐습니다. 어차피 용병 출신 따위가 할 수 있는 것도 적겠죠.”
어차피 어떤 녀석을 데려오더라도 황금바람 검투회는 자신의 스콜피온 검투회를 이길 수 없다.
자신에게는 ‘그것’이 있지 않나.
샤키르가 상단 일을 하던 중 한 마법사로부터 입수한 ‘아티팩트’.
약간의 대가로 자신에게 큰 이윤을 가져다준 보물이었다.
떠오른 물건에 빙그레 웃음이 솟은 샤키르는 부하에게 조금 너그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샤는 어디 있죠?”
* * *
아이샤는 핑 도는 어지러움에 잠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어딘가 음울한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 저런. 괜찮나?
“시끄러워.”
아이샤는 손에 들린 단검을 노려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만일 다른 사람이 본다면 그녀를 미치광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샤는 미치지 않았다. 정말로 단검이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이니까.
새까만 어둠을 재련하여 만든 것 같은 검날, 악마의 눈을 연상케 하는 장식된 호박.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의 단검.
그리고 아이샤는 이 무기가 악마의 아티팩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이 단검이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으니.
– 이제 한 달 정도 되어가던가? 나를 이렇게 오래 쥐고도 미치지 않은 건, 네가 처음이군.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무시했다.
돈만 아니었다면 이런 악마의 물건을 집을 일도 없었으리라.
오른손에 솟아오른 검은 핏줄에는 죽은 피가 고여 있었다.
이 단검은 사용자의 생명을 빨아들이는 사악한 물건이었다.
– 왜 그러지? 어디 아픈 것 같은데, 쉬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말투는 걱정스러웠지만, 그 목소리에는 웃음을 참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심호흡하며 두통을 이겨낸 뒤 아이샤가 방문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내색하면 안 되었다.
“얘들아 안녕!”
방 안에는 자신보다 어린 꼬마들이 있었다.
“누나! 왜 이제 와!”
“언니, 셰르줄이 나 괴롭혀!”
“아이샤 누나! 오늘은 간식 가져왔어?”
방 안에는 자신보다도 어린아이들이 한 손에는 무기를 하나씩 쥐고 연습하고 있었다.
“미안, 요즘 내가 바빴지?”
천진난만한 아이들.
하지만 스콜피온 검투회에서 이 아이들을 키우는 목적은 단순하고 잔혹했다.
언젠가 아이샤가 쓰러지면 이용될 대체품들.
아이샤 역시 하나의 대체품이었고,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돈을 주고 정당한 값에 팔려 온 아이들.
만일 아이샤가 폐기되는 순간, 이 순진무구한 아이 중 한 명이 대체될 것이다.
스콜피온 검투회가 전사들을, 아니 이 단검의 숙주들을 육성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버텨야 해.’
아이샤는 이 아이들이 고통 속에서 죽지 않기를 바랐다.
몇 년 전에 떠난 그녀의 친동생처럼 허무하게 죽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게 지금, 그녀가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순간 품고 있는 유일한 소망이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지금은 그저······ 기적이 일어날 때까지, 최대로 버티는 게 전부였다.
적어도 그녀가 이 검을 쥐고 있는 한, 다른 아이가 고통받지는 않을 테니까.
아이들에게 간단한 간식거리를 전달한 후, 아이샤는 훈련장으로 돌아와 검을 휘둘렀다.
후웅!
독기를 품은 그녀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오로지 단검 한 자루일 뿐이었지만, 그 속도와 세기는 여느 검사와 다르지 않았다.
카가가각!
훈련용 목각인형이 난자당하며 파편이 휘날렸다.
– 훌륭한 걸 아이샤. 그런 몸으로 나를 이렇게나 잘 다룰 줄이야.
“······.”
단검의 목소리는 재미있다는 듯 아이샤에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가 어딘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매일 같이 듣다 보니까, 그리고 위로나 칭찬 따위를 듣다 보니까, 의지할 곳이 한 곳도 없는 아이샤로서는 왠지 모르게 이 악마의 검이 친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악마의 물건과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다니······.
그렇게 멈칫거리는 아이샤의 심정을 꿰뚫기라도 한 듯, 단검이 물었다.
– 무슨 일이지? 무슨 문제가 있나? 나는 네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털어 놔보라고.
잠시 고민한 아이샤가 단검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 한 가지, 부탁을 할 수 있을까?”
– 그게 뭐지?
“너도 봤다시피 아이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팔려 왔어. 저 아이들이 탈출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없을까? 내가, 내가 잘할게! 내가 네가 원하는 만큼 해볼게!”
아이샤는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악마는 변덕스럽다고 하지 않는가.
만일 자신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지지고 있다면,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 오······ 정말 감동스럽군!
“부탁, 들어주는 거야?”
하지만 돌아온 건 코웃음 치는 목소리였다.
– 가엾은 아이샤! 도움을 청할 곳이 얼마나 없으면, 널 잡아먹고 있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이토록 안타깝고 이토록 가엾을 수 있다니··· 네 피가 더 감칠맛 나는 것 같구나!
비웃음과 비난.
하지만 아이샤는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지는 심정으로, 단검을 움켜쥐고 다시금 빌었다.
“부, 부탁이야! 원하는 건 다 해줄 테니까······. 내 목숨도 다 바칠게.”
– 멍청한 피조물에게 잠시 관심 좀 줬더니, 내가 널 총애하기라도 하는 줄 알았나? 큭큭! 가만히 있으면 질 좋은 어린 생명을 마음껏 취할 수 있는데, 내가 무슨 이유로 널 돕겠나?
“자, 잠깐만!”
아이샤가 다시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이샤는 입술을 씹었다.
이토록 무력한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경기에서 남을 해쳐야 한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을 줘야만 한다.
아이러니하고, 이기적이고, 죄스러운 현실의 굴레.
아이샤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으나, 꾹 눌러 참고는 옅은 한숨만 내보냈다.
“아─”
그러다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푸른 하늘이 미웠다.
“······응?”
그때 창밖으로 날아가는 새가 보였다.
푸른 눈이 반짝이는 은빛의 새였다.
아이샤는 문득 사막의 흰 매에 대한 전설이 떠올랐다.
사막의 어머니가 사람들을 굽어볼 때, 흰색의 매가 되어 지켜본다는 이야기.
“만약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면, 제가 이 지옥을 이겨낼 기적을 보내주시길······.”
아이샤는 은빛의 새를 떠올리며 기도했다.
* * *
나는 스틸 스왈로우의 시선으로 스콜피온 검투회를 관찰했다.
치팅이라면 치팅이겠지만, 이게 정정당당한 스포츠도 아니고 목숨이 오고 가는 검투 대회인데, 이것저것 가리는 게 바보지, 암.
그러는 사이 스틸 스왈로우는 스콜피온 검투회 건물 곳곳의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대부분 정보를 유추할 수 있었다.
“하, 이것 봐라? 아티팩트를 키우고 있었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헛웃음이 나왔다.
스콜피온 검투회. 녀석들은 악마의 아티팩트에 먹이를 주며 키우고 있었다.
먹이는 어린아이들의 생기.
놈들은 가난한 집의 아이들을 사서 데려와, 훈련을 시켜 숙주 노릇을 하게 만들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듣게 되었다.
– 만약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면······.
아이샤.
스콜피온 검투회의 핵심 인물인 현 챔피언이자, 내 상대.
그리고 악마의 아티펙트에 사로잡힌 숙주.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다가, 작은 희망을 움켜쥐고는 신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혀를 찼다.
“신은 쉽게 도와주지 않을 텐데 말이지.”
이 세계에 신은 실존한다.
마왕군이 인간들의 영토를 짓밟고 신들의 상징물들을 무너뜨리는 순간.
교단 등 신들을 추종자들이 신들의 힘을 빌려온 적이 있었다.
나 역시 목도했다.
하늘이 열리고, 마왕군을 향해서 신의 심판이 내리꽂히는 것을.
하지만 그런 기적도 한두 번 정도.
듣기로는 신들은 그런 힘을 빌려주는 것에 대가를 요구한다고 한다.
아마도 일종의 제물이겠지.
주신들을 비롯하여 이 땅의 종족들이 섬기는 신들이 어떤 권한과 목적을 가진 지는 모른다.
다만, 1회차의 경험을 통해서, 신에 관해서 내가 내린 정의는······.
“······무신경하지. 잔인할 정도로.”
인간을 도울 수 있는 건 같은 인간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악마의 아티펙트.
사실, 악마의 아틱펙트라고 할 지라도 무조건적으로 처리할 생각은 없었다.
앞서서 한 번 상기했듯이, 악마가 들린 무기일지라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서 다르니까.
악마 본체가 현현하는 게 아닌, 특정 매개체를 통해서 힘을 발휘하는 방식이라면 힘이 제한될 테고,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괜히 건드려서 골치 아파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런 방식이라면 위험하지.”
아이들을 먹잇감 삼아서 몸집을 키우는 에고 소드라면······ 언젠가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꼭 검투 대회 상대가 아니더라도 저런 놈이라면······.
“처리해야겠어.”
나는 허리춤의, 마기 포식자의 힐트에 손을 얹었다.
“배고프지? 맛있게 살찌운 녀석으로 포식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