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마침내 경기 당일.
나와 데릭, 그리고 드렌트는 경기를 위해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관중이 입장 중이었다.
그리고 콜로세움 한쪽 현수막에는 황금바람 검투회와 스콜피온 검투회의 선수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오크처럼 포효하는 데릭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빨이 엄니처럼 솟아난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아니라, 저거 엄니잖아?
데릭을 진짜 오크로 그려 놓은 것이다.
그 그림을 본 데릭이 분통을 터트리며 선수용 출입구로 들어갔다.
드렌트가 낄낄대며 따라 들어갔다.
우리가 참여할 경기는 메인 경기인 만큼 다른 크고 작은 이벤트 경기가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신기루 연구회에서 접촉하려는 헥토르의 노예. 라니스도 있었다.
라니스는 단거리 텔레포트 능력으로 탈출 경기에서 활약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 단거리 텔레포트 능력은 몸에 각인된 문신으로 발현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아마도 그것이 옛 왕국 후손의 증표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애초에 그런 문신 형태의 마법 회로는 흔치 않을뿐더러, 설정상 중요한 인물이 별다른 사연 없이 그런 걸 가지고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러면······ 드이제님, 부탁드릴게요. 몸조심하시고요.”
트루디아가 응원을 보내고 관객석으로 들어갔다.
그간, 신기루 연구회는 내 용병단으로 위장하여 황금바람 검투회를 드나들며 라니스와 접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설득하고, 함께 재앙을 막자고 권유하고 있었다.
아마 오늘도 라니스의 경기가 끝나는 대로 설득하러 갈지 않을까.
나는 대원들과 함께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대기실 복도에서 스콜피온 검투회의 선수들과 마주치게 됐다.
“응? 뭐야 용병 나부랭이잖아?”
허리춤에 찬 채찍과 팔에 찬 가죽 보호대.
군데군데에 철판을 덧댄 사내였다.
그 옆에선 펑퍼짐한 로브의 마법사 역시 우리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야수 조련사 애니모와 환상 마법사 일리시안이었다.
놈들은 복도에서부터 신경전을 벌이려는 건지 우리를 보고 으르렁댔다.
그런 두 녀석 뒤로 챔피언, 아이샤가 보였다.
맨 뒤에서 숨은 듯이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안 좋아 보였다.
연승의 기록을 세우고 있는 챔피언이라기에는 어딘가 피폐하고 작아 보였다.
“거기, 챔피언께서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히 말 걸지 마라. 듣도 보도 못한 삼류 용병 주제에.”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샤에게 말했다.
“신이 도울 겁니다.”
“······?”
내 말에 아이샤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나는 씨익 웃어주고는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데릭과 드렌트는 긴장한 듯이 몸을 풀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그러게. 전투보다 더 긴장되네.”
“구경꾼들이 있어서 그런가?”
수천 관중의 함성은, 검투사들의 피가 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잠시 후, 여러 크고 작은 경기가 펼쳐졌다. 우리도 방의 창을 통해서 경기장 일면을 볼 수 있었다.
각 경기는 콜로세움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어느새,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두었다.
“시작이다.”
우리는 관리자의 안내를 받아서 경기장 위로 올라갔다.
심지어 온갖 금은보화를 가득 쌓은 마차를 타는, 기이한 퍼포먼스와 함께.
– 신사 숙녀 여러분! 대망의 마지막 경기입니다! 콜로세움의 챔피언을 결정짓는 마지막 단체전!
경기의 사회자가 확성 마법을 건 수정구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 황금바람 검투회와 스코오오올! 피온 검투회!
사회자의 부름에 우리 셋이 마차에서 냐려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우와아아아!
쩌렁쩌렁한 함성.
데릭과 드렌트는 긴장한 건지 신이 난 건지 무기를 들어 보이며 환호에 부응했다.
나는 그사이, 경기장을 관찰했다.
적당히 단단한 바닥 위로 얇은 모래가 펼쳐져 있었다.
툭툭 발로 눌러보니 발이 빠질 정도는 아니다.
– 여러분! 저길 보십시오! 애니모가 록 드레이크를 끌고 나왔습니다!
우리에게 쏟아졌던 함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와아아아아───!!!!
근래 콜로세움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콜피온 검투회.
그들이 등장하자, 귀가 아플 정도의 환호성과 지축이 울릴 정도의 발 구름이 이어졌다.
야수 조련사, 환상 마법사, 소녀 암살자.
연전연승의 최강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거대한 괴물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
드래곤을 닮은 머리와 네 다리.
각갑처럼 솟아난 비늘 사이로 흰 갈기가 자란 아룡.
아직 성체가 아닐 텐데도 그 자태는 위엄 넘쳤다.
가히 날개 없는 드래곤이라 불리는 영물이었다.
– 한 달 전 애니모의 ‘록 드레이크’가 오크 전사 칼타라를 꿰뚫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록 드레이크의 날카로운 뿔이 두꺼운 방패를 찢고 칼타라의 심장마저 꿰뚫었었죠!
날카롭게 각진 뿔이 머리를 따라 전방으로 향해 있었다.
머리로 들이받기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겠군.
───!
괴물의 포효에 관중들의 환호성과 비명을 질러댔다.
“젠장, 저게 반칙 아니냐고. 3대 4잖아.”
괴물 조련사는 괴물이 무기라나.
무슨 병신 같은 규칙이 다 있는지.
‘물론······ 나는 그 규칙 덕에 큰돈을 벌게 되겠지만.’
“데릭. 말한 대로만 부탁할게.”
“크크, 알았어. 본때를 보여주자고.”
록 드레이크의 모습에 투덜거리는 데릭이 내 말에 씨익 웃었다.
우리는 숨을 고르고 무기를 뽑아 들었다.
경기가 곧 시작됨을 알리는 나지막한 북소리가 장내를 채웠다.
둥─ 둥─
치솟았던 함성은 점점 잦아들었고, 묵직한 긴장감이 빈자리를 메운다.
그리고.
뿌우우─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나팔 소리와 함께, 다시금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야수 조련사 애니모가 록 드레이크를 향해 채찍질했다.
콰앙!
땅을 박차고 달려드는 록 드레이크.
흡사 거대한 코뿔소······ 아니, 전차의 돌격처럼 느껴질 정도.
그때, 데릭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방패를 꺼내 들었다.
– 아! 저게 지금 뭐 하는 거죠! 록 드레이크를 상대로 방패라뇨!
가볍게 통통 튀며 들리는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데릭이 록 드레이크의 뿔에 꿰뚫려 날아갈 것이라는 상상을 할 것이었다.
하지만.
[돌격조장 ‘데릭’이 스킬 – 오우거의 괴력을 사용합니다.] [돌격조장 ‘데릭’의 힘이 10분간 2배로 증가합니다.] [돌격조장 ‘데릭’이 스킬 – 괴력(LV. 9)을 사용합니다.]“으라차차!”
쾅!
두꺼운 쇠 방패가 록 드레이크의 머리를 위로 올려 쳤다.
그 충격에 록 드레이크의 몸이 번쩍 들렸고, 데릭이 달려들어 놈의 앞다리를 붙잡았다.
사방에서 경악 어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 관객분들 보이십니까? 록 드레이크와 힘 싸움을 겨룬다니! 불가능한 짓을 벌이고 있습니다!
– 오크 전사들도 힘겨루기하다가 날카로운 발톱에 조각으로 썰려 나간 짓을! 저 덩치 큰 용병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앞으로 달려간다면 인간의 몸뚱이는 쉽게 산산조각이 날 터였다.
하지만 우리 데릭은 다르거든.
용력이라는 괴력을 발휘하는 특성과 더불어서, 힘을 2배 올려주는 아티펙트 투구까지 쓰고 있다.
그야말로 오크······ 아니, 트롤이나 오우거 등 거인 수준에 비견될 힘을 낼 수 있으리라.
– 마, 막아냈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록 드레이크를 붙잡았습니다아아!!!
경악한 사회자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제이드! 빨리 해!”
곧이어 온몸이 부들거리는 데릭의 외침에 달려 나갔다.
‘자 그럼 어디 한 번 길들여볼까?’
그런 내 손에는 오래된 고삐 하나가 흔들렸다.
[아이템 정보]이름 : 마야의 고삐
설명 : 숲의 정령의 피를 이은 드루이드 마야의 오래된 고삐입니다. 숲의 정령의 기운이 묻어나오는 고삐는 어떤 난폭한 동물이라 해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효과 : 1) 테이밍 (LV. 2) 생성 2) 고삐를 씌운 짐승의 경계심이 하락합니다.
망령왕에게 선물 받았던 ‘마야의 고삐’가 말이다.
* * *
“젠장, 긴장되는군.”
포도주를 병째로 들고 마신 헥토르가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헥토르는 VIP룸에 있었다.
아래에서 함성을 지르는 관객들은 10실버 100실버 같은 푼돈을 걸며 소리쳤지만, 헥토르는 달랐다.
콜로세움의 이권과 지분이 걸려 있는 만큼 장기적인 가치는 함부로 계산하기도 어려웠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도 자신의 승에 배팅했다고 했지. 그것도 꽤 거하게.’
문득 드이제가 배팅한 것이 떠올랐다.
물론 저놈의 동료가 한 것이지만, 눈 가리고 아웅 아니겠는가.
콜로세움의 관리자 중 한 명인 헥토르였기에 그가 스스로에게 배팅을 걸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배짱 하나는 두둑한 놈이었다.
그런데 그때.
───!
록 드레이크가 포효했을 때 헥토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 포악한 아룡이 오크 전사들을 고깃덩이로 만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데릭이라 했던가. 그 용병이 록 드레이크를 막아내려는 모습에는 혀를 찼다.
꽤 쓸만한 근육과 몸을 가진 녀석이었지만, 대전사 출신 오크도 버텨내지 못하는 걸 인간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헥토르의 뒤에 선 경호원, 검은 뱀 형제 카라크와 자라크 역시 일어날 참사에 고갤 저었다.
“무모하군요.”
“좋지 않은 선택입니다.”
이 콜로세움에서 살아남아 은퇴한 전사의 안목으로 보자면, 가장 먼저 단명하는 이는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 부딪히는 녀석들이었다.
경기장의 환호성에 취해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흥분에 몸을 맡기는 놈들. 그런 놈들은 대부분 술이나 약에 취한 채 경기장에 들어온다.
‘저놈처럼 말이지.’
때로는 옆으로 피하고, 싸움을 피하는 것이 다음 수를 계산하는 방법이었다.
앞에서 막아내고 쓰러트리겠다는 생각을 한 오크 대부분은 심장이 꿰뚫려 죽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기에 저 사내의 결과 역시 불 보듯 뻔했다.
그런 생각을 한 카라크의 눈이 커졌다.
덩치 큰 용병이 록 드레이크를 후려치고 붙잡는 게 아닌가?
“말도 안 되는!”
경호원으로서 헥토르의 분노를 살 수도 있었지만, 헥토르 역시 그 결과에 탄성을 내뱉었다.
“카, 카라크! 저게 말이 되는 건가?”
오크들을 불구로, 아니면 시체로 만든 그 괴물을 붙잡아서 들어 올리다니!
그것만으로도 콜로세움의 기록에 길이길이 기억될 정도의 업적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드이제가 움직였다.
그가 달려 나가더니 록 드레이크의 뒤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록 드레이크의 입에 무언가를 물렸다.
“······고삐?”
저런 맹수한테 고삐를 건다고 록 드레이크가 얌전해지겠는가?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미치겠네······.”
헥토르는 머리가 복잡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은 그의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저 녀석들을 믿고 얼마를 걸었는데!
이번에도 지면은 진짜 끝장이었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설마?”
드이제가 걸었던 기이한 베팅이 관한 내용이었다.
악조건을 걸고 배율을 올리는 ‘옵션’의 내용이 말이다.
“야수 조련사가······ 자신의 짐승에게 물려 죽는다는 어이없는 조건이었더랬지.”
헥토르는 그걸 들었을 때는 코웃음을 쳤다.
그게 말이 되겠는가?
자신이 쥔 검에 목을 베여 죽는 검사도 아니고 말이다.
설마······.
헥토르는 떠오르는 상상에 고개를 저으며 드이제를 지켜보았다.
날뛰는 록 드레이크 위에서 강제로 고삐를 물리곤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록 드레이크의 날뛰던 움직임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마치 말을 길들이는 모습처럼 말이다.
“허, 정말로?”
됐다.
록 드레이크가 멈춰 서더니 거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등 뒤에 올라탄 존재를 별 신경 쓰지 않는 듯이.
정확히는, 그 존재에게 몸을 맡기듯이.
사내는 고삐를 꽉 움켜쥔 채 록 드레이크의 목덜미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그 기이한 장면에, 장내가 묘한 고요에 빠졌다.
그리고 그 순간 헥토르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드이제, 저 사내의 입이 달싹거리는 걸 말이다.
물어.
쾅!
드이제의 말에 록 드레이크가 야수 조련사를 향해 튀어 나갔다.
쨍그랑!
그 광경을 지켜본 헥토르는 들고 있던 와인병을 떨어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