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memaker of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209
던전 안의 살림꾼 209화
남매는 거실 바닥에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한국인답게 앉으라고 놓여 있는 소파가 아닌, 그 아래 발치에 등을 기댄 채였다.
희나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흐르는 콧물을 휴지에 풀었다.
“킁, 크응.”
희원은 그런 희나에게 휴지 갑을 안겨 주며 말을 정리했다.
“그래서, 네 말은…… 어찌어찌하다 보니 SSS급 던전을 야매로 클리어한 셈이 됐다?”
“으응. 아까 확인했어. 던전 클리어 게이트가 열렸어.”
희나는 지도를 똑똑히 기억했다.
보스가 사라지기 전까진 절대 생기지 않는 ‘게이트’가 던전 안에 생겼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던전 내부에 밖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생성되는 걸 ‘던전을 클리어했다’라고 표현했다.
이 말인즉슨, 방금 희나가 지도로 확인한 건…… SSS급 던전 클리어 소식이라는 뜻이다!
“허어엉, 진현 씨!”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희나는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부르며 또다시 코를 팽, 풀었다.
그 옆에서 희원은 조금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허. 일이 이렇게 됐다고……?”
일이 어떻게 이렇게 요지경으로 풀렸나, 싶을 정도로 해결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들어오는 건 네 맘이지만 나가는 건 네 자유가 아닌’ 곳이 바로 이 던전이라는 공간이다.
한번 던전에 들어가면, 보스 몬스터를 물리치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보스 몬스터를 물리치지 않으면 밖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생성되지 않으니까.
비슷한 표현으로, ‘보스 몬스터가 사라져야’ 던전 밖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생성되니까!
희나가 주목한 건 바로 이 대목이었다.
‘보스 몹을 던전에서 없애는 방법이 보스를 죽여 없애는 방법뿐인 건 아니잖아?’
예를 들어, 던전 보스를 던전 밖으로 옮겨 버린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그러면 던전 안에 보스 몹이 사라지는 거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이지만, 희나는 그걸 가능하게 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
어디로든 통하는 ‘홈 스위트 홈’의 만능 현관문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가능성은 낮았지만,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어. 내가 악마를 없앨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거기다 설명 창에 의하면, 그 악마는 물리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고.”
희나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시스템 설명을 떠올렸다.
무시무시한 설명을 잘 뜯어보면, 대충 이런 내용이 남는다.
상대는 악마이고, 대단한 마법사이다……. 여기서 일단 희나의 능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에 하나, 희나의 능력이 강진현만큼 걸출하였다 하더라도,
‘멸망한 세상의 최후에 남게 될 존재.’
이 표현에 의하면, 악마가 죽을 확률은 굉장히 희박해 보인다.
최후에 남게 될 존재라니, 멋진 표현 같아 보이긴 하지만 결국 가장 마지막까지 죽지 않는 존재란 뜻 아닌가!
희나의 경험에 따르면, 시스템은 사기는 치지만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이건 S급, 아니 SSS급 헌터 1억 명이 덤비더라도 가망이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애당초 이 SSS급 던전을 클리어하는 건 보통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던전 안에 계속 헌터들을 집어넣겠지…….’
하지만 세상 최후의 악마는 쓰러지지 않고, 마지막엔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때, 악마가 표현했던 대로 세상은 부서질 거다.
희나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어졌으니 괜찮아.’
어쨌든 머리를 극한까지 쥐어짜 낸 결과, 희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방법을!
희나의 가설은 옳았다.
악마가 ‘홈 스위트 홈’ 현관을 통해 사라지자, 던전 내에 밖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생성된 것이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다시 울컥하고 올라와서 희나는 코를 훌쩍였다.
“킁, 크흥.”
희원은 킁킁거리는 동생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 혼자서 궁리해 내느라 정말 수고 많았다. 너 아니었으면 다들 큰일 날 뻔했네.”
진심 어린 몇 마디에 희나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려 했다. 희원은 이크, 하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무튼, 던전 클리어하고 세상 구한 건 잘했는데! 이럴 때가 아니야!”
“왜, 흐윽, 뭐가 더, 있, 큽, 있어?”
“그야 있지! 너 출근해야 할 것 아니냐!”
차가운 현실이 갑자기 뺨을 때렸다. 희나는 정신적으로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
“출근……?”
“너 지금 근무지에서 무단이탈한 상태라고! 사람들이 찾지 않겠어?”
“아!”
출근은 우는 직장인 눈물도 그치게 했다.
“추, 추, 추, 출근! 큰일 났다!”
희나는 벌떡 일어나 섬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 * *
바깥 시간으로 고작 하루만 지났기 때문일까, 다행스럽게도 희나의 무단결근은 탄로 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의 안쓰러운 시선만 받았을 뿐이다.
“어쩜. 얼마나 우울했으면 하루 동안 방에서 안 나와?”
“씩씩하게 기다리는 거예요, 희나. 희망을 가져요.”
“방문 앞에 뒀던 식사도 안 먹었던데. 배고팠죠? 많이 먹어요.”
다들 몇 달째 돌아오지 않는 토벌대 때문에 의기소침한 건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희나와 강진현이 연인 사이라는 건, 섬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연인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희나를 동정했다.
“그나저나…… 본부는 어떻게 할 생각일까?”
“이대로 더 기다릴 생각인 건가? 다음 토벌대를 투입해서 도와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첫 번째로 들어간 팀이 최고였잖아.”
심각한 이야기가 시작되려던 차였다.
누군가 식당으로 뛰어들어 왔다. 그리고 헐떡이며 소리쳤다.
“돌아왔어요! 돌아왔다고요! 던전에 파견됐던 헌터들이 돌아오고 있어요!”
* * *
이변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망루에서 게이트를 감시하던 군인이었다.
‘게이트가 일렁인 것 같은데? 착시인가?’
그는 눈가를 벅벅 비비고는 망원경을 들었고, 게이트 앞에 털썩 주저앉은 사람 한 명을 발견했다. 토벌대로 파견되었던 헌터 중 하나였다.
군인은 재빨리 상황을 보고했고, 지도부와 의료팀이 게이트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게이트 앞은 엄청나게 북적이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헌터들 때문이었다.
헌터들은 모래투성이가 된 것과 시간 감각을 잃은 듯, 다소 멍해 보이는 걸 제외하면 상당히 건강했다. 다친 곳도 없었고, 컨디션도 들어갔을 때와 비슷했다.
다만 안에서 무슨 몬스터를 만났느냐, 보스 몬스터와의 전투는 어떠하였느냐는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깨어나 보니 모래투성이 황야에 누워 있었고, 게이트가 보여 나온 것뿐’이라고 구술할 뿐이었다.
한편, 과학 전문가 팀은 머리를 대고 모여 수군거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아무런 시그널이 없었는데?”
던전 내부에서 보스가 쓰러지고, 밖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리면 일정 시그널을 방출한다.
그런데 이번 케이스에는 시그널 방출이 없었다. 그랬기에 대비조차 하지 못한 채 귀환한 헌터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당장 이유는 알 수 없지만 SSS급 던전이라 특별한 케이스가 나타난 건 아닐까’에 가까운 흐지부지한 결론을 내렸다.
아직 연구한 지 10여 년밖에 되지 않은 던전 연구학은 변수가 많은 학문이었으니 말이다.
돌아온 헌터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허기와 함께 깊은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했다.
모두 씻을 겨를조차 없이 하나둘, 식당으로 호송됐다.
깨끗한 식당에 더러운 흙먼지를 풀풀 날리는 건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헌터들을 반겨 주었다.
“돌아왔어!”
“성공했군요! 고생했어요!”
“먹고 싶은 거? 말만 해요! 다 해 줄 수 있으니까!”
희나도 헌터들을 반기는 무리에 섞여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진현 씨는? 민아 언니는? 다른 청룡 길드 사람들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 * *
“어휴. 어어어엄청나게 힘들다.”
희나는 밤이 늦어서야 침대에 풀썩 누울 수 있었다.
어제 SSS급 던전에 끌려가 악마와 부대꼈던 일만 해도 충분히 피곤한데, 오늘은 귀환한 헌터들을 위해 온종일 솜씨를 부렸다. 완전히 녹초가 될 만도 했다.
방금까지 들은 바로는, 341명의 헌터가 던전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다들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들 중 스무 명 정도를 추려 내 수색대를 꾸리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엔 던전에 재입장할 예정이라고 했다. 길을 잃고 헤맬 이들을 게이트로 이끌기 위함이었다.
“진현 씨는 언제쯤 나오려나?”
희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강진현의 얼굴을 그렸다. 무뚝뚝하지만 다정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지독할 정도로 그리웠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겠지?”
그 잘생긴 얼굴에 어디 상처라도 생겼으면 당장 그놈의 뭐시깽이 악마를 찾아가 가랑이를 발로 차 주리라.
‘사람들한테 손끝 하나 안 댔다고 말했던 건 그 악마니까, 이 폭력은 정당해!’
……까지 생각하던 희나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맞다! 악마!”
그랬다. 무단결근이니, 헌터들의 귀환이니, 이런저런 일에 휘말려 엄청나게 중요한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정말 완전히!
‘악! 텔레비전만 켜 두고 왔는데!’
희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홈 스위트 홈’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제발 악마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세상 최후의 악마야!”
희나는 버럭 소리 지르며 거실에 반쯤 굴러들어 갔다.
집 안은 캄캄했고, 오직 TV만이 희고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배우들이 사랑싸움을 하고 있었…….
짝!
‘아, 사랑싸움이라기엔 좀 격하네. 싸대기라니.’
어찌나 자극적이었던지, 희나는 순간적으로 화면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그리고 드라마에 몰입한 건 희나뿐만이 아니었다.
“아, 저저! 저 나쁜 놈! 뺨으로 끝내면 안 돼! 저런 새끼는 얼굴 가죽을 뜯어 버려야 한다고!”
악마가 소파 위에 앉아 주먹을 뻥뻥 내리치며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어찌나 흥분했던지, 소파 쿠션으로 보이는 것들의 흔적이 주변에 흐트러져 있었다.
‘다, 다행인가?’
막장으로 유명한 드라마를 케이블에서 몰아 보기 연속 방영해 주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악마의 엉덩이를 소파에 딱 붙여 놓았나 보다.
“때려! 때리라고! 한 대 더 쳐! 아오! 저 인간은 왜 이렇게 착한 거야?”
……드라마를 향한 집착이 어마어마해 보였으므로, 희나는 드라마 한 화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오래 기다렸지? 혼자 오래 놔둬서 미안해.”
“이야기 시작하니까 좀 비켜 줄래?”
“……그래. 심심하진 않게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다행이다.”
희나는 거실 불을 켜고 TV 전원을 껐다. 악마가 몹시 반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악마도 상황을 알아야 했다.
“너, 죽은 걸로 됐어.”
……아니,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