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memaker of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71
던전 안의 살림꾼 71화
희나는 의자를 끌고 와서 탁탁 쳤다. 희원은 희나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 나도 깨자마자 너한테 달려간 거라서 상황 잘 몰라.”
“시스템 설명 창에 뭐라고 설명 없어?”
닦달하자, 희원이 눈을 가늘게 뜨고 허공을 노려보았다.
“흠……. 없는 것 같은…… 아니, 여기 뭐가 쓰여 있긴 하네.”
“뭐라고 되어 있는데?”
“보험 약정도 아니고, 왜 이렇게 깨알같이 적어 놨지? 자리가 부족했나? 눈 아파 죽겠네.”
희나는 오빠가 설명을 다 읽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그사이 떠 놓았던 물 한 잔을 천천히 다 마셨다.
“다 봤어. 바둑이 생장 일지였어. 양질의 영양분을 대량 섭취해서 성장기가 빨리 찾아온 거래.”
“나 몰래 바둑이한테 뭐 주기라도 했어?”
“아니. 계란 껍데기만 가끔 준 게 단데…….”
희나는 바둑이의 먹성을 떠올리며 경악했다.
“나 몰래 계란을 몇 판이나 먹인 거야?”
희원이 급히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아냐. 식료품 안 건드렸어. 식료품은 네 담당이잖아.”
살림꾼으로서 집안의 식료품은 전부 희나의 관할 아래 있었다. 희원은 그 규칙을 아주 잘 지켰다.
“그럼 애가 어떻게 이렇게 커져?”
“지난번에 벌레 잔뜩 잡아먹었잖아. 그것 때문인 것 같아.”
희원이 빼놓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너무 많이 먹어서 완전히 소화하는 데 며칠이나 걸렸다나 봐. 그리고 어젯밤에 먹은 걸 완전히 소화하고 이렇게 쑥 자라 버린 거지.”
그 설명은 꽤 납득이 갔다.
“하긴 그때 엄청나게 먹긴 했어…….”
바둑이는 자기 몸의 수십, 아니 수백 배는 될 만한 양의 벌레를 먹어 치웠다.
‘그게 다 어디로 가나 했더니, 덩치로 갔구나.’
성장기라 그런지 먹고 소화하는 족족 자란 듯했다.
“그럼 얘는 어쩌지? 이대로 집 안에 둬?”
“밖에 내보낼 생각이야?”
오빠의 물음에 희나는 바둑이를 손가락질했다.
“키가 너무 커져서 천장에 머리가 닿잖아. 이렇게 비좁아 하는데, 어떻게 데리고 있겠어?”
스르륵.
말하자마자 바둑이가 유연하게 줄기를 휘어서 키를 낮췄다. 자기가 별로 크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얘는 키만 크지, 아직 아기 같은 애야. 위험한 바깥에서 지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바둑이. 외로울 것.」
희원에 이어 오색이도 바둑이의 편을 들었다.
희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오빠의 태도가 너무 강경해서 우선 물러나기로 했다.
“그래. 대신 바둑이는 예전처럼 집 안을 뛰어다녀선 안 돼. 이젠 덩치가 커져서 그랬다가는 집안 세간살이가 전부 박살이 나 버리겠어.”
그러자 바둑이가 잎사귀를 경례하듯 척 올렸다. 알겠다고, 집주인의 명에 따르겠다는 의미인 듯했다.
자그마할 때는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던 게 철없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젠 어쩐지 좀 의젓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착하지. 얌전히 굴면 계속 집 안에서 지낼 수 있게 해 줄게.”
그러면서 손을 뻗어 바둑이를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였다.
희나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띠롱띠롱 반짝거렸다. 퀘스트였다.
“협력…… 퀘스트?”
그것도 ‘협력 퀘스트’라는 처음 보는 이름의 퀘스트였다.
“어? 퀘스트? 내 눈앞에도 뭔가 떴어.”
희원도 어안이 벙벙하여 눈앞의 창을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다음 성장을 위해서는 타 사용자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대상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세요……. 대상 이름. 이희나. C등급 살림꾼. ……이거 너잖아?”
희원의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퀘스트 내용이 눈앞에 차례차례 뜨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희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길게 적힌 열 개의 퀘스트 항목을 읽었다.
“바둑이…… 던전…… 산책?”
늘 그렇듯 시스템은 믿기지 않는 소리를 지껄였다.
개도 아닌 바둑이에게 산책을 시키라니, 그것도 ‘홈 스위트 홈’의 안전지대 너머에서!
심각한 개소리였다.
‘그것도 던전을 산책시키라고? 그렇게 위험한 일을? 절대 못 해!’
단호하게 퀘스트를 무시하려는 순간이었다.
추가 항목들이 허공에 타닥타닥 나타났다.
믿기지 않는 단어들이 눈앞에 쾅쾅 와 박혔다.
‘홈 스위트 홈 스킬 영구 소멸?’
당황한 희나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협력 퀘스트가 바둑이랑 산책 가는 건 아니지? 그것도 던전이라고?”
눈치 좋게 물어 오기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생각이 맞아.”
“아니, 이건 너무 위험한 퀘스트인데?”
그러자 희원이 팔짱을 끼며 진지한 표정을 했다.
“이건 너무 과해. 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바둑이의 성장이 중요하다고 해도, 희나의 안전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희나가 희원을 끔찍하게 걱정하는 만큼, 희원도 희나를 몹시 아꼈다. 그런 위험한 상황 속에 절대 몰아넣을 수 없었다.
물론 퀘스트 이행 장본인인 희나 또한 그런 위험 속으로 스스로 걸어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퀘스트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희나는 약간 넋이 나간 채로 눈앞에 뜬 글자들을 읽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이거, 퀘스트 시간제한이 있어.”
희원이 단호하게 대꾸했다.
“무시해. 바둑이는 이대로도 귀여워.”
“그치만…… 기간 내에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하면 ‘홈 스위트 홈’ 스킬이 영구 소멸한대.”
설명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역시 주택 관리자인 오색이였다.
「!!!!!!!!!!!!!!!」
「선택지는 오직 하나뿐!」
「집주인의 던전 산책 적극 지지!」
오색이는 그 말에 몹시 놀라더니, 아주 강경하게 반응했다.
두 개의 안테나를 전투적으로 휘두르며 희나에게 성실히 퀘스트를 진행할 것을 적극 요구했다.
이해는 했다. 오색이는 주택 관리자였고, ‘홈 스위트 홈’이 사라지면 오색이도 함께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다.
「 달팽이 생존권 보장하라 」
생존권까지 운운하는 것을 보면, ‘홈 스위트 홈’ 스킬이 오색이의 존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오색아, 내가 만약 던전을 나갔다가 죽으면 어떻게 해? 그래도 스킬이 소멸되는 거 아니야?”
희나의 지적에 오색이의 안테나가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옳음. 집주인 사망 시에도 스킬 소멸.」
「집주인 = 약함 → 던전 내 사망 확률 몹시 높음 → 스킬 소멸 확률 몹시 높음.」
「퀘스트 불이행 시 → 스킬 소멸.」
「막다른 길.」
「@.@」
그제야 오색이도 깨달은 것 같았다.
희나는 퀘스트를 수행하다 죽을 확률이 높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스킬이 소멸되면서 자기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 때문에 퀘스트를 불이행해도 상황은 별다르지 않았다. 퀘스트 불이행 디버프로 스킬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사면초가였다.
만약 오색이도 사람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 이모티콘처럼 핑글핑글 돌고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아이고, 두야.”
이 파격적인 퀘스트 내용 덕에 희나의 정신도 핑글핑글 돌았다.
“대체 시스템은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억하심정 있어?”
희나는 허공을 향해 삿대질했다.
어떨 때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쉬운 퀘스트를 내주어 의아하게 하더니, 이제는 또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고 위험한 퀘스트를 강요한다.
도무지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시스템이 약 올리듯 문구를 띄웠다.
“그놈의 자기 계발하다가 죽어 버리면 어떡하냐고!”
희나는 머리털을 부여잡았다.
‘이걸 어떻게 한담? 퀘스트는 위험한데, 하지 않으면 오색이와 집이 모두 사라져 버려.’
사실 길드로부터 실제 집을 받은 지금, ‘홈 스위트 홈’ 스킬이 소멸하는 건 괜찮았다. 아까운 능력이었지만 원래 없던 셈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색이는 아니었다.
오색이는 희나의 가족이 된 지 오래였다. 이미 생겨 버린 가족을 없던 셈 치는 건 불가능했다. 벌써 함께 지낸 지도 반년이었다.
희나가 제일 힘들 때 곁에 있어 준 데다, 정이 담뿍 들었다. 희나는 이 귀여운 달팽이를 절대 잃고 싶지 않았다.
‘고민할 시간도 별로 없어. 40일 동안 산책을 열 번이나 가야 한다니……. 적어도 나흘에 한 번은 던전으로 가야 하는 거잖아.’
차라리 한 번이면 눈 딱 감고 나갔다 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열 번이라니. 그것도 매번 다른 던전을!’
희나는 깊게 침음했다. 가족이냐, 목숨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희나는 안전 제일주의자긴 했지만, 가족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졌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오빠와 힘들게 지내 온 희나에게 가족과 목숨은 거의 같은 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무엇 하나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초조함에 손톱을 이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떻게 한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만한 좋은 생각을 떠올려야 했다.
중간에 ‘홈 스위트 홈’ 스킬을 알고 있는 우민아의 얼굴도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우민아는 어제 집들이를 마지막으로 한 달짜리 장기 던전 공략에 투입됐다. 우민아가 돌아온 후를 기약하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짧았다.
“남들 눈에 안 보이는 투명 망토라도 있으면 좋겠다…….”
희나가 중얼거릴 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 기억 하나가 뿅 하고 떠올랐다.
던전 안의 살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