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RAW novel - chapter 282
소연의 질문에 레온은 드물게 대답을 망설였다.
레온은 분명 현대 지구인들에게 괴리된 사상을 가진 중세의 기사왕이었지만, 동시에 지구의 상식을 보존한 과로사한 청년이기도 했으니까.
한 여인을 평생토록 사랑한다. 그것을 레온은 이미 깨뜨리고 말았으니 단호히 그러지 않으리라 말할 수 없었다.
이미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해버린 자신이 말로만 떠든다고 해서 무슨 자격이 있겠는가.
“저. 노력할게요.”
당신의 옆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
레온은 결연한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소연을 보며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직접적으로 들은 것은 처음이기에.
“존중하마.”
그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그리고 그건 소연에게 충분한 대답이었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선 그때······.
“앗! 소연이 여기 있었구나! 폐하도!”
붉은댕기머리 소녀와 마주친다. 소연은 물끄러미 하리를 응시했다.
“소연아?”
본인의 감정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순수한 성녀를 바라보며──
“안 질 거예요.”
──선전포고를 한다.
“???”
그 말을 테라스를 벗어나는 소연. 하리는 때아닌 선전포고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음표를 가득 띄웠다.
“소, 소연아? 그게 무슨 뜻이야? 폐하? 뭐였어요?! 저 뭔가 잘못했나요?!”
“크크큭.”
“아닛, 폐하. 웃지만 마시구요!”
제 잘못을 몰라 허둥거리는 하리를 뒤로하고 레온은 신들에게 하소연했다.
“무섭군요. 젊다는 건.”
[네 여신이 허하도록 하마.]부추기는 여신을 향해 레온은 그저 말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크 보스 무르카
-WHAAAAAAAAAAA──!!
-죽어라, 짐승들아!!
짐승신들의 대군세가 씻겨나간다.
세계를 얼룩진 검은 것들이 말소되는 꼴을 보며 레이날드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저게 인간인가? 정말로 자신과 같은 생명체인가?
끝내 결판이 났을 때는 아연실색했다. 기어코 저 뻐킹 레이시스트 기사왕이 이겼구나! 좆됐다!
“위, 위대한 존재시여. 다음 계획은 무엇······.”
지혜의 고블린 대악마를 향해 시선을 돌린 레이날드는 곧 알 수 있었다. 이빨을 딱딱거리며 바들바들 떠는 고브에게서 흘러나오는 혼잣말······.
“와, 씨바 저걸 이기넷······.”
많은 것이 함축된 한탄 속에서 이젠 지혜의 대악마에게도 수단이 없음을.
“튀, 튑시다! 아직 게이트를 여실 마력이 계시지 않습니까! 마계로 돌아가──”
“아닛. 마계로 돌아가지 않는닷.”
“예?”
마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미 지구의 세력 판도를 결정할 싸움은 끝났다. 지구는 이제 라이온하트 연방의 차지할 것이고 악마들을 색출할 것이다.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지금 마계로 돌아가도 마계의 징집령에 끌려갈 것이닷!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냣!”
“설마······.”
“그랫, 놈들이 마계를 침공할 때를 대비하겠짓! 끌려가면 우리도 그 싸움에 끼어야 한닷.”
“······.”
레이날드는 차마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이미 악마군주들이 죄 도륙난 판에 저 사자심왕을 막아설 존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현 시간부로··· 마계를 손절한닷!
“그, 그게 가능한 것입니까?”
“오크 대칸이 남은 오크들의 살길을 열어줬닷! 즉, 이세계로 오크들을 소계할 때, 거기 끼어서 우리도 지구를 탈출하는 것이닷!”
“오오···!”
그 계획은 그럴듯했다. 고브에게는 악마의 마기를 숨길 수 있는 아티팩트 제작능력이 있었고, 마기를 숨긴 채, 오크들 틈새로 숨어들어 게이트를 건넌다면 마계에 징발될 염려도 없이 지구를 탈출할 수 있겠지.
[뭐야, 이 쬐깐한 놈들은?]하지만 오크 신들에게 발각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 * *
“······!”
그가 눈을 뜬 건 속을 헤집는 울렁거림 때문이었다.
“크으······.”
몸이 반응하여 식도를 타고 헛구역질이 쏟아진다. 곧이어 시야가 트이고 딱딱한 바닥이 눈에 보였다.
-크르···!
흡사 야수 같은 으릉거림과 함께 주변을 살핀다. 그것은 낯선 풍경이다.
흙바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딱딱한 재질의 대지, 숲이라고 하기엔 위화감이 가득한 인공적인 조경수들이 군데군데 자라있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높은 구조물들은 하늘에 닿을 것처럼 뻗어있는데, 그것이 사방에 잔뜩 솟아 있었다.
‘묘하게 익숙하군.’
하지만 모르겠다. 기억이 애매하다. 왜 자신이 이런 곳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인지하고 있는 사실은 오직 하나.
“무르카. 무르카 발락.”
자신의 이름뿐. 그 외에는 단편적인 기억이나 지식들이 미묘하게 남아있었다.
“뭐야? 저게 뭐야?”
“영화 촬영인가?”
주변이 시끄럽다. 시선을 돌리니 한 작은 생명체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의 작은 눈동자에 곧바로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들을 무시하고 거리를 걷는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됐지만, 무르카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할 재료를 모으고 있던 그때──
“뭐, 뭐야?”
“하늘이··· 붉어졌어?”
주변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이물인 자신을 향한 시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오······.”
세상이 붉게 물들고 있다. 마치 거대한 변모의 전조처럼.
“뭐야······.”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자신의 시야에 보이기 시작한 푸른 창을.
[종말이 시작됩니다.]새로운 푸른 창들이 무르카의 눈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1차 선발대 44개 종족이 전이를 완료했습니다.] [987명의 대전사들이 전이를 완료했습니다.] [축복과 서약에 따라 대전사들의 페널티가 강제됩니다.] [카르마 할당량의 소멸에 따라 각 신들은 추가로 자신의 대전사를 전이 또는 추대가 가능합니다.] [맵 업데이트가 시작됩니다. 현재 버전 1.0]────
────
────
그 순간,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그리고 그와 같은 현상은 이 땅에서만이 아니었다. 이 행성의 모든 땅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같은 현상이 일으켜졌다.
신의 분노와도 같은 천지개벽의 순간도 잠시, 새로운 메시지가 날아왔다.
[카오스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모든 지적 생명체들은 최선을 다해 생존하십시오.] [행운을 빈다. 죄 없는 아이들아.]그것은 보드라운 여인의 목소리였고.
또한 고풍스러운 마귀의 목소리였으며.
[좆밥놈들 뒤지던 말던. 쪽팔리게 첫빠따로 뒤진 새끼들, 내가 다 갈아버린다.]난폭한 야수의 목소리였다.
“???”
영문을 알 수 없는 메시지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몇몇 것들은 자신처럼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저벅, 저벅
그때였다.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무르카. 그의 시선이 동그래진다.
“뼈다귀?”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뼈다귀들이 다수. 조악한 검과 방패로 무장한 그것들은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야? 여, 영화촬영··· 아닌가?”
푹!
하고, 스켈레톤의 조악한 칼이 주민의 복부를 관통한다.
“어?”
흘러내리는 시뻘건 선혈을 보고서야 그는 이것이 촬영이 아님을 깨달았다.
너무나 뒤늦은 깨달음이었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게 다행일까?
“꺄아아아아악!”
누군가가 지른 비명을 시작으로 도망과 추격이 동시에 시작됐다.
뼈다귀 병사들이 주변의 모든 것을 덮친다.
그리고 세상을 강타한 죽음은 시쳇것들에게서만 비롯된 게 아니었다.
“죽여-죽여!
“뭔지 모르겠지만 죽여!”
“뭐야, 이 괴물들은! 이 해머 브레이커에 박살나 봐라!”
혼돈이 가득한 거리에 고성과 비명이 오가고, 일방적인 살육이 벌어지는 가운데, 알 수 없는 푸른 창에 의해 종말이 시작된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무얼 해야 할지 아는 것처럼 보였다.
무르카는 혼란스러웠고, 모호한 기억 탓에 난처함을 느꼈지만··· 그가 다른 이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면──
“WHAAAAAAAAAAAA────!!
야수가 포효한다.
근육과 함성으로 가득 찬 야만의 전사에게서 솟구치는 우렁찬 포효가 모두를 집중시켰다.
맨몸의 오크 전사는 거침없이 눈앞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찢고! 부수고! 박살낸다!
오크 특유의 피지컬을 이용한 야수 같은 파괴력이 뼈다귀 병사들을 방패째로 부수고 파괴했다.
“크에에엑! 고블린 살렷!”
그러던 그때, 무르카의 눈에 웬 고블린이 눈에 띄었다.
고블린. 나약하고 게으르며 약아빠진 종족.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도 남아있는 종족의 특성이다.
하물며 저 고블린은 등이 굽은 곱추이기까지 했다.
저래서야 동족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고블린이란 약아빠진 종족은 장애가 있는 동족을 가만 놔두는 종족이 아니었으니.
“흥···!”
그런 것과는 별개로 무르카는 옆의 큼직한 고철 덩어리를 들었다. 바퀴가 두 개 달린 것이 전차로 쓰기에도 뭔가 애매한 탈 것.
그것이 무르카의 괴력에 의해 손쉽게 들리더니 허공을 날았다.
“흐걋!”
날아오는 이륜차를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바짝 엎드린 곱추 고블린. 그의 머리 위에 이륜차가 통과하자 요란한 소리가 퍼져 나갔다.
-콰앙!
박살이 나서 무너져 내리는 스켈레톤 병사들. 하지만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은 이륜차는 어떤 붉은 마갑을 착용한 뼈다귀 말 앞에까지 흘러들어갔다.
“네··· 놈······.”
붉은 마갑의 기수. 마찬가지로 시뻘건 선혈의 갑주를 입은 그것은 창백한 피부의 기사였다.
“기사?”
묘한 불쾌감이 무르카를 지배한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붉은 갑주의 기사를 사나운 시선으로 노려봤다.
“이놈··· 시건방진 야수 따위가. 이 블러드 나이트인 슈트룸 언체페스트를 똑바로 마주하다니.”
그는 꼬챙이처럼 길쭉한 창으로 꿰어 죽인 짐승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목을 축였다. 그것은 곧장 그에게 알 수 없는 기운을 증폭시켰고.
산 자를 잡아먹어 힘으로 삼는 사악함. 누구나가 눈 돌리게 만드는 사악한 힘을 앞에 두고 무르카는 콧방귀를 뀌었다.
“모기 새끼였나.”
“네노오옴······.”
그 모멸적인 멸칭에 슈트룸은 분노로 차가운 피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세계를 지배하던 위대한 밤의 혈족, 태양조차 극복한 귀족이자 블러드 나이트인 자신에게 감히 야만스러운 짐승 따위가!
슈트룸은 고삐를 당겨 말의 방향을 무르카에게로 돌렸다.
– 슈트룸 언체페스트가 무르카 발락과 교전합니다.
“흐음?”
푸른 창이 거슬렸지만, 무르카는 달려드는 블러드 나이트를 똑바로 주시했다. 그리고──
‘뭐야, 이놈은?’
느리다. 아니, 기세가 부족하달지.
기마 돌격이라고 하면 훨씬 더 강한 압박과 항거할 수 없는 기세가 더해질 터인데──
「라이온하트에···! 영광 있으라!!」
“큭···!”
어쩐지 머리가 아팠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자물쇠가 채워진 것처럼 끄집어내려는 기억이 덜컥 막힌다.
“한눈을 팔다니! 어리석은 놈!”
하지만 저따위 허접한 돌격 따위에 당할 정도는 아니다.
“······?!”
그것은 순식간이었다.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붉은 기사가 내지르는 창을 그대로 붙잡아 있는 힘껏 휘두른다.
창을 붙잡은 채, 어마어마한 괴력에 의해 들어올려진 슈트룸은 그대로 아스팔트 도로에 내다 꽂혔다.
“크허?!”
충돌과 동시에 뻐걱! 하는 소리가 흐른다. 슈트룸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려 창을 들었으나 무르카의 주먹이 그의 팔을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