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ader of the Demonic Cult, Zhuge Se, is reincarnated as the youngest scholar RAW novel - chapter (157)
158화.다시 번지는 전화(戰火).1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동면에 들었던 짐승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나무에 움이 트기 시작한다. 따뜻한 생명의 기운이 천지에 가득했다.
“아빠. 저건 뭐라고 불러요?”
“매화(梅花).”
“그럼 저건요?”
“산수유(山茱萸).”
지강백은 서소를 무등을 태운 채 산길을 걷고 있었다.
올해로 여섯 살 된 서소는 어여쁜 소녀로 성장했다.
아빠와 엄마의 미모를 그대로 물려받아 하얀 피부와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특히 귀여웠다.
그리고 하나 더, 서소의 특별한 점이 있었다.
“전 봄이 좋아요. 아빠.”
“왜?”
“따뜻한 방울이 몽실거리며 땅에서 오르는데, 그걸 손가락으로 터뜨리면 주변이 더 따뜻해져요. 감촉도 부드럽고. 헤헤.”
사람들이 들으면 그냥 귀여운 상상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만한 얘기였다.
서소가 말한 건, 바로 대자연의 기(氣)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무도, 풀도, 하다못해 개미같은 작은 것들조차도 생기를 품고 있고, 현경의 경지에 오른 자들은 그 기운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서소는 태어난 순간부터 대자연의 기운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처음 남궁미향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땐 지강백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쩌면 정말 현경의 경지에 오를 재능을 타고 난 것일수도.’
지강백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아빠도 그렇단다.”
“정말? 아빠도 몽글거리는 방울들이 보여요?”
“그럼. 여기 서소 앞에도 지나가고 있고, 저기 땅에서도, 저기 나무에서도 게속 나오고 있지 않으냐.”
“우와! 맞아요! 그런데 엄마는 안 보인대요.”
지강백은 나직이 웃으며 시무룩해진 서소를 달랬다.
“그건 서소가 특별해서 그런 거란다. 하늘이 서소를 너무 좋아해서 방울들을 보게 해주신 게 아닐까?”
“하늘이 절 좋아해요? 예쁜 하늘이?”
“그래. 저 구름도, 파란 하늘도. 전부 서소를 좋아하지.”
“정말?”
“그럼. 그렇고말고. 하하.”
서소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 지강백의 머리에 뺨을 비비며 웃었다. 지강백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건너편에서 웬 상인 무리가 부리나케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중 한 사내가 지강백 부녀를 발견하고 다급히 불렀다.
“이, 이보시오. 지금 저쪽으로 가려는 게요?”
“그렇소만. 무슨 일이오? 짐승이라도 나타난 것이오?”
“짐승이라면 다행이지, 마녀가 나타났소, 마녀가!”
“마녀······?”
“머리는 치렁치렁하니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어떤 사내와 싸우고 있소. 그런데 검을 부딪힐 때마다 폭발이 막······. 거기다 푸른 섬광이 터지지를 않나, 불꽃도 막 피어오르고······. 아무튼 마녀가 분명하오!”
상인의 설명을 듣던 서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검, 푸른 섬광, 불꽃. 그거 우리 엄마 같은데요?”
“엄마?”
“네. 엄청 세고 예쁜 우리 엄마. 헤헤.”
상인은 해맑게 웃는 서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강백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상인에게 물었다.
“혹시 그들이 마을 근처까지 내려왔소?”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다행이군. 알려줘서 고맙소.”
지강백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또 비무에 정신이 팔려 저도 모르게 산 아래까지 내려온 모양이군. 그렇게 조심하라 일렀는데······.”
서소도 똑같이 한숨을 내쉬며 지강백에게 말했다.
“아빠, 빨리 가요! 한 달 전에도 엄마 때문에 마을 집 세 채가 박살났잖아요. 그래서 아빠가 집주인들한테 사과까지 하고.”
“그래. 얼른 가서 엄마가 사고 못치게 막자. 서소야.”
지강백은 서소를 내려 품에 안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상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자빠졌다.
“으악! 또 귀신이 나타났다! 귀신 가족이다-!”
***
쾅! 쿠구구구-.
흙먼지가 잔뜩 피어오르며 주변 나무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장검을 든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불꽃으로 온 몸을 감싼, 엄청난 외모의 여인이었다.
“어때, 련? 이번 초식은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은데.”
여인, 남궁미향의 말에 홍련이 죽는 소리를 냈다.
“아가씨.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손목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고요. 다리도 후들거리고 기력도 바닥이에요.”
“그래? 그럼 잠시 쉬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홍련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궁미향은 그 와중에도 초식을 연습했다. 그 모습을 보던 홍련은 혀를 내둘렀다.
“아니, 힘들지도 않으세요?”
“조금? 그런데 31번 초식과 32번 초식 사이가 조금 부자연스러웠던 것 같아. 그렇지?”
홍련은 거의 울고싶은 지경이었다. 그녀는 두 팔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전 이제 아가씨 비무 상대 그만할래요. 이젠 제가 감당할 정도가 아닌 것 같아요. 아가씨는.”
“설마. 난 화경에 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더 대단하세요. 설마 화경에 들자마자 저를 상대로 비등하게 싸우시다니. 거기다 이제는 저를 압도하실 정도고······.”
이 말은 단순한 엄살이 아니었다. 정말 남궁미향은 화경에 든 이후로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를 보였다.
특히나 검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천재(天才)의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홍련은 그녀와 검을 맞대고 진정한 재능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련. 우리 다시 한 번만 더 해보자.”
“아가씨! 이러다 죽겠어요!”
홍련이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칠 때였다.
“그래. 이러다 마을 사람들까지 전부 죽겠다.”
서소를 안은 지강백이 서서히 내려오며 말했다.
홍련은 마치 죽은 천화 진인이 살아돌아온 것마냥 격하게 둘을 반겼다.
“스승님! 서소야!”
“련 이모! 엄마!”
서소는 남궁미향과 홍련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서소는 날 듯이 지강백의 품을 벗어나 남궁미향의 품에 폭 안겼다.
남궁미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바닥에 던지고 서소를 꼭 끌어안았다.
“에구, 우리 서소, 엄마 보고싶었어? 그런데 어떡하지? 엄마가 지금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더러운데······.”
“그게 아니라, 엄마.”
서소는 남궁미향의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싸움 그만해. 아빠 화났어.”
“어?”
“잘했다. 서소야.”
서소를 칭찬한 지강백이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마주한 모녀가 동시에 움찔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격렬한 싸움으로 마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저번에도 알아듣게 얘기한 것 같은데.”
그제야 이곳이 산 아래임을 깨달은 남궁미향이 탄식을 흘렸다.
“미안······. 나도 모르게.”
“화경의 경지에 들어 힘을 조절하는 법을 익히려고 수행을 보냈더니, 힘을 더 조절 못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그리고.”
지강백의 시선이 홍련을 향했다.
“련아. 무영이는 어디 갔느냐?”
“먹을 게 부족하다고 사냥 갔어요.”
“이 녀석은 이런 거 막으라고 보내놨더니······.”
그때, 등에 집채만한 멧돼지를 멘 강무영이 다가왔다.
“어? 언제 오셨습니까? 그리고 왜 다들 여기 있어?”
지강백이 눈살을 찌푸리고 서소가 그에게 쪼르르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삼촌. 얼른 도망쳐요.”
***
홍련과 남궁미향, 그리고 서소가 함께 노는 걸, 강무영과 지강백이 느긋하게 구경했다.
강무영은 흐뭇한 표정을 짓는 지강백을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포기하신 겁니까?”
“뭐를 말이냐.”
“천하통일(天下統一) 말입니다.”
일찍이 지강백이 꿈꿨던 복수의 끝이자 초대 천마가 원했던 그것. 천하를 발아래 두는 목표.
배신자도 전부 처리했고 무림의 신뢰도 굳건하니 이제는 천하를 도모해볼 때였다.
그러나 지강백은 오 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한 번도 천하통일에 관해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강무영은 주군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그는 천하를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일까?
지강백은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떨어지는 매화 꽃잎을 손에 쥐었다.
“무영아. 내가 오 년 전, 천유성을 죽일 때 무슨 생각을 한 줄 아느냐?”
지강백이 손을 피자 매화 꽃잎이 다시 두둥실 날아올랐다. 지강백은 떠오르는 꽃잎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 복수도, 천하통일도. 다 이루면 내 웅어리가 풀리고 교의 숙원도 전부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렇게 전부를 손에 넣어도, 난 아무런 의미도 얻지 못할 것이야. 천유성을 죽이며 그걸 깨달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강무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 천하통일을 이뤄도 전혀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네요. 하하.”
“그렇지?”
강무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뭔가 허전하긴 합니다. 교는 제 전부였으니까요. 이제는 뭘 꿈꾸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바로 눈앞에 있지 않으냐.”
지강백이 가리키는 곳에는 남궁미향과 서소, 홍련이 있었다.
지강백이 새 생을 얻고 만난 아내와 딸, 제자였다.
“내게는 저들이 새 의미가 되었다. 너 역시, 언젠가는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야.”
“그렇군요······.”
복잡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강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진 않겠군요. 과거가 그리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지우라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지.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영아.”
강무영은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 지난 날을, 죽은 이들을 언제까지고 붙잡을 수는 없다.
그들을 가슴에 묻는다. 그러나 과거에 연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지강백의 곁을 따라다니던 죽은 교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교조가 알면 조금 원망할 수도 있겠군요. 교의 숙원을 저버렸다고 말입니다. 하하.”
“그라면 이해해 줄 것이다. 신유우, 그 사람이라면······.”
지강백은 한쪽에 세워둔 파월강창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서로를 향해 웃어보이는 두 사람을, 서소가 불렀다.
“아빠, 삼촌! 빨리 오세요! 재미있는 거 해요!”
“오냐. 금방 간다!”
지강백과 강무영은 천천히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언제까지나 평화가 지속될 것만 같던 때.
황실에서 제갈빈을 소환하는 칙명(勅命)이 내려온 것은 그로부터 보름 뒤였다.
***
황제가 자신을 찾는다.
황실의 깃발을 건 무리가 집앞에 찾아왔을 때는 적잖이 놀랐다. 설마 이제와서 오 년 전 사건을 파헤치려는 것인가? 아니면 천유성이 없으니 자신에게서 불사의 비밀을 알아낼 셈인가?
그리고 또 하나 놀란 사실은, 지강백을 데리러 온 자의 정체였다.
무려 환관의 수장인 대내관(大內官)이 직접 온 것이다.
마차에 올라타 북경으로 가는 도중, 지강백은 그를 향해 물었다.
“놀랐습니다. 설마 대내관께서 직접 오실줄은. 폐하의 명령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자처해서 온 것입니다.”
“이유가 궁금하군요. 왜 저를 직접······.”
지강백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내관을 살폈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내관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굳어 있었고, 시시때때로 불안감을 표출했다. 무슨 일일까?
대내관은 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말을 믿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