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ader of the Demonic Cult, Zhuge Se, is reincarnated as the youngest scholar RAW novel - chapter (221)
지강백은 회의 후 제갈현의 방으로 찾아가 내용을 최종적으로 보고했다. 비록 병상에 누워있긴 하지만 가문의 수장이다. 보고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직까지는 전체적인 밑그림만 그려진 상태라 제갈현도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그가 관심있는 것은, 가족들에 대한 지강백의 처우였다.
“그래. 네 형님과 큰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네. 원하시는대로 지내게 해드릴 생각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마음을 돌리는 조건 하에 아무런 감시도 하지 않기로 했고요.”
“신경쓰일 텐데······용케 그렇게 정했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혈육 아닙니까. 가족을 내치는 짓은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주변의 평판과 진휘란이 눈밖에서 벗어났을 경우를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제갈현은 조금 감동한 표정이었다.
“잘 선택했다. 대대로 권력싸움에 피를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 아니냐. 서로 칼을 겨누고 헐뜯어도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다. 결국에는 용서하고 포용하는 것이 도리인 것이야.”
무인으로서 죽음을 맞이하더니 많이 누그러진 모습이다. 지강백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의원은 뭐라고 하던가요?”
“더 말할 것도 없이 부서진 단전을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더구나. 무인으로서의 수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그 외에도 화운사신에게 입은 외상과 내상이 지독해 치료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게 결론이다.”
“음······일단 황금성을 통해 영약을 주기적으로 보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보당주나 타 대주들, 서고를 관리하는 각주도 단전을 복구하는 법을 찾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아니다.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나는 이미 수명이 다했어. 그러니 너를 빠르게 소가주로 올린 것 아니냐. 신경 쓸 필요 없다.”
제갈현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가주로 완전히 자리잡을만 하면 그때 물러날 계획이다.”
“네.”
“네 나이에 가주로 올라선 경우는 본가 뿐만 아니라 오대세가 전체를 뒤져도 유례가 없을 정도다. 자신 있느냐? 남궁세가를 뛰어넘어 강남의 패자로 자리잡을 자신이 있겠느냐? 아마 네가 가주자리에 오르면 널 얕잡아보고 강북의 수많은 세력들이 우릴 노릴 것이다.”
“그럼 이쪽에서는 오히려 환영입니다. 공격은 반격을 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을 만들어주지요. 어차피 강북 진출도 언젠가는 이뤄야 할 숙제입니다. 빠를수록 좋지요.”
“허허······.”
지강백은 그 순간, 제갈현의 눈빛이 이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자도 남궁천 못지않게 가문을 강성하게 만드려는 욕심이 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자기 대에서 이뤄내지 못해 한풀 꺾인 모습이지만, 자식 대에서 이룰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불타오르는 모양이었다.
“빈이 네 야망이 그렇게 크다면 기대를 걸어볼 만 하겠구나. 사실 이 아비도 본가가 수십 년 이상 오대세가의 끝물로 지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갈세가는 명석한 학자와 선비를 많이 배출해낸 명문가였으나, 상대적으로 무림에서의 위상은 낮았다. 오죽하면 강북 사람들이 강남에 들어오면 남궁세가의 무복을 입은 무사들은 피해도, 제갈세가의 무복을 입은 무사들은 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다.
“그 차이를 뒤집으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네 가르침으로 무사들의 무공성취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는 받았다. 너라면 가능성이 보인다.”
지강백은 풍백유영결을 가장 빠른 속도로 끝낸 무사들을 뽑아 새 호위조직을 편성했다. 물론 방계나 직계의 신분 따위를 가리지 않았다.
“······.”
지강백은 잠깐 침묵하며 탁자 손걸이를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버지.”
“말하거라.”
“그동안 큰어머니가 관리하시던 내원 일들, 이제 제 어머니에게 맡겨보려 합니다.”
지강백의 말에 제갈현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간 두 사람간의 관계가 남보다 못하다고 여겨왔던 제갈현이었다.
“네가 네 어미를 챙기고 나설 줄은······몰랐구나.”
“제 친모입니다. 소가주의 친모가 이전처럼 천대받아서야 가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네 말이 맞다. 그건 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거라.”
제갈현의 말에 지강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나가기 전,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그에게 던졌다.
“제 어머니······왜 데려오신 겁니까?”
“젊은 적의 혈기를 주체하지 못했고, 그렇게 이어져 온 것이다. 내가 원망스러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궁금했습니다.”
돌아서는 지강백의 등 뒤로, 제갈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어미를 연모했다. 허나 그것도 옛적의 감정일 뿐. 어느샌가 난 권력과 가문에 사로잡혀 있었지. 너만 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조심하거라. 네 아내를 잘 대해주고.”
지강백은 대답하지 않고 방문을 나갔다.
***
진휘란의 가문은 호북에서 명망이 높은 진가장으로, 지금도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진가장의 늙은 가주, 진도목은 딸의 추레한 몰골을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얘기 들었다. 제갈가 막내공자 제갈빈이 소가주 자리에 올랐다고. 네 아들은 바보처럼 눈뜨고 빼앗겼고.”
“잘 아시네요. 아, 저도 내원 안주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어요. 아침에 빈이 녀석 시녀가 찾아와 알려주더군요. 그 자리에 첩년이 들어가게 되었다고.”
“자랑이다. 쯧쯧. 덕분에 우리 가문도 비상에 걸렸다. 제갈가의 후광 덕에 이어오던 관계들이 위태해지기 시작했어. 다들 등을 등을 돌리고 있어. 젠장할.”
진도목이 곰방대를 뻑뻑 피워대자 진휘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필거면 밖에서 피세요!”
“얼씨구. 아직 몸걱정은 되는 모양이구나.”
진도목은 비틀어진 표정으로 비아냥거리며 웃었다.
“평생 명문가 안주인 자리만 잘 지키라고 보내놨건만, 그것도 못하고 이런 꼴로 물러나? 내가 딸을 잘못 키웠구나. 참 한심하다.”
“시끄러워요.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남궁세가 쪽에서 미친 듯이 압박을 걸어오는데 어쩌란 말이냐? 소가주 경합 끝나기 전까지 손도 대지 말라고. 안그랬다간 바로 밀어버린다고 협박까지 하더라. 개새끼들.”
이는 지강백이 미리 부탁해둔 내용이었다. 진휘란의 패를 전부 막아버리는 것. 덕분에 이들은 맥없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해버렸다.
강남의 양대산맥인 제갈세가와 남궁세가가 혈연으로 맺어졌으니, 이제 진가장과 진휘란은 어디에도 발을 붙일 곳이 없었다.
“그래서, 신세 한탄하려고 이 아비를 부른 거냐?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다 끈 딸내미 투정까지 받아줘야해?”
“설마. 아빠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비밀리에.”
“뭐냐? 눈빛이 이상한데······.”
“빈이 녀석이 소가주 자리에 올랐다지만, 아직까지는 반쪽짜리에 불과해. 정식으로 가주직을 받지 않는 이상, 아직 제갈세가를 장악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그러니까 처리하려면 지금이 적기야.”
일순, 진도목의 눈빛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제갈빈을 암살하자?”
“그래. 말귀는 밝아서 다행이네.”
“무리다. 그놈, 화경의 고수라며? 게다가 이제는 제갈가의 호위들이 놈의 주변을 철옹성같이 지킬 텐데 어떻게 뚫을거냐? 그건 적어도 강호에서 손꼽히는 살수문파들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럼 손꼽히는 살수문파를 불러.”
진휘란이 진도목을 응시하며 말했다.
“어차피 이대로면 진가장도, 우리도 전부 끝이야. 제갈빈이 우릴 가만히 놔둘 것 같아? 가문의 전재산을 털어서라도 최고의 살수들을 고용해. 완벽하게 계획을 짜고 단번에 일을 진행시켜. 알겠어? 이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야.”
비록 배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아들을 죽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진휘란.
어차피 그녀에게 제갈빈을 향한 애정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녀의 말에, 진도목이 침을 꿀꺽 삼켰다.
“······좋다. 어디 갈데까지 한 번 가보자. 하지만 명심해라. 이번 일이 실패한다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어차피 실패하면 더 살 생각도 없어.”
진도목이 방을 나가자 진휘란은 풀어헤친 옷깃을 여미고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휘란은 주변에 펼쳐진 제갈세가의 장원을 돌아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인생을 건 도박이야. 난 여기 전부를 걸었어.”
***
지강백이 소가주의 자리에 오르고 난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지강백은 꾸준히 호남의 부유한 거상들과 무림 세력들과 접선하며 그들의 복종을 받아내고 호남에서의 지배권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뭐라해도 무력 수준이었다.
지강백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풍백유영결은 어느새 제갈세가의 모든 무사들이 필수적으로 익히는 심법으로 발전했다.
최상승의 심법을 꾸준히 수련한 그들은 단시간에 비약적으로 강해졌으며, 이는 곧 세가 전체의 무력수준 향상으로 이어졌다.
흑무림맹이나 사파 조직들과의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던 지부들이 적들을 완전히 격파하고 주변을 안정시켰다는 보고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이제 제갈세가는 남궁세가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오히려 그 이상의 무력수준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또한 지강백은 무력부대의 재편성을 시도했다.
기존의 부대는 오직 무력수준에 의한 차이로 부대 편성을 나뉘었다면, 지강백은 그때그때에 따라 부대의 성질을 다르게 하여 나뉘었다.
기존의 질풍대와 청룡대(靑龍隊)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동력과 기습에 가장 뛰어난 부대로.
백호대(白虎隊)나 흑랑대(黑狼隊)는 정면에서 적들을 격파하기 위해 가장 무력수준이 뛰어난 부대로.
봉황대(鳳凰隊)나 비령대(飛靈隊)는 후방 지원 밑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특수부대로.
그 외 휘하 부대들도 각자의 장기를 살려 새롭게 태어났다.
그렇게 세가 내부가 제법 안정을 찾자, 지강백은 본격적으로 강남 확보에 나섰다. 그는 아침부터 회의를 소집, 수하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의 주요 주제는 바로 광동 지배권에 관한 내용이었다.
“예전부터 광동성은 남궁세가의 지배 하에 관리를 받아왔습니다. 허나 지금은 얘기가 조금 다르지요. 이전부터 광동에 자리잡았던 세력들과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남천연가(南天聯家)를 말하는 겁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남천연가.
광동성에서 터를 잡아온 역사 깊은 명문세가였지만, 남궁세가에 밀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무림세가에서도 최상위에 손꼽히며 조정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남궁세가의 저력은, 가문 하나의 힘으로 어찌 해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남궁세가가 남천연가를 제대로 무너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광동성에 비록 남천연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문파와 세가가 존재합니다만, 남천연가를 무너뜨리면 그들이 무릎을 꿇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그럼 광동은 완전히 놈들의 지배하에 넘어가겠군요.”
“네. 그러니 기회는 지금밖에 없습니다.”
총관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곧 무너질 남천연가. 남궁세가가 먹기 전에 먼저 채가자.
기존 남천연가의 세력을 모조리 흡수한다면, 광동에도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지금 제갈세가가 확보한 세력에 광동성까지 더한다면, 남궁세가를 단번에 뛰어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한 번도 남궁세가의 벽을 넘지 못했던 제갈세가의 입장에서는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지금 남궁세가 쪽 동향은 어떻습니까?”
“남천연가의 사업체를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노골적으로 지방관들을 움직여 남천연가와 관계된 연줄들을 전부 끊어버리고 있어요.”
“남천연가가 견디다 못해 자기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만들 생각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인자하게 손을 내미는 척 하면서 세가를 통째로 집어삼키겠지요. 남궁세가가 흔히 쓰는 수법입니다.”
사파 조직이었다면 귀찮게 할 것 없이 무력으로 쓸어버렸겠지만, 남창연가는 어디까지나 정파 쪽 세력이다.
이들을 흡수하는데 무력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 꼬리라도 밟혀 세간에 알려졌다간 남궁세가는 순식간에 사도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정파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행위를 당당하다 입증할 수 있는 명분(名分)이었다.
“그리고 우린 명분을 만듭시다. 남궁세가의 포악한 행보를 알리고, 우린 그들에 맞서 남천연가를 지켜주는 수호자로 나서는 겁니다.”
지강백은 우선 남천연가의 가주를 만나보기로 했다.
“가주에게 연락해 한 번 만나자고 말하세요.”
“알겠습니다.”
***
지강백이 침소로 들어오자, 남궁미향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 남궁세가 측에서 서찰이 왔었어.”
“서찰? 장인어른이셔?”
“아니. 큰오라버니.”
큰오라버니라면······1공자 남궁운을 말하는 건가?
지강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자가 따로 서찰을 보낼만한 일이 있었던가?
“무슨 내용이야?”
“후기지수들끼리 연회를 연다고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야. 이맘때쯤 항상 모임을 가지기는 하는데, 설마 당신을 부를 줄은 몰랐네.”
“왜?”
“당신은 이제 소가주잖아. 후기지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져버렸으니까······.”
지강백은 침상에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그의 품으로 남궁미향이 파고들었다.
가만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지강백이 물었다.
“당신은, 갈 거야?”
“응. 오라버니가 나도 오라고 적어놨어.”
“그럼 같이 가자.”
“정말? 요 근래 바빠보이던데. 얼굴도 안 비추고.”
“마침 거기서 볼 사람도 있고 해서, 가야겠어.”
“누구?”
“남천연가 장남.”
남천연가의 장남을 곰곰이 떠올리던 남궁미향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생각났다. 남천연가 장남 연소후.”
“잘 아는 사람이야?”
“뭐, 광동에서는 나름 유명한 세가였어서 몇 번 인사나 나누긴 했었지. 용봉지회에서도 한 번 봤었고. 그런데 얼굴이 영 좋지 않더라고.”
지강백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금 남천연가를 압박하는 곳은 다름아닌 그녀의 가문인 남궁세가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얘기하고 있었다.
‘미향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는 것은, 혹 내게 말이 들어갈까봐 경계한 것인가.’
설마. 남궁천은 자신을 언제든 이용 가능한 꼭두각시로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이건 굳이 남궁미향에게 알릴 필요도 없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그런데 갑자기 남천연가의 장남은 왜?”
“아아, 그냥. 만나볼 일이 생겨서.”
“그럼 잘 됐네. 혼자 가기에는 심심할 것 같아서 호야라도 데리고 갈 생각이었는데, 당신이 함께 가주면 나야 좋지.”
“그래.”
“아, 그리고 초대는 우리 뿐만 아니라 당신 형제들도 전부 받았어.”
“제갈권 형님도?”
“응.”
분명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가주 경합에서 떨어지고 패배자 신세로 전락한 그가 모임에 참석했다간 분명 주변의 비웃음을 살 테니까.
그런데, 남궁미향의 말에 지강백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참석한대.”
“······정말?”
“2공자는 한창 공부에 매진하느라 바쁘다고 하고, 1공녀는 진법 보수 때문에 정신 없고, 나머지는 전부 참석. 조금 놀라긴 했어.”
이건 정말 예상외다. 지강백이 아는 제갈권은 그런 모욕적인 자리에 결코 참석할 사람이 아니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순응하기로 마음이라도 먹은 걸까?
***
제갈권은 굳은 표정으로 진휘란을 응시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진휘란은 예전의 품위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화려하고 커다란 방에는 먼지가 가득했고, 바닥에는 술병이 굴러다녔다.
늘 품위단정하고 아름다웠던 외모도,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듯 잔주름이 가득했다.
“오늘도······술을 드셨습니까?”
“그래. 상황이 이러하니 술만 느는구나.”
“시종들을 시켜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대충대충 해라.”
제갈권은 속이 썩어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자신은 이제 슬슬 적응하고 있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꾸준한 설득에도 여전히 딴세상에 갇힌 것처럼 공허했다.
“지금 내원은 누가 관리한다더냐?”
“작은어머니······빈이의 친모가 하도 완강하게 거부하는 바람에 임시로 둘째 어머니가 맡고 계십니다.”
“풋. 현소향 그년도 결국 굽히고 들어가는 걸 선택했나보구나. 나 못지않게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년인데 피눈물 좀 흘리겠군.”
자조적으로 냉소를 흘린 진휘란이 제갈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권아. 너도 그동안 고생 많았지?”
“아닙니다. 빈이가 배려해준 덕분에 예전이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어요.”
“이제 네가 빼앗긴 것들을 돌려받을 때가 왔다.”
진휘란은 자신이 계획한 것들을 전부 말해주었다.
그녀의 설명이 끝났을 때, 제갈권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머니! 대체······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소리를 낮추거라.”
“하아······. 이건, 이건 아닙니다.”
제갈권이 고개를 내저으며 신음을 흘렸다.
골육상쟁도 마다않는 가문이라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
그때, 진휘란이 제갈권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다.
바짝 마른 여인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 말 잘 들어라. 이번 계획조차 실패로 돌아간다면, 너도 나도 더 이상은 사람답게 살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제발 그만두실 수는 없겠습니까? 지금도 사람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내겐 이미 밑바닥으로 떨어진 인생이다. 다시 올라갈 기회는 한 번 밖에 없어. 권아. 네가 그걸 해줘야만 한다. 알겠니?”
“······.”
“이 어미를 봐서라도, 제발 부탁하마.”
그를 응시하는 진휘란의 눈에서는 숫제 광기마저 엿보였다.
제갈권의 표정에 깃든 시름이 더욱 짙어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