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92)
제 193화
그래서 웃었다.
하하.
“강철산맥에서부터 무언가 ‘감시’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고문을 해 보니 툴칸 제국이라고 하더군, 네놈도 그쪽 인물인 것이냐?”
웃음을 머금고 있는 블랑, 그의 기세가 달라졌다.
쿠궁-
땅이 진동하며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드래곤의 기운.
그 존재만으로 주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그 기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던 검은 갑주의 기사는.
피식-
웃었다.
“웃어? 미쳤구나.”
데스 나이트가 천천히 말했다.
(주군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니 잘 듣거라.)
블랑은 순간 자신도 모르는 위화감 같은 것을 눈치챘다.
눈앞의 이 기사.
분명 9서클이다.
9서클이지만 마스터이자 300년이나 살았던 드래곤의 앞에서는 그저, 일반 병사와 다를 바가 없다.
자리에서 자동으로 무릎을 꿇는, 그게 강제로 가능할 정도의 기운을 뿜어냈는데도 웃음을 터트리고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한다고?
뭘까.
무엇이길래 ‘죽음’의 앞에서 저렇게 초연할 수 있는 걸까.
데스 나이트가 말했다.
(로드의 마지막 핏줄이자, 후대 로드가 테슬란 왕국의 아카데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뒤지고 싶지 않으면 당장 튀어 와라. 이상이다.)
“……뭐?”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말해 줬는데 못 들은 것인가?)
못 들었을 리 없다.
그저 당황했을 뿐이다.
나와서는 안 될 존재의 이름이 나왔으니까.
(귓구멍에 무언가가 박혀 있는 거라면 당장 빼거라. 감히 주군의 말씀을 전하는데 건방지게…….)
순간 블랑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건방지다고……? 감히 내게 ‘건방’?”
데스 나이트가 그런 블랑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표정 보니 귓구멍이 막혀 있던 것 같지는 않군. 그러니 가거라. 화전민들이 머무는 부락에서 ‘인간’ 행세 하지 말고 주군이 있는 곳으로 가란 말이다.)
그게 끝이었다.
“이, 건방진 새끼가!”
강철산맥에서도 그랬다.
웃기지도 않은 인간 열 놈이 강압적으로 나왔고 협박했다.
그래서.
전부 죽였다.
눈앞에 있는 이놈도 마찬가지다.
블랑의 손이 앞으로 뻗어지며, 그 손에서 황금색의 기운이 줄기차게 뻗어 나왔다.
그것은 곧 황금색의 파도가 되어.
콰아아아아앙-!!
굉음을 일으키며 데스 나이트를 집어삼켰다.
잠시 후 드러난 광경.
방금 전까지 데스 나이트가 서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고, 그 크레이터 안에서 데스 나이트의 시체는 조각조각 나 있었다.
마치 가위로 자른 것처럼 오른팔은 한쪽 구석에, 오른쪽 허벅지 밑의 다리는 뒤쪽에 있는 작은 구덩이에.
그나마 붙어 있는 것은 왼팔과 왼쪽 다리였다.
그 처참한 모습을 바라보던 블랑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천천히 데스 나이트의 ‘시체’로 걸음을 옮겼다.
코앞에서 그 시체를 내려다보는 블랑.
그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의 파편’.
그 모든 게 블랑의 눈에 들어온다.
맙소사.
“……시체? 방금 죽은 게 아니라, 이미 죽어 있었다고?”
부패 정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분명.
눈앞에 있는 저 검은 기사는 ‘방금’ 죽은 게 아니라 ‘이미’ 죽어 있었다.
그걸, 블랑은 눈치챘다.
하지만.
그다음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감겨져 있던 데스 나이트의 눈이 번쩍 떠지며. 그나마 멀쩡했던 데스 나이트의 왼팔이.
쌔애액-!
콰직-!
“큭.”
블랑의 오른쪽 발목을 강타했다.
(감히 드래곤 따위가 주군의 명을 거부하는가?)
그 서늘함도 잠시.
블랑은 온 힘을 쏟아 내며 마법을 퍼부었다.
콰아아아아앙-!!
헬 파이어.
블리자드.
메테오.
멀티 캐스킹에 트리플 캐스팅. 심지어 쿼드러플 캐스팅까지 해 대며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지워 버리던 블랑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산’의 절반이 사라져 있었다.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하늘에 떠 있던 블랑은, 문득 오른쪽 다리가 욱씬거림을 느낀다.
이를 악물고 회복마법을 펼쳤다.
부서진 건 아니었고 금이 간 것도 아니었다.
드래곤의 신체는 그 정도의 강도를 자랑했으니까.
그건 아무리 폴리모프를 해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지금 블랑이 당황한 것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다.
시체를 움직이고.
시체로부터 맹목적인 충성을 받아 내는.
과거 어느 문건에 저 두 가지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진정한 흑마법사인 네크로맨서는 죽었던 시체를 일으키고 그 시체로부터 경배를 받으며 피로 물든 길을 혼자서 걷는다.’
소름이 돋았다.
“……설마, 네크로맨서가 등장했단 말인가.”
이 세상.
400년, 그 전의 수천 년까지.
흑마법이 세상에 등장했던 순간은 단 1세기다.
그리고 그 1세기에 흑마법을 창시하고, 흑마법으로 세상에 군림했던 이는 과거의 존재인 ‘발렌타인 밀로스’.
그녀는 단순한 흑마법사가 아닌 네크로맨서로 불렸다.
그 1세기를 넘어, 흑마법이 존재하던 시대에 오직 발렌타인 밀로스만이 그렇게 불렸다.
세상에.
“……살아 있었다고? 그 괴물이?”
블랑은,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아카데미 외곽.
흔한 말로 타노스를 처음 봤던 공원도 외곽에 있었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달랐다.
타노스를 본 그 공원은 서쪽 외곽이었고 내가 있는 이곳은 동쪽 외곽.
그 외곽에 쓰지 않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과거에는 대장간으로 쓰였던 건물.
조금 좋게 말하자면 과거 ‘기술학부’라는 학부가 존재했던 곳이다.
200년 전에 폐지된 것이기도 하고.
그곳에 나는 ‘통신소’를 만들었다.
앞서 말했듯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어려운 일이지만 나한테는 쉬운 일이었지.
땀을 흘리고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얻을 결과물에 비하면 분명 쉬운 일이다.
[고생했다.]“별거 아닙니다.”
싱겁게 웃으려던 그때.
찌릿-
눈매를 찌푸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방향은 ‘트롬 산’이 있는 방향이다.
사실 내가 아무리 천재니 뭐니 하는 입바른 소리를 계속한다고 해도 통신소 같은 개념을 쉽게 떠올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한 가지가 선행되었을 뿐이다.
바로 데스 나이트.
그들을 수하로 부리며 운용하는 나였기에 통신소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던 거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데스 나이트들은 시전자인 내게 복속된다.
그렇게 복속된 순간, 데스 나이트와 나 사이에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작은 끈이 하나 생기는데.
이걸 ‘링크’라고 한다.
통신구를 연결하고 마법과 마법을 연결하는 수많은 이론 중 그냥 ‘연결한다’라는 뜻을 가진 그 링크가 맞다.
나라는 존재를 중심에 두고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데스 나이트.
그들이 세상 어디를 가건 나는 눈치챌 수밖에 없다.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통신소의 개념을 떠올린 거다.
그리고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냐면.
만약에.
데스 나이트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려울 것 없다.
나한테 연결된 데스 나이트가 죽는 그 순간, 링크가 되어 있는 내게도 그 정보가 알려진다.
즉.
지금 데스 나이트 한 기가 죽었다.
그것도 드래곤을 꼬시러 보낸 그 데스 나이트가 말이다.
“허어.”
[왜 그러느냐?]“링크가 끊겼습니다.”
[드래곤?]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말로 설득할 리는 없고…….]피식, 웃고 말았다.
날 어떻게 보고 계신 거야.
내가 얼마나 착한데.
“설마 제가 그러겠습니다. 조용히 말로 타이르고 이러저러한 대화도 나누고…… 그러려고 했는데, 이놈이 지금 데스 나이트 한 기를 죽였네요.”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다.
“그 데스 나이트는 살아 있는 한 제 주변 사람을 지켰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데스 나이트를 죽였다는 건 제 사람을 건드리는 것과 다르지 않지요.”
스승님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그렇게 되는 것이냐?]나도 조금 염치가 있어서 차마 스승님 눈을 바라보지는 못하겠다.
“이러면 어쩔 수 없지요. 줘 팰 수밖에.”
으음.
“저는 정말 신사답게 대화하려고 했다니까요?”
스승님이 웃기지 말라는 듯 피식 웃으신다.
아.
역시 우리 스승님.
날 너무 잘 알아.
* * *
5분의 시간이 흘렀다.
블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진지한 표정의 블랑은 정말로, 진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어떻게 400년을 살 수가 있는 걸까.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앞에 규정된 종족의 한계, 그걸 뛰어 넘었다고?
말도 안 된다.
블랑은 생각했다.
발렌타인 밀로스가 아니라 다른 존재겠지.
400년 사이에 태어난 드래곤들 중 대부분은 발렌타인 밀로스라는 존재가 활약한 과거를 허황된 이야기라고 치부한다.
겪어본 적이 없고,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블랑은 그런 드래곤들과 달랐다.
그는 안다.
두 명의 로드와 지금 마수의 숲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드래곤들이 전부 그녀의 이름만 언급하면 이를 갈고, 두려움에 찬 듯 침을 꿀꺽 삼킨다는 사실을.
그래서 블랑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건 안 된다.
발렌타인 밀로스가 살아있으면 절대 안 된다.
그건 발락투스가 보여준 반응과 흡사하지만 분명 달랐다.
그래서 생각했다.
혹시 이건 흑마법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마법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나를 사용하는 것도 무언가 이상했다.
7서클 마나 유저가 9서클 마나를 사용하는 느낌.
공방을 주고받은 적은 없어도 그 정도의 눈썰미는 있었다.
자그마치 드래곤이니까.
그런 블랑은 지금 매우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데스 나이트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이라면 시전자와 데스 나이트가 링크 되어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말인즉, 지금 데스 나이트의 죽음을 시전자가 눈치 챘다는 뜻이다.
그래서 블랑은 멍청했다.
후우웅-!
갑자기 허공에서 마나의 유동이 생기고.
그곳에서 어깨에 인형을 앉힌 한 남자가 나타나고, 바닥에 착지하는 그 모습을.
블랑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전체적으로 단발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전부 뒤로 쓸어 올린 남자.
스타일링을 한 건지, 아니면 파마를 한 건지 머리카락이 전체적으로 웨이브 져있었고 꽤나 풍성했다.
저걸 세간에서는 사자 머리라고 부르는데, 사자 머리는 황금색이잖아.
쟤 머리는 초록색이다.
그래서 전생에서 나는 저놈을 이렇게 불렀다.
“오랜만이야, 엽록소.”
“…….”
놈은 대답이 없었다.
거참.
텔레포트 타고 이 먼 길까지 날아왔는데 대답은 해야지.
그렇게 말하려다 보게 되었다.
내가 착지한 곳에 떨어져 있는 데스 나이트의 신체 파편을.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형체조차 남지 않은.
바닥에 늘러 붙어 있는 살점과 진작에 굳어서 결정이 되어 있는 핏물 비스무리한 것들까지.
그리고 이 주변.
보니까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