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29)
제 230화
* * *
아카데미에는 이런 규칙이 있다.
학기가 개강 중일 때 외부인은 아카데미에 출입할 수 없다는 규칙.
법으로도 정해져 있고 대륙 전체에 있는 모든 아카데미들이 공통적으로 채택하는 규정이다.
물론 이 규정은 힘 있는 자들의 입맛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내가 그랬다.
내 휘하에 있는 데스 나이트들은 아카데미의 내부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유롭게 출입한다.
뿐일까.
전에 테슬란의 모든 귀족을 아카데미에 모았을 때도 그들은 내부인이 아니었다.
유명무실한 법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이 법을 만든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내부인과 외부인을 가르는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다는 규정은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외부의 소문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학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적어도 나는, 명문상의 법을 무시했을지라도 그 내부의 뜻까지 무시하지는 않았다.
토벌대가 전멸하고, 99명의 토벌대원들이 서클을 잃은 채 왕국을 횡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현재 아카데미 학생들은 모른다.
그래서 학생들은 중간고사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고, 나름 평온한 아카데미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머지않아 알게 되겠지만 중요한 건 지금, 모른다는 거다.
아카데미 애들이 알고 있는 건 귀족 자제들, 그러니까 양아치들이 죄다 사라졌다는 그 사실뿐이다.
더 재미있는 건, 아카데미 애들은 그 사실을 굉장히 통쾌하게 여긴다는 거다.
“죽어도 되는 놈들이었다…… 왜 지금까지 안 죽이고 있었을까…… 이제라도 뒤져서 다행이다…… 무덤이 있으면 어디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가서 오줌이라도 싸 버리게 등등.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보면 참 세상이 각박해. 그렇지?”
“예. 각박한 세상이죠.”
현재 검술학부 학부장 대리를 맡고 있는 해럴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받아넘긴다.
그런 내 시선은 해럴드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거야?”
“예. 이겁니다.”
해럴드가 공손하게 종이를 건넨다.
일단 받아 든 뒤, 제목부터 읽었다.
“아카데미 대전에 참석할 학생 명단.”
생각해 보면 이 아카데미 대전은 일종의 이벤트성 대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다른 왕국으로 가서 다른 아카데미의 학생과 겨룬다…….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자, 요리 보고 저리 봐도 괜찮은 방식이다.
당연히 이 참석할 학생들의 목록에는 내가 아는 이들의 이름이 다 적혀 있었다.
우선 샬롯.
“전공 점수가 환산해서 94점…… 괜찮네.”
옆으로 손을 뻗어 샬롯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했다.”
“헤헤. 고마워요, 보스.”
“단검 쓰는 건 괜찮고?”
샬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해럴드가 샬롯에게 단검을 선물해줬고 샬롯은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요즘 롱소드나 장검이 아니라 단검을 사용한다.
당연히 시험도 단검으로 쳤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샬롯이 단검을 사용하는 거, 난 반대하지 않았다.
내가 봐도 그게 괜찮아 보였거든.
그리고.
“피안화는? 요즘도 자제하고 있냐?”
샬롯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있었던 현장 학습 때 샬롯은 반미치광이가 되었었다.
혼낼 생각?
처음에는 있었다.
정말 샬롯이 ‘본래 이성’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면,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혼낼 생각이었는데, 그건 샬롯이 아니었다.
피안화라는 게 샬롯의 몸을 빌린, 그냥 자연 현상 그런 거였지.
“그렇다고 너무 자제하지는 마. 네가 피안화를 시도할 때마다 네 주변에는 항상 너를 막아줄 이들이 한 명 이상은 존재할 테니까. 그리고 고생했다.”
샬롯이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는 시선을 옮겼다.
다음으로.
“타노스, 전공 점수가…… 79점?”
“……죄송합니다.”
죄송까지야.
참고로 우리 타노스는 정학을 당한 상태다.
자기가 벌을 달라는데 어떻게 해, 달라는데 줘야지.
대신 중간고사가 끝난 그 날부터 한 달이라, 당연히 타노스도 중간고사를 치렀다.
그런데 79점이라니. 조금 낮은데?
내 표정에 다 드러났던 걸까.
코앞에 있던 해럴드가 타노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승부욕은 넘칩니다. 넘치는데 판단력이 부족하고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그래?”
“예, 분명 ‘현장학습’ 때 보았을 때는 집중력이 매우 뛰어났었는데 이상하게 전공 시험을 볼 때는 집중력이 매우 떨어지더군요. 마치 상대를 자기 상대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마치.”
해럴드의 눈이 타노스에게 꽂힌다.
“봐주는 것처럼.”
“…….”
“덩치에 비해 균형 감각이 좋고 민첩성이 좋은 건 놀랍습니다. 순간 속력도 그 서클대의 마나 유저치고는 괜찮고 적극성도 괜찮죠.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더 성장하려면 검사로서 마음가짐이 조금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어느 검사가 상대가 약하다고 봐줄 수가 있습니까. 그런 이들이 대부분 눈먼 칼에 세상을 하직하더군요.”
대놓고 면박을 주는 해럴드의 말에, 타노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나도 안 했다.
왜냐면 타노스는 학생이고 해럴드는 교관이니까.
교관이 학생한테 한 소리 할 수 있는 거잖아.
“말이 나온 김에 샬롯도 말씀드릴까요?”
내 표정이 굉장히 흥미로웠나 보다.
확실히 흥미롭긴 하다.
내가 애들을 가르치고 그러긴 했어도 내가 내리는 평가만 들으면 뭐해, 다른 사람이 내려 주는 평가도 들어 보고 그래야지.
옆에 있는 샬롯을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샬롯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완벽합니다. 당연히 제가 단검을 준 것과는 별개입니다. 신체의 성장이 계속 진행 중인 것을 감안한다 해도 파괴력이나 균형감각, 민첩성부터 순간적인 속도까지 그 나이 또래의 애들을 비롯해 4학년 정도 되는 이들 중 샬롯에 비견 가는 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타노스랑 비슷합니다. 음, 그리고 이건 제 ‘개인 의견’인데, 타노스는 정확히 ‘집중’을 못 하더군요.”
“그래?”
“예, 대련 상대는 가능하면 같은 서클인 이들로만 붙여 주었는데, 샬롯과 타노스는 상대를 너무나도 손쉽게 제압했었습니다. 다만 타노스는 상대를 얕보고 있었다면 샬롯은 전체적으로 무언가 산만하더군요. 앞서서 집중력의 문제라고 말씀드렸지만, 이게 참 애매합니다. 그냥, 자체적으로 무언가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가능하면 전부 털어 버리라고 하고 싶군요.”
타노스와 샬롯이 해럴드를 향해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가볍게 손을 내저은 해럴드가 마저 말을 잇는다.
“딴 생각을 하면서도 순간마다 판단하는 움직임이나 검 놀림은 괜찮습니다. 매우 놀라울 정도죠. 그래서 애매하다고 한 겁니다. 요즘 애들이 쓰는 언어로 ‘멀티태스킹’이라고 하는데, 샬롯은 그게 뛰어났습니다.”
멀티태스킹.
숙련된 마법사들이 더블 캐스팅이나, 트리플 캐스팅을 하는 것에서 파생된 새로운 단어였다.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며 그 일의 능률이 낮지 않은.
다중 업무 처리라고도 하고, 다중과업, 혹은 다중과업화라고도 하는데, 요즘 애들은 그걸 멀티태스킹이라 하더라.
“이 부분에서 교관들의 점수가 갈렸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게 확실히 보이는데도 상대에 대한 집중력이 부족하지 않다?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상대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읽고 방어하고, 공격한다?”
“예. 어린 나이임을 감안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94점입니다. 타노스는 그게 안 됐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이었음에도 점수 차이가 저 정도로 큰 겁니다. 그리고 저는 몰랐는데 샬롯이 받은 점수가 검술학부에서 받은 점수 중 최고 점수라고 하더군요. ‘변수’만 없었으면 아카데미 최고 점수가 될 수도 있었을 점수였는데, 아깝더군요.”
마지막 말이 조금 묘하다.
“다른 학부에서 학부 전체 최고점이 나왔나 봐?”
해럴드가 이번에도 어색하게 웃는다.
“2년 전, 엘리자베스 발란티에가 16살의 나이로 전공 최고 점수인 98.6점을 맞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카데미 창설 이래로 역대 최고 점수였죠.”
“그런데?”
“그게 어제 깨졌더군요. 공자님에 의해서.”
나도 내 점수가 궁금하긴 했지만, 그냥 물어보지는 않았다.
왜냐면 몇 점 받을지 짐작하고 있었거든.
“100점이더군요. 세상에, 퀀터블 캐스팅을 하는 마법사에게 그 누가 평가를 내릴 수가 있겠습니까. 마탑주님이 그러시기를 100점도 모자라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미리 이야기라도 해 달라고 전해 달랍니다. 심장 떨어질 뻔했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
“그냥 애들 견문 좀 넓혀 줄려고 한 거지. 애들이 살면서 그런 걸 언제 보겠어?”
“……퀀터블 캐스팅은 저도 못 봤는데요.”
다시 보여 달라는 건가.
그냥 무시했다.
그보다.
“타노스.”
“……예, 주군.”
“문제점은 들어서 알고 있지?”
“……예.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굳이 대답하지 않고, 손을 들어 마당에 설치된 마법진을 가리켰다.
“단계를 1단계로 내려놨으니까, 오늘부터 눈에 안대 채우고 들어가. 횟수는 하루에 최소 100번. 기간은 네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멀티태스킹.
참 좋은 단어다.
샬롯은 그게 되는데 타노스는 안 된다?
난 타노스의 재능을 샬롯의 재능만큼이나 높게 친다.
샬롯이 할 수 있으면 타노스도 할 수 있다.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분명 흉내 내는 것 이상은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눈을 감고 오직 ‘기척’으로만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한다면, 그게 숙달된다면 딴 생각을 하면서도 상대를 상대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해럴드의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맞는 말은 아니었다.
타노스가 다른 이들을 봐주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아카데미 애들한테는 안타까운 소리지만 타노스는 매일매일 죽음의 기로에서 수련을 한다.
목이 잘리는 고통.
심장이 뚫리는 고통.
그게 ‘환상’ 마법진이긴 해도 분명 그 고통은 실제다.
약간 조절을 해놨지만 그래도 그런 경험을 어디 가서 하겠어.
그런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는 타노스에게 다른 아카데미 애들이 대련 상대로 보일 리 없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 세 살배기 애들처럼 보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타노스가 말했다.
“그리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타노스를 잠시 손짓으로 막았다.
아직 녀석이 들을 이야기가 남았거든.
“그리고 샬롯.”
“……네?”
“내가 교관이었으면 너랑 타노스한테 몇 점을 줬을 거 같아?”
“……잘 모르겠어요.”
표정을 봐도 확실히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냥 바로 말해줬다.
“0점. 아무리 높게 줘도 그 이상의 점수는 못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