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89)
제 290화
굳이 먼 곳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
내 주변에 펼쳐져 있는 것은 이스마엘 왕성이었으니까.
그것도 왕성 입구.
으리으리한 내부 성벽과 그 안에 펼쳐진 수많은 건물들.
두 번밖에 오지 않았지만 두 번이면 충분했다.
나는 이곳을 내 집처럼 돌아다녔고 머지않아 거대한 연병장에 서 있는 꼬마를 볼 수 있었다.
그 꼬마에게 다가갔고 슬쩍, 고개만 돌려 꼬마의 얼굴을 확인했다.
음.
사미트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꼬마가 사미트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머리가 되게 풍성했거든.
농담이 아니라 진짜 풍성했다.
이 머리가 지금은 왜 그렇게 됐대.
녀석의 어깨를 툭 치려던 그때였다.
쿠궁-!
가상 세계 전체가 한 번 떨리더니.
‘백성을 지키지 못하는 왕을 과연 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사미트의 목소리가 맞았다.
그것도 약간의 변성기가 온 목소리.
나이대는 한 17살? 18살? 그쯤 된 듯하다.
‘평범한 이가 왕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다면 그런 이라도 왕이라 불러야 하는가. 대체, 왕이란 무엇인가.’
그대로 손을 내렸다.
무의식의 세상은 심상 세계와 흡사하다.
‘다른 국가와 이스마엘은 무엇이 다른가.’
세상 전체를 울리는 이것은 사미트의 확고한 신념.
템-사미트 이스마엘이라는 존재를 떠받치는 존재로서의 의념이다.
조금,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다른 국가의 왕과 귀족은 그저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왕이 되고 귀족이 된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왕에게 제한을 걸었다. 왜일까.’
이번에는 20살 중반쯤 되는 청년의 목소리 같았다.
‘왕이 강하지 않으면 백성의 믿음은 사라질 것이고, 국가는 그대로 무너지겠지. 하지만.’
쿠궁-
‘강자존이라는 사상은 정말 옳은 것인가. 세간에서는 이것을 폭군을 위한 사상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던 국가가 어찌하여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가.’
강자존, 액면상으로만 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사상이다.
반드시 강자만이 왕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이스마엘에서 왕이란 곧 최강을 뜻한다.
즉, 명예와 힘. 모든 것을 가진 자리.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여긴 무의식 속이라 별게 다 가능하다.
지금 눈앞에서 쿠궁 하는 소리와 함께 왕성이 점점 커져 가는 것처럼.
‘백성들의 안정과 행복을 가장 최우선하라는 것이 바로 이스마엘 정신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
그건 한 남자의 고찰이었고, 사색이었으며 인생의 길을 밝히는 등불 같은, 철학이었다.
사미트는 오래전, 이미 깨달은 것 같았다.
‘강자존 사상은 오히려 왕에게 강제적인 희생을 바라는 사상,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백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자, 즉 왕은 희생하는 자리.’
콰르릉-!
번개가 치는 듯했다.
‘강자존에서 강자는 단순히 힘이 센 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심적으로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거기다 강하기까지 한 자를 말한다.’
거대해졌던 왕성은 점점 작아졌고, 주변에 있는 다른 도시들이 점점 거대해졌다.
심상 세계니까 가능한 거지 현실적으로는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
사미트의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백여 년 남짓한 역사밖에 없던 이스마엘 왕국이 빠르게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이었구나. 그런 왕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국가. 그렇다면 나는 선왕들처럼 희생할 수 있는가.’
쿠구궁-!!
쿠궁-!!
심장 박동처럼 거세게 뛰던 가상 세계가 천천히, 안정을 찾아간다.
‘내 삶을 바쳐, 나 자신을 희생해 백성을 옳은 길로 이끌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그런 왕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내 그릇은 어느 정도인가. 내 힘은 어느 정도인가. 나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왕국의 왕이 될 자격이 있는가.’
폭군을 만들어 내는 야만적인 국가라 불리는 이스마엘이지만 내면을 뜯어보면 이 국가는 폭군을 만들어 내지도 않았고 야만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왕이 아닌 다른 이들이 야만적이었고 잔혹해 보일 정도다.
그게 이스마엘의 왕이다.
백성을 지키겠다는 책임감과 스스로를 내던질 수 있는 자기희생정신을 가진 자.
오직 그런 자만이 왕이 될 수 있고 수호자가 될 수 있다.
이스마엘에서 왕이란 희생자이자, 국가와 백성을 위해 한 몸을 바치는 고고한 성자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
외부에서는 전사의 나라라고, 야만인들의 국가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너무나도 숭고한,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보이는 이가 오히려 가장 많은 것을 희생하는 자리.
템-사미트는 그런 왕이 될 수 있을지 스스로 사색했고 고민했다.
천천히, 녀석의 심상 세계가 안정을 찾아간다.
그런 세계에서 과거, 템-사미트라는 남자가 했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스마엘의 왕이다.’
* * *
고개를 돌렸다.
어린 사미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렇게 풍성한 머리가 그렇게 된 이유가 있었구나.
얘가 머리빨을 좀 받는 얼굴인데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았으니, 어휴.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고 복잡하게 질질 끌 이유가 없다.
이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오른손을 뻗어 풍성한 사미트의 머리에 턱 올렸다.
그러자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자기 꿈속의 이질적인 존재.
없어야 하는데 있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정신부터 차리자고.
반대쪽 손을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는 튕겼다.
따악-!
청명한 소리가 심상 세계 전체를 울렸고.
나와 어린 사미트의 몸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눈을 감았고,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사미트의 침실에 있었고 내 오른손은 사미트의 머리에 올려져 있었다.
민머리의 반짝거리는 그 머리가 살짝 꿈틀거리더니.
“으음…….”
진짜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깨어나듯 천천히 눈을 떴다.
밖을 지키고 있던 둔-시엘이 눈을 크게 뜨며,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사미트의 침대맡에 앉아 계시던 스승님은.
[2분, 생각보다 오래 걸렸구나.]이렇게 말씀하신다.
사실 다크 사이드라는 마법이 그렇다.
현실의 몸은 그대로 두고 정신만 상대의 심상 세계로 내보내는 건데, 대충 요약하면 현실에서 1초가 심상 세계에서는 5초가 될 수 있고 10초가 될 수 있다.
1:1 비율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미트의 상태는 코마 상태였고 그런 상태에서 현실과 같은 걸 바라는 건 욕심이지.
안에서는 거의 몇 시간 정도 지난 것 같았는데 2분이라.
나쁘지는 않다.
“안에서 꽤 재미있는 소리가 들려와서요.”
[재미있는 소리?]천천히 눈을 뜨는 사미트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확실히 괜찮은, 녀석인 것 같습니다.”
그걸 듣기라도 한 걸까.
눈을 뜬 채로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던 사미트가 내게 말했다.
“……개꿈이군.”
거참.
전부터 느낀 건데 내 주변 애들은 왜 다 이런 걸까.
우리 지성인이잖아.
“말할 때 주어 목적어 이런 거는 좀 명확하게 구분 좀 하자.”
“……꿈에서 너를 본 거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는군. 대체 뭐가 맞는 거지?”
그대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뭐긴.
“왕은 희생하는 자리…… 좋네. 확실히 뇌까지 근육으로 만들어진 녀석은 아니었어.”
어이가 없다는 듯 사미트가 허탈하게 웃었다.
“남의 꿈에 들어오기까지 한다…… 하,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싶군.”
사미트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사미트가 둔-시엘을 발견하고, 둔-시엘이 빠르게 사미트에게 다가가 최근 있었던 일들을 말해 준다.
귀족들이 나한테 와서 왕이 되어 달라고 했던 그 일까지 전부 들은 사미트는.
천천히 고개만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녀석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의외라고 해야 하나.
난 녀석이 화를 낼 줄 알았거든.
혹은 민망해하거나.
그런데 둘 다 아니고 이렇게 말하네.
“원하면 선위하겠네.”
당황하거나, 어이가 없다거나, 그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최대한 무표정으로 녀석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그건 나랑 우리 스승님만 가능했나 보다.
“……폐하?”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선 둔-시엘이 저 한마디로 모든 감정을 표현했다.
“이미 난 패배자가 되었어. 같은 남자에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패했지. 자네 같은 규격 외의 괴물이 아니라 해볼 만하다고, 나와 비슷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 그런 이에게 진 거야. 그런 내가 왕을 한다고 이 국가가 안정되겠는가.”
어느새 스승님은 내 어깨로 올라와 있었고, 나는.
슬며시 팔짱을 꼈다.
“대륙 최강의 전사라는 수식으로 불리던 이가 패배했다…… 그리고 그걸 많은 이들이 지켜보았다…… 이건 굳이 듣거나 볼 필요도 없이 안 봐도 뻔하군.”
사미트가 고개를 돌려 둔-시엘을 바라본다.
“밖의 상황은 어떠하지?”
“……하늘 산맥의 마스터들이 내려왔고, 감옥에 있는 귀족 가문과 접촉을 했습니다.”
“접촉?”
“폐하를, 폐하로 인정할 수 없다고 새로운 왕을 뽑아야 한다고 병력을 모으며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습니다.”
“근위기사단은?”
“대장들은 왕성을 지키고 있지만 그 외의 대부분 근위기사단이 근무지를 이탈했습니다.”
사미트가 허탈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거의 내란이 일어나려 한다고 생각해도 무방하겠군. 상대 병력은?”
“일단 중급 3명, 하급 4명, 총 7명의 마스터는 분명하지만 그 외에는 불분명합니다. 최소 수천일 수도 있고 수만일 수도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준비된 걸로 보아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에 폐하께서 자결하라 명하셨던 그 귀족들이 지금 지하 감옥에 있습니다.”
“음. 살려 둔 이유는?”
“그들을 이용해 상대 병력을 해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말 그대로 ‘자의적’으로 판단한, 그런 상황이라는 건데.
그때였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소형 통신구가 반짝인다.
슬쩍 눌러 보니 아베이루의 얼굴이 나타났고, 녀석이 말해 준다.
이스마엘 귀족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고.
약 4천에 달하는 고서클 마나 유저가 수도로 집결하고 있고, 그중에는 9서클 마나 유저가 최소 100명이나 된다고, 그 밑의 마나 유저는 더 셀 수도 없고, 지금도 더 모이고 있는 중이라고. 파나메로 공작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움직임인데 대체 나보고 무슨 사고를 친 거냐고.
통신구 없이 움직인 이들도 있는 것 같던데 이상한 세력인 것 같다고, 블랑을 이용해서 텔레포트로 병력을 지원하겠다고, 그런 말을 하는데 희미하게 웃으며 이리 말해 주었다.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이쯤에서 다 듣고 있던 사미트와 시엘이 눈을 크게 떴고.
{예, 알겠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아베이루의 말에 한 번 더 크게 뜬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베네딕트한테는 말해 놔. 아카데미 애들 좀 신경 써 달라고.”
{그리하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주군.}
통신이 끊기자 사미트가 묻는다.
“……정보력이 엄청나군.”
그렇게 보이긴 하겠지만 글쎄.
나는 좀 아니라고 본다.
왜냐면 통신구가 지금 모든 귀족들에게 배급된 건 아니거든.
배급되었다 해도 기존에 쓰던 걸 계속 쓰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테슬란 왕국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다른 왕국의 경우 나와 아베이루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아직 초기 단계니까.
“새삼스럽게 뭘. 그런데 왜 멈춰? 계속해. 상대 병력이 그 정도면 너네 병력은?”
“……저희는 폐하와 저를 포함한 4명의 친위대. 즉 5명의 마스터와 몇 남지 않은 근위 기사단. 숫자로 말씀드리면 총 32명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국가가 반으로 갈려서 싸운다는 이야기네.
갑자기 스케일이 이렇게 커지고 그래, 부담되게.
사미트가 이번에는 다른 걸 물었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뭐가?”
“어느 쪽이 이길 것 같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