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88)
제 289화
“모든 교관들 집합.”
이번에는 5초가 지나기 전에 모든 교관이 집합했다.
음악 소리도 멎고, 매우 싸늘해진 파티장에서 나는 천천히 걸었다.
“세상이 변할 때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어.”
잠시 말을 멈추고는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잔을 하나 들었다.
알코올이 적게 들어간 피치 크러쉬라는 칵테일인데 오랜만에 보네.
“그전에는 암묵적으로 허용되어 왔겠지. 묵인되어 왔고 그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겠지.”
칵테일을 조용히 한 모금 마시고는 음미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면.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해. 정치와 교육은 달라. 다른데 왜 그걸 같다고 생각할까.”
이게 핵심이다.
정치와 교육은 분리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의 귀족이 사신 형태로 와서 축하를 해 준다, 다른 아카데미의 교관들이 와서 축하를 해 준다. 명목은 좋지. 정치적인 이득을 취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관계 정립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미안한데 착각이야 그거.”
난 지금 교관들에게 말하고 있는 거다.
“교관은 정치적인 중립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밀로스 아카데미의 기본 정신. 그 본질을 한번 보자고. 이 본질이 뭐라고 생각해?”
답은 없었다.
매우 조용했으니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해 줬어야 하는 말이다.
이 자리에 있는 교관들은 그렇다 쳐도 학생들.
이 학생들은 이 아카데미를 이끌어 갈 미래의 인재들이니까.
“그 본질은 아카데미에 있는 학생을 최우선으로 신경 써라, 이런 거거든. 국가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가 없는가, 이딴 걸 계산하는 건 정치인이 하는 건데 너네가 정치인이냐? 교관이잖아. 너희의 최우선 목표는 그딴 게 아니라 우리 아카데미 애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런 걸 파악하는 거야. 그게 너희가 할 일인 거지.”
잔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도 숙여야 하는 포지션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해? 아까 그 귀족들이 여기 와서 무슨 도움이 되는데? 안면을 트는 거? 개소리하지 마. 딱 보니까 죄다 빈손으로 왔던데, 너네도 느끼고는 있잖아. 걔네는 지금 ‘국가의 힘’을 앞세운 채 여전히 우리 아카데미를 밑으로 보고 있는 거. 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교관들이 고개를 푹 숙인다.
“내가 있는데 왜 자꾸 약자인 것처럼 행동을 하지? 다른 아카데미의 교관들이나 귀족들이 내미는 축사 같은 건 후에 사미트가 정신을 차리고 국가 차원에서 여는 개막식에서 들으면 되잖아. 이건 우리끼리 축하하려고 우리끼리 연 파티이고 우리끼리 하는 식사 자리인데 왜 여기에 자꾸 정치를 대입하냐?”
“…….”
“명심해. 밀로스 아카데미는 학생들이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하고 정치적으로는 무조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거. 이게 밀로스 아카데미가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야. 인맥이고 나발이고 그딴 걸 왜 신경 써. 그딴 게 밥 먹여 주냐? 이참에 확실히 말해 두는데, 이걸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사표 쓰고 나가. 안 잡으니까.”
조용했다.
솔직히 밀로스 아카데미만큼 교관들을 대우해 주는 곳은 없다.
언급은 안 했지만 테슬란에서 밀로스로 바뀌는 그 순간부터 남아 있는 교관들에게 임금을 대폭 인상해 줬거든.
뿐일까.
인식도 좋아지게 만들었고 그 누구도 아카데미 교관을 힘으로 누르거나 협박할 수 없게 내가 뒤에 서 주었다.
이걸 걷어차고 나간다?
그건 진짜 미친놈이지.
혹은 애초에 의도가 아주 불순한 놈이었다거나.
여하튼, 교관들의 분위기를 보니 나름 반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다.
일단 이 분위기부터 좀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내가 이 말을 깜빡했네.”
또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모두가 나를 주목한다.
“우리 존경스러운 사미트 폐하께서 개인 부문 우승 상금을 70만 골드로, 단체 부문 우승 상금을 20만 골드로 올려 줬어.”
“예……?”
“진짜요?”
아니, 진짜일 리가.
근데 목숨 구해 줬잖아. 이 정도는 알아서 픽스해 주겠지.
“그런데 너희도 알다시피 우승을 전부 우리가 독차지하긴 했어도 개인 부문의 경우 본선에 올라간 애들은 별로 없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칵테일 옆에 있는 크라페 하나를 집어 먹었다.
와그작와그작.
이건 내 착각일 수도 있는데 과자 씹어 먹는 소리가 마치 돈 씹어 먹는 소리처럼 들린다.
“단체 부문 애들 빼고, 본선에 못 올라간 개인 부문 참가자들한테 5만 골드씩 지급할 거야. 당연히 이것도 장학금 명목으로.”
“와…….”
“와아…….”
저 감탄사에는 아마 정말 돈이 많긴 하구나 하는, 그런 속내가 들어 있을 거다.
5만 골드면 최약소국 남작 영지를 한 3개월 정도는 운영할 수 있는 매우 큰 돈인데, 새삼스러울 것도 없잖아.
나, 돈 많다.
그 돈 아낌없이 베풀고 있으니.
“자, 박수.”
짝짝짝-!
돈 준다니까 금방 헤벌레 하는 애들도 있었다.
지금 파티장을 울리는 박수 소리 중 절반 이상은 저 헤벌레 하는 애들이 치고 있는 거다.
그중에는 샬롯도 있었다.
“오늘은 자유시간 줄게. 뭘 하든 오케이. 방 청소나 그런 건 굳이 할 필요 없어, 전부 교관님들이 해 주실 거거든.”
교관들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그런데 이건 징계성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다.
애들 고생했잖아.
교관도 고생했지만 오늘 주인공은 애들이니까 혜택 정도는 줘야지.
“그리고 교관들한테도 아카데미 차원에서 따로 선물 같은 거 들어갈 테니까 걱정 말고, 할 땐 확실히 하자. 오케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불만은 없어 보였다.
분위기는 대충 정리가 되었다.
슬쩍 들고 있던 칵테일을 천천히 탁자에 내려놓았다.
“정말, 고생 많았다.”
“…….”
“우승이야…… 당연히 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실제로 하니까 좋네. 썩어 빠진 아카데미도 바꾸고, 바꾼 아카데미로 이런 상도 타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그래도 첫발을 잘 뗀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아. 세상 전부를 좋게 만들지는 못해도 내 주변 세상 정도는 좋게 만들었잖아. 첫발, 이 정도면 정말 잘 뗀 거지.”
테이블 옆에 가득 차 있는 다른 칵테일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
“잔 안 들고 뭐 해?”
모든 이들이 웃으며 잔을 든다.
내 옆에 있던 스승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밀로스 아카데미를 위하여.”
위하여-!
chapter 6
그날 저녁.
왕성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퍼엉- 하고, 작은 폭발음이 들린다.
그러고는 익숙하다는 듯 자리에 앉아 스승님이 입고 계셨던 옷을 곱게 접었다.
속옷은 스승님이 직접 접었다.
가지런히 정리하고.
스승님을 어깨에 올렸다.
[이제,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되겠느냐.]자연스러운 웃음이 지어진다.
“물론입니다. 1년에서 2년, 그 사이면 충분합니다.”
내 말에 스승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고는 내 머리를 쓸어내리며 작게, 정말 나는 오래 살 생각이 없는데 자꾸 욕심이 생기게 하는구나,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실 말씀이라기보다는 그냥 혼잣말 같았다.
저거 진짜 새로운 버릇인데.
그렇게 왕성 안으로 들어선 나는 입구에서 대기하던 둔-시엘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사미트를 만날 수 있었다.
사미트는 거대한 침상에 누워 있었는데. 그런 사미트를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게 떠오른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아니고 뭐 이리 편하게 자고 있냐. 밖은 난리가 났는데.”
“…….”
슬쩍 고개를 돌려 둔-시엘을 바라보았다.
“알지? 잠자는 숲속의 공주.”
“모릅니다.”
“몰라? 이거 되게 유명한 동환데?”
“…….”
“요약하면 그거야. 오랫동안 잠을 자고 있는 공주는 왕자의 키스로 깨어난다는.”
살짝 장난기가 동했다.
“혹시 모르지. 네가 얘한테 키스하면 깨어날 수도.”
그런데 둔-시엘은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보다.
“그러면 폐하께서 깨어나시는 겁니까? 그럼 당장이라도 하겠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징그러운 소리를 하니 소름이 쫙 돋네.
“농담이니까 좀 뒤로 물러서 봐. 왜 진짜 하려고 해.”
사미트에게 다가가던 둔-시엘이 머쓱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선다.
이게 진짜 충성심이지.
대단한 놈.
그대로 사미트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정말 자고 있는 거면 뺨 한 대 치면 깨겠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다.
이건 일종의 코마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가벼운 예시를 들면 베커만이 나한테 팔을 잃고 몇 주 누워 있었던 그것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이건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써야 한다.
“어디 보자.”
대충 머릿속에 몇 가지가 떠오른다.
극에 달한 라이트닝 마법으로 계속 심장 부근을 타격해서 가라앉아 있는 정신을 물 위로 끌어 올리는 방법. 이게 첫 번째로 떠오른 거고, 두 번째는 이곳 전체를 하나의 수영장으로 만들어서 강제로 정신을 차리게 하는 거.
그 외 다섯 개 정도가 더 떠오르긴 했는데 다 앞선 두 개랑 비슷하게 불확실한 것들이라 어쩔 수가 없다.
가장 확실한 걸로 하는 수밖에.
“조금 멀찍이 떨어져 봐.”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모르는 둔-시엘이 눈만 멀뚱멀뚱 뜬 채로 나를 바라본다.
“너 말하는 거야. 그런데 둔이라고 불러야 되냐 시엘이라고 불러야 되냐.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이름 체계가 되게 이상하네.”
살짝 고개를 갸웃한 둔-시엘이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정말 멀찍이 떨어지더니 내게 말했다.
“둔 가문의 시엘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스마엘의 전사, 둔-시엘. 편하신 대로 부르십시오. 그런데 이 정도 거리면 됩니까?”
둔 가문의 시엘이면, 템-사미트는 템 가문의 사미트라는 건가.
가장 강한 자국민이 왕이 되는 거니까 이스마엘이라는 성은 공용으로 쓰는 거고.
대충 그런 체계였나 보다.
“그 정도면 충분한데, 내가 지금부터 뭘 좀 할 거거든. 그러니 아무도 못 오게 거기서 막아. 대충 무슨 말인지 알지?”
“방해가 되지 않게 주변 통제해라,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라면 예, 그리하겠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둔-시엘의 믿음직한 저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미트 얘가 확실히 나쁜 애는 아니라는 거.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따르지.]마침 알맞게 첨언해 주시는 스승님의 말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잡담은 이 정도면 충분하니 이제는 좀 진지해져야 할 듯.
천천히 손을 뻗어 사미트의 머리를 짚었다.
[다크 사이드Dark side를 사용할 셈이냐.]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말은 안 했는데, 흑마법에는 종류가 굉장히 많다.
하나하나 나열하지 못할 정도로 많아서 말 안 한 건데, 그중 다크 사이드라는 마법은 상대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다.
솔직히 이럴 때 쓰라고 스승님이 만든 마법은 아닌데 새삼스러울 것도 없잖아.
사실 마법이라는 건 시전자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성질과 목적, 그리고 방향이 달라지기 마련.
나는 이걸 ‘회복용’으로 쓰려고 한다.
천천히 집중했다.
내 마나가 나와 사미트를 휘감았고, 머지않아 녀석의 뇌와 내 뇌가 공명한다.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고, 머릿결이 흩날린다는 느낌이 들 때 눈을 떴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사미트의 침실이 아니었다.
녀석의 뇌가 만든 가상 공간.
다른 이들은 여기를 무의식이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하면 이곳 어딘가에 사미트의 ‘의식’이 있다.
그걸 공격하면 상대 정신을 파괴할 수 있고.
그걸 원형보존한 채 데리고 이곳에서 같이 빠져나오면 사미트 같은 코마 상태에 빠진 이들을 정신 차리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사미트를 좀 찾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