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94)
제 295화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지팡이와 장검을 교차한 가나안 아카데미의 상징을 가슴에 달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대표를 뽑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요. 책임자답게 머리도 좋으시네.”
확실한 이야기의 방향이 정해지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 해야 했으니까.
무슨 생각인지는 들여다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어떤 기준으로 대표를 뽑느냐, 어떤 기준으로 머리가 될 이를 정하느냐. 그 생각 하시는 거 같은데 간단한 거 아닙니까?”
슬며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느 한 개의 왕국이 이상한 움직임을 시작했을 때 그 왕국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는 괴물. 쉽게 말하면 그거죠.”
검지로 테이블을 툭, 쳤다.
“힘, 그냥 힘입니다.”
기운을 끌어 올리지도 않았고, 분위기를 연출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건 그냥 자연스러운 기세.
그동안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던 여러 가지 행동을 완전히 버린 모습.
과거 검의 귀신이라 불리고. 마나의 황제라 불렸으며 고금 최강의 검사이자 고금 최강의 마나 유저라 불렸던 그때의 내가 풍기고 있던 기세다.
“툴칸이 지녔다는 엄청난 세력.”
베커만이 움찔했고.
“이스마엘이 지녔다는 수십만의 강대한 전사 부대.”
사미트가 움찔했고.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최강의 방패를 지녔다는 가나안의 방패 부대.”
가나안의 책임자들이 떨었고.
“거함을 수십 채나 보유한 강대한 해상 전력을 자랑하는 요람과 고서클 마나 유저 수백 명으로 이루어진 장검 부대를 보유한 마티아스까지. 참 생각해 보면 웃기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가짜 힘과 진짜 힘을 구분 못 하는 이들을 보면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들어.”
앞에 놓인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없는 힘을 있는 힘처럼 꾸미고 교묘한 말이나 행동 그 외 정치 같은 행위로 힘이 있는 것처럼 가장을 하며 속이는 이들과 그걸 그대로 속는 이들. 과연 어느 쪽이 잘못된 걸까 하는 그런 생각.”
굳이 답을 듣고 싶어서 물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분. 내가 좋은 거 하나 알려 드릴게. 이 세상에 진짜 힘은.”
홍차를 테이블에 내려놓는 순간.
쿠웅-!
기묘한 굉음과 함께 회의실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없는 휑한 평야.
베커만도 눈을 크게 떴고, 사미트도 마찬가지였으며, 다른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는 스승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텔레……포트?”
“매스 텔레포트……?”
“마나의 이동은 없었는데?”
각각 한마디씩 중얼거렸지만 딱 한 분은 아니었다.
우리 스승님은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이어서,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야…… 저게 뭐야!”
“신이시여…….”
“우웩-!”
주변 반응은 신경 쓰지 않는 우리 스승님은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으셨다.
[심상 세계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심상을 강제로 너의 세상으로 이동시켰어. 이게 사전 동작 없이 가능한 것이냐?]스승님의 말대로 이건 마법의 종류가 아니었다.
얼마 전 내가 사미트의 정신 속으로 파고들었던 다크 사이드라는 마법을 업그레이드 한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영혼의 힘으로 사용하는 마법과는 다른 기술.
그래, 이건 그냥 기술이다.
다른 이의 정신을 내 심상으로 이동시킨 기술.
정확히는 과거에 내가 있었던 곳.
내가 저지른 일.
나라는 존재가 왜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세계.
휑한 평야였지만 절대 휑하지 않았다.
피와 시체가 들러붙고 구더기가 들끓고, 주변 모든 것이 시체로 둘러 있었기에 모순적으로 휑해 보였던 것이다.
구역질을 하던 남자는 멈추지 못했고.
신을 찾는 사람도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인간도 있었고 오크도 있었으며 하피도 있었고 엘프도 있었으며 그중에는 드래곤도 있었다.
시체의 산.
피는 강이 되어 흘렀고 시체에는 벌레가 꼬였으며 사방에는 피 냄새로 공간 전체가 썩어 들어가는 듯했다.
모두가 겁을 먹은 듯 나를 바라본다.
“하던 말 마저 하겠습니다. 진짜 힘이라는 건 이런 것들 위에 설 수 있고, 서 있는 것. 그게 진짜 힘입니다.”
한 번 더 탁자를 검지로 툭- 치자.
쿠웅-
주변이 다시 이스마엘 왕성으로 변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지금 내가 본 게 뭐지?
아니지, 그냥 저 남자는 대체 뭐지?
그런 생각이 얼굴에 써 있다.
슬쩍 웃고 말았다.
“협박당해 보신 적들 있으십니까?”
“……예?”
“……갑자기요?”
“제가 왜 여러분들을 불러모았을까. 왜 하필 책임자 중에서도 가장 발언권이 있는 이들만 불러 보았을까. 협박하려고 부른 겁니다.”
자리를 박차거나 화를 내려는 이들은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이게 진짜 힘이다.
주둥이로 나불거리는 가짜 힘 말고 진짜 힘.
“이 회의가 끝나는 즉시 여러분들은 휘하에 있는 교관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십시오. 즉시, 애들을 데리고 수도를 제외한 이스마엘 왕국의 주요 명소들을 둘러보라고. 그리고 여러분들은 수도에, 정확히는 이 자리에 남는 겁니다.”
책임자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귀족이었다.
남작 자작 백작, 심지어 후작까지 다양했고 그들이면 충분했다.
“오늘 밤에 벌어질 일을 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시고 각 왕국의 왕들에게 알리십시오. 그리고. 이 말도 전하세요.”
검지를 홍차에 담그고는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렸다.
“12월 15일, 연합의 대표를 환영하는 정상 회담을 열 거니까 참석하라고.”
어딘가에서 꿀꺽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요람의 털북숭이.
전에 샬롯의 일로 나한테 태클을 걸었던 그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연합의 대표를 환영하는 것이라면……. 그 대표가 설마.”
모르고 물어본 건 아닐 거다.
그래도 확답은 해 줘야겠지.
일회용 메신저가 되실 분들인데.
“예. 접니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그 회담에 참석해야 할 왕이 직접 참석 안 하고 만약 대리를 보내거나 하는 헛짓거리를 한다면.”
검지를 들어 올렸다.
홍차에 담갔을 뿐인데 내 검지는 피처럼 붉었다.
“그날, 그 국가의 왕은 바뀔 겁니다.”
대규모 숙청과 함께.
* * *
그날 밤이 되었다.
새삼스럽지만 방년 14세. 나 잭 발란티에.
그렇게 나쁜 놈 아니다.
아무리 미쳐 날뛰긴 해도 지킬 건 지킨다.
원래 이스마엘로 온 ‘아카데미 사절단’이 공식적으로 체류하는 기간은 12월 1일까지다.
아카데미 대전을 끝내고 약 10일 정도를 이스마엘이라는 국가에 대해 알아보고, 문화재를 구경하는 등 일종의 ‘현장학습’을 하게 되는데.
그건 지키게 해 줘야지.
그래서 애들을 다 보낸 거다.
당연히 우리 애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마엘 왕성 거대한 연무장에는 총 45명의 인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긴장한 게 역력한 표정을 한 채 멀찍이 물러서 있는 각 국가 아카데미의 책임자들과 완전 무장을 한 채 대기하고 있는 근위기사단.
가장 선두에는 나와 내 어깨에 앉아 계신 스승님과 사미트가 있었고.
“공자님. 이곳에 설치하면 되겠습니까?”
저렇게 말을 하는 이는 사미트의 사람이자 충신인 둔-시엘이었다.
그는 상당히 큰 받침대에 수정구 네 개 정도를 올려 두고 있었다.
“거기 말고, 조금만 더 옆으로. 여기 연무장이 전부 보일 정도는 돼야 할 거 아니야.”
“……예, 시정하겠습니다.”
중급 마스터가 노동하는 장면을 처음 보는 건지 근위 기사단 몇몇은 여전히 현실감 없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그냥, 신경 쓰지 않았다.
[녹화錄畫 마법을 수정구에 담는다…… 이젠 슬슬 익숙해지는구나.]“뭐가요?”
[뭐겠느냐.]어깨를 으쓱했다.
언제였더라.
아카데미에 있을 때 양아치 몇 놈이 아카데미 학생을 괴롭힌 적이 있었다.
걔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림 앨범, 그걸 걔가 보는 앞에서 찢어발기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이 풍경과 사물 같은 것들을 완전히 ‘복사’할 수는 없을까.
초상화나 풍경화, 이렇게 사람이 붓으로 그리는 거 말고 마나를 이용해서 더 또렷하고, 더 선명하게 그릴 수는 없을까.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수도 없이 말했듯 나는 천재다.
답을 찾았고 거기서 더 나아갔다.
마법을 만들었다고 해야 하나.
녹화 마법.
그리고 그 마법을 통신구에 새기듯 수정구에 새겨서 만든 ‘녹화 통신구’.
그리고 그걸 저기다 설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아카데미 책임자들한테 지금부터 벌어질 모든 일을 저장해서 주기 위해.
정확히는 내가 일 두 번 하지 않게.
괜히 비슷한 일이 계속 일어나고 반복되고 그러면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곤하겠어.
그렇게 스승님과 시답잖은 노가리를 까고 있을 때였다.
“왔네요.”
[왔구나.]나와 스승님, 그리고 모든 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 수없이 많은 이들이 연무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숫자, 최소 1만은 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이 연무장이 확실히 크긴 하구나.]단순히 큰 수준이 아니다.
대륙 전체를 돌아다녔던 내 경험에 의하면 이스마엘 왕성의 연무장 크기는 분명 툴칸의 그것보다 거대했다.
“건국 초기, 당시 왕은 이 왕성을 국가의 심장으로 삼았었다네.”
“심장?”
“왕성은 최후의 보루라고,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을 양성해야 하니 그들이 대련하고 수련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연병장을 만들라고.”
“음.”
“국가의 심장이라면 응당 다른 곳에 피를 보낼 수 있어야 하기에 지속적으로 연무장을 보수를 해 왔네. 이곳에서 길러지는 이들은 각 영지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치안을 담당하며 영지의 안정에 힘을 쓰지. 대충 그런 배경이 있다네.”
사미트한테 연무장에 담긴 단순한 역사를 전부 들었을 때쯤.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리고.”
템-아주리가 딱 좋은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그 사정거리에는 아주리의 뒤에 시립해 있는 약 1만의 마나 유저들까지 들어와 있었는데.
키야. 예술이네.
작품 하나 제대로 나오겠어.
“당신이 그분이시군요.”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해 있는 걸 보니까 나를 말하는 거 같은데.
엣헴.
산속에 처박혀 있었다던데 알아볼 건 알아보는구나.
“발렌타인 밀로스, 과거의 대영웅이시라죠.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내가 아니었네.
[영광榮光이라…… 영광, 내가 아는 영광이라는 단어를 네 녀석은 조금 다르게 사용하는 모양이구나.]“그렇습니까?”
[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면서 영광이라, 네가 나를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네 녀석은 영광이라는 말을 쓰기도 전에 도망갔을 것이다.]템-아주리가 미간을 찌푸린다.
기분이 나쁜 것 이전에 매우 당황한 거다.
듣고 있던 나도 마찬가지로 당황했고.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 봅니다. 분명 초면일 텐데.”
스승님이 고개를 젓는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세상을 발전시키려는 이들과 세상을 퇴보시키려는 이들. 두 사이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를 시도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다는 점인데.]잠시 말을 멈추시더니 나를 바라보신다.
[내 제자는 전자의 경우고, 네 녀석은 후자의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과정이 잘못되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줄 수 있지. 하지만 네 녀석 같은 후자의 경우.]우리 스승님이 할 말이 꽤 많으신 것 같다.
조용히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이런 적이 거의 없었어 가지고 조금 새로운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건 결국 세상을 엉망으로 만드는 폭군이 되더구나.]“…….”
[이스마엘의 왕정제는 분명 문제가 많다. 왕이 될 이가 완전한 희생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다면, 심지어 힘이 약하다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일 테니까. 하지만 귀족정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