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11)
제 312화
* * *
“……혹시.”
데니스 군나르의 말에 송아지 스튜를 떠먹고 있던 숟가락을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혹시?”
“도관을 물려받을 생각인 것이냐?”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왜요? 제가 정말 그럴 거 같습니까?”
“……그거야, 네가 받기 싫다고 해도 사람 입장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느냐. 이해는 안 되지만 아버지는 너를 차기 도주로 앉힐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고.”
말이 점점 작아지다가, 마지막에는 언제 봤다고 갑자기 이렇게 도관을 넘겨주려는 건지 이해가 안 가는군…… 이렇게 중얼거리는데.
내가 못 들을 거라 생각한 건가.
그냥 내색하지 않았다.
“음, 그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저한테요?”
“그래 너한테.”
어깨를 으쓱하기 무섭게.
“혈맥섬유화, 혹시 치료할 수 있느냐?”
이상하게 엔젤라의 모습이 매치되었다.
걔도 나한테 그랬잖아.
필리포스 황제의 혈맥섬유화를 치료해달라고.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있던 기간이 무려 14년이다. 14년. 짧은 기간은 아니지. 치료, 가능 하겠느냐?”
음.
보니까 우리 사랑스러운 외삼촌님께서는 저게 어떤 병인지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인데.
좀 알려줘야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혈맥섬유화는 ‘마나의 공명’이 완전히 틀어진 상황에서 발생하는 병입니다.”
외삼촌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못마땅해하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심각한 표정.
많이 언급했지만 나는 툴칸에 대해서 모르는 게 거의 없다.
혈맥섬유화.
그 병에 대해 나름 조사해본 적도 있었다.
유전병이라니, 궁금하잖아.
자 보자고.
“쉽게 말하면 혈맥섬유화는 마나 이식 수술과 비슷한 겁니다. 외삼촌도 아시다시피 마나 이식 수술의 경우에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외삼촌과 론이 내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서클을 전부 부숴버리고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 이 경우에는 마나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에 옆에서 보조해주고 도와줄 ‘초월자’가 있고 본인이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대상자는 마나 이식 수술을 받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말이 돌아가는 거지, 전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전체적인 감각이 떨어질 테니까요. 사실 그게 어딥니까.”
로만 스튜어트가 나한테 온다면 저렇게 치료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 한대로 전체적인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감수해야한다.
자신의 선택에는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
당연한 거잖아.
“그런데 혈맥섬유화는 다릅니다. 이건 뇌와 혈맥이 마나를 거부하는 병이죠. 마나 이식 수술을 예로 들었는데, 그게 이 부분 때문에 든 겁니다.”
“이 부분?”
“예. 이 부분, 마나 이식 수술을 치료하려면 서클을 전부 ‘안전하게’ 부수면 됩니다. 혈맥섬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그게 가능하겠냐는 겁니다. 혈맥 자체를 새로 만들어야 하고. 어쩌면 뇌도 새로 만들어야 할 수도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아주 심각한.
외삼촌과 론이 정말로 심각한 표정으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이해는 하고 있나 보다.
그리고 내가 어떤 ‘해답’을 제시할지도 짐작하신 것 같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으시기에, 그냥 내가 꺼냈다.
“혈맥섬유화는 인체를 재창조해야 하는 수준이 되어야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건 초월자의 영역을 뛰어넘은 신의 영역이죠. 더 쉽게 말하면 그냥 불치병입니다.”
잠시 식당에는 침묵이 자리했다.
“그리고, 조금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혈맥섬유화가 걸린다고 죽을 때까지 병석에 드러누워 있는 건 아닙니다. 마나만 사용 못할 뿐이지. 일반인처럼 행동할 수는 있거든요.”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몇 가지 더 알려주려다 그냥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기로 혈맥섬유화는 보통 30대에서 40대 사이로 넘어갈 때 증상이 나타난다.
툴칸의 역대 핏줄들과 기밀 서류들을 뒤져서 알아낸 표본인데, 이상하잖아.
플랭크 군나르의 나이는 최소 70은 훌쩍 넘어 보이는데 14년 전에 저 병에 걸렸다고?
정말 14년 전에 걸린게 맞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 그냥 멈췄다.
딱 여기까지만 생각했다.
누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의문이야 곧 풀리겠지,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머지않아 외삼촌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구나.”
이 정도면 밥값으로 충분하겠지?
조금은 가라앉아 보이는 외삼촌에게 조금은 기분이 업될 만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일주일 뒤에 떠날 겁니다.”
외삼촌이 고개를 들었다.
두 눈에는 놀랍다는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일주일?”
“예. 길어야 일주일.”
그 말에 외삼촌은 말없이 스튜를 떠먹었고, 머지않아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았다.
“스튜는 입맛에 맞느냐?”
“먹을 만은 하네요.”
“여기는 소고기가 괜찮은데, 먹어보겠느냐?”
주는 걸 굳이 거절할 생각은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외삼촌인 데니스 군나르가 사 주는 푸짐한 음식을 먹으며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도관의 시작.
스승님의 친구이자 동료였으며 의남매였을 정도로 친했던 아서 군나르의 최후.
대륙이 위기 상황에 빠진다면 그런 대륙을 구하기 위해 힘을 기르는 그런 조직.
마치 보험처럼, 누구도 모르게 존재하며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대륙의 일에는 절대 끼어들지 않는.
그런 이야기를 포함해 아주 많은 것을 들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도시를 걸었다.
“너도 알다시피 섬에 외부인은 출입하지 못하기에 따로 만들어진 여관 같은 것은 없다. 비어 있는 집이 몇 개 있긴 하지만 그렇게 누추한 곳에서 지내게 하고 싶지는 않구나. 혹시, ‘내 집’에서 지내지 않겠느냐?”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냥 빈집이면 됩니다.”
외삼촌은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깊게 생각할 거리가 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움직였고 우리에게 도시 외곽에 있는 빈집 하나를 내어 주고는 입을 열었다.
“노아와 추억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맞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 돌아가셨으니까.”
“……어찌 보면 이것도 운명일 수도 있겠구나.”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저래.
“앞서 말한 대로 아버지가 혈맥섬유화로 자리에 누운 지 오늘부로 14년째다. 14년 동안 아버지는 도관의 주인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지. 마치 진짜 주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외삼촌의 표정은 굉장히 씁쓸해 보였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대로 도관의 주인은 상급 마스터가 물려받는다. 초월자가 생긴다면 1대에서 2대를 건너뛰고 도주가 되었지. 400년 역사상 중급 마스터가 도주의 자리를 물려받은 경우는 단 1번.”
농담이 아니고, 정말 씁쓸해 보였다.
“아버지의 눈에, 나는 차지 않는 모양이더구나.”
중급 마스터가 절대 낮은 경지는 아닌데, 더 어리고 더 강한 나와 비교 하면. 좀 그렇긴 하다.
괜히 데니스 군나르의 모습이 안타깝게 보일 지경이다.
앞에 놓인 술을 한잔 쭉 넘긴 그가 내게 말했다.
“내가 노아를 많이 괴롭힌 것, 그래, 맞다. 부정하지 않는다.”
외삼촌의 눈이 론에게 꽂힌다.
“하지만 사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론의 표정이 구겨진다.
“……뭐요?”
외삼촌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내가 사죄를 해야 한다면 그건 노아 본인에게 해야겠지. 네가 노아와 맺어졌다 해도, 노아가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다고 해도 내가 사과해야 할 대상은 노아 한 명밖에 없다.”
그냥 잠자코 들었다.
론은 아니었지만.
“참으로 뻔뻔하십니다. 그때랑 다르지가 않네.”
외삼촌이 고개를 젓는다.
“보기 나름이겠지. 그리고 잭.”
“말씀하시지요.”
“언제가 되었든 상관없다. 집으로 한번 오거라.”
왜요, 라고 물으려다 말았다.
바로 말해 주었거든.
“노아가 이 섬에서 지냈을 때의 방이 그대로 있다. 노아가 쓰던 물품, 쓰던 옷가지들, 그리고 녀석이 가지고 놀던 노리개들까지. 지나치게 낡은 물품 몇 가지는 버렸지만 웬만한 것은 다 그대로 있다. 그러니 와서 가져가거라.”
데니스 군나르는 그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
잠시 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한마디 내뱉었다.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나 봐.”
“……그러게요. 진짜 철이 들었나.”
여동생이 쓰던 방, 쓰던 물품, 옷 등등.
그 모든 걸 보관해 놓고 주기적으로 청소까지 했다는데 이거.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의외로 다른 면이 있었네.
“그보다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뭔데요?”
“여기 사람들은 내가 론의 자식일 거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더라고.”
“음.”
“거기다 외삼촌이 그랬듯, 나를 언제 봤다고 도주라는 자리에 앉혀? 궁금하고 의아한 게 한두 개가 아니야.”
조용히 침만 삼키던 론이 내게 말했다.
“도관에는 한 가지 전통이 더 있습니다.”
“무슨 전통?”
“군나르의 핏줄을 이은 이들은 배우자를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합니다.”
듣자마자 눈매를 찌푸리고 말았다.
“군나르의 핏줄, 그 자체는 대단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400년 전 이 섬에 관원들을 데리고 온 아서 군나르는 초월자였습니다. 그런 초월자의 핏줄은 자연스럽게 마나의 재능을 품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핏줄을 과연 평범한 이들과 맺게 할까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지.
“도련님도 보셨다시피 도관에는 ‘대전사’라는 직위가 있습니다. 최소 마스터가 될 재능을 지니고 있고, 섬의 수호자라는 별칭과 집행자라는 별칭으로도 불립니다. 하지만,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뭔데 그게?”
“군나르 핏줄의 예비 배우자.”
대충 손을 휘저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우리 엄마가 도망칠 만도 하네.”
그대로 몸을 돌렸다.
마침 하나 궁금한 게 생겼는데.
“혹시 론도 대전사라고 불렸었어?”
“……예.”
“그럼, 설마 우리 엄마랑 론이랑 이어질 수도 있었던 건가?”
론이 작게 웃었다.
“제가 이곳에서 마나를 계속 수련했고, 노아 님께서 이 섬을 벗어나지 않으셨다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는 따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되게 낯 뜨겁네.
그보다.
“우리 낚시나 하러 갈까?”
론의 취미 중 하나가 바로 낚시다.
영지 구석에 있는 호수에 가끔 하인들 데리고 낚시하러 가는 걸 몇 번 봤었는데, 그럴 때면 그날 저녁에는 꼭 고등어가 나왔었지.
“낚시요? 지금 19시가 넘었는데요?”
슬쩍 웃고 말았다.
“같이 하자. 시간 때우기도 좋잖아.”
론이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시죠. 대신 마나 쓰기 없습니다.”
“편할 대로 해.”
chapter 5
도관의 주인.
플랭크 군나르는 천천히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종 하나 없고, 간병을 하는 이가 하나도 없는 이 상황을 누군가 보았다면 혹시, 버려진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겠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혈맥섬유화는 혈맥이 마나 회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병이었고 그 말인즉, 마나를 쓰지만 않는다면 일반인처럼 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더 나아가 마스터의 신체이기에 간병 따위는 필요 없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플랭크는 자리에 멈춘 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았다.
1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넘게 흘렀다.
그때까지도 플랭크는 그 자리에만 서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그러다 그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 입이 천천히 열리고.
“좋구나.”
플랭크 군나르는,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완벽하구나. 너무나도.”
그의 눈과 표정은, 마치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포착한 포식자의 그것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