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5)
제 36화
* * *
다가오는 인형을 향해 론은 매우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의 스승님이셨다는 걸 미처 몰라봤습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
[도관의 맥을 이었더냐.]순간 론의 표정이 굳어진다.
[어림잡아 19년, 아니 20년 정도 전에 9서클을 이뤘구나. 현재 나이는 45에서 46. 스무 살 중반에 9서클이면, 도관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하인이라…….]론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숨기고 싶은 과거는 아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가 없는 과거다.
그런 론을 발렌타인이 표정 없는 얼굴로 응시한다.
그 시선은 마치 오래된 유물을 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당연하게도 론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과장한 게 아니라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도 아니고, ‘도관’이라는 단어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10서클이 될 수 있고, 혼을 다루는 마스터가 될 수도 있었는데, 20년 정도 되느냐?]“예?”
[마나를 쓰지 않고 훈련을 하지 않은 게 20년 정도 되지 않았냐고 물은 것이다.]론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19년이다.
시기는 론이 잭과 엘리자베스의 친모와 함께 후작가에 들어섰던 그날부터 론은 단 한 번도 마나를 쓴 적이 없다.
중간에 잭이 무언가 이상한 변화를 보였기에 어쩔 수 없이 마나를 사용하며 잭의 뒤를 따랐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 한 번뿐이었다.
하긴, 이제 와서 그런 게 뭐가 중요할까.
[아쉽지는 않느냐?]한 번 더, 론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진심이구나. 하인이라는 처지에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무시받는다 해도 아쉽지는 않다…… 스스로의 위명을 쌓을 생각이 없다…… 오직, 저 아이를 모시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마치 속내가 샅샅이 훑어지는 기분.
이 인형의 저 맑은 눈은, 대체 어디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걸까.
[저 엄청난 재능이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풀릴 줄이야. 도관의 미래 대전사가 목숨 걸고 지키는 존재라…… 저 아이는 알고 있는 것이냐?]“……전에 도련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발렌타인이 론을 바라본다.
“과거에 대해 짐작은 하고 있지만 굳이 파고들진 않을 거라고요. 제 판단으로는 확실히 알고는 계시지만 그냥 관심을 두지 않는, 그런 상태인 것 같습니다.”
만약 잭이 이 대화를 들었다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도관? 그게 뭔데?’라고.
잭이 지나치게 뛰어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 주었기에 생겨난 병폐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둘은 모른다.
잭도 의외로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그런 상황을 모르는 발렌타인은 론의 말에 수긍했고, 론은 그런 발렌타인을 향해 다시 한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발렌타인이 잭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론도 고개를 돌려 잭을 바라보았다.
지금 잭은 곤잘레스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살짝 올라가 있는 입꼬리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우리 도련님께서 무언가 일을 꾸미시려나 보다.
그 모습에, 론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저 정도로 의젓한 모습이라니.
눈물이 찔끔 흘러나올 정도로, 론은 이 순간 기쁨에 젖어 있었다.
이어서, 론의 입가에 자연스러운 웃음이 지어진다.
너무나도 해맑은.
그런 미소.
Chapter 4
곤잘레스 앞에 쪼그려 앉은 나는, 그대로 손을 뻗어 놈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슬쩍 들어 올리자 놈의 입가에서 흘러나온 피가 침과 섞여 진득하게 올라온다.
진짜 피떡으로 만들어 놨네.
“곤잘레스라, 이름 참 멋있네. 출세도 한 걸 보면 나름 능력도 있는 거 같고. 우리 후작님이 매우 총애하나 봐?”
“크윽…… 삼 공자, 지금 저 하인 새끼랑…….”
아놔, 이 새끼가.
콰직-!
쥐고 있던 곤잘레스의 머리를 다시 땅바닥에 처박자.
“끄윽.”
고통 어린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돼?”
“…….”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지만, 무시하라고 한 질문도 아닌데…… 됐다. 자, 넌 사건 조사하러 왔고, 사건 해결됐지? 범인 밝혀졌고 동기 밝혀졌고,”
내가 계략을 짜는 것에 매우 큰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안다.
자, 보자.
눈앞에 있는 이 곤잘레스라는 놈은 생각보다 꽤 쓸 만한 패다.
후작의 총애. 하지만 서열 3위의 기사, 나이는 약 30대 중후반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기사단장.
그냥 죽이기엔 아깝다.
나는 곤잘레스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너 7서클이던데. 그걸로 만족해? 8서클, 되고 싶지 않아? 기사단장, 욕심 안 나냐고.”
“……예?”
쓰읍.
“이참에 알아 둬라, 나는 같은 말 두 번 하는 걸 X라게 싫어해. 평소였으면 주둥이를 찢어 놨을 텐데, 지금 네 몸 상태가 한 대 툭 치면 죽을 거 같아서 이번은 넘어가 줄게. 다시 묻는다. 기사단장, 욕심나지?”
정말 안타깝게도 곤잘레스는 이번에도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눈동자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고, 고통 때문인지 몸도 덜덜 떨리고 있었는데, 이건 지나친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의아함이 한데 뒤섞여 뇌가 패닉에 이르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사, 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던 론이 자신보다 더 괴물이었고 그런 론에게 명령을 내리는 저능아 같던 삼 공자라니.
제발 이게 꿈이길 바라며 현실을 도피하려는 모습이 조금은 애잔하게 느껴진다.
이러면 대답 못 해도 그냥 넘어가 줄 수밖에 없지.
나는 곤잘레스의 머리채를 놓아주고 긴장 풀라는 듯 그의 볼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럼에도 곤잘레스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여전히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나 보다.
그래서인지 놈은 내가 손을 뻗어 그의 심장 어림을 짚는 것까지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는 거 아는데, 그래도 한번 짚고 넘어가자.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마나도 순환시키지 마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눈을 감았다.
이어서 모든 감각을 오른손에 집중시키자, 곤잘레스의 몸 내부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신체의 수많은 장기들과 뼈.
그리고 마나와 피가 오가는 통로인 수십 개의 혈맥.
그 모든 것들은 건너뛰고 내가 주목한 곳은 놈의 심장을 감싸고 있는 일곱 개의 서클이었다.
하나하나가 단단하고, 이미 완성된 서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고 말았다.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 줘.’
일단, 곤잘레스의 심장 쪽으로 내 마나를 집중시켰다.
이변을 느낀 건지 곤잘레스가 팔을 뻗으려 했지만 빠르게 무릎을 뻗어 놈의 팔을 그대로 짓눌렀다.
“인마 가만히 있어, 내가 널 죽이려고 했으면 진작 죽였을 거 아니야. 안 그래?”
“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대답하지 않고 할 일을 마저 했다.
우선 놈의 서클을 조금씩 내 마나로 두들겼다.
툭- 툭-
그런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그렇게, 조금씩 놈의 서클에 균열이 생겨났다.
이어서 내 마나가 줄기를 이루고 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수십 갈래로 갈라져 곤잘레스의 서클을 파고든다.
우선 첫 번째.
나는 내 마나로, 곤잘레스의 서클을 안에서부터 조금씩 긁어냈다.
놈의 서클은 총 7개.
그렇게 총 7번의 행동을 반복하자,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던 놈의 서클의 빛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나는 진지하게, 내 마나와 합쳐진 놈의 ‘서클의 잔재’를 내 의지대로 움직였다.
꽤 오랜만에 하는 작업이라 그런가.
이마에 살짝 식은땀이 나는 느낌이 든다.
그것들로 곤잘레스의 심장을 다시 한번 두르자.
후우웅-
작은 바람이 분다.
나와 곤잘레스를 중심으로 부는 바람.
그 사이에서 나는, 곤잘레스의 심장에 마나로 이루어진 수식을 적었고, 조합해 공식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서클의 잔재를 덧씌우기 무섭게.
쿠우웅-!
바람이 광풍이 되어 주변을 휩쓴다.
감고 있던 눈을 조용히 떴다.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슥 훔쳐 내자 멍한 표정의 곤잘레스가 보인다.
그도 느꼈을 것이다.
지금 자기 심장에 정확히 1개의 서클이 추가되었다는 것을.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 놈은 모를 것이다.
녀석의 심장에 새로 생겨난 서클은 다른 7개의 서클과는 다르게 검은 묵빛을 띠고 있었으며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서클이 아니기에 마나는 기존의 것보다 약 50% 정도 적다는걸.
느낌상 지금 이 상황을 길게 설명해야 할 것 같았지만, 아마 이 단어 하나면 모든 게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
이건 ‘흑마법’이다.
그것도 내 기준에서, 내가 아는 수많은 마법들 중 가장 최악이자, 가장 악독한 마법.
그러면서 모순적이게도 매우 쓸 만한 마법.
“최소 3개월에서 최대 5개월까지는 유지될 거다.”
피떡이 된 곤잘레스가 매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지금, 저를 강제로 성장시킨…… 당신, 대체 누굽니까…… 대체 이게 무슨?”
강제로 8서클이 된 곤잘레스는 혼란 그 이상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네가 물어야 될 건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부터 너한테 선택권은 없어. 내가 시키는 일을 너는 무조건 해내야 돼. 해내지 못하면 너는 죽을 거거든. 그것도 네가 상상하기 힘든 가장 처참한 방식으로.”
“…….”
“자, 뼈에 새겨라. 네가 해야 할 일 첫째, 너는 즉시 후작가로 돌아간다. 둘째, 후작가로 돌아가 ‘삼 공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고 보고한다.”
잠시 말을 멈췄다.
론과의 대화를 통해 느꼈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우리 발란티에 후작님께서는 내 생각보다 그렇게 똑똑한 분이 아니신 것 같거든.
상황이 변했다는 증거를 하나하나 뿌려서 후작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후작이 그 상황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편하게.
그냥 다이렉트로 후작을 바쁘게 만들어 보려 한다.
“셋째, 후작가로 돌아간 너는, 3개월 내로 후작가에 있는 맨티스 백작가의 가신들과 후작 부인의 쪽에 선 기사들을 최소 40명 이상 암살한다.”
“……예 ……예?”
“명심해. 선택권은 없어. 3개월이야. 그 3개월 동안 그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너는 죽어. 네 심장에 새겨진 거. 그거 괜히 새긴 게 아니거든.”
이어서 곤잘레스가 두려움 섞인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킨다.
지금 내가 들은 게 맞는 걸까.
이 삼 공자가 지금 나한테 한 말이, 진심일까.
정말 조금 웃기게도 이 곤잘레스라는 놈은 표정 관리가 너무 안 되는 것 같다.
“소문 들었잖아. 내가 흑마법을 배웠다는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