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90)
제 391화
눈이 잘못된 게 아니면 지금 저 남자는, 방금 전까지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던 잭 발란티에, 그의 얼굴과 매우 닮아 있었다.
아니지.
거의 본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세상에.
혹시 이게 그건가.
혼연일체.
음악에 너무나도 열중해서 음악의 세상과 내 세상이 겹쳐지는 그야말로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하는 전설의 경지.
그러니까, 일종의 환각.
나는 지금 예술의 극의에 이른 것일까.
나도 이제 그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온…….
“루트비히 맞냐니까?”
목소리가, 환각치고는 또렷하다.
“얼굴 보니까 대충 맞는 거 같은데. 너, 노래 제작도 주문받냐?”
그제야 가출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환각이 아니구나.
예술의 경지는 쥐뿔.
“크흠, 주문, 말씀이십니까?”
“어. 내년 1월 1일에 국가 하나가 건국될 거거든. 그 건국식에서 노래 하나 불러 줬으면 좋겠는데. 클래식으로.”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혹시.
“찬가도 됩니까?”
“찬가?”
그가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짚더니 희미하게 웃는다.
“찬가라…… 그럼 나야 좋지.”
루트비히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럼, 이야기를 좀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
“밀로스 왕국이라 해야 할지, 밀로스 제국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이종족과 인간을 통일한 세계 역사상 처음 등장한 군주입니다.”
마치 연설가처럼 루트비히의 입에서는 낯부끄러운 말이 술술 튀어나왔다.
“그러니 당신에 대한 찬가를 쓰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그걸 듣고 한 곡 뽑아내겠습니다. 아주, 굉장한 걸로.”
그러고는 손으로 마차의 빈자리를 툭툭 두드리는데, 그걸 바라보던 잭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봐라.
“듣는 것보다, 직접 볼래?”
“……예?”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게 낫지 않겠어?”
무슨 뜻으로 이야기하는 건지 루트비히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본다는 건가.
어떻게?
“뭐…… 확실히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게 낫죠.”
그건 잭의 입장에서는 허락의 의미였다.
천천히 잭의 손이 뻗어진다.
그 손은 부드럽게 움직였고 루트비히의 매끈한 이마를 툭- 건드렸다.
이어서 루트비히의 눈이 크게 떠진다.
무언가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으니까.
눈앞의 세상이 변하고 있었으니까.
마치 마법에 당한 것처럼.
까마득한, 너무나도 어둡고 그러면서도 빛이 나는 세상.
타인의 기억, 엄청난 양의 기억이 루트비히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렇게 5초의 시간이 흘렀다.
털썩, 루트비히의 몸이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완벽한 기절.
눈을 감은 그의 모습은 마치 잠을 자는 듯 보였다.
잭은 그런 루트비히를 바라보다 몸을 돌려 마차 밖으로 나갔다.
“좋은 거 부탁한다. 좋은 꿈 꾸고.”
이 말만 남기고.
chapter 4
나는 오크들의 수도 빌헬름으로 곧장 날아갔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거대한 성.
그 깊은 곳에 종족이 다른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성이 누워 있었다.
블랙맨과 빌레아.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그 둘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이 둘의 상황에 딱 맞는 단어에는 뭐가 있을까 하는 한가한 생각.
그러다 마침 딱 어울리는 게 하나 생각났다.
혼수상태.
전에 사미트를 뒤지게 후려 팼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랑 같았다.
아니지, 조금 다른 건가.
죽기 직전의 상처를 얻었고, 거기다 정신적인 충격까지 받아서 몸의 균형이 깨지고, 정신을 못 차리는…… 확실히 사미트의 경우랑 다르긴 하네.
그 둘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사미트의 경우처럼 심상 세계로 가서 꺼내 오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그건 너무 오래 걸리잖아.
다이렉트로, 한 방에 가야지.
거기다 하나도 아니고 둘인데.
내 손이 검게 물들고, 그 검은 기운이 둘의 몸을 덮었다.
심장의 욱신거림과 두통은 없어진 지 오래였기에 거슬리는 건 없었다.
콰지직- 콰득.
섬뜩한 소리에 이어 우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도 들렸다.
누가 보면 오해할 수도 있는데 죽이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회복, 시키는 거지.
그나마 어떻게든 붙어 있던 빌레아의 날개가 완전히 붙었고, 피가 새어 나오던 신체의 여러 부위들은 전부 재생되기 시작했으며 그 내부의 뒤틀린 장기들과 뼈, 살점들이 전부 원래 상태로 ‘회귀’하고 있었다.
블랙맨의 경우도 다를 바 없었다.
녀석의 몸을 거의 두 동강 낼 듯 갈라 버렸던 그때의 상처는 붕대로 감겨 있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전부 재생되었다.
뼈는 다시 맞춰졌고 근육과 살은 재생했으며 흉터도 사라졌다.
천천히 기운을 거뒀다.
순식간에 둘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그대로 팔짱을 낀 채 뒤로 물러섰다.
머지않아 빌레아의 손이 움찔, 떨렸고 두 눈이 천천히 떠졌다.
* * *
정신을 차린 빌레아의 첫마디는.
“톤…… 톤!”
이거였다.
애타게 부르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잭은 빌레아와 눈이 마주쳤다.
원망 어린, 정말 증오하는 듯한 눈으로 잭을 바라보던 빌레아는 문득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잭을 바라보고 있는 톤 그륜힐이.
살아 있었나 보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야 했으니까.
왜, 나랑 블랙맨이 여기에 있는 걸까.
잘려나갔던 팔과 날개는 어떻게 치료가 된 걸까.
블랙맨의 상처는 또 어떻게 치료된 거고. 의아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때, 뭔가 한층 더 성숙해진 듯, 모습이 굉장히 달라진 잭이 물었다.
“너네 둘, 결혼은 언제 할 거냐?”
“…….”
둘은 대답하지 않았다.
“원하면 주례 정도는 서 줄 수 있…….”
말을 하던 잭은 문득 미묘한 분위기를 느낀 듯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잠시 둘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괴리감을 느낀 듯.
안타깝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말했다.
“그륜힐.”
“…….”
“다 나았으면 밖으로 나와.”
잭이 몸을 돌려 걷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블랙맨은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절대 느껴져서는 안 되는 그런 감정.
뭘까.
그렇게 눈 내리는 마당으로 잭은 나갔고 머지않아 블랙맨이 그 뒤를 따랐다.
* * *
확실히 겨울은 겨울이다.
지금 눈 내리는 것 좀 봐.
“그거 알고 계십니까, 스승님?”
[무엇이 말이냐?]“이거 첫눈입니다.”
[……그렇구나.]고개를 돌려 스승님과 눈을 맞췄다.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신데.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모르면서 묻는 것이냐?]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모르고 물어본 건 아니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전생에서 유일하게 너의 편에 서 주었던 오크라고 하지 않았더냐.]손을 뻗어 손에 눈을 모았다.
꽤, 차갑네.
[너의 편에 서 주었던 오크, 그러면서도 너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그리움, 그는 너의 유일한 친구였겠지. 맞느냐?]정확히 말하면, 유일한 친구는 아니었다.
약 두 명 정도 있는 친구 중에서 한 명이었을 뿐.
[그런데, 마치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보이는구나.]고양이처럼 내 손바닥으로 착지한 함박눈을 가볍게 털어 냈다.
수도 없이 말했지만 나는 회귀를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전생에서 쌓고, 만들고, 지속시켰던 유대감 같은 게 완전히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회귀를 했잖아.
죽었던 이들을 살아서 볼 수 있잖아.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잖아.
블랙맨이 어떻게 죽었는지 나는 안다.
데스 나이트가 되었던 론이 전부 말해 주었거든.
고군분투하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그렇게 대륙을 수호하다 처참하게 죽는.
그게 오크 로드 톤 그륜힐의 최후였다.
그런 최후가 녀석에게 어울릴까.
과거의 관계를 다시 가져올 필요는 없다. 그냥, 지금 같은 관계.
이 정도면 괜찮다.
솔직히, 그 정도로 고생했으면 이번 생에서는 행복해야지.
머지않아 블랙맨이 나온다.
녀석을 바라보며 어젯밤에 그러했던 것처럼 짧게 말했다.
“가드 올려.”
녀석이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적색 마나가 내 몸을 감싼다.
다리에 마나가 모이고, 그 즉시.
콰아아앙-!!
녀석의 턱이 강한 충격에 의해 위로 치켜 올라간다.
“크윽.”
비명이 들리고, 내 발이 바닥에 내려오는 그 짧은 순간.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후웅- 하며 블랙맨의 주먹이 머리를 스친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다시 다리에 마나를 집어넣었다.
동시에.
콰아아앙-!!
너무 노골적이었나 보다.
아까와 같은 방향을 노렸던 건지 블랙맨이 아래로 교차한 양팔이 내 발을 막고 있었다.
무시하고, 땅을 짚고 있던 왼쪽 다리에 힘을 주었다.
부드럽게 몸이 회전했고 나는, 순식간에 블랙맨의 머리 위를 회전하고 있었다.
휘리릭 돌며, 원심력을 담은 왼쪽 발뒤꿈치가.
빠아악-!
블랙맨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뻐걱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 자리에서 그 소리를 들은 건 나와, 블랙맨 그리고 스승님일 거다.
녀석의 뇌문, 대뇌 쪽에 있는 혈맥 하나가 지금 뚫렸다.
남은 건 하나.
자리에 착지하자마자, 나는 바닥을 쓸며 옆으로 이동했다.
“뭐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녀석의 고함과 함께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녀석의 발이 박혔다.
순식간에 파이는 수 미터 넓이의 크레이터.
아까보다 파괴력이 더 높아졌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나와 블랙맨의 눈이 마주친다.
녀석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내 오른 주먹이 녀석의 허벅지를 강타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
회피하려는 건지 다리를 움찔 떨었던 녀석이지만 무의미했다.
뻐걱-!
녀석도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 이후의 과정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덩치가 3m는 훌쩍 넘어가는 블랙맨의 두꺼운 허벅지를 내 왼발이 디딤돌 삼았고,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 휘둘러지는 오른쪽 무릎.
그것도 적색 마나를 담은 그 무릎은 블랙맨의 머리를 강타했다.
이게 샤이닝 위저드라는 기술인데, 하는 사람에 따라 모양새가 다르게 느껴지는 법.
아마 누가 보았다면 아름다운 기술이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털썩 하고 블랙맨이 쓰러진다.
천천히 자리에 선 채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뒤쪽에 있던 빌레아가 또다시 난입하려는 듯 자세를 잡았지만 우리 스승님이 지켜만 볼 리 없지.
우리 스승님은 오랜만에 마나를 끌어 올려 빌레아를 제압했다.
“이거…… 놔……! 놔!”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블랙맨을 위한 거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약 5초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쓰러져 있던 블랙맨의 몸에 굉음이 터져 나왔다.
거의, 순식간이었다.
천지가 진동하며, 녀석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허공에 있던 마나가 녀석의 몸으로 흡수되고, 적색의 기운과 원래도 적색이었던 투기의 기운이 합쳐진다.
쓰러져 있던 블랙맨이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섰다.
뒷모습만 보였지만 뻔하지.
녀석은 지금 올라간 거다.
적색 마스터의 경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