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14)
제 415화
마법이 지금 유지되고 있잖아.
파훼한 게 아니라 유지가 되고 있잖아.
이건 마법의 소유권을 빼앗아 왔다는 뜻이다.
페이스트 스스로가 마스터이기에 그게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인지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공포를 느낀 거다. 이건 인간이 아니다.
저놈은, 정말 인간이 아니다.
마나 그 자체.
이미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말도…… 안 돼.”
페이스트 공작이 중얼거린 게 아니었다.
성벽의 다른 마법사들과 병사들이 중얼거린 거다.
단 한 수.
단 한 번의 손짓으로 격의 차이를 깨달았다.
신기하게도 웅성거리는 소리는 없었다. 없는 게 정상이다. 압도적인 무의 차이를 깨달은 이 순간에 웅성거리는 것은 정신을 덜 차린 이들이니까.
성벽 위의 병사들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멈춰져 있는 마법과, 화살.
공기와 마나를 지배하는 걸까.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걸까.
저 모든 것의 소유권을 정말 빼앗아 온 걸까.
마법 절대 불변의 첫 번째 원칙, 발현된 마법은 무조건 발현자의 의지를 따른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처음 마법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각인하고 시작하는 그 원칙 중 하나가. 지금 깨졌다.
그리고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잭의 왼손이 천천히 돌려진다.
그에 맞춰 허공에 있던 모든 것들도 돌려졌다.
무위로 돌아갔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다.
끼기긱-
기이한 굉음과 함께 마법과 화살이 그대로 진영만 바꾼 거다.
잭 발란티에를 향해서가 아니라 레드 게이트를 향해서.
돌려졌던 잭의 왼손이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그가 작게 말했다.
“싸우고자 하면 죽을 거고, 도망치고자 하면 살 거다.”
그건 약속이었다. 세상에 대고 하는 약속.
“내 목표는 툴칸의 말살. 툴칸을 위하는 이는 죽을 거고 툴칸을 버리는 이는 산다. 그게 전부다.”
잭의 주먹이 쥐어졌다.
꽈악.
동시에 허공의 모든 마법과 화살들이 뻗어 나갔다.
이전보다 더 강하게.
이전보다 더 빠르게.
잭의 마나가 섞여진 수많은 마법들은 수 단계를 진화했다.
그게, 레드 게이트를 향해 뻗어 나간다.
하늘을 수놓는, 반사된 마법.
그걸 올려다보던 페이스트 공작이 작게 말했다.
“……졌다.”
저런 괴물을 어찌 상대한단 말인가.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만들어진 이후 수백 년간, 정확히는 280년 동안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고 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던 레드 게이트. 그 찬란한 역사도 이제는.
“……끝났구나.”
페이스트 공작의 말과 함께.
콰아아아아아아앙-!!
레드 게이트가 무너져 내렸다.
* * *
잭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밀로스 제국도 나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잭의 명령을 받은 그레이 시어런.
밀로스 제국의 총사령관이라는 직위를 받은 그레이는 애초부터 장군이었다.
아카데미에서 군사학부의 학부장으로 재임했던 것은 능력으로 밀려난 게 아니라 오직 정치적인 기반으로 밀려났던 거고 그의 지휘력과 전술 능력은 이미 오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올라서 있었다.
그렇기에 수성은 문제가 없었다.
병력 배치는 물론, 시어런 후작가의 모든 병사들과 밀로스 제국의 모든 병사들.
그 모두를 적재적소에 배치했고 유사시, 드래곤들을 불러올 수 있을만한 통신구도 잭의 명령대로 설치했다.
각 이종족들의 왕들도 수성에 참여했기에 현재 밀로스 제국의 국경은 단단했다.
근 수백 년간, 아니지. 아마 역사상 이 정도로 단단했던 적은 없을 거다.
그레이 시어런은 만족했다.
이런 걸 원했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상황.
잭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지만 그게 장군의 역할이 아닌가.
원수의 명령을 따르는 장군.
그런 그레이 시어런은 끊임없이 전황 보고를 받고 있었다.
“지금 레드 게이트가 무너졌습니다.”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첫 번째 성벽이 무너졌다.
그럼 그 이후에는 무엇이 있겠는가.
탈출하려는 이들이 있을 거다. 쉽게 말하면 피난민.
“이제 시작이니 준비하도록.”
“충-!”
그레이 시어런은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밀로스 아카데미의 회의장에서 회의를 주도하고 있던 밀로스 제국의 재상, 아베이루도 마찬가지였다.
“레드 게이트가 무너졌습니다. 이제 우리 할 일을 합시다.”
그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롬멜 총장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베이루는 말을 이었다.
“우선 여론부터 잡습니다. 레드 게이트가 무너졌다는 것을 전 대륙에 알리십시오. 무명의 조직원들이 도와줄 겁니다. 그 부분은 롬멜 총장님, 당신께 전부 위임하겠습니다.”
롬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분의 주변인물 보호 단계를 두 단계 더 올립니다.”
나름의 프로토콜이었다.
잭에게 가장 위협이 될 만한 이들이 누구인가.
잭의 주변인들, 즉 잭의 가족들 말고는 없다.
드래곤들이 호위하고 적색 마스터들과 온갖 마스터들이 호위한다고는 해도 그게 전부면 안 된다.
확실한 건, 확실하게 해야 한다.
이 국가는 잭이 무너지면 같이 무너지는 국가다.
잭이 나름 혼기로 텔레포트 마법을 새긴 금반지를 주변 인물들에게 나눠 주었지만 그게 전부가 된다면 잘못된 거다.
아베이루가 만들어 놓은 프로토콜은 총 네 단계.
1단계는 fade out, 분쟁의 위험이 없고 모든 게 종료된 평화의 상태를 뜻한다. 이때는 말 그대로 국가가 돌아가는 일에만 집중하고 최소한의 이들만이 ‘황가’를 보호한다.
2단계는 double take. 경계태세를 뜻하며 무명은 각국의 모든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전체 인원의 30%가 황가를 보호한다.
3단계는 round house, 모든 무명의 정보 조직원들은 외출과 휴가가 금지되고 전투태세를 취한 뒤 대기한다. 그리고 그중 50% 이상이 ‘황가’를 보호한다.
4단계는 stand as one, 아베이루가 말한 건 지금 이 4단계를 뜻했다.
무명의 모든 전투 요원들은 황가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인물들을 지킨다. 목숨을 걸고.
정보 수집은 필요한 만큼만 남긴 뒤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황가를 지키는, 말 그대로 이름 없는 조직이 할 법한 최상의 행동 수칙.
모든 우선순위는 황가, 즉 잭이며 잭에게 위협이 될 만한 주변 인물들도 포함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중요 인물들에게 피치 못할 일이 벌어졌을 때다.
예를 들면 납치나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주변 인물들을 대신 죽이는 역할까지 무명이 맡는다.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경계 늦추지 맙시다.”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 아니, 끝날 뻔했다.
다급하게 회의장으로 들어선 필립이 아베이루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지만 않았더라면.
그걸 들은 아베이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필립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눈.
그리고 복잡한 표정.
아베이루는 생각했다.
잭에게, 알려야 할 것 같다고.
“수정구 가져와. 지금 당장.”
* * *
레드 게이트는 무너졌다.
붉은 성벽은 겉에만 붉었을 뿐 흔한 성벽들처럼 안은 회색이었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불길이 치솟아 오른다.
비명도 들려오고 살려 달라는 말도 들린다.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목표는 성벽을 무너뜨리고 툴칸의 정신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것.
그걸 지키는 이는 같이 말살시켜야 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슬쩍 몸을 옆으로 틀었다.
쑤욱 하고, 내 옆구리를 스치는 검 한 자루.
고개를 들자 봉두난발이 된 얼굴의 한 남자가 있었다.
정확히는 중년.
한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가 입가에 피를 흘리며 검을 고쳐 쥔다.
등급은 중급 마스터.
기억 속에는 없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하프 블러드는 아니었던 사람.
그가 외쳤다.
“검을 들어라!”
내 양팔은 지금 뒷짐을 지고 있었다.
검은 여전히 허리춤에 매달려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는 상황이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왜?”
“검사라면, 검으로 승부를 내는 게 맞지 않겠는가.”
웃기는 소리다.
분명 나는 검사가 맞다. 검사가 맞지만 검을 쓸 필요도 없는 상대에게 검을 쓰지는 않는다.
전생에서 어린애들을 살려 두었을 때, 그때랑 비슷한 거다.
대답하지 않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눈앞의 마스터가 검을 들고, 휘둘렀다.
후웅-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옆으로 이동했고 뒤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연타로 들어오는 두 번의 공격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위로 돌아간다.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냐!!”
고개를 저었다.
가지고 논다, 그렇게 보이겠지. 그런데 그런 건 아니었다.
“분명 말했는데, 툴칸과 함께하려는 이는 죽을 거라고.”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세 번 정도면 나름 체면 세워 준 건데 이렇게까지 했으면 답은 들려줘야지.”
남자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나는 툴칸에서 태어났고, 툴칸에서 자랐다. 툴칸이 무너진다면 나도 같이 무너질 것이다.”
그래, 그거면 된다.
뒷짐을 풀고 천마신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검집도 없었지만 스르릉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건 검 자체가 내는 소리.
세상을 가르는 그 쾌감을 느끼게 될 천마신검의 공명.
“이름은?”
“마일드 페이스트. 레드 게이트의 대장이자 다섯 공작 중 하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으로 우리 둘 사이에서의 인사는 끝났다. 작별 인사도 끝났다.
검을 내린 채 몸을 옆으로 비스듬하게 틀었다.
동시에 페이스트 공작이 달려든다.
금빛을 머금은 검.
그 검이 허공을 가른다.
상당히 빠른 속도.
빛 한 줄기가 허공을 가르는 듯한 그 속도에도 나는 가만히 있었다.
빛이 내 미간을 향해 뻗어져 오던 그때.
나는 움직였다.
엄청난 움직임이라거나 그런 건 없었다. 그냥.
가볍게 검을 휘둘렀을 뿐.
그리고 그게 페이스트 공작의 그것보다 빨랐을 뿐.
그게 전부였다.
서걱-
페이스트 공작의 검이 잘린 채 허공으로 치솟는다.
털썩.
무너져 내린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상체는 세로로 비스듬하게 실금이 가 있는 상황.
그는 마지막 유언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새끼.”
그의 몸이 갈라진다.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새끼라니, 유언치고는 너무 초라한데.
슬며시 천마신검을 들어 올렸다.
살점이나 피는 묻어 있지 않았다. 이건 그 정도로 명검이니까.
즉 피를 털어 낼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다시 허리춤에 채워 넣고 걸었다.
폐허가 된 성벽 곳곳에서 나를 공격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죽였다.
마법사들은 마나 자체를 부숴 버리고 심장을 터트렸다.
검을 들고 달려드는 이들도 있었다.
천마신검을 뽑기 귀찮아서 손가락을 튕겨 마탄을 쏘아내 심장을 터트렸다.
무너진 성벽에도 멀쩡한 발리스타가 몇 대 있었다.
그걸 다시 발사하려는 이가 여섯 명 있었고 여섯 명은 사지를 찢어 죽였다.
내 앞을 막아서는 이는 없었다.
다시 걸었다.
드르륵- 드르륵.
검이 끌리는 소리가 조용히 주변을 울릴 때, 통신구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아베이루인 거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통신구를 꺼내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녀석이 말했다.
{필리포스 황제가 병석에서 일어났습니다.}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