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3)
제 44화
벨라미는 짧게 심호흡했다.
총장의 말에 납득을 하긴 했어도 그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별개의 문제다.
무엇보다.
“저는 총장님이 ‘정치 싸움’에 휘말리는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한 번에 이해한 롬멜 총장이 웃음을 터트린다.
“발란티에 후작가의 후계 다툼은 이미 끝난 것 아닌가?”
“끝났죠. 그것도 진작에.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저는 발란티에 후작을 압니다. 그 가문의 첫째인 엘리자베스가 마스터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도 그 멍청한 놈은 그 아이를 오직 권력 강화의 도구로만 쓰려고 하고 있죠. 그쪽 집안 둘째는 어떻습니까? 17살에 3서클을 이루긴 했지만, 그런 재능은 아카데미에 차고 넘칩니다. 그렇다고 그놈이 머리가 좋길 합니까? 내 살면서 그만큼 멍청하고 편협한 놈은 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총장님도 이제 나이가 있으십니다. 정치 싸움이 지겹다고 공작 자리도 때려치우신 분이 이제 와서 그런 복잡한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1인 기숙사에 넣거나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그런 편의는 어떻게 해서든 넘어갈 수 있어도 집을 마련해 주고 기숙사가 아닌 외부에서 지내게 하는 건…… 편애 그 이상입니다. 이건 분명 말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벨라미의 말이 조금 과격하긴 해도 그게 걱정으로부터 흘러나온 진심이라는 것을 롬멜은 알고 있다.
이미 같이한 세월만 무려 30년.
벨라미에게도 그렇지만 총장에게도, 벨라미는 특별한 존재였다.
“허허. 걱정 말게,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녀석은 거래를 할 줄 안다고.”
“…….”
“오래 산 늙은이의 직감이라고 해 주게. 왠지 그 아이랑 친해지면 무언가 떡고물 같은 게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이상한가?”
“예. 이상합니다. 그것도 엄청.”
롬멜 총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그 모습에 결국, 벨라미도 쓰게 웃고 말았다.
“아마 곧 그 아이가 올 것 같으니, 자네가 직접 그 아이를 보고 판단해 보겠는가?”
“……알겠습니다.”
* * *
집이 생겼다.
아니지, 이걸 단순히 집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걸까.
저택, 정확히는 아주아주 큰 저택이다.
정원도 딸려 있었고 그 정원 한쪽에는 검술을 훈련하기에 딱 좋은 수련장까지 존재했다.
“어센블 공작가의 귀빈들을 모시는 저택입니다.”
내게 설명을 해 주는 한 남자.
새하얀 로브로 온몸을 가리고 있는 이 남자는 우리 영감님께서 보내 주신 ‘심부름꾼’이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정문 앞에 서 있던 이들을 가리킨다.
“필요한 일이 있으시다면 저기 있는 병사들과 요리사들에게 따로 언질 주시면 됩니다.”
“언질이라…… 대충 보니 영감님이 꽤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이네.”
심부름꾼.
재미있게도 이 심부름꾼은 스스로의 이름을 ‘존 도’라고 소개했다.
그 땅개미인지 불개미인지 하는 용병단의 단장인 디나스티스모가 사용했던 가명.
아이러니하다.
그뿐이랴, 놈의 얼굴에 집중되어 있는 마법 작용과, 의도적으로 주변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을 차단하는 행동까지.
뭐라고 해야 하나.
시험당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오랜만이네 이런 느낌.’
그렇게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내 어깨에 앉아 있는 스승님도 아까부터 계속 이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일단, 대화부터 이어 가 보자.
“귀빈들을 모시는 집이라…… 이거 너무 노골적인데?”
존 도의 표정은 여전했다.
하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놈은 지금, 속으로 굉장히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우리 총장님이 발란티에 후작가의 후계 다툼에 끼어든 것처럼 보이겠네. 그래서지? 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거.”
“제 감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총장님이 시키는 일을 할 뿐.”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존 도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 주었다.
“일은 이미 벌어졌는데 어쩌겠어?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그런데, 그거 예의가 아닌 건 알고 있나?”
뜬금없는 내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네가 폴리모프로 본래 모습 숨기고 있는 거, 영감님도 알고 계시냐고.”
“……뭐?”
“이거 참 묘하네. 웃기지도 않는 가명을 쓰는 건 그렇다 쳐도, 이 코딱지만 한 땅덩어리에 고서클 유저가 뭐 이리 많아? 9서클이면 왕국에도 얼마 없는 걸로 아는데, 내가 운이 좋은 건가. 혹시, 정말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도 첩자냐?”
나는 속으로 정확히 3초를 세려고 했다.
그 3초가 지나기 전에 놈이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그대로 목을 쳐 버릴 생각이다.
그때 존 도, 이름을 숨기고 있던 그가 허탈하게 웃는다.
아니, 저건 이해할 수 없다는 속내를 대변하는 웃음이었다.
그가 이내 손을 들더니 자신의 얼굴을 매만진다.
30대 초반의 청년으로 보이던 존 도의 모습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고, 정확히 2초가 지나기 전에 그의 모습은 50대 남성의 얼굴로 변했다.
아, 저 깊게 파인 주름과 오른쪽 눈가에 새겨진 긴 상흔.
기억난다.
“누구신가 했더니, 마탑주셨구만.”
“총장님께서 관심을 두고 있기에 한번 와 봤는데, 놀랍군.”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미래의 영감님은 마법 병단을 중심으로 전략을 짰었다.
그 전략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은 영감님의 측근이자 영감님이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던 벨라미 크래그.
현재 테슬란 왕국의 마탑주이자, 한 5년 정도 뒤에 5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10서클로 올라서는 인물이다.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가 않는구나. 내 폴리모프는 대체 어떻게 알아챈 것이냐? 분명 마나의 흐름조차 차단했을 터인데…….”
“그래서 알아챈 거지.”
“뭐?”
“마나의 흐름을 차단했으니까 알아챈 거라고, 평소였으면 관심도 안 뒀을 텐데 내가 얼마 전에 폴리모프한 짐승 하나를 죽였거든? 그놈이 딱, 지금 너랑 같았어.”
존 도, 아니 마탑주인 벨라미 크래그가 미간을 강하게 찌푸린다.
“……나는 마탑주이자 마법학부 학장이다. 너는 일개 학생이고.”
“아, 그러세요? 그럼 진작 스스로를 소개하셨어야지. 폴리모프로 사람 시험하다가 들통나신 분이 이제 와서 나한테 높임말을 받길 바라? 적어도 오늘 정도는 내가 말 까도 되는 거 아니야? 잘못은 내가 한 게 아닌데?”
지금 대륙은 혼란이 가중되기 전 추진력을 얻으려는 상황과 같았다.
툴칸 제국의 황위 다툼.
아직까지는 극소수의 이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고, 따로 군사적인 움직임이 있던 것도 아니기에 적어도 지금 겉으로 드러나 있는 상황은 매우 좋은 편에 속한다.
평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는데, 정말 미안한 소리지만 나는 평화의 시대에 살지 않았다.
정체를 숨기고 나한테 접근하는 수상한 인물?
과거였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쳤다.
전후 사정? 들을 필요도 없었다.
아니, 들을 생각도 없었다.
그냥 죽이는 게 속 편했으니까.
실제로 그렇게 몇 명 하늘나라로 보내기도 했다.
지금 내가 그러지 않는 건, 그때보다는 조금 성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피식 웃고 있을 때였다.
“그래, 오늘만큼은 말을 놓아도 된다. 네 말대로 잘못은 내가 했으니까. 그나저나 정말 놀라운 녀석이구나. 혹시, 내 밑에서 마법을 배워 보지 않겠느냐?”
이건 뭔 뜬금없는 제자 제의야?
“난 이미 모시는 스승이 있는데?”
그런 나를 바라보던 벨라미가 여전히 감탄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고 내게 말했다.
“엘리자베스, 그 아이도 너처럼 마법적인 재능이 뛰어났었지. 내 제자가 되었으면 했는데 그 아이도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안 되겠어. 이번만큼은 도저히 포기 못 하겠다. 너, 내 제자 해라.”
“아니, 난 스승이 있다니까?”
“공동 스승이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허허허.”
이 양반이 미쳤나.
그때였다.
[아이야.]“저요?”
[네놈 말고, 9서클을 이룬 아이야. 이름이 무엇이냐?]벨라미 크래그가 당황해한다.
‘뭐야, 이거? 인형이 어떻게 말을 해?’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 마탑주를 대신해 내가 스승님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벨라미 크래그라고, 테슬란 왕국의 마탑주입니다. 스승님.”
[마탑주…… 그래, 자질은 충분하구나. 머지않아 10서클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나는 슬며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우리 스승님께서 할 말이 조금 있으신가 보다.
벨라미가 스승님을 바라보며 묻는다.
“뭐……라고? 10서클?”
[과거에 10서클로 넘어가려던 그 순간에 누군가에게 공격당한 것이냐?]스승님의 말에 벨라미가 경악한다.
“그걸, 어떻게?”
[심장에 10번째 서클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 그 현상은 경지를 넘어서려던 인물이 방해를 받았을 때 성장이 강제로 멈추는 현상이지. 서클의 잔재라는 단어는 들어 보았느냐?]“서클의 잔재…… 그건 마나 하트가 부서진 이들에게 생겨나는 현상이 아닙……니까?”
벨라미가 말끝을 흐리더니, 결국 높임말을 사용했다.
그도 눈치챈 것이다.
내 어깨에 앉아 있는 이 인형이 보통 인형이 아니라는 것을.
[마법 이론은 제대로 알고 있구나.]“…….”
[아이야. 포기하지 말거라.]“예?”
[서클의 잔재가 생긴 지 최소 15년은 된 것 같은데. 원래 그 나이라면 서클의 성장은 불가능하지만, 이미 만들 뻔한 서클이기에 너는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어.]“……예?”
[포기하지 말고 정진하거라. 마탑주라는 자리는 포기하지 않고 쟁취하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자리다. 너는 자리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야.]웬일이지?
우리 스승님이 이렇게 막 퍼 줄 리 없는데?
슬쩍 고개를 돌려 붕어처럼 입을 뻐끔대고 있는 벨라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 대화는 이쯤에서 끝내야 할 듯.
“영감님한테 전해. 개강식 날 찾아뵙겠다고.”
“……그래, 그래…… 그래야지.”
벨라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와 스승님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러고는 결국 물었다.
“……저, 이름이, 아니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 말이냐?]“예.”
한참을 망설이던 스승님이 고개를 젓는다.
[모르는 게 나을 것이다. 그저 과거의 유물이라고만 알아 두거라.]그 말이 끝이었다.
스승님이 볼일 끝났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그런 우리를 잠시 바라보던 벨라미가 그 자리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말없이 몸을 돌리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거참.
당황한 건 이해하겠는데, 정 없게 작별 인사 할 시간도 안 주네.
먼저 할 걸 그랬나.
“그런데 스승님이 웬일입니까? 이렇게 막 퍼 줄 사람이 아닌데?”
[조금 안타깝더구나.]“뭐가요?”
[누구는 재능이 없는데 죽을 듯 노력을 하고, 누구는 재능이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냥 지나치고 싶지가 않더구나.]나는 분명 말했었다.
론은 좋은 사람이고, 스승님도 좋은 사람이라고.
아니, 그런데.
“왜 저한테는 아무것도 안 알려 주십니까? 섭섭하게.”
[하, 네가 나한테 배울 게 남아 있긴 하느냐? 흑의 굴레를 썼다는 건 네가 내게서 모든 것을 배웠다는 뜻인데.]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다.
실제로 흑의 굴레는 스승님이 내게 알려 주신 마지막 마법이다.
그 말은 내가 스승님에게 배울 것은 전부 배웠다는 뜻.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귀빈을 모시는 저택이라.
이건 보나 마나다.
이 저택의 위치는 아카데미 정문에서부터 약 1km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근거리도 아닌.
딱 적당한 거리라고 해야 할까.
거기다 영감님의 측근인 마탑주가 폴리모프로 변장까지 해서 나한테 다가온 걸 보면, 아무래도 우리 영감님께서는 나를 아주 가까운 곳에 두고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싶나 보다.
물론.
‘예상 못 한 것도 아니고.’
우리 영감님은 내가 아카데미에 있을 때까지는 적어도 내 편의를 봐줄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냥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기로 했다.
감시?
실컷 하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