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99)
제 500화
솔직히 말하면 그 서쪽의 황제, 그러니까 마존이라는 남자가 강한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안다.
검존은 분명 말했다. 그가 자신과 흡사하거나, 최소 우리 천외천에서도 최상위에 이르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강한 것은 안다. 인정한다. 검존은 허튼 말을 하는 남자가 아니니까. 그게 중요한 거다.
마존이 강하다 해도 혼자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그 정도로 강하니까 황제가 된 거겠지. 서대륙에서 그 마존은 아마 지존일 거다.
서대륙의 정점.
전략적으로 봤을 때, 자고로 대가리를 치면 아래에 있는 이들은 혼비백산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천외천의 모두가 마존을 때려죽이려 한꺼번에 일어선다면 어찌 될까.
그는 99.99% 확률로 죽을 거다. 그의 목을 가지고 서대륙으로 가서 징벌을 시작하면 그야말로 대륙 통일. 전무후무한 천외천의 업적이 세워지는 거다.
천외천의 무인들의 눈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피 냄새를 맡은 거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검존의 표정은 더욱더 싸늘해져 갔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자리한다. 검존이 물었다.
“제갈선.”
“천자시여, 말씀하소서.”
“천마에게 목숨을 구걸할 때, 그때 자네는 어떤 기분이었나?”
제갈선의 표정이 굳어진다. 정마전쟁 당시 천마에게 목숨을 구걸했던 이들 모두가 굳어졌다.
“내 진심으로 궁금해서 그래. 그리고 내 나이를 먹으니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그러는데, 그때 천마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던 무인이 혹시 자네였나?”
제갈선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혁진강이 말하는 이는 제갈선이 맞다.
뿐일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던 것은 제갈선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정마전쟁에서 살아남고 천외천에 몸을 의탁한 이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총 8명의 무인이 그때 ‘같이’ 빌었다.
안 좋은 기억이다. 추억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개좆같은 기억.
혁진강이 지금 그걸 끄집어낸 거다.
제갈선은 울컥했다. 감정 조절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기운을 끌어 올렸다. 천궁이 진동하려 하던 그때.
콰앙-!!
굉음과 함께 제갈선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제갈선뿐만이 아니었다. 벽안단제 정화부터 여러 명의 무인이 함께 바닥에 대가리를 박았다. 그 상태로 힘겹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혁진강의 몸에서 새하얀 기운이 넘실넘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운을 끌어 올리던 제갈선은 물론 감정을 겉으로 표현했던 이들 모두가 혁진강의 기운에 짓눌린 거다. 덩달아 관련 없는 이들까지 모두가 숨을 죽였다.
혁진강의 분위기가 평소와 매우 달랐으니까.
“천외천은 무림의 질서를 관장해 왔다.”
자리에 앉아 한쪽 무릎에 한쪽 팔을 올리고 있는 검존 혁진강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왜, 질서를 관장해 왔을까. 왜 강자존의 사상을 대륙 전체에 뿌리내리게 만들었을까.”
“…….”
“종말을 막기 위해서다. 절대자를 막고, 그를 죽이기 위해서다. 천외천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검존의 싸늘한 눈이 주변을 훑는다.
“내가 왜 제갈선, 너 같은 패배자 새끼를 천외천에 받아들였을까. 살려 달라 구걸하며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전부 내려놓은 패배자 새끼들을 대체 왜 받아들인 걸까.”
묵묵히 검존은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이제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어 봤기에, 가지고 있던 티끌만 한 자존심마저 모두 내려놔 봤기에 그 내부의 공허함을 믿은 것이다. 그 공허함에 신념을 채워 줬고 목적을 새겨 주었다. 새로운 삶을 준 것이다.”
이건 분명 진실이었다. 천외천에 과거에 이름을 날렸던 무인들이 의탁한 진짜 진실.
“대체 언제부터 천외천이 힘 자랑이나 하는 단체였지?”
“…….”
“서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황제를 죽인다? 내가, 잭 밀로스를 죽이라고 명령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없었다. 검존은 단 한순간도 서대륙의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었다.
굳이 꺼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근본적인 배경은 천외천은 힘을 드러내고 싶어서 미쳐 날뛰는 그런 조직이 아니니까.
그 정신을 밑에 있는 모두는 아니까. 천외천의 수장인 천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니까.
그게 지금껏 혁진강이 천외천을 이끌면서 세워 왔던 규칙이었고 정신이었다.
“서대륙을 멸망시켜야 한다면, 잭 밀로스를 죽여야 한다면 그 명령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내가 명령을 하고 너희가 움직인다는 뜻이다. 왜 네놈들은 멋대로 움직이지? 왜 멋대로 행동하는 거지?”
검존의 말투에는 힘이 있었다. 살기마저 어려 있다.
“악불군은 자기 성질에 못 이겨 천외천의 뜻을 배반했다. 광존도 마찬가지다. 내가 언제 잭 밀로스에게 별호를 붙여 주라고 했지? 내가 언제 잭 밀로스와 천마를 싸움 붙이라고 했지? 대체, 내가 언제 네놈들에게 개인 행동을 허락했지?”
쿠구궁, 천궁이 흔들린다. 천외천의 무인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검존이 강한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가 왜 천자겠는가. 그런데 이건…… 상상 이상이다.
“제갈선, 그 뚫린 주둥이로 다시 한 번 답해 보거라. 내가 언제 너희들에게 멋대로 행동하라고 했지?”
“죄송…… 죄송합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족해야 했다. 지금은 경고를 하는 상황이니까.
“천외천은 ‘심판의 날’을 위한 조직이다. 무인으로서 한 번 죽은 이들이 왜 이제 와서 무인 행세를 하느냐.”
잠시 말을 멈춘 검존이 눈을 감는다. 후우.
“우리의 목적은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신념을 지키고 세상을 지키는 것이다. 집행자가 되었으면, 천외천의 일원이 되었으면 규칙을 지켜라.”
검존의 기운이 사라진다. 엎드려 있던 모두가 힘겹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귓가로 혁진강의, 천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꽂힌다.
“경고는 이게 마지막이다.”
검존은 잭과 다르다. 다르지만 같은 것도 있다. 바로 힘과 정상에서 버틸 수 있는 굳건함.
서로의 뜻과 생각이 다르긴 하지만 그건 그냥 다를 뿐이다. 근본적인 것은 같다.
검존의 신념은 간단하다. 종말을 막는 것.
라그나로크를 죽이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무인이 많이 필요하다. 잭 밀로스가 아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아군이 되었으면 한다.
만약 필요하다면 고개를 숙여서라도 잭에게 아군이 되어 달라 요청할 수 있다. 애원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게 검존이다.
이걸 다르게 보면, 만약 라그나로크를 죽이기 위해서 서대륙을 멸망시켜야 한다면 검존은 망설임 없이 서대륙을 멸망시킬 것이다.
대의에 미친 남자.
흔한 말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남자.
천외천의 수장이자, 현세대 집행자들의 수장인 혁진강은 그런 남자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명령, 하나 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외천의 모두가 오체투지의 자세를 취했다.
제갈선은 물론 제령대사까지, 모두가 엎드렸다. 이건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검존이 말했다.
“지금부터 개방을 봉문 한다. 하루 주겠다. 하루 안에 개방의 상징은 물론 모든 것을 지워라. 필요하다면 혈서를 받고 반항하는 이가 있다면 죽여라. 그리고 하오문주.”
“예. 신 하오문주, 여기 있습니다.”
개방이 드러내 놓고 활동한 것과는 비교되게 하오문은 비밀에 싸인 조직이었다.
창관을 비롯한 대륙 대부분의 유흥가는 하오문이 관리한다. 그게 전부였다. 비밀에 싸인 조직이라는 뜻은 그 하오문의 문주에 대한 것이다.
하오문의 문주가 누구인지,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중년인지 노년인지 아무것도, 정말로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왜냐면 개방과 하오문은 천외천의 사조직이니까.
대륙에 강자존의 사상을 박아 넣는 게 쉬운 일일까. 절대 쉽지 않다.
그건 단순히 힘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러 가지가 갖춰져야 하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정보력이다.
천외천은 동대륙의 모든 정보를 지배하고 있다. 개방과 하오문은 핵심이었고 그중 개방이 지금 날아갔다.
그렇다면 이제 하오문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여기 있다며 대답한 남자는 키가 작았다. 아마 땅딸막하다는 단어가 이럴 때 쓰는 단어이지 않을까.
경지는 생사경.
무림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남자다. 그렇기에 별호도 없다. 그냥 하오문주다. 이름은 이호二護.
나이는 59세.
천외천에서 나고 자랐고 천외천에서 무공을 배웠다.
그에게 검존이 말했다.
“개방은 사라진다. 그 개방이 왜 사라졌는지 뼈에 새겨라.”
“예.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잭 밀로스의 행선지를 파악하도록, 그 외에는 그 어떤 개입도 허락지 않는다. 이상이다.”
하오문주 이호를 비롯한 천외천의 모두가 일시에 답했다.
“천자의 명을 받듭니다-!”
* * *
마궁은 폐허가 되었다.
광존과 잭이 처음 격돌했던 그 장소가 마궁성이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유제하의 거처.
마궁에 있는 대부분의 집이나 건물들이 터졌지만 그나마 형체를 보존한 곳은 있었다. 하지만 유제하의 거처는 아니었다.
앞서 말한 대로 잭과 광존이 처음 격돌했던 장소이기 때문에.
하지만 귀소본능이라 했던가.
유제하는 원래 자신의 거처가 있던 그 장소에서 조금 허탈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300년 역사의 마궁성이었는데. 남은 건 이 돌덩어리 하나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군.”
혼잣말이었다. 유제하가 앉아 있는 그 커다란 돌덩어리는 마궁성 내부의 기둥. 정확히는 기둥의 파편이었다.
양각되어 있는 용 그림이 그 증거였다.
그런 유제하의 건너편에는 유설하가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는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유제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결국 유제하가 묻는다.
“왜 그리 쳐다보나. 오랜만에 만난 오빠가 반가우면 반갑다고 말을 하던지.”
“……그게 할 말이야?”
유제하가 피식 웃는다.
유설하와 마찰을 빚었던 이유는 빙궁과 마궁의 국경에서 무인 몇 명이 다퉜기 때문이다. 크게 다툰 것은 아니다. 무슨 인명 피해가 수백 명 이상 나고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일을 조금 크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정천맹에서 나섰겠는가. 태극검제가 중재를 한다며 유설하와 유제하를 종도로 불러온 것은 그 마찰이 커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마궁성의 이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마궁성의 이전이 손쉽게 해결됐다.
유설하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마궁성의 주민들이 무사히 빙궁에 도착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유제하가 해야 할 말은 하나였다.
“고맙다.”
“……알아서 숙여 준 건데 내가 고맙지.”
인구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마궁의 인구수가 아니라 빙궁의 인구수를 말하는 거다.
그 말은 즉 세력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그들이 서대륙으로 이주하는 것은 아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유설하는 모른다.
당사자인 마궁의 주민들도 모른다.
유제하는 여유롭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