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59)
제 560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만 보자.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들은 총 여덟 명이다.
여섯 명이 천하성 사천부의 무림세가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한 명은 밀로스 제국에서 파견되어 이곳 동대륙에서 감찰청장을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고 있는 남자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천하성의 순찰사다.
정말 간단했다.
이들 여덟 명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확률의 문제나 그럴 수도 있다 혹은 맞을 수도 있다, 이딴 게 아니다.
100%. 무조건 연결되어 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런 것도 파악하지 못하면 나가 죽어야 한다.
무엇보다, 저들은 그 사실을 굳이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냥 드러내 놓고 있었다.
여하튼, 이들 중 가장 상급자는 감찰청장이다.
술을 마시면서 계속 살펴봤는데, 순찰사를 포함한 여섯의 가주들이 전부 베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뇌물을 받아먹은 건지, 아니면 편의를 봐준 건지.
이건 확실하지 않지만 베크의 눈치를 볼 정도의 무언가가 이들 사이에 있다.
오죽했으면 천하성의 순찰사마저 베크의 눈치를 보고 있겠나.
나는 지금 폭탄을 터트린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료에 나와 있던 내 전임자, 그러니까 엘레나라는 여성도 이와 비슷한 자리를 가졌을 확률이 높다.
어디까지 눈치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나는 물끄러미, 내 옆에 있는 순찰사 정우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인다. 당황한 거다.
곧바로 그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그건 내가 말을 놓았다는 점에서 느끼는 불쾌감이었다. 이어서.
그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가 곧바로 풀렸다.
이건 당장이라도 내 목을 칠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곧바로 철회한 거고.
하나만 확실히 하자.
나는 정우영에게 악감정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런 감정이 없다.
나는 사건을 해결하러 온 거고 이들은 내 앞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드러냈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서로가 ‘어떤 사실’을 은폐해 줄 수도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뒤를 봐주고 더 나아가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서로의 앞길에 해가 되는 놈들은 함께 치우고.
여태껏 그래 왔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자극을 하고 반응을 보면 된다. 그럼, 모르던 사실들이 튀어나올 거고 하나씩 해결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나는 어느샌가 진실에 도달해 있을 거다.
빙긋, 웃으며 정우영에게 물었다.
“왜 말이 없나. 귀머거리야?”
“……취하셨습니까?”
“취한 걸로 보이나?”
“예. 취한 걸로 보입니다. 그게 아닌데 왜 갑자기 말을 놓으십니까?”
팔을 뻗어 탁자에 놓여 있던 음식들을 옆으로 대충 던져 놓았다. 그리고 그 앞에 빈 잔을 툭 내려놓았다.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군.”
“……제가 말입니까?”
“천하성이 무림의 중심인 건 알아.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알지. 그렇게 변했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밀로스 제국의 영향력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
“선후 관계는 확실히 해야지. 천하성은 동대륙에 속해 있고 동대륙은 밀로스 제국에 속해 있다. 폐하께서 자율성을 주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의 자율성이지 상하가 바뀐다는 뜻이 아니야. 정말 잊고 있는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건데, 내가 누구지?”
“…….”
“누구냐고 물었는데.”
정우영은,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건 무언가를 결심한 자의 눈이었다.
신경 쓰지 않았다. 관심도 없었고.
지금은 이 상황 그 자체에 집중을 해야 한다.
정우영에게 물었다.
“혹시 취하셨나?”
“……취한 걸로 보이십니까?”
“내 눈에는 그래 보여. 취한 게 아니면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건가? 동대륙 언어로 해 줘야 알아듣나?”
“…….”
“두 번이나 묻게 하는군. 내가 누구지?”
“……밀로스 제국에서 친히 파견한 천하성 지부 감찰청 소속 신임 감찰관이십니다.”
“잘 알고 있군. 그런데 고작 말을 놓느니 마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다니, 순찰사 수준이 이거밖에 안 되나?”
정우영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다.
확실하게 말하는데, 저건 분명 매우 분노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나는 묵묵히, 비어 있는 잔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따르라는 그 제스처에 정우영은 묵묵히 술을 들어 잔을 채웠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나는 직감했다.
제대로 먹혔구나.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몰아붙일 때 한 번에 몰아붙여야 한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못 들었어. 엘레나, 그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잘 모릅니다. 그저 몇 번 술자리를 함께했을 뿐이고 공적인 관계로 여러 번 엮였을 뿐입니다.”
“엮였다……? 그렇군.”
이번에는 시선을 옮겨 입을 다물고 있는 나머지 여섯 명의 가주들을 바라보았다.
“광명세가의 멸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나?”
“…….”
“있냐고 물었는…….”
내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보시게, 메론 감찰관.”
이렇게 끼어드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감찰청장 베크였다.
순찰사를 건드릴 때까지만 해도 조용히 있던 그가, 이제야 나선 것이다.
“예. 청장님.”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무슨 짓이라니요?”
“좋은 술자리를 왜 갑자기 망치느냐 이 말이야. 여기는 사적인 공간이지 공적인 공간이 아니야. 왜 뜬금없이 죽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나?”
물끄러미 베크를 바라보았다.
“자기들이 적응 못 해서 뒈져 버린 것들인데, 왜 그걸 아무 죄도 없는 ‘우리들’한테 묻고 있나? 그리고, 내가 엘레나에 대해 조사를 하라고 허락했나?”
“안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고 있지? 이거 내가 자네를 잘못 봤나? 아카데미 수석이라며? 유배지로 부임한 상황에서 더 좋은 곳으로 보내 주겠다고 친히 말해 주었는데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하나?”
“기억은 합니다.”
“그리고 분명 이런 말도 했었지. 자네는 신임 감찰관이고 일 배정은 내일부터 해 주겠다고. 그리고 그 일은 엘레나에 관한 일이 아니야. 그건 다른 부…….”
“청장님.”
이번에는 내가 말을 끓었다.
멍한 표정의 베크를 바라보며 묵묵히 말을 이었다.
“감찰관은 독립된 수사 기관입니다. 어떤 수사를 하는지 그건 제 소관입니다. 제게 할당된 일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 일들도 함께 처리만 하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
“엘레나에 관한 일이나, 천하성에서 아카데미 인재들이 죽어 나간 일들은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제 일입니다.”
“……자네의 일이다?”
“예. 제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명령’을 받았으니까요.”
베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명령을…… 받았다? 대체 누구한테?”
“그분께서는 익명을 원하셨습니다. 아무리 베크 님이 제 상관이셔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증인’도 있었습니다.”
“증인? 누구지 그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말씀, 드릴 수 없다?”
“예. 증인은 보호해야죠. 그게 감찰관의 의무 아니겠습니까?”
분위기는 더욱더 묘해졌다.
내가 바보 등신도 아니고, 이들이 나를 탐색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한 것쯤은 안다.
그리고 그들의 비위를 맞춰 주고 맞장구를 쳐 주자 나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여도 되겠다, 그렇게 마음먹은 것도 안다.
다 부질없다.
나는 감찰관이다.
사건을 해결하러 왔다.
이들과 노닥거릴 시간이 내게는 없다.
아카데미에서 처세술에 대한 것을 배우긴 했지만 그보다 더 훨씬 전에, 내게 처세술이라는 것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해 주신 분이 계셨다.
‘처세술은 결국 힘 싸움이다. 네가 힘이 있으면 상대가 고개를 숙이는 거고 네가 힘이 없으면 네가 고개를 숙인다. 힘을 길러라. 상황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힘, 순수한 개인의 무력, 뒤에 업은 세력의 힘, 그 모든 것을 이용하는 것. 그게 처세술이다.’
나는 딱 하나만 믿는다.
순수한 개인의 무력.
그리고 가끔은 거짓말도 한다.
법에 걸리는 것도 아니고, 결국 결과다.
결과만 만들어내면 된다.
조용해진 베크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침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엘레나를 비롯한 천하성에서 일어난 신임 공무원들의 비정상적인 사망 사건을 재조사할 겁니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에도 술자리가 생기면 불러 주십시오.”
그대로 나는 술집 밖으로 나왔다.
공기가 차가웠다.
차가운 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시며, 나는 방금 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지금 저 상황에서 베크는 한 가지 말실수를 했다.
내가 엘레나에 대한 일을 꺼내고 정우영을 몰아붙이자 베크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들이 적응 못 해서 뒈져 버린 것들인데, 왜 그걸 아무 죄도 없는 우리들한테 묻고 있나? 그리고, 내가 엘레나에 대해 조사를 하라고 허락했나?’
우리들.
분명 베크는 우리들이라고 했다.
나는 단순히 정우영을 몰아붙였는데 베크가 왜 우리들에게 묻고 있냐는 저 말은.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단순히 흘려들을 수가 없다.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엘레나라는 전임 감찰관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다.
자.
일은 벌여 놨다.
이제 어떻게 나오나 볼 시간이다.
* * *
메론이 사라진 자리에는 여전히 침묵으로 가득했다.
정말, 조용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대협이라 불린 광소왕이었다.
“청장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베크는 말없이 술을 마셨다.
다시 침묵이 자리한다.
그 침묵을 깬 것도 광소왕이었다.
“……죽일까요?”
그제야 베크가 반응했다.
“아니. 아직은 아니다.”
청장의 모습은, 완벽한 상급자의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메론이 막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메론이 감찰관이었기 때문이다.
밀로스 제국에서 파견된 밀로스 제국 감찰관.
하지만 베크는 그 감찰관들을 관리하는 한 지역의 청장이다.
그의 뒤에는 밀로스 제국이 있다.
건드리면 다 죽는 거다.
이 자리까지 베크가 쉽게 올라왔을까.
전혀 아니다.
일단, 그는 눈치가 빨랐다.
“놈은 분명 말했다. 명령을 내린 이가 있다고.”
“…….”
“밀로스 제국에서 냄새를 맡았을 수도 있겠어. 당분간은 자중한다.”
이게 결론이었다.
심사숙고해서 내린, 그런 결론.
하지만 순찰사는 아니었다.
모욕을 심하게 당했다고 생각한 정우영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우영 순찰사.”
“…….”
“불렀는데, 대답이 없군. 정우영 순찰사.”
정우영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 마시게.”
“……제가 하지는 않을 겁니다.”
베크와 정우영이,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우영이 말을 덧붙였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계산은 이미 했으니 쉬시다 들어가십시오. 다른 가주님들도 고생 많으셨소.”
그렇게 정우영은 자리를 벗어났다.
분노를 삭이는 그런 표정으로.
늦은 밤, 정우영은 당주에게 독대를 요청했다.
집무를 보고 있던 당주 박무기에게 정우영이 내뱉은 첫마디는 이러했다.
“죽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