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84)
제 585화
남궁철영이 말했다.
“이런 말이 있다네. 결과가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되며 애착이 무위에 머물러선 안 된다.”
“좋은 말이군요. 누가 한 말입니까?”
“글쎄. 누가 했는지는 나도 몰라.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얼핏 들었었지.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니 다행이군.”
상황은 묘했다.
메론과 남궁철영은, 서로 마주 앉은 채 술을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두 남자는 직접적으로 마찰을 빚은 적이 없었다.
전부 간접적으로 엮였을 뿐이다.
청장이었던 레이먼드 베크도 남궁철영과 관련이 있었을 뿐이고, 그 밑에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하면 그 모든 일들은 베크의 독단으로 봐도 좋을 정도였다.
괜히 중앙감찰청이 그 모든 일을 베크의 독단으로 처리한 게 아니다.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남궁철영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대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가?”
메론이 가장 원하는 것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중앙감찰청의 제이슨은 아카데미 시절은 물론 현재에도 메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으며 메론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는지 몰랐다.
그건 메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했던 하비도 마찬가지다.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고 해서도 안 됐다.
어디까지나 메론의 본 신분은 현 밀로스 제국의 황자다.
메론이 원하는 것, 메론이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힘, 그리고 인정.
둘 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다. 오로지 스스로가 쟁취해야 한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메론의 움직임을 모두가 예측할 수 없었다.
들개 새끼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돌아다닌다.
메론은 그저 감찰관으로서 움직여 왔다. 노골적인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있었기에 그들을 잡았을 뿐이다.
하지만 남궁철영 같은 이들의 눈에 메론은, 무언가 목적이 있기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남궁철영의 질문은 타당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메론이 답했다.
“저를 매수하고 싶으신 겁니까?”
“하고자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레이먼드 베크부터 다른 이들에게서 제안을 받았을 터. 하지만 그대는 거절하지 않았는가.”
“혹시 모르지요. 거절하지 않았을 수도.”
피식, 남궁철영이 웃는다.
“거절을 했으니 내가 지금 그대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이겠지. 아니 그런가?”
메론도 피식 웃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일 것 같습니까?”
“안정이겠지.”
그 말에 메론의 눈이 살짝 꿈틀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안정이라…….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행동을 보니 알겠더군. 그대가 원하는 건 ‘정상화’야.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 범죄를 저지른 이가 있다면 그들을 잡아서 벌을 받게 하고, 그 외의 다른 대가는 따로 원하지도 않는. 정상화를 원한다는 것은 곧 안정을 원한다는 것이겠지. 조금 다르게 묻고 싶군. 신념인가?”
“비슷합니다.”
남궁철영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한 말 기억하나?”
“합니다.”
“나는 그대와 척을 지고 싶지 않아. 우린 서로 직접적으로 엮인 게 없어. 엮였다 해도 결국 간접적으로만 엮였을 뿐이지. 전선을 확대하는 건 의미 없는 짓이야. 나도 그렇고 그대도 그렇고.”
“…….”
“나는 말일세. 죄를 저지른 게 없어. 굳이 있다면 동대륙에서의 죄가 있겠지만 전부 과거의 일이고 그 일들에 대한 대가는 치렀어.”
“그렇습니까?”
남궁철영이 작게 웃었다.
“베크가 나에 대한 조사를 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네. 분명히 말하지만 그걸 문제 삼고자 한다면 문제가 될 거야. 하지만 중앙감찰청이나 다른 기관들이 그걸 원할까.”
“제가 누구 눈치 보면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그건 알아. 알지만 내게 피해를 입었던 이들은 지금 매우 풍족하게 살고 있다네. 내가 어찌 천하성으로 올 수 있었겠나? 대당주의 자리에 앉은 건 과거의 모든 일들을 털었기 때문이야. 그대가 나를 노린다면, 베크의 조사 자료들로 엮을 터인데 그건 단순히 나를 처벌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아. 서대륙에는 서대륙의 법이 있고 동대륙에는 동대륙의 법이 있어. 장담하는데 동대륙의 무인들이 전부 들고일어날걸세.”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현실을 알려 주는 거야.”
분명 현실이긴 하다.
“그대 정도면 나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시게. 그게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인지.”
메론의 답은 간단했다.
“의미가 있었으면 진작에 쳤을 겁니다.”
이게 정답이다.
메론은 바보가 아니다. 남궁철영도 바보가 아니다.
적어도 두 사람은 현시점에서 마찰을 빚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메론이 남궁철영을 노릴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중앙감찰청이 그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처리해 버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궁철영을 엮게 된다면 굉장히 우스워지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메론은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상황을 굳이 만들 생각이 없었다.
이미지 관리는 아니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남궁철영과 척을 질 이유가 없다.
척을 지기보다는 차라리 남궁철영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는 게 낫다.
남궁철영이 말했다.
“그대는 아마 향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이곳 동대륙에서 머물겠지. 솔직히 말하겠네. 천하성으로 들어올 생각, 있으신가?”
“천하성 말입니까?”
“자네는 이미 능력을 증명했어. 심지 또한 굳지. 웬만한 것들에는 흔들리지 않는 철혈의 마음을 가진 자네가 ‘그쪽 세계’에 있으면 결말은 뻔해.”
이 말에 메론은 관심을 보였다.
“어떤 결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결말이 남궁철영은 정말로, 눈앞에 훤히 보였다. 그가 툭 던지듯 내뱉었다.
“이용만 당하다 인생 종 칠 생각인가?”
“제가 말입니까?”
“중앙감찰청을 비롯해 서대륙에 자네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어. 월간지, 주간지, 수많은 언론들 중 자네의 지금 현 상황에 대한 불합리함을 담은 게 단 하나라도 있던가?”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없다고.
여기서 말하는 불합리함은 간단했다.
“평민이니까. 자네의 힘은 대단하지만 뒤를 봐줄 세력이 없어. 자네 같은 인재를 동대륙으로 보낸 것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지만 그 사실을 언론들은 감추고 있지. 왜 감추고 있겠는가.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건 자네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그 정도라는 증거야. 그게 자네의 미래지.”
결국 하나밖에 없었다.
“이용당할 거라네. 사냥개로 쓰이겠지. 그러다 자네가 너무 커지면 삶아 먹을 거고. 전문 용어로 토사구팽이라 하지. 자네가 정말 혼자 산속에서 도 닦고 사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천하성으로 오시게.”
남궁철영의 두 눈이 단호하게 빛난다.
“감찰관직을 유지하면서 천하성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아. 그리고 이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해 두는 거지만 불법 청탁 같은 것은 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건 약속할 수 있다네. 그대는 그저 감찰관으로 생활하다가 복무 기간을 전부 채우면 사직서를 내고 천하성에 정식으로 들어오면 되는 거야. 물론 곧바로 답해 달라는 건 아니야. 그저.”
“그저?”
“앞으로 서대륙이 그대에게 할 일들을 보고, 그대를 어떻게 여기는지, 그 모든 것들을 느끼고 천천히 결정해 보시게.”
이야기가 조금 급하게 진행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당초에 하고 있던 이야기가 애매하게 끝나 버렸다.
메론과 남궁철영은, 그 부분에 대해서 확답을 원했다.
남궁철영이 먼저 말했다.
“그럼 우리는 현재로서 ‘적’이 아니게 된 건가?”
“예. 대당주님과 저는 현재로서는 ‘아무런 관계’가 아닙니다.”
“……아무런 관계라……. 그거 재미있군.”
남궁철영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대륙으로 부임한 능력 있는 감찰관을 한번 보고 싶어서 왔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대화가 길어졌어. 이만 가 보겠네.”
메론은 순순히 남궁철영을 보내주었다.
솔직히 남궁철영의 말에는 틀린 말이 없었다. 전부 맞는 말이다.
현재 메론의 신분을 아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권력자들의 눈에 비친 메론은 ‘능력 있는 평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즉 어떻게 이용해 먹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할 것이고 현재 메론이 걸어온 길들을 감안해 본다면 아마, 남궁철영의 말대로 사냥개로 쓸 것이다.
정적들을 제거할 사냥개.
증거가 될 만한 것들, 꼬투리가 될 만한 것들을 전부 메론에게 제보할 것이다.
메론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레이먼드 베크는 천하성에 있는 ‘무언가’에 홀려 있었다.
과연 무엇에 홀려 있었을까.
감찰관 명패를 유지한 채로 천하성에 발을 걸칠 수가 있다는 그 말이 묘하게 걸린다.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일이다.
그날 저녁, 메론의 통신구가 울렸다.
중앙감찰청의 번호였다.
이 시간에 누가 연락을 한 거지.
그대로 통신구를 켰다.
켜자마자 메론은 살짝 놀랐다.
건너편의 남자는, 확실하게 말하는데 살면서 처음 본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인상착의는 메론도 숙지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니까. 그가 물었다.
[자네가 메론인가?] [그렇습니다.]남자의 외모는 굉장히 돋보였다.
우선 얼굴에서 빛이 났다.
짙지도, 얇지도 않은 적당한 굵기의 눈썹, 갸름한 턱.
메론이 알기로 그의 나이는 거의 오십에 육박한다.
그런데 생긴 건 거의 20대 초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잘생긴 외모에 굉장히 현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자기 이름을 밝혔다.
[만나서 반갑군. 나 칼 세이건일세.]중앙감찰청 반부패부 부장.
감찰청 내에서 그보다 지위가 높은 자는 오직 감찰청장 단 한 명이다.
무엇보다 칼 세이건은 초월자다.
그런 남자가 지금 메론에게 연락을 했다.
메론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는다고, 만나 봬서 영광이라고.
형식적인 말투였는데 이 말투에서 칼은 무언가를 느낀 걸까.
그가, 굉장히 사무적인 어조로 메론에게 물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 답해 주시겠는가?] [뭐든 여쭤 보십시오.] [얼마 전에 있었던 백곡의 사망 사건, 기억하시는가?]못할 리 없다. 고작 며칠 전에 일어났던 일이고 코앞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기억 못 하면 나가 죽어야 한다.
[기억합니다.] [그 사건에 대해서 자네는 어찌 생각하지?]메론은 잠시 멈칫했다.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생각하냐는 말씀은…….] [백곡을 죽이지 말고 그를 이용해 도관의 비리에 대한 정보를 수집 후 곧바로 중앙감찰청이 도관을 쳐야 한다고, 그리 생각하시는가?]메론의 말을 끊고 훅 들어오는 칼의 질문에 메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아서 그대는 아쉽겠어.]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 그럼 하나만 더 묻겠네. 자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메론은 의아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그래도 칼의 질문에 답을 하긴 해야 했다. 최종 목표.
[최종 목표라는 거창한 것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의 목표는 있습니다. 감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 그게 제 목표입니다.]칼은 조용히, 메론을 바라보았다.
메론의 두 눈동자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그는, 약 5분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럼 되었네. 곧 동대륙의 새로운 감찰청장에 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야. 아마 내일쯤에는 그대에게 서신으로 전달될 터인데. 잘해 보시게.]그렇게 통신은 끊겼고 메론은 굉장히 의아해했다.
칼 세이건.
도통 알 수 없는 남자다.
새로운 감찰청장이 과연 누가 될까.
일단 그와 대화를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메론은 한 장의 서신을 받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 서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서신을 전달받은 직후부터 밀로스 제국 감찰청 천하성 지부를 동대륙 특별감찰청으로 변경, 이후 위수 지역을 동대륙 전체로 확대한다. 또한 감찰관인 메론을 ‘임시 청장’으로 임명한다.기한은 5년으로 하며 이 기간은 변동될 수 있다. 정해진 기간 내에 동대륙의 범죄율을 소수점 아래로 떨어뜨려야 하며 이를 해내지 못할 시 감찰관 메론을 ‘파면’ 조치한다.]
기분이 좋아서 웃은 게 아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