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ntel life of the returning champion RAW novel - Chapter 28
귀환 용사의 인방 생활 28화
와 비타. 온갖 종족들이 신의 사도이자 신도들의 용사로서 전쟁을 벌이는 세계.
그곳에서 인간은.
여러 종족 중에서도 당당하게 최하위에 자리한 종족이었다.
약해빠진 주제에 번식력만 뛰어나서 백 년 정도 잠깐 한 눈만 팔아도 드글드글해지는.
바퀴벌레 같은 취급이었달까.
[아이야. 너를 나, 전쟁신의 사도이자 신도들의 용사로 임명한다.] [위업을 세워 나의 권세를 만방에 알려라. 그리하면 너는 품은 소망을 이룰 수 있음이니.]인간은 결코 못난 종족이 아니다.
하지만 와 비타에는 그저 태어나는 것만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우수한 종족들이 많았다.
드래곤. 하이엘프. 천신족.
선천적인 초월종들 사이에서 인간의 입지는.
신앙 생산 기계이자 인신공양 의식용 모르모트에 불과했다.
“신이시여, 불가능합니다. 저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고요…….”
와 비타 생활 초창기. 그에겐 오직 절망만이 가득했다.
지구 귀환이란 목표를 밧줄 삼아 노력했으나, 쌓을 수 있는 업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입으로 불을 뿜고 칼로 산을 베는 놈들이 수두룩한데, 어떻게 싸워 이기라는 거야…….’
벌레는 기어봤자 벌레.
아무리 용을 써봤자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렇게 그가 인간의 한계에 절망하고 자신의 나약함에 좌절하고 있을 때였다.
[한심한 건 인간이 아니라 너다.] [인간인 너의 한계를 인간의 한계라 생각지 말라.]잔인하고 무심한 비아냥거림.
그러나 우습게도, 그의 한마디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골드 드래곤 루미니아스.
신께서 당신의 사도를 성장시키기 위해 안배한 길잡이.
[너를 막아서는 벽은 인간의 한계가 아니라 너의 한계다.]“닥쳐! 네가 뭘 알아!”
태어나고 자라는 것만으로 영혼, 정신, 육체의 삼위일체를 완성하고 신위에 도전할 수 있는 초월종.
그런 드래곤이 뭘 안다고 저딴 말을 지껄이는 거지?
[후후후, 귀엽구나. 그래! 그것이다!] [분노의 뒷면은 원동력인 법. 아득바득 기어오르는 것이다!]그렇기에 처음엔 오해했다.
어린아이가 놀이터의 개미를 괴롭히듯, 잔인한 즐거움을 위한 기만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한낱 미물에 불과하면서 신의 위를 차지한 인간이 있다.] [미물인 줄만 알았던 인간이, 위대한 초월종의 머리를 가르고 드래곤 슬레이어란 업을 달성한 적도 있지.]아니었다.
루미니아스는 인간인 그보다도 더 인간의 잠재력을 믿어주는 초월종이었다.
제자의 한계를 단정 짓지 않는 훌륭한 스승이었다.
[알겠느냐? 네가 미물인 이유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아니라 너 그 자체가 하찮고 비루하기 때문이다.]여전히 잔혹하고 조롱처럼 들리는 말.
그러나 전신은 루미니아스의 말을 들으며 땅을 짚고 다시 일어설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너의 처지를 포기와 체념을 위한 변명거리로 삼지 마라.]도망치고 합리화하지 않겠어.
[극기하거라. 정진하거라. 그리하여, 오르고 또 오르거라.]설령 죽더라도. 모든 걸 잃더라도.
포기하지 않겠어.
[넌 할 수 있다. 인간이되, 신의 사도인 자여.]루미니아스. 모시던 신과 일족을 저버린 배반자.
마지막까지 사용한 주력 무기인 용혼검 루미니아의 진신(眞身).
초월종답게 루미니아스의 지도는 어딘가 비틀린 구석이 많았지만, 덕분에 그는 다시 한번 일어설 용기를 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루미니아스의 말은 실로 옳았다.
모든 걸 불태우며 노력을 거듭한 결과, 그는 거듭된 승리의 주인이 될 수 있었으니.
나의 스승 루미니아스.
인간을 사랑한 드래곤이여.
‘당신이 보고 싶어.’
* * *
루미니아스의 가르침을 짧게 정리하면 이랬다.
[실패의 이유를 외부로 돌리지 마라.] [네가 실패한 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왕삼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앞을 가로막는 한계는 오직 스스로일 뿐.
우리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그게 무슨 소리야. 고쳐준다고?”
눈물 젖은 왕삼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커져 있었다.
“어. 대신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라.”
그는 더 이상 왕삼에게 존대를 하지 않았다.
‘앞으로 20살로 살다 보면 나이 때문에 억울할 일이 꽤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도와주기로 결심한 김에 이 녀석한테서라도 형 소리를 들어먹어야겠다.
“어차피 이긴 사람이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고작 형이라 부르는 걸로 퉁치고 네 문제까지 고쳐지면 이득 아니냐?”
왕삼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에게 다가왔다.
“가상현실 부적응증은 병이 아닌데 어떻게 고친단 말이오.”
‘어조는 어이없다는 식인데…… 말투가 다시 컨셉러로 돌아왔네.’
폭주하던 감정이 어느 정도 진정된 모양.
“여러분. 지금부터는 비방용이라 방송 끌게요.”
-어어? 지금부터가 ㄹㅇ 하이라이트 같은데 끄게?
-야야, 나도 볼래.
“안 됩니다. 그럼 이만.”
-누가 후원 좀 쏴봐! 디지 얘 돈무새라 후원하면 안 끌…….
[스트리머 DG의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먼저 방송을 끄고 물끄러미 왕삼을 쳐다봤다.
시선을 받은 왕삼은 꺼림칙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전신을 따라서 방송을 종료했다.
“껐으니 이제 말해보시오.”
“잘은 모르지만 모든 격투기 수련자가 너 같은 부작용을 앓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
왕삼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맞소. 나보다 실력이 뛰어나거나 훈련 기간이 긴 선수 중에도 가상현실 부적응증을 느끼는 사람은 소수지.”
왕삼의 대답에서 재차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가상 현실 세계, 디지털 월드의 기본 메커니즘은 의념이다.
의념. 와 비타의 이능 체계에서 정신의 영역을 담당하는 에너지.
간단히 설명하면 정신의 힘으로 세계의 법칙을 초월하는 걸 말한다.
아이의 위기를 본 엄마가 괴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무협지 속 고수가 심신을 갈고닦으면 마음으로 검을 조종하는 이기어검의 경지에 오르는 것처럼.
‘더 정확히는, 마음속에 그려낸 심상을 세계에 투영하는 힘.’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게 만드는 강인한 의지.
상상을 현실로 만들 정도로 강력한, 이능의 영역으로 확장된 정신력.
‘짐작대로 이 녀석의 문제는 의념이 뛰어나서 생기는 것 같군.’
고칠 수 있을까?
아마 가능할 것 같지만,확신을 위해선 녀석을 테스트해 봐야 한다.
“크억!”
순식간에 뻗어진 전신의 면장이 왕삼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말 그대로 영화처럼 날아간 왕삼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갑자기 공격하다니, 미치셨소?”
“공격은 상대가 아파야 공격이고. 아프냐?”
“당연히 아프…… 어?”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왕삼이 당황했다.
“신기하지? 네가 익힌 태극권에선 사량발천근이니 내기니 하는 개념일 거야.”
“이, 이런 게 현실에서 가능하단 말이오?”
“몸과 마음을 극한까지 갈고닦으면.”
전신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구는 와 비타와 달리 이능을 미신이라 치부하는 세계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왕삼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마침 녀석이 무림인 컨셉이니까 무협지 설정을 좀 써먹어 볼까?’
전신도 와 비타에 끌려가기 전엔 무협지를 꽤나 좋아했었다.
동양철학에서 온갖 개념을 따다 붙인 무협 설정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이능을 수련하던 초창기 시절, 허구에 불과한 무협 설정들은 의외로 그가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무림인 컨셉이니까 무협지 정도는 봤겠지. 혹시 심생종기라고 아냐?”
왕삼이 멈칫했다.
“알고는 있소. 불교에서 유래한 용어이지 않소.”
심생종기(心生從氣).
간단히 말하면 마음이 생기면 기가 따른다는 뜻이다.
“의지를 품으면 기가 움직인다. 이 말을 기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적용해 봐.”
“마음 가는 대로 육체가 따른다……?”
“달리 말하면 심신일체(心身一體). 육체와 정신을 완벽하게 동화시키는 거야. 그럼 나쁜 버릇도 당연히 사라지는 거지.”
전신이 왕삼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말로는 와닿지 않겠지? 덤벼. 대련으로 느끼게 해줄게.”
살짝 불안했지만, 밑져야 본전.
왕삼이 전신에게 달려들었다.
“하압!”
몇 차례의 공격. 단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잘하고 있어. 정신을 온전히 나를 공격하는 데에만 집중해.”
손발을 주고받을수록 왕삼의 눈이 커졌다.
좀전의 장난기 가득했던 대련과 달리.
지금의 전신은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신묘하고 노련한 기세가 느껴졌다.
무언가에 빨려들어 가는 듯한 감각.
왕삼은 한 점의 잡생각도 없이 손과 발을 놀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만. 조금 쉬었다 하자.”
왕삼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시간을 체크하니 무려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인지하지 못했던 피로가 갑자기 쏟아지는 바람에 왕삼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때. 좀 믿음이 가냐.”
그렇게 말하는 전신의 얼굴엔 빙글거리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허억 허억.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좀 전까지 왕삼은 전신에 의해 유도된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너는 격투 동작이 몸에 버릇으로 남도록 반복 수련을 해왔을 거야. 하지만 앞으로는 너의 모든 것이 철저하게 네 의지 아래에 놓이게 만들어야 해.”
몸이 먼저냐 의지가 먼저냐.
별 것 아닌 차이 같아도 의념의 관점에서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몸과 정신의 일치. 심신일체를 통한 뇌의 무의식 억제. 내가 널 고쳐줄 방법인데, 납득할 수 있겠어?”
좀 전의 무아지경을 떠올린 왕삼이 멍하니 대답했다.
“믿을 수 있을 것 같소. 아니, 믿겠소. 형장, 부디 날 고쳐주시구려.”
전신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형이라고 불러볼까, 우리 삼이.”
“……혀…….”
왕삼이 말을 멈추더니 우물쭈물거렸다.
방금 전까지 온 에어로 펑펑 울어놓고선 새삼스레 자존심이라도 상하는 건가.
말 한마디면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잖니, 동생아.
얼른 해보렴.
“……대형.”
대형(大兄)인가. 지나치게 무협지스러워서 오글거리지만.
전신이 흡족하게 웃었다.
와 비타에서 그는 일신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였다.
지구에 온 후로 아랫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좀 허전했는데 쓸 만한 동생이 생겼다.
“정말…… 가상현실 부적응증을 고칠 수 있는 게 확실하오, 대형?”
같은 내용을 되묻는 걸 보니 가능성을 보고도 불안감이 완벽히 가시진 않는 모양이다.
“왕삼아. 칼날이 울퉁불퉁해서 예기가 없는 검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간단하다.
달아오를 때까지 가열하고 망치로 내려쳐서 단조하면 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너라는 검에 망치질을 가하는 것뿐이야. 더 뛰어난 검으로 정련되는 건 결국 검 자체가 해내야 한다.”
“제 의지 또한 중요하다는 말씀이구려.”
왕삼이 입술을 짓씹으며 굳센 표정을 지었다.
“믿겠소이다, 대형. 모든 걸 불사를 각오로 따를 테니, 부디 이 아우를 고쳐주시오.”
“오냐.”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겠다 결심하는 이의 의지는 언제나 빛나는 법.
만남의 계기는 좋지 않았으나 앞으로는 다를 것 같다.
“그럼 다시 방송 켜자.”
몇 가지 사항을 협의한 후 두 사람이 동시에 방송을 시작했다.
-으악, 드디어 켰다!
-기다리느라 죽는 줄 알았네 우씨.
-야야야야야! 니네 우리한테도 감추고 무슨 얘기 했어!
전신이 흐뭇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삼이, 움직여야지?”
왕삼이 즉시 한쪽 무릎을 꿇으며 포권을 했다.
“불초 아우 왕삼! 디지 대형을 뵙습니다!”
-??? 3아 니가 형이야.
-진짜 소원권으로 형님 동생 하기로 한 거임?
-이건 뭔 형제 역전 세계냐ㅋㅋㅋㅋㅋ
“자, 자. 여러분. 오늘부터 새로운 컨텐츠 시작하기로 했어요.”
“불초 왕삼과 디지 대형의 합동 컨텐츠이외다!”
그 순간이었다.
【권능. 귀환자의 이정표】
영혼의 떨림이 느껴짐과 동시에, 귀환자의 이정표가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