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ntel life of the returning champion RAW novel - Chapter 57
귀환 용사의 인방 생활 56화
“어머?”
아름답다는 말을 들은 소연이 기분 좋게 웃으며 한 바퀴 돌았다.
살짝 타이트하면서도 품이 넓은 맨투맨에 트렌디한 숏패딩.
늘씬한 라인이 돋보이는 하이웨스트 청바지까지.
캐주얼한 패션임에도 차려입었다는 게 느껴지는 복장이었다.
“칭찬 감사해요. 전 전신이 친구인 이소연이에요. 왕삼 님 맞죠?”
“맞소이다.”
“와아, 현실에서도 무림 말투를 쓰시는구나.”
“험험, 버릇이 되어놔서. 험험.”
이 자식, 왜 이리 헛기침을 해?
소연을 보며 유난히 어색해하는 게, 꼭 남중 남고 군대 공대 트리를 탄 쑥맥 같았다.
‘요샌 남중 남고는 없으려나. 군대도 없구나, 참.’
“쑥쓰럽냐?”
정곡을 찔린 왕삼이 다시 한번 헛기침을 했다.
“소연 소저의 미모가 무림제일미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몸 둘 바를 모르겠구료.”
“너 사배 누나 볼 때는 멀쩡했잖아.”
“…….”
참고로 서울에 가자마자 기사배, 알빠치노와 만나기로 되어 있다.
“일러야지.”
“……봐주시구려.”
통성명을 끝내고, 셋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는 건 처음인데, 두근거리네.”
“대중교통인데 두근거릴 게 뭐 있소. 그나저나, 지금까지는 택시만 타고 다닌 게요?”
“으음, 아니.”
주로 뛰어다녔지.
‘이렇게 말해봤자 이상하게 보겠지?’
그냥 조용히 뒤를 따라 걸었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타는 곳 안쪽으로 한 발자국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소리가 안 들리네?”
“무슨 소리 말이오?”
“보통 철컹, 철컹, 이런 소리가 들리잖아 열차는.”
“……? 언제적 소리를 하는 거요, 대체.”
소연이 끼어들었다.
“자기 부상 열차가 철컹거릴 일이 뭐가 있어. 얘는 나보다 어린 게 말하는 거 보면 아저씨라니까.”
“으음? 두 분은 동갑이 아니셨소? 친구라기에 동갑인 줄 알았소만.”
“제가 한 살 많아요. 얘가 누나라고 부르기 싫다고 맞먹는 거지.”
“……소저에게도 그랬단 말이오?”
소연과 왕삼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버릇없는 꼬맹이라니까요.”
“……동감하오, 소저.”
왕삼의 목소리는 개미처럼 작았지만.
아쉽게도 전신의 감각은 인간의 한계 이상으로 민감하다.
“너 뭐라고 했냐?”
“험, 험험! 문이 열렸소. 어서 타십시다!”
지하철 내부엔 사람이 꽤 많았다.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어?”
전신의 눈이 커졌다.
“사람들 머리 위에…… 역이 보이네?”
커넥터는 평상시에도 안구 연동을 통해 증강 현실 홀로그램을 시야에 표시한다.
[천안역] [매봉역] [청계산 숲역] [강남역]저거 설마.
“내리는 역이 표시되는 건가?”
“맞소.”
“!!!”
전신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택시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한 경악을 느꼈다.
사람들이 언제 내리는지 알 수 있다고?
혁신. 이것이야말로 혁신이다.
오오오, 기술의 위대함이여!
“저쪽에 계신 분들이 가장 먼저 내리는군. 저리로 갑시다.”
10여 분 후. 세 사람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게 미래…… SF 세상이라 두 번째로 행복했어…….”
참고로 처음은 가상 현실 게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다.
“자꾸 뭐라는 거야…….”
남들이 들을까 부끄러웠던 소연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냅두시구려, 소저. 대형이 저러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그렇긴 해요.”
소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틱톡 찍는 걸 들켰던 날. 다시 말해 그녀가 누나의 지위를 잃어버렸던 날.
우스꽝스럽게 자신을 따라 하며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는 거냐고 묻던 전신이 떠올라서였다.
‘뭐 그래도…… 그저께 날 도와줄 때는 조금 멋졌지만.’
특히나 감동이었던 건.
어쭙잖은 위로를 던지는 대신 뜬금없이 결승전 티켓을 보내준 거였다.
가난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동정은 생각보다 아픈 것이다.
[다음 역은 잠실. 잠실역입니다.]기사배, 알빠치노와는 잠실 스타디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 역시 자기 부상 열차. 엄청 빠르네.”
열차에서 내리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걸어가는 길, 고개를 조금만 들려도 커넥터, 혹은 별도의 카메라를 치켜든 채 떠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스트리머들인가?”
“그럴 것 같소.”
대장전은 아마추어 대회치곤 꽤나 규모가 크다.
록판 한정 5대5 팀전 대회인 패망전 다음으로 쳐줄 정도였다.
그런 만큼 이슈에 편승하기 위해서, 혹은 팬심으로 대회를 직관하러 가는 스트리머들이 꽤 많았다.
“기 소저. 여기요!”
“아. 왔어?”
스타디움 근처 카페에 있던 기사배, 알빠치노와 만났다.
이소연과 왕삼까지 총 네 명. 전신이 결승전 티켓을 건넨 사람들이었다.
“알빠 아저씨, 현실에선 처음 뵙네요.”
“허허허,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디지 군. 아, 현실에선 전신 군이라고 부를까요?”
“편하신 대로 불러주세요.”
평소 연상이라 하더라도 존댓말을 하는 것에 왠지 모를 억울함을 느끼곤 하던 전신이었지만.
알빠치노에게 존칭을 붙이는 건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나이를 따지기 이전에 고객님이시지. 그것도 대왕 고객님.’
자고로 손님은 왕으로 모셔야 하는 법!
“사배도 안녕.”
왕삼이랑만 대화를 나누고 억지로 디지 쪽을 보지 않던 기사배.
그녀가 렉 걸린 로봇처럼 끼기긱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보자 씨익 웃음이 나왔다.
“우리 ‘동생’도 현실에서 보는 건 처음이네.”
기사배의 얼굴이 화라락 붉어졌다.
그녀가 가까스로 대꾸했다.
“하, 하하…… 그러네. 반가워.”
“그렇지? ‘오빠’를 처음 보는 건데 당연히 반가워야지, 흐흐.”
“…….”
기사배의 표정이 무너지려는 찰나, 소연이 전신의 어깨를 탁탁 때렸다.
“아무리 내기라도 기사배 선수님한테 오빠 호칭 강요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대한민국의 영웅이신데.”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기사배를 무시하며, 전신이 소연에게 대답했다.
“한 입으로 두말하면…….”
이건 여자한테 써먹긴 좀 그런가.
대신 다른 걸 물었다.
“너 정말로 내 방송 다 봤구나. 내기한 것도 알고.”
“당연하지. 불릿 어택하는 거 보고 감탄해서 내가…….”
소연이 갑자기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뭐?”
“아, 아니야.”
당황한 소연이 화제를 돌렸다.
“기사배 선수님, 팬이에요! 혹시 사진 한 장 괜찮으실까요!”
“호호호, 그럼요.”
기사배의 옆으로 다가간 소연은 사진을 찍곤 그대로 눌러앉았다.
“소연이 너 정말 이쁘다. 남자친구 있니?”
“에엣, 아뇨 아뇨 언니가 더 이쁘신걸요! 남자친구는 제가 연애할 상황이 아니라 없어요.”
얼굴이 상기된 채 조잘거리는 게, 기사배를 만났다는 게 정말로 좋은 모양.
‘데리고 오길 잘했네.’
소연의 기분전환이란 목표 하나는 확실히 달성한 것 같다.
“알빠 아저씨. 저 궁금한 거 있는데, 윤서는 몇 살이에요?”
“11살이랍니다.”
“헉.”
“우와.”
“……엄청난 늦둥이였구나.”
“말년에 얻은 보물이지요, 허허허.”
전신을 포함한 다섯은 스타디움 입장 시간이 될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안면이 없던 소연은 처음엔 좀 어색해했지만, 기사배를 시작으로 말꼬를 텄고.
모인 사람들이 전부 사교성 없이는 뜰 수 없는 스트리밍 계에 몸담은지라 금방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형.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어도 되는 거요? 결승 준비는?”
“괜찮아 괜찮아.”
별거 아닌 주제로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지금은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더 떠들었을까.
커넥터가 알림을 띄웠다.
[디지 선수, 입장해서 무대로 와주세요.]“아직 대회 시작 시간은 멀었는데.
“선수는 먼저 들어가서 준비할 게 있나 보지 뭐.”
소연이 전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응원 열심히 할게. 파이팅!”
“이 아우에게 대형의 위대함을 견식시켜 주리라 믿소, 대형!”
손을 번쩍 들며 응원 멘트를 던지는 왕삼.
시큰둥한 척하면서도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올리는 기사배와 시선을 던지며 포근하게 웃는 알빠치노까지.
피식 웃은 그는 멤버들 전부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다들 편하게 봐요. 어차피 우승은 내 꺼니까.”
* * *
스타디움 내부. 중앙의 무대를 걸어가다가 박휘와 마주쳤다.
먼저 그를 알아본 박휘가 손을 내밀며 반갑게 웃었다.
“이야! 디지 선수 맞나요?”
“네. 안녕하세요.”
박휘가 내민 손을 잡고 흔들었다.
“본선 보면서 많이 감탄했어요. 피지컬만 보면 왜 프로 안 하고 스트리머 하고 있는지 모르겠던데!”
애초에 방송도 실수로 시작한 그의 입장에서는.
프로 게이머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게임으로 프로까지 하면 이정표가 반응하려나?’
필시 그러리라.
하지만, 지금 생활보다는 아무래도 자유도가 많이 떨어지겠지.
‘아직은 이정표가 반응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당장 대장전 우승자가 되면 이정표가 발동될 게 확실하고.
“프로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제가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요.”
나중에. 웬만한 일로는 이정표를 발동시킬 수 없을 때 도전해도 늦지 않을 터다.
“그렇구나.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요. 내가 봤을 때, 좀만 연습하면 월클급이에요. 디지 선수 재능은.”
“칭찬 감사합니다.”
박휘를 따라 대회장 중앙으로 향했다.
“디지 선수. 간단한 리허설과 행사 안내드리려고 미리 호출드렸습니다.”
알아야 할 것들을 안내받고 대기실에서 결승전 개회를 기다렸다.
‘사람이 엄청 많이 모였네.’
이 스타디움 정원이 2만 명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빈자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최종적으로 절반 이상이 채워졌다.
‘프로 리그도 아니고 아마추어 대회, 그것도 게임 대회에 이 정도라니.’
와 비타로 끌려가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광경.
새삼 그가 지구를 떠난 사이 일어난 변화가, 가상 현실의 출현이 전 세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혁신이란 게 체감된다.
그때였다.
“음? 아. 혹시 디지 님?”
잘생긴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
결승 상대인 미카엘이 대기실에 들어왔다.
“오오, 디지털 월드의 얼굴이랑 똑같으시네요. 잘생기셨다!”
그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면전에서 외모 칭찬받는 건 지구에 오고 처음인 거 같은데.’
애초에 와 비타에서는 잘생긴 축에 들지도 못했던 그다.
잘생겼다는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좀 어색하다.
“만나니까 반갑네요. 재밌겠죠, 조금 이따가?”
불쑥 다가온 미카엘이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뭐랄까, 제멋대로라기엔 사람이 사근사근해서 무례하기 느껴지진 않고.
살짝 마이페이스인 기질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러게요. 재밌을 거 같아요, 결승전.”
“역시.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알았어요. 딱 보는 순간 저랑 같은 과라고 생각했다니까요. 우리 말 놓을까요?”
“오, 좋죠!”
전신의 마음속에서 미카엘에 대한 평가가 수직 상승했다.
“그럼 디지라고 부를게.”
“친하게 지내자, 카엘아.”
“응, 으음? 음…… 이야, 놓으란다고 진짜 편하게 놓네. 너도 나랑 잘 통할 거라고 생각했구나?”
“그럼 그럼.”
그렇게 마이페이스인 걸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는 두 남자가 친분을 다지고 있을 때.
“뾰로롱! 오후 6시 정각이에요, 어린이 친구!”
뾰롱이가 미리 알람을 맞춰뒀던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대림 엔터와 함께하는 장인대전!”
“그 결승! 지그음! 시작합니다!”
유명 스트리머 김현석과 인기 해설자 박휘.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로를 쳐다본 둘은.
동시에 웃으며 악수를 하고 있던 손을 뺐다.
“내가 이겨도 앙심 가지기 없기.”
“누가 할 소리를.”
대장전, 결승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