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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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 VS 네 일 (2)
“또 일을 하지 않을 궁리를 하는 모양이로군.”
“적임자를 찾아주려는 거죠. 단순히 마을에서 도시로 이름만 바뀐 게 아니잖아요. 손 봐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그런데 저는 영주성에서 일주일 속성으로 배운 게 전부고. 그러니 처음부터 잘해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편이 나아요.”
“하지만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우는 것도 있는 법이야.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도망을 칠 텐가?”
이안의 목소리는 어쩐지 조금 화가 난 듯 했다.
“굳이 실패를 하면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나요?”
“뭐?”
“실패를 하지 않고 배울 수 있다면 그 길을 가는 게 맞지 않아요?”
하지만 곧 도미닉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이안.
“게다가 이번 건 말이에요, 실패를 하면 저 혼자 손해 보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에버그린 주민들의 미래가 달린 일인데.”
“하지만 지도자가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믿는 것도 지도자가 갖춰야 할 능력이죠.”
도미닉은 지지 않았다.
“기사님. 아직도 에버그린에 저 말고 친구 없죠?”
“……”
“기사님은 말이에요. 좀 다른 사람들에게 벽을 세우지 않을 필요가 있어요. 뭐 능력 되면 혼자 사는 게 뭐가 대수랍니까. 그런데 힘들잖아요. 혼자 다 하려면.”
도미닉의 말에 이안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까 와서 좀 봐주세요. 지원자들 경력이랑 맞는 자리를 찾아줘야 되는데 확신이 안 서네요. 그래도 기사님은 노영주님 옆에서 이런 것 좀 본 적 있을 거 아녜요.”
“…확인하지.”
어느새 숙취는 모두 날아가 버린 이안은 책상 앞에 잔뜩 놓인 서류 더미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그 모습을 도미닉이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오케이, 떠넘겼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나 싶었지만 어쨌든 잘 넘어갔다.
어느새 집중한 이안을 내버려두고 집을 빠져나와 조리실로 향하는 도미닉의 발걸음이 경쾌했다.
“흠, 흠-. 뭘 한 번 만들어 볼까나. 간단하게 파스타? 아니지, 국물이 좋은데. 오랜만에 부야베스나 만들어 봐?”
조리실에 들어온 도미닉의 눈에 나무통 가득 들어있는 조개가 보였다.
– 조개 먹어라. 밤새 해감 해놓은 거다.
칼론아저씨의 글씨체였다.
자신에게 촌장을 떠넘길 때만 하더라도 자신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며 낄낄거렸는데 이젠 간단한 글은 무리 없이 쓰곤 했다.
[손주가 좀 있으면 걷기 시작할 거야. 그 녀석한테 부끄럽지 않으려면 이름 정도는 쓸 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마법사 페롯이 마을 아이들을 데려다가 글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마을에는 때 아닌 문해 교육 열풍이 불었었다.
평생 까막눈으로 살던 어른들도 더듬거리게나마 글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칼론 아저씨도 그 열풍에 동참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때부터였나.
도미닉의 조리실 앞에 누군가가 놓고 간 식재료들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이럴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채소며 과일, 생선 따위의 식자재를 가져다 놓는 주민들은 더듬더듬 서툰 글씨로 신선한 것이라는 둥, 이렇게 조리해서 먹으라는 둥, 짧은 메모를 남기곤 했는데 도미닉은 그 속에 담긴 고마움이 느껴져 매번 마음이 충만해지곤 했다.
“별 수 없지. 오늘은 조개탕을 끓여야겠네.”
나무통 안에 담긴 조개는 깨진 것 하나 없이 씨알 굵은 놈들뿐이었다.
좋은 것들만 일일이 골라내는 칼론 아저씨의 투박한 손이 생각나자 도미닉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탁탁탁-.
보글보글.
조개와 무, 그리고 소금을 넣고 한소끔 시원하게 우려낸 국물이 끓기 시작했다.
큼지막한 조개를 아끼지 않고 넣은 덕에 뽀얗게 육수가 우러나와 입맛을 돌게 하기 충분했다.
빨간색 고추와 파릇파릇한 대파도 송송 썰어 넣자 먹음직스러움이 더해졌다.
“식초도 오늘은 됐어.”
해산물을 잔뜩 넣은 탕을 끓일 때 식초를 반 숟갈 정도 넣으면 비린내를 잡아주기에 평소 도미닉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만두기로 했다.
“역시 여기 있었군.”
“오셨어요? 서류는요?”
“보완해야 할 부분을 체크해두었다. 나중에 보면 될 거야.”
“고맙습니다, 기사님. 거기 앉으세요. 마침 국이 다 됐거든요.”
딸랑-.
이안이 들어왔는데 또 다시 조리실의 문이 열렸다.
“우리도 껴도 되겠지?”
“여어! 인간! 높은 인간이 되었다며! 축하한다!”
노영주와 드워프였다.
“축하 인사 한 번 되게 빠르네요.”
“그렇지? 나는 예의를 아는 드워프라고! 우하하!”
“…예.”
도미닉이 얄미운 말을 해도 저 드워프에겐 먹혀들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저 드워프, 어제 왜 술판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게 분명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어버린 도미닉.
“국 식어요. 얼른 앉으세요. 면은 없고 밥은 했는데, 괜찮으시죠?”
“인간! 나는 고기가 좋아!”
“나중에 해드릴게요. 지금은 조개로 참으세요.”
“음, 나는 조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스톤해머의 밥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영주가 숟갈을 먼저 떴다.
후룩-.
“으어!”
역시 조개탕 국물 맛이 통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것도 전날 과음을 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좋군, 아주 좋아!”
스푼도, 체통도 모두 내려놓고 커다란 대접을 손으로 들고 후루룩, 국을 들이키는 노영주.
꿀꺽-.
“인간, 나도 줘라!”
잘 먹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아무리 즐기지 않는 음식이라도 손이 가는 법이다.
드워프 역시 조개탕을 받아들곤 노영주와 마찬가지로 대접 째로 들고 마셨다.
“우왁! 이건 술과 어울릴 것 같은데, 한 병 어떻게 안 될까?”
하여간 술과 관련한 것이라면 드워프를 따라갈 자가 없다더니 과연 그랬다.
‘조개탕이 소주 안주인 건 어떻게 알고.’
그렇지만 술을 줄 생각은 추호도 없는 도미닉이었다.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드워프에게 애지중지 모아놓은 조리실의 술을 모두 털릴 수는 없었으니까.
“와인이나 버터의 향은 나지 않는데, 어떻게 한 거지?”
어느새 한 그릇을 몽땅 마시고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는 노영주가 질문을 했다.
남부에서는 조개로 맑은 탕을 끓이는 것은 생소한 조리법이었다.
와인이나 버터를 넣어 국물을 자작하게 요리하거나 조갯살을 다져 클램 차우더 스프를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니면 파스타 같은 음식에 부재료로 사용하거나.
“본연의 맛이죠. 조개의 감칠맛과 짠 맛, 무의 달큰함과 시원한 맛, 고추와 마늘로 풍미를 더해주고, 소금으로 남은 간을 하고. 하나의 맛이 강해지지 않도록 조절하면 완성이니 간단하죠?”
“허허. 정말 다른 비법이 없단 게야? 그게 전부?”
“네. 아마 노영주님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노영주가 수염을 쓸며 조리법을 되새겼다.
아무래도 리조트 주방장에게 이야기를 할 작정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릇이 아쉽단 말이야. 맛이 정갈한 만큼 정갈한 도기에 내왔다면 보기 좋았을 텐데.”
“좀 비싸야 말이죠.”
“하긴. 동대륙과의 무역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도자기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지?”
노영주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뭐, 그건 그렇고. 일단 건물부터 지어야지?”
“네. 다행히 리조트 개발을 하면서 도로망은 정비를 해 둔 덕에 일이 반으로 줄기는 했어요.”
“당장 필요한 건물이 보자…”
“우선 시청과 보안청, 거래소와 항구가 1순위에요.”
“위치는 생각해 둔 곳이 있나?”
“네, 우선 시청은 여기, 보안청과 거래소는 여기랑 여기… 항구는 지형을 보고 결정해야 하니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흐음. 생각해 둔 사람은 있고?”
“아직은요. 아카데미에 교수로 지원 한 사람들 서류며 영주님께서 보내주시기로 한 관리들 중에도 항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보안청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소드마스터가 눌러앉아 있는 동네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이 뭐가 있을 것이며, 기존에 마을 치안을 담당하던 어촌계 아저씨들을 보안청에 정식으로 편입하면 끝이었다.
거래소 역시 마을에서 운영하던 공판장과 안톤의 도움을 받으면 간단히 해결이 될 터.
시청도 마찬가지였다.
아카데미의 교수직에 지원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중하급 관리 출신들이라 행정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었고 페롯 역시 관리 서너명 몫을 너끈히 해내는 재원이었다.
마을에서 글과 계산 등을 배운 아이들 중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아이들을 선별해 하급 관리로 편성하면 행정 업무가 마비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항구지.’
영주가 에버그린을 도시로 승격시킨 진짜 이유인 무역항.
그런데 당장 항구의 위치를 선정하는 것부터 턱 턱 막혔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사람을 하나 추천해 주랴?”
“추천이요?”
“제법 믿을만한 놈이 연락을 해 왔더라고.”
오늘 아침, 수도에서 연락이 왔다. 비싼 통신구까지 써 가며 전해 온 소식.
도미닉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 직접 전달해주러 왔다가 조개탕에 정신이 팔려 이제야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황실 아카데미에서 줄곧 수석이었던 인재라는데, 토머스 그 놈 말이 불세출의 천재라더군. 마치 나처럼 말이야. 허허!”
“천재요? 천재가 이 깡촌에 뭐 먹을 게 있다고…”
“그것이 말이야…”
딸랑, 딸랑!
노영주가 마저 대답을 하려는데 조리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진짜 자물쇠를 달던가 해야지. 아무나 막 들어 와.’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누가 왔나 돌아보는 도미닉의 눈에 처음 보는 낯선 사내들이 보였다.
“…거지?”
필터링 없이 단어 하나가 툭 던져졌다.
“거, 거지라니!”
“아니에요? 그럼 부랑자…?”
“우, 우리 꼴이 이런 것은… 아무튼 처음 보는 사이인데 무례하지 않소!”
뒤쪽에 서 있던 사내 하나가 얼굴을 붉히며 발끈했다.
“그래, 시장. 아무리 저 인간들이 꼴이 거지같아도 그렇게 말하는 건 무례한 거다.”
드워프의 말에 가뜩이나 붉어진 얼굴이 터지려는 방문객들이었다.
“우리 꼴을 보고 하는 말이 그게 답니까?”
“아, 미안합니다. 저도 모르게.”
“정말 우리, 아니, 나를 보고 할 말이 거지니, 부랑자니 하는 말 밖에 없단 말입니까?”
사내들의 가장 앞에 선 이가 도미닉을 채근하든 물었다.
‘왜 이래, 무섭게.’
숫자는 저 쪽이 많았지만 여긴 현직 기사에 소드마스터가 있었다. 싸움이 나더라도 절대 질 수가 없는 인원 구성에 도미닉이 어깨를 폈다.
“아니, 그럼 뭐 다른 말이라도 해야 합니까?”
어디로 봐도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 않나? 싶은 마음에 삐딱선을 탔다.
“…내 피부색이 보이질 않습니까?”
“피부색…? 예, 뭐, 잘 태우셨네요…?”
흔히 볼 수 없는 구릿빛의 피부색의 남자.
하지만 칭찬을 해 줘도 아무 말도 없이 장승처럼 문을 막고 계속 서 있을 뿐이었다.
‘일부러 태운 게 아닌가?’
하긴, 이 세상에 태닝 기계가 있을 리가 없지.
“…잘 어울리네요…?”
“진심입니까?”
“아니, 대체 왜 그러시는데요? 아니지, 그것보다 대체 누구예요, 당신들? 누군데 아침부터 남의 조리실에서…”
털썩-.
“억?!”
구릿빛 피부의 거지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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