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want to play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예사 인간 같지 않다니? 무슨 말인가?”
“우리가 지금 크림슨 앤트가 자리 잡은 영역을 떡하니 차지고 있지 않습니까. 저놈들 보기에는 우리가 마물보다 더 강한 존재로 보일 겁니다.”
필리프의 물음에 카펜터가 대답했다.
시리아를 비롯해 이번 원정에 참여한 기사와 병사들은 갑옷이나 무기에 크림슨 앤트의 껍데기나 이빨 등을 가공해서 만든 장신구를 달고 있었다.
손재주가 좋은 드워프들에게 부탁해서 만든 것인데, 전설의 마물과 싸워 이겼다고 자랑할 의도였다.
“거기다 크림슨 앤트와 싸우면서 기사와 병사들의 몸에 본의 아니게 놈들의 피 냄새가 배었지요. 후각에 예민한 다이어 울프들 입장에선 무서운 게 당연합니다.”
온몸에 동족을 잡아먹던 크림슨 앤트의 사체를 주렁주렁 달고 피 냄새를 펄펄 풍기는 인간들이라니!
아마 마족만큼이나 무시무시하게 보였을 것이다.
“노련한 모험가나 사냥꾼들 중에는 일부러 트롤이나 오우거가 남겨 둔 흔적을 옷에 문질러 다른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하기도 합니다. 아마 이번 일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군요.”
카펜터의 설명에 필리프와 테리는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늑대들 눈에 시리아가 괴물처럼 보였다 이거군.”
“영주님! 어여쁜 아녀자에게 괴물이라니요! 실례에요!”
“사실이잖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잇! 달링까지도!”
놀림을 당한 시리아가 펄쩍 뛰었다.
다들 잠시 껄껄 웃다가, 필리프가 가볍게 탁자를 두들기자 다시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아무튼 이제 이곳도 많이 안정된 것 같으니, 영지로 돌아가야겠어.”
가신들의 오해로 시작된 프릴 산맥 개척이었지만, 브란델 영지가 대영지로 발전하는데 필요하다는 생각에 적극 추진했다.
‘영지가 외세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강해져야지 나도 마음 놓고 놀 수 있거든.’
그리고 프릴 산맥에는 덕질에 필요한 희귀 광물과 탑승형 거대 인형 병기 개발에 필요한 유적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이 모든 게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한 달 동안 공사 감독 외에 딱히 하는 일이 없다 보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에휴,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누가 안 한대? 유적이 발견되면 그때 다시 올 거야.’
아무튼 놀고 싶고 덕질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필리프의 귀향 선언에 카펜터를 비롯한 영지군의 수뇌들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영주님께서도 많이 참으셨지.”
“주군, 이곳은 저희에게 맡기고 돌아가십시오.”
“희귀 광맥이나 유적을 발견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카펜터 같은 최측근들은 필리프의 성향이 어떤지 눈치챘다.
그들의 주군은 무언가를 개발하고 만드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변변한 대장간 하나 없는 이곳에서 한 달이나 버텼으니 좀이 쑤실 만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니 고맙군.”
필리프는 광산 개발과 유적발굴을 빌헬름에게 위임한 뒤, 바로 다음 날 앤디와 200여 명의 호위 병사들만 데리고 프릴 요새로 복귀했다.
테리와 시리아는 좀 더 실전 경험을 쌓고 싶다고 요청해서 십자 요새에 남겨두었다.
***
“영주님이 오신다!”
“영주님 만세!”
“엘디르의 사도께 영광이 있으라!”
필리프가 프릴 요새에 당도하니 기다리고 있었던지 영지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미 오크 부락이나 십자 계곡에서 있었던 전투가 널리 퍼져나간 상태였다.
몬스터, 그것도 고대에 마신의 첨병으로 악명을 떨친 크림슨 앤트를 토벌했다니 다들 놀람을 금치 못했다.
조작이라며 불신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증거물로 나도는 크림슨 앤트의 머리통이나 다리 조각을 보고 말문을 닫았다.
“꺄악! 영주님께서 나를 보셨어! 내 눈을 보셨다고!”
“이년아, 성문 쪽을 보신 거야.”
“아니, 날 선택하셨어! 날 영주관으로 데려가실 거라고!”
인근의 영지민들은 다 몰려왔는지, 앤디와 호위병들이 나서서 군중들을 막아야 할 정도였다.
자신을 반기는 주민들을 위문한 필리프는 현재 프릴 요새를 관리하는 지휘관을 불러 물었다.
“계획한 것보다 요새 인근에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가?”
프릴 산맥 개척의 전초 기지인 프릴 요새 인근에 드워프 마을과 마탑 건설을 위한 인부들과 개척민들을 모집하긴 했다.
하지만 아까 환영 인파를 보면 계획한 수보다 2배는 더 많은 듯했다.
“요새 부근 개척지는 3년간 세금을 면제한다니 너나없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게 효과가 클 거라 생각은 했지만…….”
“거기다 프릴 산맥 남부에 알금알금 화전민 마을을 일구고 살던 유민들도 모이고 있지요.”
무거운 세금과 노역을 견디지 못해 프릴 산맥으로 도망친 유민들이지만, 몬스터의 영역 안에 자리 잡고 사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니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민들에게 너그러운 영주가 있으면 몰려들 수밖에.
“소문이 났는지 혼혈 노예들도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렇게 필리프가 지휘관의 보고를 받고 있을 때였다.
치이익! 칙!
갑자기 들려온 낯익은 소리에 필리프가 고개를 돌리자 증기차가 짐칸에 사람들을 가득 태운 채 움직이는 광경이 보였다.
“어, 저건……?”
“공방에서 빌레펠트 경과 드워프들이 만든 겁니다. 두 대가 드워프 마을과 영주성을 왕복하며 운행되고 있습지요.”
“아니, 벌써?”
“예, 좀 느리긴 해도 힘이 세고 사람과 짐을 많이 실어 나을 수 있어 많이들 애용합니다.”
프릴 요새까지 증기차가 보급된 걸 보면, 온천이 있는 실론 마을이나 구(舊) 미라보 자작령의 영주성 등 영지의 중요한 마을에도 속속 증기차가 투입되고 있을 터.
증기차 제작 공방에 드워프들이 충원되자 생산 속도가 빨라진 모양이다.
“사실 처음엔 드워프 마을과 마탑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공사 자재와 인부들을 실어 나르는 용도였습니다. 근데 호기심이 생긴 사람들이 타보더니 나중엔 저렇게…….”
“영주의 허락도 없이 교통편으로 쓴단 말이지?”
“드워프들 말로는 영주님께서 결정한 일이라고 합니다.”
증기기관차는 증기차의 수 배에서 수십 배나 많은 수송량을 자랑한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일단 만들어놓기만 하면 증기기관차가 증기차보다 효율이 훨씬 높다.
그래서 증기기관차를 개발해 작게는 영지, 크게는 아르트리아 왕국의 주력 교통수단으로 삼으려 했는데, 빌헬름을 거치며 와전된 모양.
필리프가 말을 않고 있자, 지휘관은 혹시 자신이 실수라도 한 건 아닌가 싶어 긴장했다.
하지만 필리프를 이를 문제 삼을 생각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영지민들이 잘 활용하고 있는 데다, 반응도 좋다니까.
‘뭐 이렇게 된 거 증기기관차는 장거리 수송용으로 쓰고, 증기차는 단거리 운행에 쓰지 뭐.’
문제는 연료인데 마침 프릴 산맥에서 석탄 광맥을 두어 개 발견한 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음, 그래도 저런 건 곤란한데.’
안전벨트는커녕 제대로 된 좌석도 없는 짐칸에 앉거나, 대충 붙잡고 매달려 타는 사람들을 보자니 절로 낯빛이 찌푸려졌다.
심지어 길에는 차선 같은 것도 없어, 사람과 마차, 증기차가 뒤섞여 다니고 있었다.
길이 넓은 곳에서야 괜찮지만, 영주성이나 마을 내에서 저렇게 다니면 딱 사고 나기 쉬운 환경이었다.
‘나도 알아, 젠장!’
덕질하고 싶어 돌아왔는데, 오자마자 일거리가 하나 늘어났다.
***
필리프는 이왕 온 김에 인근에서 건설 중인 드워프 마을과 마탑의 건설 현장도 방문했다.
보고는 받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중 마탑은 프릴 요새 서쪽의 평지에 지어지고 있었다.
과거 드워프 왕국에서 돌아올 때 비행선 가오리가 착륙했던 자리.
기초 공사가 끝나고 건물이 한창 올라가고 있는 공사 현장에 다가가니 마이런 펠이 반갑게 맞이했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오랜만이오, 펠 박사.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소?”
“드워프 왕국에서 돌아온 뒤로 마탑 건설 현장에 거의 살다시피 하고 있지요. 허허허.”
“이런 공사까지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을 텐데…….”
필리프의 말에 펠은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처음엔 저도 그리 생각했지요. 그래도 내 마법사들이 배우고 연구할 기관이라 생각하니 절로 신경이 쓰이더군요.”
처음 필리프의 영입 제안을 수락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열심히 할 줄은 몰랐다.
대충 변경에서 몇 년 지내다 사형의 노여움이 풀리면 왕립 마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오랜 숙원이었던 전등 개발에 성공하고, 드워프 왕국에서 고대 현자 아키데스의 마법서를 얻으면서 귀환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건 신이 나에게 주신 기회다. 어찌 이런 은총을 마다하겠는가!’
펠은 낮에는 마탑 건설을 진두지휘하고 밤에는 필리프가 번역해 준 아키데스의 마법서를 파고들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두어 시간도 못 자는 경우가 허다했다.
“연구도 좋지만, 건강관리도 중요하오. 그래야 연구도 오래 할 수 있을 게 아니오.”
“허허,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늙은이는 아직 팔팔하니까요.”
펠은 전혀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기분 탓이 아니라, 몸에서 평소와 다른 활발한 마나 순환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틀림없다. 이건 상위 서클로 오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프로그레스 현상이야.’
5서클에 오른 이후 대체 얼마 만이던가.
정체되어 있던 마법 실력이 조금씩 늘어난다 싶었는데, 얼마 전부터 서클 상승까지 진행되고 있다니!
‘이게 다 젊은 영주, 나의 주군 덕분이다.’
마법은 3가지가 복합되어야 성장한다.
마나의 양도 늘어야 하지만, 마법적 지식이나 깨달음도 중요했다.
그동안 펠은 6서클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했다.
이론적인 부분이야 사형인 왕립 마탑주 글렌 파드 후작에게 배웠지만, 이것이 어디에서 적용되고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그 해답이 아키데스가 남긴 마법서로 풀리기 시작했다.
[6서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의 개념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마법이 발동하는 범위뿐만 아니라, 마나의 양, 마법진의 크기 등등…….]마법서에 적힌 아키데스의 친절한 설명과 가르침은 깨달음을 얻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중에서 펠의 마음을 흔든 내용이 있었다.
[마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사 본인의 의지와 소망이다.명심하라. 하고자 하는 자만이 뜻을 이루고, 바라는 자만이 꿈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내용을 보고 펠은 자신의 지난 생을 돌이켜 보았다.
소싯적 천재라 불리던 시절, 그는 현자라 불릴 정도로 전설적인 마법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하지만 5서클에서 마법 실력이 정체하면서 그 꿈은 흐지부지되고 말았고 의지도 꺾였다.
한동안은 발버둥 쳐보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자신의 한계라 여기고 자질구레한 연구에만 몰두했다.
‘남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이루면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았지. 천재라고, 대마법사라고…….’
남의 평판이나 인정에 연연하지 않고, 마법 수련에 열중했다면 6서클에 올랐을지 모른다.
아쉽지만, 펠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믿을 만한 주군과 고대 현자의 기연, 여기에 마탑까지 건설하고 있으니, 현자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거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펠에게 필리프의 물음이 날아들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그런데 마탑의 건설 현황은 어떻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