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want to play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불경한 것들! 아무리 바다가 멀다지만 명색에 12대신의 일원인 바다의 여신을 이렇게 박대하다니!”
난민촌에 도착한 이오라, 아니, 마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브란델 영지에 오는 동안 아르키나의 신전은 자주 봤는데, 자신의 신전은 별로 못 봤기 때문.
‘천사일 때는 내가 더 뛰어났는데, 어째서 아르키나가 나보다 인기가 더 많은 거냐고!’
신들이 발휘하는 영능은 신도들의 기도와 염원에서 기원한다.
그렇다 보니 강력한 영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신도도 많고 신전도 많아야 한다.
나름 바다와 인접한 왕국이나 섬에서는 인기가 있었으나 내륙으로 갈수록 인기가 없었던 이오라는 내륙과 해안가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은 아르키나를 질투할 수밖에 없었다.
‘하, 그리고 치유의 성녀? 왜 우리 교단에 그런 인재가 나타나지 않는 거야!’
브란델 영지에 오면서 자주 들었던 성녀 이야기.
가난한 자들을 위해 식량과 잠자리를 주고, 아픈 이들에겐 아낌없이 신성력을 퍼부어 치료를 해주는 성녀는 진짜 있었다.
그런 인재가 자신의 교단에서 탄생했다면, 신도 수를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했을 텐데.
허나 지금 자신의 교단에는 제물과 헌금만 탐내는 부패한 신관들밖에 없었다.
‘쓰읍, 성녀나 사도를 임명하려 해도 조건을 충족한 놈도 없었고…… 이게 다 태만한 천사 녀석들 때문이야! 그것들이 일만 제대로 했더라도 내가 이런 꼴은 되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이오라, 아니, 마린이 천계에 있는 애꿎은 부하들을 씹어대고 있을 때였다.
심상찮은 기운이 난민촌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녀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이건……?’
물과 치유의 영능이 느껴졌다.
그것도 성자나 성녀 수준을 훨씬 넘어선 낯익은 기운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난민촌에 들어오는 저 파란 머리 여신관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를 뿌득 갈아붙인 마린은 파란 머리 여신관에게로 달려갔다.
그녀 일행보다 먼저 들어온 유민들이 여신관을 향해 반색을 지으며 연방 굽실대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성녀님!”
“천사 누나! 누나 덕분에 아빠가 더 이상 다리가 안 아프시데!”
“인석아, 성녀님이라 해야지!”
마린은 유민들의 환대를 받는 여신관을 바라보며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어이가 없군. 소문이 자자한 치유의 성녀가 바로 저 년이었다니!’
***
한편 치유의 성녀, 아니, 리베르타도 낯익은 기운을 읽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자신을 노려보는 마린을 보고는 낯빛을 굳혔다.
– 네가 왜 이곳에……?
– 그러는 넌 왜 성녀 행세지?
꾀죄죄한 여자애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리베르타는 그녀가 바다의 여신 이오라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리고 현재 본체의 1%도 안 되는 영능을 가진 그녀가 자신과 같은 벌을 받았다는 사실도 파악하고는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 웃지 마! 이게 누구 때문인데!
– 다 네 탓이 아니더냐. 네가 쓸데없이 우릴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우스운 꼴이 되진 않았을 테지.
– 유배당한 주제에 함부로 영능을 쓰는 뻔뻔한 년을 처벌하는 게 뭐가 어때서! 제논도 정말 한심하네. 율법의 신이 이렇게 형평성을 잃다니!
둘의 말다툼에 유민들은 어리둥절했다.
사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지금 둘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천계에서 사용하는 신족의 언어였다.
“둘이 아는 사인가?”
“근데 꼬맹이가 성녀님에게 너무 불손한데? 빽빽대는 꼴을 보라고.”
“혹시 사이가 나쁜 자매라던가…….”
유민들 중 누군가 한 말을 들었던지, 리베르타와 마린이 동시에 부정하고 나섰다.
“이런 버릇없는 동생은 없노라.”
“어떤 놈이 개소리를 지껄여? 죽을래?”
유민들에게 벌컥 성질을 부리는 마린의 모습에 리베르타는 혀를 찼다.
– 그 성질머리로 지상에서 잘도 살아남았구나.
– 흥! 그러는 너는? 인간에게 실망했다고 여신의 책무도 내던졌던 주제에 인간들에게 빌붙어 살고 있잖아.
순간 리베르타의 표정이 굳어졌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치유하는 물의 여신답게 그녀는 인간들을 사랑했다.
그랬던 만큼, 그들의 욕망 어린 행태에 깊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무책임한 은둔을 택하고 말았다.
– 그 일은 내 잘못이 맞다. 지상에서 인간들과 어울려 살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지.
리베르타는 자신의 과오를 순순히 인정하고 반성했다.
만약 징계를 받지 않고 계속 천계에 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오라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아니꼬운 모양.
– 흥, 알았다면서 성녀 행세를 해? 추종자도 잔뜩 만들어 가면서!
– 나는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계도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나를 섬기던 신관들은 지금 나와 싸우고 있지. 너에게 꾸지람을 들을 정도로 부정한 행동은 하지 않았노라.
떳떳한 리베르타의 모습에 마린은 인상을 구겼다.
그 표정은 마치 사나운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의 바다와 같았다.
– 정말이지 넌 맘에 안 들어. 항상 그런 식으로 날 내려다보기나 하고!
– 질투가 나서 그런 게로구나. 바다의 신전보다 물의 신전이 많으니 아니꼬운 게지.
– 누, 누가 질투한다고…….
– 네가 잘했으면 그런 일도 없지. 틈만 나면 난폭하게 폭풍을 일으키는 성질 사나운 여신을 누가 좋아하겠느냐.
리베르타의 팩트 폭력에 마린은 부들부들 떨었다.
– 누가 좋아서 폭풍을 일으키는 줄 알아? 난 인간들에게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을 주는 거야! 그리고 가만 내버려 두면 인간들이 해양 생물들을 남획하고 바다를 더럽히니 그런 거지!
– 그보다 네 권위를 내세울 목적이 우선이었겠지.
마린의 얼굴이 붉어지는 만큼이나 인내심도 바닥났다.
– 야! 너 정말 혼나 볼래?
– 어떻게 혼내겠다는 것이냐? 저번처럼 폭풍이라도 불러올 테냐?
결국 분노가 폭발한 마린은 쌍심지를 치켜뜨고, 리베르타에게 덤벼들었다.
– 이 망할 계집애!
마린은 폭풍 같이 달려가 아르키나의 머리채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건 그녀의 생각일 뿐, 마르고 왜소한 여자애의 몸으로 리베르타를 당해낼 수 없었다.
리베르타가 팔을 뻗어 마린의 이마를 잡으니, 마린의 짧은 두 팔은 허공을 헛되이 휘저을 뿐이었다.
– 꼬맹이의 몸에 들어가더니 더 유치해졌구나.
– 으으. 이게 진짜!
– 그만하여라. 인간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럽지 않…… 아앗!
마린이 리베르타의 손을 붙잡는다 싶더니, 이내 덥석 물어버렸다.
리베르타는 어이가 없었다.
명색에 12대신의 일원이자 드넓은 바다를 관장하는 여신이 설마 이런 추태를 보일 줄이야!
“뭐야? 쟤 왜 저래?”
“저런 못된 것이 있나!”
“성녀님과 아는 사이인가 싶어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가관이군!”
두 눈에 의문을 담고 지켜보던 유민들이 화가 나서 마린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린!”
허름한 갑주 차림의 사내가 달려오더니 마린의 머리에 강하게 꿀밤을 놓았다.
“아야얏! 무슨 짓이야, 헨슨!”
“너야말로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상대는 성녀님이라고!”
브란델 영지에 오기 전부터 헨슨은 푸른 머리의 성녀에 관해 적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유랑민의 대모(大母)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몬스터 혼혈들도 차별 없이 보살피는 고결한 소녀.
영지민들 중에서도 그녀의 도움을 받은 이가 적지 않아, 영주도 그녀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백두 대낮에 사람들 앞에서 공격한다?
이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성녀님. 애가 철이 없어서…….”
헨슨은 마린의 머리를 잡고 리베르타에게 고개를 숙이게 했다.
마린은 버티려 애썼지만, 여자애의 몸으로 용병 기사인 헨슨의 완력을 이길 수 없었다.
“괘념치 않노라. 원래 성질이 그런 녀석이니 그대가 잘 돌보도록.”
“네? 마린이와 잘 아는 사이신가요?”
눈이 휘둥그레진 헨슨의 질문에 리베르타는 가늘게 미소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마침 필리프가 돌아온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마린은 연방 투덜댔다.
“쳇, 재수 없는 계집애.”
“마린, 그만하지 못하겠냐!”
헨슨이 호통쳤지만, 리베르타에 대한 앙심이 깊은 마린은 입을 쉽게 다물지 않았다.
“재수 없는 걸 어떡해! 진짜 성녀도 아닌 주제에 사기나 치고…….”
“어허, 이 녀석이 그래도!”
마린의 언행에 화가 난 헨슨은 근처에 나뒹구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마린의 종아리를 후려쳤다.
“아얏! 나, 날 때렸어?”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아야지!”
“아파! 그만해! 아프다고!”
“아파야 정신을 차리지!”
마린은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연방 회초리를 휘두르는 헨슨을 바라보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그는 자신을 친딸처럼 살뜰하게 보살펴 주었기 때문.
이런 엄격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미안하다, 마린.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넌 분명 해코지당하고 말 거다.’
그래서 일부러 엄하게 혼을 내는 것이다.
방금 전 성녀님에 대한 무례한 언행을 보고 앙심을 품은 사람이 보복하지 않도록.
“명심해라! 또 성녀님께 무례한 짓을 하면 이보다 더 호되게 혼이 날 테니!”
“이잇……!”
눈물을 글썽이는 눈으로 헨슨을 노려보던 마린이 휙 몸을 돌려 난민촌 안쪽으로 가버렸다.
길게 한숨을 내쉰 헨슨은 손에 든 회초리를 내던졌다.
“힘든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더 힘든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
***
“어? 영주님이 오셨다!”
“영주님, 만세!”
필리프는 뒤늦게 자신을 발견한 주민들과 덩달아 환호성을 지르는 유민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간 리베르타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나. 마물이 나타났다던데 잘 해결되었느냐?”
“잘 끝났으니 돌아왔지. 근데 손은 괜찮아? 아까 꼬맹이에게 물렸잖아.”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그리 답하던 리베르타는 뒤에서 들리는 호통과 비명에 고개를 돌렸다.
마린이 헨슨에게 회초리로 철썩철썩 두들겨 맞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꾸지람을 듣고는 어디론가 달려가 버리는 모습도.
함께 이를 본 필리프가 물었다.
“너 저 꼬맹이랑 아는 사이냐?”
한 사람은 바르디아 공국 해군 제독의 딸이고, 다른 하나는 거지 소녀.
도대체 둘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뭔가 대화를 나누는 듯했는데, 거리가 멀어 말을 듣지는 못했다.
“예전에 같은 지역에 살았노라.”
“그래? 눈에서 독기가 줄줄 흐르던데, 혹시 원한이라도 쌓은 거야?”
“자기가 잘못한 건 모르고 날 원망하는 것이다.”
“그래? 개초딩답구만.”
필리프는 곧 관심을 끊었다.
덕분에 리베르타는 마린에 대해 설명할 수고를 덜었다.
“근데 드레이크 선장은 어디 간 거야? 네 호위로 따라다니더니.”
“잠시 캄파니아에 다녀온다고 하였다. 홀슈타인에 남겨두고 왔던 부하들이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었지.”
“아, 검은 해골 말이구나.”
아마 드레이크가 있었다면, 아까 그 버르장머리 없는 개초딩은 회초리를 맞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유민들에 섞여 들어온 첩자들 중에 리베르타의 동향을 염탐하는 놈들이 나왔으니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