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97
이 아이의 친엄마는 이미 죽었어. 내 동료인 용사 손에 죽고 말았지. 그러니 만일 루시우스가 엄마의 품을 그리워한다면 네가 꼭 끌어안아주렴. 그리고. 만일 대천신교의 성직자로 자라난 이 아이가 아주 흉폭하고 사악한 성격이라면, 부디 네 손으로 끝을 내주렴.
나를 위해서, 부디 그렇게 해줄 수 있겠니? 내가 남겨놓은 위선의 흔적을, 내 아들을, 네 손으로 지워주면 좋겠구나. 잊지 말렴. 이 아이가 ‘메이가의 맹세’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사악한 행보를 보인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단다. 너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너는 항상 내게 충의만을 보여주었는데, 나는 네게 이런 일밖에 시키지 못하니까.
하지만 마리나.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네 사랑의 결실을 모두가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면, 너는 대체 어떻게 하겠니? 지금 이 순간에도 아힐데른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내 아들 루시우스는 산새의 목을 뽑으며 놀고 있단다. 마리나. 답장을 기다리마. 싫다면 거절해주렴. 부탁한다.]
나는 편지를 다시 한번 읽고 품속에 챙겨 넣었다. 이야기를 보니 대충 견적이 잡히는 것 같았다. 어릴 때 루시우스는 아주 사악한 인간이었다. 어찌나 사악한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 새끼는 커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닐 거라고 확신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의 엄마는 전대 용사의 손에 죽었고 페타 시리우스는 메이가의 맹세가 아니라면 루시우스가 반드시 사악한 존재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메이가의 맹세로도 모자라서 혹시나 세뇌가 풀릴 경우를 대비하여 루시우스를 죽일 대비책까지 마련해두었다.
“뭐지? 씨발. 내 친엄마가 대체 누구야?”
일단 인간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지랄나는 걸 보면 확실하게 인간은 아니었다. 용사에게 죽었고 시리우스도 메이가의 맹세가 아니면 안될 거라고 확신한 걸 보면 아마도 악마가 분명한데, 대체 무슨 악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씨발.”
진실은 알고 나면 좆같은 법. 나는 찝찝한 기분을 감추며 집 안에 있는 거울에 나를 다시 훑어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여지 없는 하프 엘프였다. 하얀 피부와 잘생긴 얼굴. 붉은 눈과 뾰족한 귀. 우리 엄마는 인간이랑 존나 닮은 악마인 건가? 그리고 시리우스는 성직자면서 악마랑 사랑에 빠지고 애까지 낳았고?
“내가 아빠를 닮았구나.”
나는 혀를 차면서 다시 집에서 나왔다. 사람 없는 오두막에 더는 볼일이 없었다. 혹시나 다른 단서가 있을까 봐 집 주변부터 시리우스 무덤에 박힌 십자가까지 싹 파보았지만 단서 같은 건 더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유황 냄새가 싫었다. 썩은 계란을 내 코에다가 되고 쥐어짜는 듯한 불쾌한 냄새가 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나는 찝찝한 기분을 억누르고 다시 마차로 향했다. 질퍽거리는 땅을 밟으며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 마차가 보였다. 눈을 찌푸리고 쳐다보니 내 마차였다. 사람들 몇 명이 내 마차 주위에 모여있었다. 동굴에 박아놨는데 그걸 누군가 기어코 찾아낸 모양이었다. 아직 찾아낸 지 얼마 안 된 것인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내 마차를 건드려보거나 마력석에 손을 대고 있었다.
“이거 봐. 이거! 마력석이야! 마력석이라고! 우린 부자야 이제! 이걸 마탑에다가 팔면……!”
“씨발 진짜.”
나는 다시 욕을 하면서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마차에 모여든 사람들도 내 모습을 확인하고 조금 당황한 얼굴로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가 낫. 갈퀴를 들고 내게 들이대며 외쳤다.
“저, 저리 가! 이, 이 마차는 우리가 먼저 발견했어!”
협상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한걸음 크게 뛰어서 맨 앞에서 소리 지른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나를 보고 얼어붙었다. 한 손으로 사내의 멱살을 붙잡고 뒤쪽으로 집어 던졌다. 총알처럼 튀어나간 몸뚱이에 뒤에 웅성대고 있던 몇 명의 사내가 뒤엉켜서 데구루루 굴러갔다. 마력석을 손에 꼭 쥔 사내가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도주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낫을 들고 머리를 조준해서 집어던졌다. 데구르르르 굴러간 낫이 사내의 머리를 내려찍고, 그대로 머리를 반 토막 내며 앞으로 쭉 날아갔다. 마력석을 든 손으로 허공을 휘젓던 사내는 바닥에 주저앉고 피를 뿜어내며 즉사했다.
뒤엉킨 사내들이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그들의 머리 위에 메이스를 한 방씩 후려갈겨 준 다음 마차를 끌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충전 잔량은 아직 한참 남아서 하루 정도는 노숙을 해야 했다.
마차를 밀어 넣고 나서 나는 바닥에 대충 자리를 깔고 마차 옆에 누웠다. 기분 나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니 짜증이 났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원래 이렇게 잔인한 인간이었나? 몇 번이나 했던 고민이었지만, 해답이 나오지 않아서 그만뒀던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 위로 기어 올라왔다.
내 몸이 악마 혼혈이라면 내 성격이 변한 것도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악마 혼혈이라면, 그래서 내 정신이 육체의 영향을 받아서 점점 사악해지는 거라면. 지금까지 내 모습도 이해가 됐다. 사람을 때려죽여도 아무렇지도 않고, 여자를 따먹어도 그냥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조금 전에도 분명히 타협의 여지는 있었을 것이다. 내 신분을 밝히고 조용히 타이른다면 아마 무기를 내리고 도망쳤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나는 설명하는 대신 그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변변찮은 무장도 없는 사람들을, 그냥 내가 지금 짜증이 난다는 이유로 죽여버린 것이다.
왜 나는 이렇게 폭력적이지? 정말 나는 선량한 사람은 맞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정말 선량한 사람은 맞았던 걸까? 내 기억 속의 나는 선량한 인간이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사악할 겨를이 없는 인간이었다. 하루에 수면 시간은 두 시간. 매일 같이 고된 일에 시달리는 가혹한 환경. 두 발 뻗고 잠들 공간 없이 매일 같이 간병인 침대에서 웅크리며 잤던 세월.
그리고 그러다가 나는 야겜 속 세상에 떨어졌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이 세상이 야겜이란 걸 알 수 있었지? 나는 야겜을 할 시간이 없었는데? 하루에 두 시간 잔데다가 집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돈도 시간도 없는 삶의 어느 구석에서 내가 야겜을 했단 말인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히 빠진 기억이 있는 데 암만 머리를 싸매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 기억이 지금까지 내 행보와 나를 엮어줄 연결고리일 것 같은데, 암만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마차 옆에 누워있었다. 혹시나 또다시 누군가 찾아올까 봐. 메이스를 손에 꼭 쥔 채 동굴 입구를 지켜봤다.
****
다음 날 아침. 마차가 완충되자마자 저택에 돌아왔다. 아침 일찍 출근한 로빈이 내게 인사했다. 그는 아직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에 적응하지 못한 든 살짝 웃고 있었다. 나는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그의 인사를 받았다.
“반가워요. 로빈. 오랜만이네요.”
“네. 영주님. 어머님은 잘 만나고 오셨습니까?”
“이미 돌아가셨더라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만나는 건데.”
“그, 힘내십시오. 영주님.”
로빈은 침통한 표정으로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로빈에게 물었다. 생각해보면 로빈은 원래부터 이 가문을 모시던 사람이었다.
“로빈. 로빈은 제 어머니를 뵌 적이 있나요?”
“시리우스 님께서는 그분께서 몸이 안 좋아서 다른 지역에서 휴양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영주님. 혹시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나 제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로빈에게 물었다.
“로빈. 제가 갑자기 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달라졌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너무 악독해졌다거나, 너무 사악한 인간이 됐다는 생각. 해보신 적 없으세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영주님의 지금 모습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모습이요?”
“뭔가 해방감을 만끽하고 계신 것 같은 모습 말입니다.”
“해방감이라…….”
나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흔들었다.
동부 평야 지대 끝자락에 거대한 건물이 있었다. 마치 요새나 다름없는 두꺼운 성벽과 좁은 문을 가진 건물 내부에는 4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마구 흘러내리는 진흙 같은 모습이요. 또 하나는 라미아의 모습이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박쥐 날개를 가진 여인의 모습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이상한 형체의 모습이었다.
이 동상들 사이를 지나고 긴 복도를 지나 문을 열면 강당이 있었다. 강당은 직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홀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높다란 계단 위에 교단이 있었다. 신도들이 연설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개를 들어서 상대를 올려다봐야 하는 구조였다.
강당에 수많은 신도가 서 있었다. 밀집한 신도들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갑옷을 입은 사내들이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거대한 홀의 끝자락에는 하얀색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남자가 신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보라색 옷을 입고 가면을 쓴 여인이 사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키고 소리를 질렀다.
“믿으으으으음!”
홀이 떠나가라 외친 소리에 뒤이어 신도들이 전부 손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믿으으으으음!”
“희마아아아앙!”
“희마아아아앙!”
“사라아아아앙!”
“사라아아아앙!”
몇 번이나 반복된 기도 의식. 남자는 손을 허공에 뻗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부르르 떨었다. 뒤에 있던 여성이 가면 너머에서 그 소란을 보고 쿡쿡 웃었다. 남자의 이름은 커틀러스. 한때 대천신교의 고위 사제장 메이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나, 마왕이 죽은 뒤 사랑교라는 종교를 창단하여 새롭게 교주가 된 인물이었다.
“오늘도, 이렇게 힘든 와중에 이렇게나 모여주었구나.”
그의 발끝이 꿈틀거렸다. 아니 전신이 마치 슬라임처럼 흐물흐물했다. 커틀러스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를 완벽하게 모사할 수 있는 존재. 바로 도플갱어였다. 하지만 그의 흐물거림을 눈치챈 자는 극히 소수였다. 그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침묵하는 좌중의 분위기를 보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사랑교의 미래는 암울했다. 동부 평야와 각지에 있던 수많은 사랑교 지부가 탄압당했고, 본부를 향해 왕국의 대군이 진군한다는 소문이 감돌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수천 명의 신도는 악마의 끄나풀이라는 오명을 쓰고도 이 자리에 남아있는 사랑교의 열성 신도들이었다. 커틀러스는 숨을 크게 내뱉고 다시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온 세상에 사랑을 꽃피우자는 일념 하나로 남아있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는 사랑교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먼 옛날에.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삶의 의지를 잃은 채 동부 평야를 표류하고 있었지. 내가 왜 방황했는지 아느냐? 마왕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마왕님이 돌아가신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뜻하지 않은 발언에 신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마다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대천신교의 고위 사제장이 ‘마왕님’이라 표현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커틀러스는 이런 동요를 예상했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한때, 나는 마왕님의 충실한 심복으로서,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했다. 대주교 메이헴이라는 이름은 거짓이다. 나는 마왕군의 도플갱어. 커틀러스다.”
그 말과 함께 메이햄의 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신도들이 충격에 빠져서 비명을 지르거나 당황하여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커틀러스는 본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색의 매끈한 점액질 인간. 눈코입도 달리지 않았고 생물체라는 느낌도 들지 않는 존재가 교단에 서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평범하면서 볼품없는 모습은 사람들을 빠르게 진정하게 했다.
도저히 마왕군의 사천왕이라는 이야기가 현실로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더 들으려는 탓도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판단하십시오!”
“자리에 앉으십시오!”
중무장한 기사단들이 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렇게 외치는 덕분이기도 했다. 커틀러스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도플갱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괴물들이다.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지만, 그 무엇이라고도 확정할 수 없지. 마계에서도 우리의 유일한 존재가치는 아주 강력한 마물들을 묘사하여 상대를 겁주는 정도가 끝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왕군에서 남들을 모사하는 재주밖에 없다고 하여 ‘메아리치는 커틀러스’라고 불렸지.”
커틀러스는 매끈한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신도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커틀러스가 고개를 조금씩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커틀러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허공을 쳐다보며 다시 메이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긴장이 풀린 듯 숨을 내뱉는 게 느껴졌다.
“마왕님이 있어서, 그래도 좋았다.”
커틀러스는 눈을 감은 채 천장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는 다시 한번 숨을 쭉 내뱉고 신도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왕님이 죽고 난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내가 꾸미던 계획도, 나라는 존재도 모두 무의미한 게 되고 말았지. 그래서 대천신교를 뛰쳐나와서 무작정 동부 평야를 걸었다. 이제 계획은 아무 의미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그냥 평야의 야인으로 살고자 했다.”
쾅!
커틀러스는 갑자기 연설대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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