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37)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37화
* * *
여고의 점심시간은 해방의 시간.
“운동장 돌러 갈 사람?”
“나! 아니, 나 얘기하고 싶은 거 있어. 아까 생윤이 뭐라 그랬는지 아냐? 진짜 대박이라고.”
“나, 나 지금 식곤증 미쳤어. 더 잘래….”
누군가는 운동장을 빙빙 돌러 나가고, 또 누구는 엎드려서 부족한 잠을 청하고.
또 누군가는 앉아만 있었더니 살이 쪘다며 제 친구들과 함께 교실 뒤편에서 다이어트 운동 비슷한 걸 하고, 그 옆에 있던 누구는 부실했던 점심을 충족하기 위해 빵을 먹고.
그렇게 자유분방하기 짝이 없는 교실 속, 그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매개가 있었으니.
“―야, 티오제 명찰 공구했던 거 왔다. 방금 매점에서 받아옴.”
“미친, 당장 까!”
“잠깐만. 옆반 애들 이름 체크해 놓은 거 목록 좀 보고… 야, 자기 거만 가지고 가. 로건 명찰 내 거거든?”
“아, 아닐걸? 나도 로건 하나 시켰을걸? 시우랑 로건 하나씩 내 거라니까?”
“이게 구라치고 있네?”
바로, 그들이 한창 좋아하는 아이돌.
“아, 잠깐만. 나 진짜 너무 졸린데… 누가 내 거, 지화성 명찰 좀….”
“화성이가 니 친구야? 지화성 오라버니라고 존칭해라.”
“아학, 뭐라는 거야, 진짜?”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잠깐이나마 내신과 모의고사의 부담감을 떨쳐 내는 것.
그건, 딱 학창 시절에만 또래와 공유할 수 있는 귀중한 경험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게, 막상 성인이 되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자유롭게 할 수 있어지면 생각보다 그 흥미가 떨어지거든.
술에, 연애에.
학점에, 취준에.
그렇게 개개인의 삶에 치이다 보면 이렇게 제 또래와 어떤 대상 하나를 열렬히 좋아한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아까 김 쌤 반 애들이 뭐 들고 가는 거 보셨어요? 무슨, 신인 아이돌 명찰이라고 하던데.”
“봤죠. 어휴, 진짜 별 걸 다 사고 그러더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 학생들을 바라보며 ‘아이돌이 뭐가 좋다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반쯤은 건전한 취미이겠거니 놔두기도 하는 거였고.
“이거, SNS에서 팔고 남은 정산금이 대충 15만 원 좀 안 되게 나왔거든? 이건 전부 앨범 사는 데에 쓴다. 그리고 포카 수익은 또 따로 나누고.”
“아니, 티오제 진짜 효자야… 포카 시세 차이도 크게 안 나는 거 같던데? 감동받아서 눈물 날 거 같아. 어쩜 신인이 이러냐?”
“그니까! 이대로면 우리 손해 보는 건 없을 듯. 개이득 미쳤다, 진짜.”
물론, 그 안에서 금전이 오가는 실상을 잘 몰라서이기도 했지만.
나중에 나이 먹고 경험할 일을 미리 해 본다는 측면에서, 크게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재하가 17개, 유찬이가 17개. 그리고 화성이랑, 로건이 각각 18개고… 어, 딱 맞다. 판 거 빼고 다 왔어. 자기 거 가져가라.”
“와 씨, 시우야아…!”
모 여고의 3학년 4반 창가 자리에 우르르 모여든 여학생들 저마다 앞다투어 명찰을 가져가며 속닥였다.
“어제 데뷔 쇼케 재방 봤어? 나 캡처만 200장 넘게 했더라. 용량 터지는 줄.”
“내 말이! 수록곡도 개좋아. 빨리 음원 공개됐으면 좋겠어. 나 스밍 하려고 공기계도 하나 따로 샀잖아. 오늘 밤 12시에 음원 공개인 거 맞지?”
“어, 그것도 그렇고. 방유찬이 존나 섹시하다니까… 진짜 섹시 다이너마이트임.”
“인정. 장시우랑 방유찬 페어 안무가 진짜 돌았던데? 나 이따 진다솔 있는 방향으로 절할 건데 같이하자.”
그런 대화 속, 고등학생들이 저마다 조금씩 돈을 모아서 만든 비공식 굿즈인 금속 명찰은 창가의 햇살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거 너무 귀엽다… 어제 뮤비 재하 파트만 20번은 돌려본 거 같은데, 명찰 차고 있는 거 이거랑 진짜 비슷하더라.”
“나리가 포토샵 개잘해서 그래. 걔 무드샘플러 한 번 보자마자 뚝딱뚝딱 만들더라. 그리고 자기는 시우 거랑 제니아 하나만 빼놓으면 뭘 어떻게 팔든 다 상관없대. 장난 아니지 않냐?”
“미대 가라고 그래, 진짜. …맞다, 걔 미대 입시하지? 벌써 재능 나온다, 재능 나와.”
“제발, 제발 빨리 음방 무대 보고 싶어. 예능 나오는 것도. 위튜브 자컨도!”
“…음? 잠깐만. 이거, 물량 딱 맞는 거 맞아? 왜 춘용이 명찰 하나 남아?”
“엥, 춘용이? 어… 잠깐만. 춘, 용이… 누구 건지 알 거 같은데.”
“누구?”
“그, 왜….”
높게 올라간 목소리가 점차 작아지고, 그들의 시선이 한 곳에 꽂혔다.
한창 교실 제일 뒤에서, 제 친구들과 함께 위튜브 영상을 찍기 위해 모여 있는 누군가에게로.
“아하하! 야, 그거 존나 등신 같아. 다시 찍자. 이건 내가 따로 내 채널에 올릴게.”
“아, 지우라고! 돌았냐?”
“꺼져, 진짜. 내가 왜 지우는데? 너 나 편하냐? 어? 편해졌다, 아주?”
과할 정도로 줄인 교복에, 공학도 아니고 여고임에도 진하게 얹은 화장.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굳이 이렇게 두 개로 나뉜 무리 속에서 상대의 언급을 꺼린다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뭐야, 정채현? 진심? 쟤 티오제 좋아한대? 아이돌 같은 거 전혀 관심 없을 거 같은데. 남친이면 또 몰라.”
“몰라. 전에 단체 메신저창에 수요 조사랑 같이 올리니까 썼던데….”
“실수겠지!”
“아, 아냐. 그 다음에 입금까지 다 했다니까? 봐 봐. 여기… 이름. 정채현, 김춘용 명찰 하나.”
“미친… 진짜네.”
어제 막 나온 티오제의 뮤직비디오 이야기와 쇼케이스 이야기로 즐거워야 할 시간에 묘하게 어색한 공기가 감돌자, 여고생들의 얼굴에 애매한 낯빛이 떠올랐다.
“아, 씨. 이따가 말 섞을 바에, 그냥 내가 지금 가서 주고 올….”
“―내가 주고 오지 뭐. 내놔 봐.”
그리고, 그걸 해결해 주는 건 의외의 인물이었고.
“어, 어? 너 언제 온… 나리야!”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 넥타이와 조끼는 어디 팔아먹고, 홀로 달랑 있는 셔츠 위에 대충 걸친 트랙탑.
“야.”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제 오빠와 닮은 얼굴.
“미친, 그니까. 어제 걔가 담배 뚫었다고 개나대는데, 존나 꼴 보기 싫어서 바로 헤어지자고….”
“야, 부르잖아.”
옆반에서 장시우 명찰 소리를 듣고 위풍당당하게 찾아온 김나리는, 제 친구들과 듣기 싫은 욕설을 나누는 여학생을 불렀다.
“…뭐야.”
“너 이름이… 정채현? 맞지? 전에 한 번 본 거 같은데.”
자신을 약간 날카롭게 보고 있는 채현에게 김춘용의 명찰을 쓱, 내민 김나리는 태평하게 말했다.
“이거 너 거래. 빨리빨리 좀 가져가라, 진짜.”
누가 봐도 진성이나 살 법한 아이돌의 비공식 굿즈에, 채현의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와, 뭐임? 정채현이 저런 것도 사?”
“뭐야. 채현이 너, 우리한테는 아이돌 안 좋아한다며!”
“맞아. 그런 거 관심 주는 거 존나 웃기다고 안 그랬음? 와, 이거 진짜 불같은 배신이다.”
무리에서 중심에 있던 자신을 향해 그런 웃음이 터지자, 채현은 입술을 잠깐 일자로 만들고는 빠르게 김나리 손에 있는 명찰을 뺏었다.
“―당연하지. 내가 아이돌이 좋아서 샀겠냐? 그냥, 존나 웃겨서 산 거야. 아니, 니넨 안 웃겨? 어떻게 아이돌 이름이 김춘용이야?”
“아, 인정. 좀 촌스럽긴 하네. 그냥 지나가다가 보면 그러려니 하는데, 아이돌 이름이 김춘용, 푸핫!”
채현과 다른 친구의 말에, 김나리가 누군지 알고 있는 학생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야, 야. 니네 말 조심해. 채현아, 쟤….”
“봐봐. 니네 얘 생긴 건 봤어? 진짜 개양아치처럼 생겼다니까? 그 얼굴에, 이 이름에. 진짜 나중에 위튜브 영상에 나오기 딱이야. 안 좋은 일로!”
물론, 그런다고 채현이 입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산 거야. 나중에 뭔 일 터지면 이거 달고 위튜브 찍으려고. 그럼 조회수 잘 나올걸? 위튜브 크리에이터가 별 거야? 그런 걸로 돈 벌면 위튜브 크리에이터지.”
“…….”
이상할 정도로 과한 채현의 말에 시끌벅적하던 교실이 차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어느덧 그 낌새를 느낀 채현의 목소리 역시 천천히 줄어들었다.
“…뭐야, 씨발. 뭘 쳐다봐? 너네 하던 거 해. 남의 말 엿들지 말….”
“야. 채현아?”
그리고, 채현의 말을 중간에 끊어낸 김나리는 뺨을 긁적이며 낮게 말했다.
여전히, 그 표정은 태평한 채였다.
“좋아하면 좋아해서 샀다고 그래, 그냥. 뭐가 그렇게 쪽팔리는데?”
“아니, 좋아해서 산 게 아니라고 내가 방금….”
“그리고, 김춘용 이름 할머니가 지어 준 거거든? 그리고 김춘용이 좀 날티 나게 생기긴 했는데… 그렇게 욕먹어야 하냐?”
“뭐, 왜 너가 난리야.”
“뭐긴 뭐야. 네가 방금 존나 욕한 사람이 우리 오빠라서 그렇지.”
“…헐, 미친. 우리 학교에 아이돌 동생 있다고는 들었는데, 쟤였어?”
“야, 최민혜. 상황 파악 좀 해…!”
“…….”
김나리의 말을 들은 채현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물론, 워낙 짙은 화장 탓에 그렇게까지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화장 아래 가려진 어린 낯에는 당혹감이 가득한 채였다.
“…어휴. 웃기고 자빠졌네, 참나.”
그 모습을 코앞에서 바라본 김나리는, 고개를 몇 번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위풍당당하게 자기 반으로 향했다.
자기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이가 뭐라고 하든, 그녀에게는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
이 경우에, 괴로워지는 건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야, 채현아. 어디 가!”
“말 걸지 마, 미친!”
부끄러움과 자신의 입장 탓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마구 쏟아낸 당사자였지.
“야, 야! 잠깐만! 잠깐만 얘기 좀 해!”
“엥, 뭐야?”
순식간에 복도로 뛰쳐나와 김나리의 트랙탑 소매를 붙잡은 채현은, 제 손에 들린 명찰과 김나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히, 그 얼굴은 최근 채현의 휴대폰 갤러리를 점령한 누군가와 많이 닮아있었다.
“미안, 미안해. 내가 실… 수를 했어. 실수라고 하면 안 되겠지만. 어. 미안해.”
“…그래, 알겠어. 근데?”
평소의 그녀 성격이라면, ‘걔가 동생인 게 뭐가 어쨌다고’ 같은 말을 하며 책상에 걸터앉았겠지만….
“그래 놓고 이런 말 해서 정말, 정말 미안해. 좀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아니, 무슨 말을 하려고 밑밥을 이만큼이나….”
“너, 너희 오빠한테 진짜 존나 응원한다고 한 마디만 전해 줄 수 있을까? 나, 문자 투표 전부 춘용이한테 했어… 이런 거 처음 해 봐, 나.”
“…와, 미친.”
난생처음 덕질이라는 걸 하게 된 여고생에게, 자존심은 생각보다 별거 아닌 문제였다.
* * *
[김나리: 야 오빠] [김나리: 너 인기 존나 많더라] [김나리: 아직 음방도 안 나왔는데 이 정도라니… 당황스러울 정도임 ㅡㅡ;;] [김나리: 왜 너를 좋아하지? 당연히 눈이 있으면 시우를 좋아해야 맞지 않나?] [김나리: 하여튼 파이팅이란다 니가 너무너무 좋아서 막 꿈에도 나오고 그런대 앨범도 니 포카 나올 때까지 살 거래 서바이벌 무대 신청한 거 다 떨어져서 너무 슬펐대] [김나리: 아니 그래도 이해가 안 되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춘용?? 김춘용??] [김나리: 내일 가서 이름 헷갈린 거 아니냐고 다시 물어봐야겠다]같은 날의 오전 12시.
“…얜 또 왜 시비야?”
종일 연습실과 샵을 오가며 반쯤 제정신이 아닌 채로 두 눈을 끔뻑이던 김춘용은, 낮에 제 동생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욕인지, 칭찬인지.
덕담인지, 저주인지.
김나리는 그 나이대 여고생답게 당시 있었던 상황을 감정적으로 서술하는 측면이 있었고, 그건 가뜩이나 바쁜 김춘용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처럼 받아들여졌다.
“야, 춘용아. 헤어 다 만졌어? 어후, 야… 너 오늘도 잘생겼네.”
“아, 유찬 형.”
그러니까, 채현의 간절한 응원은 방송가의 뒤안길에 묻히고 말았다고.
나중에 자기가 벌을 받는 것 같다며, 나리의 소매를 잡고 오열할 채현의 후회가 뮤직데이즈 본사까지 울릴 예정이었지만….
뭐, 각설하고.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러니까 우리 처음 ‘Aiming’ 무대 할 때 같다. 기억나? 내가 그때도 너 잘생겼다고 그랬잖아.”
“…기억나죠. 형이 저 무섭게 생겼다고 그런 것도요.”
“아닐걸? 내가 안 그랬을걸?”
“하하… 맞거든요.”
‘Aiming’ 때와 달리 자기가 가진 어른스러운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는 방유찬을 향해 미소 지어 보인 김춘용은,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했다.
지금 샵에서 헤어 메이크업과 메이크업을 마치고, 이동해서 찍게 될 첫 음악 방송의 사전 녹화.
거기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긴장에 긴장을 거듭해야 했거든.
‘걔네가 우리보다 데뷔가 일주일에서 이 주 정도 늦었으니까. 당장에 견제할 필요는 없지만….’
어제 엑스와의 대화 덕분에, 김춘용의 감각은 다시 오랜만에 굉장히 예민해진 상태였다.
내로라하는 대중음악 시상식에서의 신인상 수상.
이건, 그냥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음원 사이트 스트리밍 순위부터 각 음악 방송 순위, 앨범 판매량, 그리고 티오제가 신인상을 받길 바라며 투표해 줄 팬들.
이 사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하나라도 얻을 수 있는 게 권위 있는 시상식 신인상이었다.
‘몸 갈아 가면서 열심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래저래 신경을 좀 쓰긴 해야겠어. 일단, 내가 아는 걸 바탕으로… 아, 잠깐! 음원 나왔겠는데?’
그렇게, 김춘용이 제가 몸을 갈아 만든 그룹의 첫 음원을 들어보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
“―시우야! 어, 여기 시우 있죠? 형 왔다!”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김춘용도, 예상하지 못 한 인물이 찾아왔다.
“혀, 형아…!?”
김춘용뿐만 아니라, 그와 가장 가까운 누군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