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38)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38화
본래 아이돌의 음악 방송 사전 녹화 대기 현장이란, 기다림과 고통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제발요, 팬매님. 저희 진짜 언제 입장해요? 아까 인원 체크 다 했잖아요!”
“어, 내부에서 딜레이가 좀 있다고 그래서요. 죄송한데, 저도 일일 팬매라 이런 일에 대해서 정확히는….”
“아니, 지금 기다린 지 3시간 됐거든요? 여기 사람들 전부 아사 직전이거든요?!”
“으아아, 저도 잘 모릅니다!”
번호표 받고, 기다리다가, 인원 체크 하고, 기다리다가, 배고파서 뭐라도 하나 먹을까 싶어서 24시간 패스트푸드점 입구를 바라보면 왜 자기가 화났는지 모를 스탭의 고함과 함께 입장.
“와, 나 이런 거 처음이라서 이렇게 오래 기다릴 줄은 몰랐어, 진짜.”
“애들 리허설 보고 얼굴 보려면 이 정도 고생은 해야 한다는 거지. 죽겠다. 우리 아직 인원 체크도 못 했고….”
경력직 팬이든, 티오제가 첫 아이돌인 팬이든.
길을 따라 어슬렁거리며 피로를 호소하는 제니아들의 티오제 첫 사녹 현장도 다르지 않을 예정이었다.
사랑하면 고생을 좀 해야 한다.
기다림까지도 사랑이다!
한창 마음이 뜨거울 때 반드시 통하는 주문 같은 말을 되뇌며 말이다.
“…어? 저거 뭐야?”
그러나.
“―사녹 입장 하시는 제니아분들! 와서 커피랑 과자 받아 가세요! 인당 하나씩 받아 가시면 됩니다!”
별안간 등장한 거대한 커피차로 인해, 피곤에 찌든 상암 뮤직데이즈 라이브홀 일대에 작은 파란이 일었다.
“헐. 커피차다. …두 댄데? 한 대도 아니고 두 대?”
“아니, 벌써 이런 걸 보낼 네임드팬이 있어? 애들한테 보내는 도시락이나 간식도 아니고, 사녹 현장 팬 전용 커피차?”
“애들 역조공인가…? 데뷔 준비하느라 정신도 없었을 텐데!”
“현수막 보니까 시우인데. 거기 팬들 되게 어리잖아. 걔네가 이런 거 보낼 돈이 어디 있다고?”
있었다.
티오제란 명찰을 단 장시우의 첫 음악 방송에 그 누구보다 설레하고, 데뷔 티저가 나온 날부터 박수 치며 이후 있을 모든 일정에 커피차를 보낼 준비가 된 장시우의 팬이.
“야, 봐 봐. 옆에…!”
수군거리는 팬 중 한 명이 무언가를 가리키자, 사람들의 시선이 커피차 양옆에 붙은 거대한 장시우의 현수막 옆에 적힌 문장에 꽂혔다.
[티오제 데뷔 축하♡ 저희 시우 응원 잘 부탁드려요!]팬과 아이돌 사이, 조공 문화에 가장 익숙한 사람은 누구일까?
오랫동안 아이돌을 좋아해 온 사녹 전문가 경력직 팬?
아니면, 그들과 아이돌들 사이에서 상황을 조율해 온 녹화 스탭?
혹은, 목구멍이 찢어져라 고함을 지르면서 카메라와 무단 촬영을 사전에 예방하는 팬매니저?
아니.
[이 커피차는 형아가 쏘는 겁니다 ㅎㅎ –M-XY 장시원-]그런 조공 문화가 시작될 때부터 방송국 생활을 해 온, 2세대를 군림하다시피 한 아이돌이었다.
“미친, 장시원…! 동생 데뷔한다고 커피차 쏘는 거야? 실화임?”
“일단 가자, 일단! 나 아아 마실래!”
“메뉴명 봐. 장시원 픽 시우가 좋아하는 녹차프라페, 티오제도 마실 예정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헐, 대박. 커피차에 간식까지 이렇게 많은 거 처음 봐.”
“역시 이런 것도 받아 본 사람이 잘한다더니. 미쳤다, 진짜.”
그렇게, 갑작스러운 이벤트로 인해 사녹 대기 중이던 제니아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 와중.
“…….”
같은 시각, 누군가는 묘한 패배감과 부끄러움이 섞인 얼굴로 고개를 바닥에만 꽂고 있었다.
* * *
같은 그룹이라고 해도, 첫 음악 방송 사녹을 향한 가족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누군가의 가족은 시비를 빙자한 장난스러운 메시지를 보내고, 누군가는 대형 커피차를 보내고.
뭐, 이 경우에는….
굳이 누가 뭐다를 따질 것도 없이, 전자가 나고 후자가 시우이긴 했지만.
“씁.”
나는 시럽을 4번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켜며 대기실 분위기를 살폈다.
“아, 아, 으음….”
유찬 형은 목을 풀기 위해서 평소처럼 프로폴리스를 먹고 있고. 재하 형은 잠깐 쪽잠을 청하고 있고.
“Huh….”
“이거, 아까 시원이 형이 주신 과자! 아무도 안 먹으면 제가 먹는다요? 먹을 사람 없죠?”
로건은 묘하게 눈치를 보고, 지화성은 어느때와 같이 활발하고.
그리고, 요주의 인물인 시우.
시우는… 글쎄.
“…하.”
간헐적으로 터지는 한숨과, 예쁘장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찡그린 미간.
시우가 현 상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모르겠어?
아까 샵에서부터 애 반응이 저랬는데.
“…형. 여긴 왜, 온 거야. 지금 안 그래도 연말 애니버서리 앨범 때문에 바쁘다고, 그랬, 으면서….”
“그것도 열심히 준비 중이긴 하지. 근데, 이런 시간 못 뺄 정도로 바쁘진 않아. 아니, 근데 섭섭하네? 시우야, 너 형 안 보고 싶었어?”
“아, 아니. 말을 그렇게 하면…!”
“어휴, 그게 아니면 됐어! 자자, 티오제 여러분, 그리고 다른 관계자 여러분? 정말, 정말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시우의 형인 장시원이고요. 이건 동생 좀 잘 봐 달라는 뇌물이에요! 정말, 저희 동생 정말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헉, 여기 베이커리… 오후 2시만 되면 완판되는 곳 아닌가요?”
“아, 거기 사장님이랑 친해졌거든요! 겸사겸사 부탁 좀 드렸어요. 맛있게 드시고,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시우 좀….”
“그만, 형. 제발 그만!”
항상 얌전하고, 부드럽고 조근조근하게 말하고.
심지어는, 자기한테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이는 게 최대 의사 표현인 시우가 저런 반응이라니.
아주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타격감이 큰 건 마찬가지였다.
그 속사정이 어떤지 다 아는 나도 이런데, 모르는 사람은 어떻겠냐고.
아니나 다를까.
“Um, 춘용 형.”
무언가 눈치를 보고 있던 로건이 슬며시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 로건. 왜?”
“그으, 있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한 번, 그리고 저 옆에 앉은 시우를 한 번.
아니, 이런 간식이 필요한 강아지 같은 눈빛이라니.
“푸핫….”
“You know, 제가 하고 싶은 말, 뭔지 알죠? 웃지만 말고요!”
“어어, 그래.”
나는 나도 모르게 터진 웃음을 갈무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쇼케이스와 뮤직비디오 촬영 때와 같은 보이스카웃 유니폼을 입고, 펌한 북슬북슬한 머리칼을 한 녀석이 말하고 싶은 바는 캐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퍽 못 견뎌 하는 애가, 아까부터 눈으로 그러잖아.
‘자기 형이 저렇게 챙겨 줬는데 시우의 반응은 왜 저런 거냐’고.
뭐, 나도 우리 대형견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맞다, 로건. 너 아까 호빈 형이 부르더라.”
“What? 호빈 형이요? 아까 밖에 잠깐 나가는 것 같던데….”
“어. 너도 겸사겸사 화장실 좀 다녀와. 또 무대에서 긴장된다고 그러지 말고.”
“…Huh. 알겠어요. 그리고, 무대에서 그런 말한 적 없거든요!”
실제로 호빈 형이 로건을 진짜 찾기도 했고, 시우의 일을 내가 함부로 이야기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화성, 저랑 같이 다녀오죠. 혼자 가고 싶지 않아요.”
“네에? 아니 로건, 화장실도 혼자 못 가요? 이거 진짜 무슨 분리불안 있는 강아지도 아니고….”
“No, No, No! 아직 방송국이 안 익숙해서 그런 거라고요!”
나는 지화성까지 끌고 밖으로 나가는 로건의 뒷모습에 잠깐 시선을 주고는, 정적이 맴도는 대기실을 가만히 살폈다.
“…….”
시우가 저렇게까지 감정의 동요를 크게 보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형, 내가 이런 곳은… 안 와도 된다고 그랬, 잖아.”
“음? 왜? 형은 너 응원해 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어머! 시원 씨, 너무 팬이에요! 안 그래도, 시우 씨 보면서 시원 씨 정말 닮았다고 생각 많이 했거든요. 형제가 어떻게 이렇게 다른데 또 닮았지? 신기해라.”
“어엇, 안녕하세요! 하하, 네. 저랑 시우가 좀 많이 닮았죠. 시우가 엄마 닮아서 더 예쁘장하긴 한데….”
“…….”
‘또’ 자신의 형이 언급되어서.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찍었던 cf가 자기 이름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는데, 직접 형이 현장에 강림하면 또 어떻겠어.
“쯧….”
나도 M-XY의 노래를 들으며 아이돌의 꿈을 키웠던지라, 물론 장시원 선배님을 정말 존경하고 멋지다고 생각은 한다.
“…….”
그렇지만, 우리 막내가 저렇게 녹차프라페가 다 녹을 때까지 한 모금도 못 마시고 있는 꼴을 보고 싶진 않다고.
[AM 2:47]이제 대략 한 시간쯤 뒤면 리허설 준비를 위해 무대로 올라가야 할 시간.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아래에 깔린 시럽을 쭉 들이킨 나는, 머리에 꽂히는 슈가 하이를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원래라면 이런 건 스스로가 이겨 낼 수 있도록, 지금 자는 척하면서 슬쩍슬쩍 시우를 동태를 살피는 재하 형처럼 애 동태나 살피는 게 맞지만….
“렉스 형까지, 이러면 저는… 저는 뭐가 돼요, 정말….”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는데, 시우야. 형 골 울린다, 좀 네 방으로….”
“좀, 들어요!”
“…….”
“제 이름으로, 알려… 지고 싶어요. 이해해요? 장시원 동생 말고, 렉스의 불쌍한 팀메이트 말고… 제발, 혀엉… 이제 그만해요. 그만할 때, 됐잖아요….”
나는 우리 멤버들에게, 막내에게 아주아주 큰 빚이 있다고.
마치 소설의 주인공처럼 회귀했는데 이럴 때, 내가 아주 조금 편법을 써서 애를 돕는 게 뭐가 나빠?
“시우야.”
“…아, 춘용 형.”
“너 배 안 고프냐?”
“네?”
나는 갑자기 이름이 불려 어리둥절해진 시우를 향해 씩 웃어 보이며, 대기실 테이블 위에 마구 널린 구움과자들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너, 저런 거 먹을 기분은 아닌 거 같길래. 맞지?”
“그건… 그냥, 좀….”
“알아, 알아.”
나는 시우에게 슬쩍 다가가 옷 소매를 잡으며 녀석을 일으켰다.
고양이처럼 상대를 경계하고, 항상 거리를 두며 지켜보는 장시우에게 가장 알맞은 접근법.
“형이랑 잠깐 나갔다 올까? 아직 리허설 전까지 시간 좀 있으니까.”
“어….”
“유찬 형이랑 재하 형도 같이 가요. 제가 또 AG 오기 전에 주워들은 게 있거든요.”
“으응? 춘용아, 뭐라고….”
“빨리요, 빨리! 언제 다 팔릴지 모른다고요, 그건.”
나와 시우의 뒤를 따라 나오는 두 형들의 의문 섞인 눈빛이 내게 꽂혔지만, 아무렴 상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단을 걷고.
그리고 좀 더 아래로, 아래로.
“으음, 춘용아.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나, 뮤직데이즈 지하는 처음으로 내려와 보는데.”
“맞아. 아니, 여기에 뭐가 있긴 해? 시우도 좀 당황한 거 같고….”
“춘용, 혀엉….”
“아냐. 여기 맞아.”
지금껏 뭐 하나 제대로 도와준 게 없는 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오랜 방송 짬바로 익히 알고 있다고.
“윽, 렉스야. 너 진짜 술냄새….”
“아, 미치겠네. 렉스 형, 지하 좀 다녀오든가 해요! 가면서 정신도 좀 차리고요! 아니, 샵 가기 직전까지 마셨다고? 무슨 생각인 거예요? 아, 화장 뜬 거 좀 봐….”
“알았어, 알았어….”
렉쓰레기 시절 내가, 숙취에 쩔어서 무대에 올라간 횟수는 열 손가락으로 헤아려도 부족했다.
“잠… 깐만. 잠깐만 끊었다가….”
“뭘 여기서 끊, 아, 안 돼! 미쳤다, 진짜!”
“헉….”
그럼에도 실제로 올라가서 토한 건 어, 한 번뿐이거든.
그럼, 그동안은 숙취를 어떻게 해결했겠어?
숙취해소제? 아니면, 처방약?
단언하건데, 내 숙취를 해결해 준 건 그런 전문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좀더 민간요법에 치중한 거였지.
“여기예요.”
“으음? 이거, 나 들어본 거 같기도 한, 아니. 이렇게 아래에 있었어…?”
“하하, 저도 건너건너… 들은 거예요.”
상암 뮤직데이즈 라이브홀 지하 4층 주차장 구석으로 시우와 유찬 형, 재하 형을 끌고 온 나는 그리움과 뿌듯함으로 미소를 지었다.
[뮤데 사녹 일일 매점]내가 여기서 하루의 숙취를 잊었던 만큼 우리 막내도 아주 잠깐,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달콤한 걸 즐길 자격이 있었다.
“…저거, 식혜예요?”
해장 즉효에, 시우가 좋아하기까지 하는 걸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