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39)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39화
음악 방송 사전 녹화를 시작하기 전까지, 아이돌들은 말 그대로 무한 대기 상태에 돌입한다.
매니저에게 언제쯤 올라가냐고 물어보고, 아직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듣고, 한 시간쯤 뒤에 또 물어보고, 반복, 반복, 반복.
애초에 사전 녹화를 하는 아이돌이 한두 팀도 아니고, 그 사이사이 오가는 방청 인원이나 무대 세팅 등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런 정보를 듣고 나면 사람들은 궁금증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럼 아이돌들은 대기하는 동안은 무얼 하는데?
그건 또 사전 녹화를 위해 방문한 방송국, 또는 대기실이 어디냐에 따라서 달랐다.
방송국에서 제공해 준 대기실이 좀 넓고 프라이버시가 존중된다면 시간을 쪼개 파트별 연습이나 간단한 동선 정도를 맞춰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앉아서 멍.
“어음, 렉스야?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게임이요.”
“음? 네가 막 만지거나 하진 않잖아. 뭐, 예전 전투 돌려보기. 그런 거야?”
“아뇨. 방치형 전투 게임이에요. 그냥 매달 돈 쏟아붓고 놔두면 알아서 레벨 오르는.”
“…그것도 게임이야?”
뭐, 나는 어디를 가든 대기실 소파에 누워서 숙취에 시달리거나 즐기지도 않던 게임을 했지만.
그러나, 상암 뮤직데이즈 라이브홀의 경우라면 좀 달랐다.
상암 뮤직데이즈 라이브홀의 지하 4층에는, 사전 녹화가 있는 날에만 열리는 일일 매점이 있다.
그렇게까지 유명하진 않지만, 방송국 관계자 중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매점.
그리고 단언컨대, 대기 시간에 이 매점을 내려오는 것만큼 확실한 기분 전환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이거 춘용… 형이 사 주시는 거예요…?”
“어어, 그냥 막 집어. 식혜 두 통 들고 가도 돼. 저기 약과도 있는 거 봤어?”
“……!”
여기는 온통 단 것만 팔고, 새벽 시간의 슈가 하이는 그 어떤 것보다 기분이 나아지거든.
내 말에 시우는 무언가 크게 감명받은 표정으로 매점 이곳저곳을 뒤지며, 양팔에 뻥튀기와 약과 같은 것들을 하나씩 품기 시작했다.
그건 확실히 아까 대기실에서 다 녹아 망가진 녹차 프라페를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은 모습이었다.
“와, 대박. 춘용아, 너 이런 곳 있는 건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으음, 그러게. 나도 들어보기만 했지, 위치는 정확히 몰랐는데….”
“하하! 뭐, 아까도 말한 거지만. 어쩌다 보니까요.”
나는 각각 목에 좋은 꿀물과 간단한 초코바를 손에 든 두 형을 향해 대강 얼버무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내게 이곳의 존재를 알려준 둘에게 그 말을 듣는 건, 기분이 꽤나 이상한 일이었다.
“끄으으….”
“음, 유찬 형, 저랑 같이….”
“…그래. 렉스야. 일어나 봐. 너 지금 계속 누워 있으면 토해! 여기 소파, 우리 숙소도 아니잖아. 망가뜨리면 네가 물어줘야 한다고.”
“알았, 우욱, 근데 어딜 가는….”
앞서 말했듯 이곳은 아는 사람만 아는 사람만 아는, 신인은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방송국 반경 100미터 내에 편의점만 5개가 있는 와중에, 평범한 매점이었다면 결코 소문이 나거나 내가 따로 데리고 올 리가 없었다.
내가 이곳을 알게 된 까닭은, 유찬 형과 재하 형이 발품을 팔아 직접 만든 식혜가 있는 이곳을 알아 온 덕분이었다.
“이런 거 파는 건 또 어떻게 알았대요. 상암 라이브홀 3년 오가면서 이런 건 또 처음이네.”
“하하, 세레니아 선배님들한테 좀 여쭤봤어. 사녹날마다 들고 다니시는 커다란 통 식혜, 어디서 사신 거냐고.”
“…형들 여자 아이돌분들한테 말 잘 안 걸잖아요.”
“으음, 그렇긴 하지? 근데… 렉스, 너 편의점 숙취 해소제 잘 안 받잖아.”
“…….”
“식혜가 숙취에 좋은 거 알고 있었어? 앞으로는 여기 왔다 갔다 하면서 사서 마셔. 알겠지?”
심지어 그땐 이미 형들과 틀어질 만큼 틀어진 이후였는데.
“이거 정말 네가 사는 거야? 그럼 나, 꿀물 두 개 더 산다?”
“나는 이거면 충분할 거 같아. 굳이 뭘 더 먹으면 속에 안 좋을 거 같기도 하고.”
“재하야, 네가 그러면 형이 뭐가 되냐?”
“하하….”
저렇게 화기애애하게 떠드는 형들은, 애물단지 렉쓰레기가 뭐가 예쁘다고 다른 그룹 애들한테 그런 걸 묻고 다녔는지 모를 일이었다.
“…….”
나는 배 속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을 애써 참아 내며, 우리가 뭐라고 떠들든 말든 야구 경기 재방송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는 매점 아저씨를 향해 다가갔다.
“사장님, 계산할게요.”
“다 해서 삼만이천 원… 인데. 오만 원? 만 원짜리 없어?”
“아, 거스름돈 안 주셔도 돼요. 나중에 또 먹으러 올 거니까.”
“그럼 그때 와서 줘. 그룹명이랑 이름 적어 놓고.”
“아뇨! 받으세요. 저 그런 거 정말 잘 까먹거든요.”
“…거참, 연예인들이란. 돈 아까운 줄을 몰라, 돈 아까운 줄을. 빨리 가.”
“하하, 많이 파세요.”
“여기가 많이 팔리겠어?”
나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멤버들을 이끌고 매점 밖을 나왔다.
딱히, 내가 연예인이고 진짜 무언가를 잘 잊어 버려서 오만 원권을 내민 건 아니었다.
그냥, 이전에 내가 저 아저씨한테 외상을 좀 많이 달았거든.
“…후.”
이제 본격적으로 데뷔 후 활동을 시작하면서, 렉쓰레기 시절에 만났던 이들, 그리고 당시 내가 저지른 일들이 더 눈에 잘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 내가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도 자꾸만 다시 깨닫게 됐고.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 없는 내게, 이런 기회는 아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반드시, 지금.
잘해야만 했다.
“혀엉, 그. 고마워요….”
“에이, 아냐. 뭐 좀 많이 샀어? 보자, 한 번. 식혜랑, 약과랑….”
나는 시우의 품에 안긴 여러 주전부리를 하나하나 헤아리는 척하며, 이제 찌푸려지지 않은 녀석의 미간을 확인했다.
“이거 식혜, 진짜 다네요… 맛있어요.”
지금 당장에야 내가 한가득 사 준 간식들 덕에 기분이 나아지겠지만,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서 물이 된 녹차 프라페를 보면 시우의 기분은 또 가라앉을 게 뻔했다.
시우가 생각을 하고 행동할 때부터 장시원 선배님은 이미 스타였고, 시우는 자라면서 항상 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까.
이전에 ‘저 파도 너머의 우리’ 때 내가 민시영 선배님을 통해 임시로 상황을 봉합한 것처럼, 이것도 단지 일시적인 방법일 뿐이란 거지.
그러니, 아직 좀 이르긴 하지만….
짧더라도, 대화를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형들을 먼저 계단 앞으로 보낸 후, 시우의 옷소매를 이끌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우야.”
“네?”
“나, 너 기분 풀려고 매점 데려온 거야.”
“…….”
딱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바로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은 시우의 표정이 살짝 가라앉았다.
입에 달콤한 식혜를 때려 박은 후가 아니었다면, 눈에 띄게 우울해했을 게 분명했다.
“…죄송… 해요. 또 티 내서….”
“아냐. 사과받으려고 한 말 아니니까. 일단은, 네가 이걸로 기분 풀고 무대만 잘하면 난 상관없어. 앞으로도 이럴 거고.”
“어….”
“좀 티 내도 괜찮아. 뭐 어때. 너 그런 거 말고는 티도 안 내잖아. 그리고 너 아직 어려. 그 정도는 형인 내가 챙겨 줘야 한다고.”
이건, 이전에 정신 못 차리고 술에 취해 스스로 일상을 망가뜨리던 나를 곁에서 계속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던 시우를 향해 보내는 내 약속이었다.
난 네가 약간 방황하더라도 믿고 지지해 주겠다.
넌 아직 어리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
내 단호한 대답에, 시우는 물기가 맺힌 식혜통을 몇 번 만지작거리며 입을 삐죽였다.
그리고 잠시 정적.
부드럽고 새카만 머리를 얌전히 내린 녀석의 입이 다시 열린 건, 저 멀리서 우리 대기실이 눈에 아른거릴 때쯤이었다.
“…저는, 시우예요. 장시우.”
“어?”
갑자기 자기소개를 하는 시우의 얼굴에는 여전히 살짝 그늘이 져 있었지만, 눈빛은 아까와 비교도 할 수 없게 훨씬 결연해 보였다.
“시우, 라고 기억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어요. 애매… 하지 않게.”
“아.”
애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가볍게 탄식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시우는 무대 위에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잘한다.
노래, 춤, 무대 구성, 심지어는 그걸 보는 객관적인 시선까지도.
그래서 천재 연습생 소리를 들어왔다.
그러나, 그렇기에 뭐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다는 이유로 ‘애매하다’는 꼬리표가 따라붙곤 했다.
형보다 못한 동생, 애매한 동생.
거기에, 나 때문에 붙게 되었던 또 다른 꼬리표.
…렉쓰레기의 불쌍한 팀메이트.
“제 이름으로, 알려… 지고 싶어요. 이해해요? 장시원 동생 말고, 렉스의 불쌍한 팀메이트 말고….”
당시의 기억 탓에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를 못 했지만, 그게 눈에 띄지는 않았는지 시우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저희 형아도, 저를… 아껴서, 그렇겠죠. 전에 유찬 형이 ‘저 파도 너머의 우리’ 때, 저한테 뭐라고 그런 것도… 저 잘되라고… 그런, 거였고.”
“…맞아, 분명 그럴 거야. 유찬 형이라면 말이야.”
“그냥, 아까는 좀 걱정돼서, 그랬어요. 형들이랑 같이… 데뷔하는 건데. 저희 형, 이름이 더 많이… 언급될까 봐.”
아.
아까의 우울이, 마냥 자신만의 것은 아니었다고.
팀에 민폐가 될까 봐.
자기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으로 작용될까 봐 걱정한 거라고.
…이 기특하고 착한 자식.
그동안 진짜 민폐였던 건 네가 아니라, 분명 나였는데.
“어휴, 인마!”
나는 순간적으로 녀석과 거리 유지를 하는 것도 잊고, 바짝 마른 그 목에 팔을 턱 걸치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런 걸 갖고 그래, 어? 됐어, 됐어.”
“혀, 형?!”
“어차피 신인이라는 게 그런 거야. 다른 사람 이름값 좀 먹고 살고, 어? 그런 걸로 뜨고. 그거면 됐지!”
“춘용 형….”
“들어가자. 우리가 오늘 해야 하는 건 그런 걱정 말고. 사전 녹화 잘하는 거야. 어?”
평소 같으면 내 팔을 빼내려고 애쓸 게 분명한 시우인데, 오늘만큼은 얌전히 그냥 내 손길을 받았다.
드디어, 집사에게 첫 핸들링을 허용한 까만 고양이처럼.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어느 정도 마음이 통했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는 걸까?
“―다들 어디 갔었어요! 저랑 로건이랑, 어? 이거 나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Oh, 화성. 그건 아니죠. 호빈 형이 제일 많이 들었고, 그 다음이 저고, 화성은 아주 쪼끔….”
“에헤이, 로건. 제발…! 아까 같이 생색내기로 했잖아요!”
“What? 생색이 무슨 말이에요?”
“두 분 다 싸우지들 마시고요. 정말,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유찬 형과 재하 형이 먼저 들어가고, 나와 시우가 뒤늦게 들어간 대기실 안은 어째선지 떠들썩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도시락? 저희, 팬분들 개인 서포트는 안 받기로 했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아, 재하 씨. 맞습니다. 팬분들 서포트는 안 받기로 했죠. 이건, 팬분들이 보내 주신 게 아니에요.”
“아, 사장님이신가? 어후, 이런 걸 보내실 분은 아닌 거 같던데….”
“그, 네. 사장님이 아니에요. 슬레딕스의 정연우 님… 께서 보내신 겁니다.”
잠깐 잊고 있던 대상에게서 도착한, 의외의 선물 덕에 말이다.
“네? 정연우 선배님께서요? 아니, 왜 이런 걸…? 우리 소속사도 아니시잖아요.”
“글쎄, 저희 이번 수록곡에 ‘Loop&Repeat’ 티오제 버전으로 들어가잖아요. 그거 잘 불러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보내 주셨다는데요?”
“으음, 정말 생각도 못 한 선물인데….”
당황한 멤버들의 탄식을 들으며, 나는 시우를 이끌고 대기실 안을 점령한 값비싼 도시락 세트를 면밀히 살폈다.
우리 멤버들의 이름이 붙어있는 도시락에는 각각 [타겟팅 스타> 당시 좋아한다고 했던 간단한 과일과 반찬, 그리고 장어와 전복을 비롯한 스테미너 메인찬이 즐비하게 들어있었다.
그때 차 안에서 했던 ‘[타겟팅 스타> 전화를 전부 꼼꼼히 봤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걸 증명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음?”
그 순간, 난 내 도시락 아래에 붙어있는 작은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고.
단 걸 좋아하는 거 같길래 간식들을 좀 많이 넣었어요
운 좋으면 저희 정기 앨범 활동이랑 겹치겠네요 ^^ 그때 보죠
ps. 제가 준 스마트 워치 버린 거 아니죠?]
“허….”
연우 형의 목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것 같은 문장들에, 나는 가볍게 이마를 짚으며 탄식을 흘렸다.
평소 같으면 진짜 속 모를 인간이라고, 철저해서 징그럽기 짝이 없다고 생각할 텐데, 정말이지.
오늘따라 도움이 되네.
“…시우야.”
“네, 네? 춘용 형, 왜… 요?”
“너 아까, 장시원 선배님한테 받은 녹차 프라페 가지고 와 봐.”
“그걸 왜….”
“하하… 왜긴 왜야.”
나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의 막내를 향해 어깨를 으쓱이고는, 여상한 목소리로 열심히 도시락을 나르는 호빈 형을 불렀다.
“호빈 형. 저희 이거 어차피 인증 사진 SNS에 올릴 거죠?”
“아, 네. [타겟팅 스타> 프로그램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으니까, 뮤직데이즈 측에서도 업로드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아하… 그럼 겸사겸사 커피차 인증도 같이 올리면 되겠네요?”
“아, 그건 따로 올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함께 올리면 시선 분산이….”
“아, 아니요! 같이, 같이… 올리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런… 가요?”
“네에.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답지 않게 빠르게 호빈 형의 말을 끊어 낸 시우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이러면 자신의 형이 그렇게까지 부각되지 않겠다’는 기쁨과 함께.
“하하….”
나는 가벼운 웃음을 흘리고는 선물 받은 도시락과 음료, 그리고 멤버들을 한 곳에 모이게끔 했다.
뭐, 내가 예상한 방향으로 모든 일이 흘러 해결된 건 아니지만.
“자, 그럼 찍겠습니다. 하나, 둘!”
순간순간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또 잡아주는 게 좋지.
게다가….
“아, 티오제분들. 이제 20분 후에 무대 이동하실게요!”
이렇게 유연하게 일이 해결된 후에 찾아올, 우리의 첫 사전 녹화를 위해선 먹고 힘도 내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