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3)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83화
대담하다고 해야 할까,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담력 체험 미션에 배치된 카메라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고, 그 위치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설마 카메라가 없는 곳으로 가서 다투다니.
아니, 어쩌면….
“네가 사람들이 다 있는 곳 앞에서, 나랑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넌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내 의견 같은 건 또 전혀 궁금하지 않고?”
“네게, 적어도 변명할 기회를 주려고 배려했다곤 생각 못하나 보군.”
“내가 무슨 변명을 해야 하는데?”
그런 걸 전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둘 사이 갈등의 골이 매우 깊어졌다든가.
“…….”
나와 재하 형은 낮은 풀숲 쪽으로 슬그머니 주저앉아, 리밍쉔과 류웨이의 대화 내용에 집중했다.
당장 류웨이를 찾으려고 했던 건, 뭐.
혹여나 감정에 휘둘린 류웨이가 리밍쉔에게 해코지를 하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는데….
“류웨이. 제발 정신 좀 차려.”
얌전한 사람이 화가 나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금 리밍쉔이 똑똑히 보여 주고 있으니까, 굳이 섣부르게 나설 필요는 없었다.
“네 뒤치다꺼리를 굳이 도맡아서 했던 거? 그건 우리 집안 관계 때문만이 아니야. 적어도 너랑 내가 친구라는 것 때문에 한 거지, 이 개새끼야.”
흥분한 리밍쉔의 중국어를 전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악성 멤버 시절 대충이나마 배웠던 중국어 덕에 ‘개새끼’라는 욕 하나만큼은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단어를 말하는 리밍쉔의 표정.
“너 진짜 문제 있어. 알아? 지금 상황만 가지고 얘기하는 거 아니야. 이전부터 문제가 있었는데,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아서 네가 이렇게 된 거야.”
이리저리 흔들리는 손전등 너머로 슬쩍슬쩍 비치는 리밍쉔의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도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정정.
마구 타오르는 불씨 같았다고 해야겠네.
“지금 내가 이러는 이유가, 단순한 분노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리밍쉔.”
그에 반해 류웨이는….
“얘기했을 텐데. 난 너한테 변명할 기회를 주려고 했다. 내가 이 사태에 대해서 후원자분. 그러니까, 슈민의 아버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
정말이지, 차가웠고.
류웨이의 보통화 발음은 중국어 수업에서 들었던 교본만큼이나 말끔했다. 도무지 화가 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저질러? 내가 뭘 저질렀는데?”
“슈민의 정보를 녀석에게 제공한 것. 그리고, 그걸 통제할 수 없는 집단에게 노출되게 만들어 나를 현재 매우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
“…아, 그 일의 시작이 나한테서 나온 거다? 류웨이, 네 결론이 그거야?”
세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던 둘의 간격이 순식간에 좁혀졌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 두고 말하는데, 나한테서 무슨 변명이 듣고 싶은데?”
“드디어 변명이라고 언급했네.”
“말은 똑바로 해. 네가 단어를 그렇게 쓰니까 나도 써 준 것뿐이야. 애초에 내가 말하는 걸 있는 그대로 들을 생각도 없는데, 나랑 얘기는 왜 하겠다고 한 거야?”
“…….”
류웨이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이를 악문 리밍쉔이 류웨이의 어깨를 퍽 밀쳐 냈다.
그 힘이 떨어져서 보기에도 얼마나 강했는지, 리밍쉔보다 한 뼘가량 키가 큰 류웨이였음에도 꽤 밀려났다.
“됐어. 난 갈 거야. 지금은 촬영 상황이고, 너랑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 핸드캠도 갖다 버린 넌 알아서 숙소나 기어 들어가든가.”
“…리밍쉔.”
곧 리밍쉔은 제 핸드캠을 몇 번 조작하더니, 류웨이를 등지고 우리가 온 길과 반대쪽에 있는 길로 걸어갔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류웨이도, 빠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어둠 속에서 언뜻 보인 손이 주먹을 꽉 쥐고 있어서, 마치 칠 것 같은 기세로 말이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류웨이가 갑자기 리밍쉔을 때리진 않을 거다.
쟤가 어디 갑자기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 놓으면 매달아 놨지, 자기 손으로 직접 누구를 때릴 사람은 못 돼서.
그렇게 내가 일단 상황을 살피고 있던 그때.
“…춘용아, 잠깐만.”
“어, 어? 재하 형…!”
내 옆에서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있던 재하 형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갔다.
“너희 혹시, 그런 식으로 대화하고 그냥 갈 생각이야?”
그러면 전혀 갈등 해결이 안 될 거 같은데.
저렇게 부드럽게 얘기하면서, 손에는 손전등을 든, 훤칠하고, 잘생긴 연습생.
…아, 눈에 안 띌 수가 없잖아!
결국 나도 난감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재하 형의 곁으로 다가가야만 했다.
내 핸드캠이 물에 젖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풀숲에 내려놓는 건 덤이었고.
짧지만 우리가 어떤 고생을 하면서 찍은 촬영분인데, 고작 비 같은 걸로 날려먹을 순 없으니까.
“무슨….”
“…….”
우리를 발견한 두 중국인의 눈이 커다랗게 뜨이는 가운데.
손전등 빛을 받은 류웨이의 시선이 정확하게, 나를 향했다.
“…김춘용.”
“춘용과 재하? 여긴 어떻게….”
“촬영 장비를 마구 버리면 안 되지, 얘들아. 비도 오는데 말이야.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우리 되게 걱정했어.”
그들의 의문에 재하 형이 부드럽게 대답해 줬음에도, 류웨이의 시선은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니, 이젠 리밍쉔을 등지고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제 너와 대화할 필요는 없지만.”
낮게 읊조리는 류웨이의 한국어는, 내가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또 마주했으니, 굳이 안 나눠 볼 이유도 없겠지.”
살짝 갈라진, 아주 낮은 목소리.
나랑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훨씬 톤이 낮은 그 목소리는, 온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 옆에 있는 재하 형도, 방금 전까지 무섭게 다투던 리밍쉔도 알 바가 아니라는 듯 말이다.
“재미있게 해 주겠다더니, 별로 재미있지는 않았어.”
“…….”
“네가 저지른 걸 어떻게 갚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게 더 재밌었지.”
“류웨이, 잠깐….”
“내 몸에 손대지 마, 손재하.”
“…….”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재하 형이 류웨이를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 밀어낸 류웨이는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 일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린 거 같으니, 다시 한 번 해 주면 어떨까 싶긴 해.”
좀 더 확실한 걸로.
나는 류웨이가 한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눈동자를 굴렸다.
거의 다 그쳤다지만 비도 오고, 갑자기 다른 이와 싸우다 불똥이 튄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들은 탓이었다.
그러니까, 이 자식이 지금….
같지도 않은 루머로 우리 가족 건드린 얘기를 하는 건가?
그러나, 내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전에는 누나였으니까, 이번엔 여동생?”
아주 친절하게도 확인 사살을 해 주셨으니까.
류웨이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밥은 먹었냐, 잠은 제대로 잤냐, 연습은 잘하고 있냐 같은 일상적인 말을 하는 것처럼 태평할 뿐.
“하, 하하….”
이게.
“―춘용!”
“왜, 리밍쉔. 류웨이 옷이 좀 구겨져서. 고쳐 주려고.”
나는 당황한 리밍쉔에게 애써 웃어 보이고는, 내게 멱살이 잡혀 코앞까지 다가온 류웨이를 향해 단어를 꼭꼭 씹었다.
“야.”
이 비둘기 자식아.
“내가 그때도 그랬지. 너만 간절할 거 같냐고.”
“…….”
내 말에 재하 형과 리밍쉔이 침묵하고, 류웨이의 두 눈가가 꿈틀거렸다.
평소 같으면 내가 지금 꺼낸 말이 그닥 좋은 방향이 아니었구나, 상황을 살펴야겠다 같은 생각을 하겠지만.
“나도 간절해서, 우리 가족이 소중해서 그렇게 했어. 그건 재밌으라고 한 거 아니야, 인마.”
지금은 아니었다.
“네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린 대상이 나 혼자였으면 몰라. 근데 가족까지 건드린 마당에, 내가 가만히 있어야 돼? 너 정말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어?”
“―넌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렸어.”
“네가 뭐라도 된 거 같아? 쓸데없는 말 하지 마. 같잖으니까.”
나는 허탈함과 분노를 담아서 미소 지었다.
“왜 지금까지 네가 넘은 선은 하나도 생각 안 하고 우리한테 지랄이야. 류웨이. 웃기지도 않네?”
누나와 나리에게서 ‘아이돌 연습생이 욕을 하면 어디 쓰겠냐’는 면박을 죽어라 들은 이후로, 내게서 처음 흘러나온 욕.
그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술을 한 번 깨문 류웨이가 내 어깨를 들이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거 같다면, 오산이다.”
“뭐?”
“선. 그건 애초에 넘을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나는 넘어도 되는 사람이고, 너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 가족을 쥐고 흔들고, 루머를 퍼뜨리고, 데뷔를 할 수 있는 거야.”
너는 안 되고.
“김춘용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데뷔할 수 없어. 네 자리는 애초에 만들어 두지도 않았으니까. 내정이라는 말의 뜻을 아는지 궁금하군.”
“…….”
“그러니까, 놔.”
달라질 건 없어.
“…….”
이제 비는 뿌릴 만큼 뿌렸다는 듯, 천천히 바람을 타고 흐른 구름 사이로 어슴푸레한 달빛이 연습생 통조림 시설 인근에 쏟아졌다.
그 차가운 빛을 느끼며,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 진짜….
한 대만 치고 싶다.
내 물주먹에 저 자식이 아프든 말든,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 자체가 열 받는다고.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춘용아.”
뒤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재하 형의 손이 내 어깨에 닿았으니까.
비 때문에 살짝 축축하지만, 온기가 담긴 그 손.
그렇게 이성과 감정 사이로 내가 줄다리기를 하던 그때.
“―잠깐, 저기다! 가오옌은 단 하나의 스토리도 놓치지 않고 여기로 왔어! 틀림없이 저 큰 나무 아래에 보물이 있다!”
“허억. 비키세요, 가오옌! 보물은 우리 팀의 것입니다!”
“료타, 그 짧은 다리로 달려 봐야 어림없다! 가오옌은 다리가 정말 길거든! 이게 홍콩 상위 1퍼센트 남자의 달리기라고 보면 된다!”
“이이익! 우리 다리 길이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요!”
저 멀리, 다른 연습생들이 이 인근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명의 시선이 이리저리 얽히고, 눈동자 굴러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그 소리가 들려온 동시에, 여기에 서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그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건….
“―리밍쉔!”
여기에 서 있던 다른 세 명 중,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
“어어? 어? 보물이 있어야 할 곳에서 리밍쉔이?!”
“민호, 가오옌 팀과 임시 동맹입니다. 보물은 리밍쉔에게 있는 거 같아요. 잡아서 쟁취합시다!”
“으, 으응! 그렇게 하자!”
타다닥―
리밍쉔을 포함한 다른 이들이 뛰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류웨이의 멱살을 쥔 내 손을 재하 형이 조심스럽게 풀어 냈다.
“그만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내게 짧은 말을 뱉은, 달빛을 받은 재하 형은 빙그레 웃으며 가만히 서 있는 류웨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지금 형의 얼굴은 나와 서바이벌을 하던 아이돌 연습생이 아닌, 나와 멤버들을 지켜주던, 리더 형이었다.
“류웨이. 방금 리밍쉔이 들고 간 게 뭔지 혹시 알고 있어?”
핸드캠이야.
“메모리가 끼워진.”
“…….”
“내 생각에, 그게 피디님 손에 들어가면… 너랑 춘용이, 둘 다에게 별로 좋은 일이 안 일어날 거 같은데.”
그 말에 눈썹을 치켜올린 류웨이는, 나를 한 번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비로소, 이 자리에 나와 재하 형만이 다시 남게 되었다.
“하….”
내가 탈력감에 주저앉아 가만히 한숨을 쉬자, 재하 형은 젖은 내 옷 위에 묻은 나뭇잎 따위를 탈탈 털어 주며 조용히 말했다.
“네가 그렇게 화내는 거 처음 보는 거 같다, 춘용아.”
“아무래도요.”
그래도 제대로 한 번 화를 낸 덕분에,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었다.
사실 리밍쉔이 들고 간 핸드캠은 비에 젖어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일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재하 형이 그 상황에서 나를 말린 건 아마, 혹시라도 내가 류웨이에게 주먹질을 해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까 봐 그런….
춘용아, 있잖아.
“우리 카메라는 안 젖은 거 같더라. 네가 비 안 맞게 둔 덕에.”
히이이이―
재하 형의 목소리는 바람 부는 소리와 제작진이 깔아 놓은 공포 BGM에 섞여, 싸늘하게 내 귀를 후벼 팠다.
“…그럼 메모리도 멀쩡하겠지?”
그리고, 그게 나쁘게 들리지만은 않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