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석면의 마법사가 배신한 것이 어떻게 우리 흑린의 탓이 되는 거요?”
한 달 전, 흑린.
오라즌, 대회관.
카일이 오기 전 대신들은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센 왕자님께서 마법사를 제압했을 때 회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소.”
“그게 정말이요?”
“정말인지 어떤지는 모를 일이지.”
오라즌은 가만히 있어도 흑린의 모든 소식이 들어온다.
하지만 그중에서 무엇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것은 듣는 사람의 몫이었다.
“어쩌다가 바센 왕자님이 거기까지 가게 된 거요? 처음에는 동쪽 산맥을 탐험한다는 명분 아니었소?”
“얼마 전에 시연한 대포라는 신무기를 봤소? 그걸 남방 제도로 운반했다더군. 군함이 부족하니 탐험단이 포함되었고.”
“그럼 폐하께서 이 모든 걸 알고 계획하신 건가?”
“하지만 당시에는 반대가 많지 않았소? 그래서 감독관을 붙이기도 했던 것 같은데.”
늘 상황을 주도한다고 생각했던 흑린의 대신들이지만 대륙에 유례없는 사건이 찾아오면서 혼란은 커지기만 했다.
“바센 왕자님 이야기는 그쯤 합시다. 중요한 건 다섯 동맹이 우리를 탐탁지 않아 한다는 거지.”
“‘탐탁지 않아 한다’니. 말을 너무 곱게 쓰시는군. 놈들은 노골적으로 피해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소. 그리고 바센 왕자님은 이 일의 중심에 있는 셈이고. 이야기를 그만둘 수는 없지.”
“그건 핑계뿐이라는 거요. 언제나 명분이 필요했을 뿐 다섯 동맹이 흑린을 건드리려고 했던 건 잊으셨소?”
“그러니까, 내 말은 그 명분이 정리만 되면 저쪽도 시비를 걸 수는 없을 테고…”
그때 대회관의 바깥문이 열렸다.
“카일 라크 오라즌 폐하 납시오!”
좌수관들이 우르르 들어섰고 가운데 길로 카일이 걸어왔다.
카일은 왕좌에 앉은 다음 말했다.
“바쁘니 별도 절차는 생략해야겠군. 경들도 모두 소식은 들었겠지.”
그 말에 행정대신 라뷘이 말했다.
“석면에서 자신들의 배를 불사르고 도망친 마법사에 대한 책임을 흑린에 물은 것 말입니까?”
“그래.”
“마침 대신들도 이른 시간부터 모여 회의를 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소득이 있는가?”
그 말에 라뷘이 주요한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말했다.
“우선 석면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고, 사실이라면 그 책임이 정말로 바센 왕자님을 비롯한 해적 토벌에 나선 이얀 타타 장군에게 있는지 알아야겠으며,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국익을 위해 석면의 요구를 들어줄지 말지 판단해야 할 줄로 압니다.”
꼭두새벽부터 이어진 회의에 다들 신경이 날카로웠지만 라뷘의 정리에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모두 들은 카일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주제는 논하지 않은 것 같군.”
“예? 중요한 주제라 하오시면…”
“전쟁 준비를 해야지 않겠나?”
그 말에 대신들이 불안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석면이 제시한 조건은 어처구니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다섯 동맹과 흑린이 지난 백여 년의 시간 동안 사사건건 시비를 붙으며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기를 너무 오래 보냈기에, 진짜로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안이한 판단이 앞섰다.
하지만 카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섯 동맹과 싸우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시조 왕이신 라크락 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싸우면 이겨야 하지.”
그 말에 재정대신 니르각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폐하, 아직은 모를 일 아닙니까? 원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전쟁은 흑린이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피해야 할 일입니다.”
왕의 의견을 완전히 반대하는 말이지만 대신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눈치였다.
카일은 안타까웠다.
“나도 그랬으면 하는군.”
“그런데 어찌하여…?”
카일은 고개를 돌렸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회관의 여닫이문들은 셋 중 하나가 열려 있다.
해는 아직 낮게 떠올랐을 뿐이지만 열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신들이 그것을 바라고 있다면 한낱 땅 위를 걷는 이들이 그걸 막아설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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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린의 귀족 계급은 군인 신분으로 전쟁에 나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본래 리자드맨의 종족비가 많고, 리자드맨의 특성상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전투에 임할 수 있기에 병종의 높은 비중이 리자드맨이었다.
이런 경향은 다른 나라에도 여전히 남아 있어서 일반적으로 좋은 장비를 갖추고 전투 기술을 배우는 고급 병종은 나라가 세워질 때의 주요 종족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병은 일종의 계급이기도 해서 수도인 오라즌을 지키거나 해적들의 침입을 막고, 국경을 지키는 등 상설 군대를 이르고 있었고 이 숫자만 하더라도 1만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그 군대를 다 움직일 수는 없지.’
성운은 엘다르가 전한 룬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최종적으로, 룬다가 다섯 동맹에 속하게 되더라도 큰 그림은 변하지 않지만, 배신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룬다는 단순해. 강한 쪽에 붙는다.’
성운으로서는 쉽게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고 좋았다.
오히려 의아한 쪽은 엘다르였는데, 성운은 엘다르가 배신을 하려는 기미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마음이 꿉꿉한 상태였다.
‘이 타이밍에 배신을 안 한다고?’
물론 성운은 자신의 마음 상태를 게임 플레이에 반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상비군이 아니라 소집병인데.’
겨우 1만의 병력으로 다섯 동맹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미 있는 상비군 전체를 전쟁을 위해서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정 비율은 지역을 지켜야 하고 일정 비율은 밖으로 내보내야 해. 상비군은 정예병이니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소모되면 군 병력 전체의 질이 떨어질 거야.’
다행히 성운은 이 부분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로스트 월드는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특히나 이런 종류의 국정과 관련해서는 플레이어가 직접 나서서 이런저런 제도를 간섭하긴 힘들었다.
단지 궁정 안에 들어갈 신하들의 능력이나 경향성을 파악해서 궁정 안으로 들어오게, 또는 내보내도록 만드는 간접적인 조종이 필요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실질적인 병력이 원하는 만큼 모이지 않거나, 전쟁에서 싸우게 되는 병력의 질이나 병력 구성이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까지 궁정 안의 구성을 플레이어가 의도한 대로 꾸며 내는데 성공했다면 잘될 것이며, 아니라면 엉터리 군대를 가지고 싸워야 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성운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역시 똑똑한 게 최고야.’
카일 라크 오라즌은 앉은 자리에서 사리에 맞는 병력을 구상해 냈다.
우선 카일은 상비군을 둘로 나누었다.
중앙군과 지방군.
이 중 지방군은 지역 방비를 위해 남겨 두었고 중앙군은 오라즌을 중심으로 반란군과 치안 부재 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던 병력을 재편한 것이었다.
카일의 설명에 따르면 이 중앙군은 외적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첨병이었다.
카일은 이 중앙군과 별개로 병력을 추가로 소집하도록 했다.
이 추가 소집 병력도 중앙 소집과 지방 소집 둘로 나뉘었는데, 이는 상비군을 둘로 나눈 이유와 같았다.
‘중앙군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지역에서 차출한다. 반면에 지방군은 방어전을 펼쳐야 할 때 급하게 추가 병력을 소집해야 할 테니. 하지만 기초적인 훈련과 의무를 적어 두고 그 전까지는 농사를 짓는 등의 일과를 보내도록 해서 전시에도 최대한 자원을 축적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따라 중앙군 4천과 1차 중앙 소집군 8천이 모였다.
병력을 순차적으로 모집하는 것은 당장의 백성들의 불만을 줄이고 차후에 더 많은 병력을 소집하기 위해서였다.
‘당장 전쟁 가능한 모든 병력을 다 끌어들이면 초기에는 유리한 지점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해가 된다. 성비가 맞지 않아서 인구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 건 전쟁이 길어질 때 흔히 있는 일이야. 그리고 이 전쟁은…’
성운은 구체적인 숫자를 가늠해 보다가 가로저었다.
‘…엄청나게 길어질 테니까.’
지구의 역사에서도 하나의 대륙을 걸고 일어나는 전쟁은 흔하지 않았다.
문명의 차이로 압도적인 승수를 쌓아 나간 정복자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평생을 걸었다. 그 자손이 뒤를 이은 적도 있었다.
게다가 성운은 자신이나 카일이 그 정도까지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같은 대륙이니만큼 문명 수준이 유사하잖아.’
아무튼 빠르게 모인 1차 중앙 소집군 8천은 속성으로 군사 훈련을 받았다.
그 사이 외교 상황은 빠르게 나빠졌다.
흑린에서 부드러운 입장을 가진 대신들이 있었던 만큼, 석면이 요구한 사과만큼은 아니더라도 화해를 바라며 사신을 보냈지만 석면은 자신들을 조롱하지 말라며 사신의 목을 잘라 내보냈다.
가만히 있어도 일어날 전쟁이었지만 이런 태도가 백성들에게 알려지며 양국, 그리고 대륙 전체에 전쟁에 대한 기류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카일은 이 중앙군 중 2천, 그리고 1차 중앙 소집군 8천을 더해 1만의 병력을 갑군으로 이름 붙였다.
갑군은 오라즌의 북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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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모르는 땅.
“꼭 이 방법을 해야 되겠나?”
“보이는 전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위즈덤은 자신의 별 모양의 머리를 천천히 회전시켰다.
그 앞에는 혼자서 큼직한 사자탈을 머리에 쓰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장완이었다.
위즈덤이 말했다.
“정말 괜찮겠나?”
“괜찮지 않다.”
“…그런데 왜?”
그 말에 장완이 답했다.
“나는 네뷸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대륙을 놈이 제패하도록 두고 싶지 않아.”
위즈덤이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게임일 뿐이다. 나도 네뷸라에게 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고 패배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그 말대로다, 위즈덤.”
장완은 사자탈의 눈을 껌뻑거리다가, 무언가 귀찮아진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제 상체를 덮고 있던 거대한 사자탈을 집어 던졌다.
키가 위즈덤의 가슴께 정도 오는 검은 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이건 게임일 뿐이야. 나는 내가 생각해 낸 최선의 전략을 행할 뿐이고.”
“…흠.”
“너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봤지만 배신은 어디서나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안전한 책략도 하나 가져가야 해.”
“하지만 이 일을 행하면 너의 힘이 약화되는데. 꼭 이득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니라는 거 알잖아?”
위즈덤은 사실, 장완의 말이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네뷸라와 다른 플레이어 사이에는 아직 좁히기 힘든 격차가 존재했다.
“사도.”
“모든 준비가 철저해도, 사도가 있냐 없냐만으로 승패는 갈릴 수 있어. 난 솔직히 잘 몰라. 하지만 적어도, 통계가 그렇게 말해 주지.”
“맞다.”
“그럼 이야기 끝난 걸로 알겠어. 마음의 짐은 지지 마. 이건 어뷰징 같은 것도 아니야. 모두를 위한… 전략이지.”
위즈덤이 내려다보자, 기도를 올리고 있는 수많은 코볼트 사제들이 보였다.
그중 가장 선두에 선 코볼트 대제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현기로 반짝였다.
장완이 강신한 상태였다.
“와라.”
위즈덤은 자신의 종족에서 가장 유력한 존재를 불렀다.
석면의 왕 데르말딘의 숨겨진 아들 중 하나인, 레딘이었다.
위즈덤은 레딘의 몸에 강신했고, 단도를 뽑아 들었다.
훗날 ‘피의 날’이라고 불릴 학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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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은 일이 모두 끝났을 때 자신 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보았다.
「신성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20→21」
「이제 ‘사도’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