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성운은 그 말을 이해하려고 했다.
고대의 마법사들이 있던 세계는 단순했을 것이다.
힘을 가진 이들이 그보다 약한 이들을 지배한다.
하지만 이 지배는 견고하지 못하다.
지배자인 마법사들의 마법이 불안정하다는 말은, 언제나 그 지배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마법사들이 아무리 강하다고해도 피지배 계층들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생각보다 견고했을지언정, 적어도 그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긴 힘들었을 거라 짐작했다.
‘신성이란 개념이 이해가 되는군. 아래의 존재들은, 결코 상위 존재에게 대적할 수 없게 만들어놓은 구조니까.’
이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힘을 결단코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성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그 지배구조를 완성시킨 것이다.
‘혁명이라기보다는… 압제라고 봐야겠지만.’
알딘이 말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이 되었고, 아바르틴은 평화로웠다.”
“평화로웠다고?”
성운이 의문을 던졌다.
“우리가 왔을 때의 아바르틴은 그렇지 않았는데.”
“7만년이다.”
“뭐?”
알딘이 말했다.
“7만년 동안 평화로웠다.”
알딘은 성운에게 삿대질했다.
“너희의 세계를 봐라. 너희가 만든 세계를 봐라. 외우주의 힘에 기댄 결과를 기억하란 말이다. 너희의 세계는 유사 이래, 단 며칠도 전쟁이 없었던 날이 없고 계속해서 사람이 죽어갔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를 몇 번이나 박살낼 폭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우주의 힘은 다르다. 7만년이다. 다툼이 없었다고 하진 않겠다. 고통이 없었다고 하지도 않겠다. 하지만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고, 모두가 자신들의 위치에서 만족하며 생을 마감했다. 뿐만이 아니지.”
알딘이 무겁게 말했다.
“우리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죽이지… 않았다?”
알딘이 외쳤다.
“사후세계를 만들었단 말이다!”
“아.”
“죽음 이후에도 죽음이 없었다.”
“그랬군.”
성운은 이런 상황임에도, 알딘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희는 단순히 지배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군.”
“그래.”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았던 거군.”
“그래. 우리의 마음을 알겠는가?”
“죽으면 사라지는 노예가 아니라, 영원한 노예들을 가지고 싶었군.”
알딘이 성운에게 달려들었다.
성운은 갑작스럽다고 생각했고, 심상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이 알딘만큼 능숙하지 못했으므로, 둘은 뒤엉켜 쓰러졌다.
알딘은 성운의 옷깃을 쥐었다.
“그런식으로 말하지 마라!”
성운은 알딘이 주먹이라도 휘두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놀랍게도 알딘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런식으로 말하지 마라. 그때의 우리는, 정말로, 죽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했단 말이다.”
“….”
“넌 죽음이 좋은가?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사고할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곤하다면, 원없이 잠들면 그만이다. 끝모를 잠으로 언젠가의 영원 끝에 만남을 약속할 수도 있다. 죽음은 그런 게 아니다. 죽음은, 끝이다. 외우주의 기술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내우주의 모험으로도, 우리가 찾은 마법의 마지막 비의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내지 못한다. 우리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
“7만년이란 말이다! 너는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우리조차도 이제 꿈결로만 기억한다. 거의 영원에 가까웠다. 7만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기적이었다. 모두가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고 감히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행복했다. …아니, 좀더 솔직하게 말하지. 괜찮았다. 괜찮은 삶을 살았다. 이대로 삶이 계속 된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가끔 화가 치솟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가끔은 행복했다. 좋은 일들이 있었고, 우리는 다음 좋은 일이 있을 때까지 기다릴만큼의 인내심을 배우기도 했다. 우리 옛신만이 아니라, 아바르틴의 거의 모두가 그랬다.”
성운은 자신의 가면 위로 무언가 툭 떨어지는 걸 알았다.
눈물이었다.
‘옛신도 우는가.’
성운이 누운 그대로 말했다.
“그런데 왜…? 뭐가 문제였지? 왜 8만년도, 9만년도, 영원도 아닌 7만년이었지?”
알딘은 소매로 눈가를 닦는다.
후드 안으로 성운은 얼굴을 보고, 잠깐 놀라지만, 의식하지 않기로 한다.
알딘이 말한다.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마법은 불안정하다.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았다.”
알딘은 천천히 성운의 몸 위에서 일어났다.
알딘이 돌아서며 말했다.
“모든 정보는 저장될 공간이 필요하다. 내우주라지만 그 근간은 외우주에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는 생명에게 적대적인 저 삭막한 외우주의 공간을 무가치하게 바라보지만, 외우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라스다실’에서 문제가 있었나?”
알딘이 성운을 바라본다.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는 것 같지만, 따로 묻지는 않는다.
알딘이 말한다.
“그래. 아바르틴의 모든 정보값은 하나의 공간으로 흘러들어간다. 우리는 아바르틴의 한 점에 시스템을 구축했지. 우리는 충분한 저장공간을 확보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7만년은 긴 시간이었다.”
“*배드섹터*군.”
“그래.”
오래된 저장공간은 충분한 저장 용량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이거나 논리적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손상은 회복되기 힘들고 손상 자체가 증식되며, 저장공간을 잠식한다.
“라스다실은 손상되었다. 그 자체로 치명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저장공간을 넓게 마련했으니. 각각의 섹터, 즉 공간은 나뉠 수 있고, 시스템을 보호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다른 문제가 있지.”
“그곳이 저장공간이란 말은…”
“그래. 모든 데이터들… 그러니까 사후세계의 근간도 바로 그곳에 있다. 침식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부터 왔다.”
알딘의 설명은 구체적이었지만, 아바르틴의 과거와 그 사후세계의 설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성운으로서는 완전한 모습으로 떠오르진 않았다.
단지 설명되지 못하는 ‘기이한 일’이라고 할만하거나 ‘으스스한 일’이라고 할만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침식, 또는 침식 사건이라고 부른다. 우리와 원래라면 접할 수 없는 다른 내우주가 우리 세계에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지. 본래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위협이 바로 침식이기도 하다.”
성운은 알고 있었다.
마법은 그 근간이 없는 힘이다.
다른 세계에서 빌려오는 것 같기도하고, 그저 자신의 내부에 응축되어 있던 걸 꺼내 쓰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떤 설명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침식이 아니더라도 위험하겠지.’
알딘이 말했다.
“침식의 징조는 5만년 때부터 있었고, 이를 해결하는 걸 1만년 동안의 주요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다음 1만년 동안 속수무책이었지. 우리의 중심이었던 라스다실은 결국 마의 공간이 되었다. 수 많은 정보들이 제대로 검색되지 않았고, 사후세계에 균열이 갔으며, 존재하던 이들이 사라지고, 죽음이 다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악신과 그 아이들이 나타났지.”
알딘이 매몰차게 말했다.
“너도 알지 않은가? 그 가증스러운 종족들 말이다.”
성운은 늑대인간과 뱀파이어, 딥원, 요정 끝으로 그레이를 떠올렸다.
하지만 설명에 따르면 악신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훨씬 많은 악신과 악신의 아이들, 즉 고대의 악들이 범람했다.
알딘이 말했다.
“기이한 일과 으스스한 일들이 거듭되며 놈들이 아바르틴에 자리를 잡아갔다. 우리 종족들은 ‘변형’ 되었다. 침식에 더해 시스템 구조가 자꾸 오류를 일으켰다. 놈들은 시스템에 상정된 놈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싸울 수 밖에 없었던 거군.”
“그래.”
알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놈들과 공존할 수 없었다. 우리가 죽거나, 놈들이 죽어야 했다.”
그것이 ‘옛 전쟁’이었으리라.
“마법사들이, 드래곤들이,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투쟁에 뛰어들었다. 우리가 만들었던 규칙은 깨어졌다. 우리 옛신들을 우습게 보는 이들이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신앙을 믿지 않았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믿지 않기 시작했을 때, 옛신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구조에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신앙을 믿지 않게 된만큼, 신들의 힘도 약해졌을 것이다.
“버거워졌다.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 싸울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간 잊고 지냈던 외우주의 기술과학으로 눈을 돌렸다. 그게 유일한 경쟁력이었다.”
그렇게해서 두 번째 달, 룸이 건조되었다.
물론 성운이 알고있기엔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눈 앞의 알딘은 오로지 옛신의 입장에서, 단순화시킨 이야기를 하고 있을뿐이다.
‘악신에겐 악신들의 이야기가, 옛신들에겐 옛신들의 이야기가 있는 거겠지.’
알딘이 말했다.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뒷처리를 할만한 여유가…”
성운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잠깐.”
“뭐지?”
“그냥 이기지 않았다는 걸 알아. 너희는 룸을 건조하기 위해서 인과율에 막대한 부하를 줬다.”
“….”
“그 책임은 어떻게 되었지?”
알딘이 돌아보며 말했다.
“놈들과 대화를 한건가?”
“그래.”
“…놈들이 괜한 소리를 늘어놓았군.”
알딘은 주저한다.
거짓말을 하려는 것이다.
성운은 거짓말에 전혀 넘어가지 않을 태도로 알딘을 정면에서 마주한다.
알딘도 그것을 알아차린다.
알딘은 곧장 거짓말 하진 않는다.
“그래.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서 최후의 방법으로 룸을 건조했고, 인과율을 심각하게 어겼다.”
시스템은 안정적이다.
시스템 그 자체로는 인과율을 어기기 힘들기 때문에, 성운은 옛신들이 마법사였던 과거의 힘을 떠올려 더 거친 마법을 사용했으리라 짐작했다.
실제로 룸에 사용된 과학 기술들은 놀랍지만, 무언가 교합이 잘 되지 않는다.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단순하게 이용된 부분들이 있다.
“그에 대한 부하를 그대로 받으면 우리는 사멸보다도 고통스러운 결과를 맞이할 터였지만, 다행히 우리에겐 다른 방책이 있었다. 마계로 숨어든 것이지. 그것만으로도…”
“아니.”
성운은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알딘은 방금 거짓말을 하려고 했다.
“인과율은 그렇게 간단히 속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너희가 직접 받지 않더라도 분명 누군가는 받아야 한다.”
알딘은 잠시간 아무 말도 않는다.
띄엄띄엄 말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받지 않았나.”
“다른 이들?”
“아바르틴의 모든 존재들.”
알딘이 말한다.
“우리 옛신들이 그 고통을 모두 감내할 수 없으니, 아바르틴의 모든 생명이 그 부하를 감내했다. 신을 잃었고, 문명을 건설할 이지도 잃었다. 사후세계도 없이 황야를 떠돌다 쓰러지면 죽었다. 그 뒤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병에 걸리면 기갈로, 맹수에 물리면 감염으로 열이 올라서, 물에 빠져 죽기도 하고 산에서 굴러 떨어져 죽기도 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었지?”
“4만년 정도. 우리의 계산으로는 그랬다. 그럼 인과율은 만족할 것임을 우린 알았다.”
성운은 잠시 눈을 감았다.
로스트 월드가 막 시작 될 때의 황량한 풍경들이 떠올랐다.
겨우 말이나 할줄 아는 이들이 얼마 남지 않은 자원들을 다투고 경쟁을 한다.
약하고 병들고 나이 많은 이들이 먼저 죽는다.
남은 이들은 그 다음이 제 차례가 아니기만을 빈다.
빌지만, 누구도 응답해주지 않는다.
성운에겐 한 사람이 아니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라크락.’
황야를 떠돌던 그 젊은 리자드맨을 성운은 기억했다.
그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었다.
‘상처입은 자.’
성운은 이제 그 상처가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안다.